강의: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강의: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13.00
Description
“언어의 영구 혁명이 발하는 광휘 속에서
권력-바깥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이 이로운 속임수,
말하자면 슬쩍 따돌리는 동작, 그 멋진 술책을 저는 제 방식대로
문학이라 부릅니다.”
프랑스 기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콜레주드프랑스 취임 연설 「강의」, 그리고 바르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자크 데리다가 발표한 애도의 글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을 묶은 책 『강의∣롤랑 바르트의 죽음들』(김예령 옮김)이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하나는 바르트의 시작을, 다른 하나는 바르트의 끝을 계기로 쓰인 두 텍스트는 바르트의 사유가 이동해온 궤적을 짚어본다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닌다.
바르트는 지적 활동 초기엔 구조주의에 전념했으나, 텍스트 분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도기를 거쳐 후기에 이르러서는 환원적 체계에 대항하며 기호들의 유희에 뛰어드는 사상적 전환을 이룬다. 이 같은 이동 작업은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에서 그의 책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인용하는 데리다에 의해 조명되기도 한다. 간결하고도 깊이 있는 두 텍스트 속에서 이러한 교차점을 읽어내는 일은 바르트와 데리다가 나눈 학문적 우정을 가늠하게 할 뿐만 아니라, 바르트와 데리다를 서로 다른 각도로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저자

롤랑바르트,자크데리다

기호학자,문학비평가,작가.소르본대학교에서고전문학을공부했으며,파리국립과학연구센터연구원과고등연구실습원연구책임자를거쳐콜레주드프랑스의문학기호학교수를역임했다.고전문학과수사학을비롯해언어학,기호학,정신분석학등동시대이론들을횡단하며활발한사유를펼치고,권력의담론과체계의보편성에균열을가하면서현대문학과이론의전위적움직임을대표하는인물로자리매김했다.주요저서로『글쓰기의영도』『라신에관하여』『기호학요강』『S/Z』『기호의제국』『텍스트의즐거움』『롤랑바르트가쓴롤랑바르트』『사랑의단상』『밝은방』등이있다.

목차

강의
롤랑바르트의죽음들
옮긴이해제:B/D

출판사 서평

「강의」:언어의유토피아들을향해

따라서이동한다는것은다음의사실을의미합니다.사람들이당신을기다리지않는곳으로가는일,혹은한층더급진적으로표현하자면,부화뇌동하는권력이자신이전에쓴것을이용하고예속시키는경우그것을공식적으로버리는일.(p.34)

「강의」는1977년1월7일롤랑바르트가콜레주드프랑스의문학기호학교수직에부임해첫개강을맞아발표한강연문이다.바르트의콜레주드프랑스부임은학자와학생,일반청중과기자들로첫날강의실을가득채울만큼큰관심을모았으며,그열기는바르트가1980년까지콜레주드프랑스에서진행한세강의‘어떻게함께살것인가’‘중성’‘소설의준비’로도이어졌다.자신의학문적여정을요약·정리하고콜레주드프랑스활동의시작을알리는상징적사건이된이강연문에서그는언어가말하도록강제하고의미를고정한다는점에서근본적으로“파시스트적”(p.20)이라는논쟁적발언을던진다.그만큼20세기프랑스지식사회의주요쟁점이었던언어와권력간의불가분의관계에대해“우리의진짜투쟁”은권력‘들’에대항하는데있다고역설하며,언어바깥으로나갈수없는만큼언어를속이는술책으로서문학을상정한다.
1530년설립되어창립초기부터누구나참여할수있는열린교육을지향해온콜레주드프랑스는권력바깥에놓이는특권적장소로여겨진다.이곳의강단에서기위해서는한림원과콜레주드프랑스소속교수의추천을받아야하며,바르트는1970년부터콜레주드프랑스에재직중이던미셸푸코의추천을받았다.그런데이는당시논란의여지를안고있었다.결핵으로인해“공식학위를갖”지못했던데다,고전문학과수사학을비롯해언어학,기호학등동시대의여러이론을횡단하며전통적제도바깥에서글쓰기를실천했던바르트의스타일은제도비평계와대학강단의의구심을불러왔다.이같은긴장속에서제출된「강의」는‘에세이만쓰는이,’모호한자,어느장소나체계에서든미묘하게흔들리는주체로서바르트가조성하는물음표의작고부드러운저항력을담고있다.
이글에서바르트는언어의해방공간,유토피아를어떻게창안할것인가라는화두를던진다.인간이언어바깥으로완전히나갈수없다면,반대로욕망의개별성과다수성에따라무수히뻗어나가고움직이는말들의공간,언어의유토피아를꿈꿀수있다.그러나“언어체의유토피아는유토피아의언어체로회수”(p.32)된다는바르트의지적처럼,권력에대항하는시도는곧권력에의해포섭되기마련이다.바로그렇기때문에저자들에게는고집스럽게스스로를이동시키는일,자신의시도가권력에이용당한다면그것을버리는일이요구되는것이다.이는권력과제도바깥에놓이는콜레주드프랑스에서조차예외가아니며,따라서바르트는말한다.“저는이같은강의를시작할때는늘기꺼이환상에자리를마련해주어야한다고진실되게믿고있습니다.”(p.52)1977년에서1980년까지콜레주드프랑스에서바르트의‘강의’를수강한청중은이처럼유토피아로부단히이동하는현장에가담한셈이다.


「롤랑바르트의죽음들」:세상을떠난친구와나누는
무한한대화의약속,애도

이책의두번째텍스트「롤랑바르트의죽음들」은롤랑바르트가세상을떠난이듬해인1981년자크데리다가『포에티크』지에발표한애도의글이다.바르트를향한애도의글을시작으로데리다는20여년간미셸푸코,에마뉘엘레비나스,장-프랑수아리오타르,모리스블랑쇼등학문적으로교류한친구들이세상을떠날때마다다양한형식으로작별인사를쓰게된다.이애도의글들은우정과애도,타자성이라는데리다철학의테마를보여주는데,이글들을한데묶은책의프랑스어판제목‘매번유일한,세계의끝’이나타내듯데리다에게친구의죽음은한명한명이전적으로유일하며대체불가능한타자들이라는점에서매번세계전체가끝나는일이기때문이다.
“사람들은애도가점진적작업을통해천천히고통을지운다고말한다.나는그말을믿을수없었고지금도믿지못한다”라는『밝은방』의인용문과공명하듯,데리다는이글에서주체의기억을통해타자의타자성을제거하는보통의애도작업을문제삼는다.애도작업에서산자들은죽은자를배신할수밖에없다.죽은자는산자들각자의일방적인기억으로정리되면서한번더죽는다.이같은통상적애도작업에데리다는저항하면서도,침묵을지키기보다는바르트에대해쓰는편을택한다.“달리어떻게말하겠는가,그위험을감수하지않고서.유일한것을복수화하지않고서,그가지닌가장대체불가한것,즉그자신의죽음까지도일반화하지않고서.”(p.119)불러도대답할수없는친구가육성이아닌다른방식으로말할수있도록,데리다는대신바르트의책들을펼쳐든다.이렇듯바르트의육체를바르트의책으로전환하고확산할수있게하는힘으로서환유에주목하는데리다의시선은,우리에게타자중심적애도의가능성을탐색할계기를마련해준다.
「롤랑바르트의죽음들」에서데리다는죽은자를마음대로재단하는산자의전횡을저지하며,친구의말에고유의발언권을돌려주려는충실한독서를수행한다.그로써미처알아채지못한바르트사유의세부연관원리를분간하고,바르트의미묘한음정들을식별할수있다.바르트의말이데리다의사유에실려돌아올때,남은자의생각과죽은자의인용이대화처럼교차할때,그독법은어느한편으로기울지않는우정이둘의사유를하나의선으로잇고나누는광경을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