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간들

행복한 시간들

$19.00
Description
“바다는, 만일 신의 음악이라는 것이 있다면,
신의 음악이다.”
철학과 시의 향기가 깃든 유려한 문장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파스칼 키냐르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동시대 문학의 살아 있는 고전이자, 진정한 거장이다.
『아르 드 비브르』

“동시대 문학의 살아 있는 고전이자, 진정한 거장”으로 손꼽히며, “키냐르가 곧 장르”라고 할 만큼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1948~ )의 『행복한 시간들Les Heures heureuses』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키냐르는 2001년 『은밀한 생』을 시작으로 25년 동안 한국에서 21권의 작품이 출간될 만큼 한국의 문학 독자들에게 이미 인정받은 작가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철학적 에세이(라고 익숙한 분류체계에 넣을 수 있지만 장르를 정확히 명명하기는 어렵다)와 소설로 나뉘는데, 『행복한 시간들』은 키냐르가 ‘몇 권이 될지 모르나 죽을 때까지 계속 쓰겠다’는 철학적 에세이 ‘마지막 왕국’ 시리즈의 12권이다.
작가 자신의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의 주제는 회귀하는 자연에 대한 행복(기쁨)이다. 끔찍한 인류의 역사가 선조적線條的으로 진행되는 데 반해, 계절과 시간들heures은 항성의 회전처럼 시간temps에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에마뉘엘 베른하임과 ‘나’의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행복한 우정도 주요 테마 중 하나이다. 키냐르는 오랜 시간 이야기, 신화, 회상, 과거의 메아리, 가설로 구성된 매혹적인 자료를 끝없이 엮어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어떤 때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었으며, 키냐르 문학의 정수가 응축되어 있다.
저자

파스칼키냐르

PascalQuignard
1948년프랑스노르망디지방의베르뇌유쉬르아브르(외르)에서태어나1969년에첫작품『말더듬는존재』를출간했다.어린시절심하게앓았던두차례의자폐증과68혁명의열기,실존주의·구조주의의물결속에서에마뉘엘레비나스·폴리쾨르와함께한철학공부,뱅센대학과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의강의활동,그리고20여년가까이계속된갈리마르출판사와의인연등이그의작품곳곳에서독특하고끔찍할정도로아름다운문장과조화를이루고있다.
죽음의문턱까지갔다가귀환한뒤글쓰기방식에큰변화를겪고쓴첫작품『은밀한생』으로1998년‘문인협회춘계대상’을받았으며,『떠도는그림자들』로2002년공쿠르상수상의영예를안았다.대표작으로『로마의테라스』『혀끝에서맴도는이름』『섹스와공포』『옛날에대하여』『심연들』『빌라아말리아』『세상의모든아침』『신비한결속』『부테스』『눈물들』『하룻낮의행복』『세글자로불리는사람』등이있다.

목차

제1장(콩피에뉴에서의저녁파티)
제2장제시간에죽기
제3장날짜들과시간들
제4장기도서
제5장이스키아해변
제6장태양안에는세개의태양이있다
제7장Speculumhistoriale(역사의거울)
제8장이사
제9장Hôrai
제10장욘강
제11장모가도르
제12장벨렝의탑
제13장물
제14장파비아
제15장비산술非算術
제16장성녀테레사
제17장기원회귀의거장
제18장쥐미에주의폐허
제19장사라진집
제20장사제관길
제21장기마수렵
제22장시간의관자놀이
제23장세계의기억모퉁이
제24장일반역사
제25장가오리들
제26장뱀장어들
제27장1955~2017년
제28장분노
제29장헤로의탑
제30장베른
제31장11월
제32장탈라사의날짜들
제33장재출수再出水
제34장르네상스들
제35장사랑의기도서
제36장재의소녀들
제37장 시詩
제38장 1991년 눈 내리는 베르사유궁
제39장 1640년대
제40장 뜯어낸 시간들
제41장 장 브뤼노
제42장 루크레티우스
제43장 암호 코드로서의 문학
제44장 샤를 드 생테브르몽
제45장 조르다노 브루노
제46장 마들렌 드 사블레
제47장 당근 수프
제48장 라 갈리가이
제49장 스피노자
제50장 플루타르코스

옮긴이의말마지막 왕국 시리즈 제12번 「바다 교향곡」
작가연보
작품목록

출판사 서평

마침내다다른바다-『행복한시간들』

1997년급성폐출혈로죽음의문턱까지다녀온키냐르는이후완전히‘새로운글쓰기’를시작한다.이듬해에시적단상,소설,철학,삶의기록등모든것을아우르며장르의경계마저허무는『은밀한생』을발표하는데,이는키냐르가말하는‘분절없이하나의부피,하나의육체를가진바다같은글쓰기’의서막이되어2002년“마지막왕국시리즈”로이어진다.
2023년프랑스에서출간된『행복한시간들』은이러한여정의정점에놓인작품이다.바다를말하면서동시에스스로바다가되어출렁이는문장들,외톨이들의목소리,그가유난히좋아하는르네상스시대의인물들(라로슈푸코,생테브르몽,에스프리,마담드사블레등)과그의개인적기억(M과에마뉘엘,외삼촌과외할머니)이교차하며,존재의심연과기억의파편들이파도처럼독자를휩쓸고지나간다.키냐르의문학은『행복한시간들』에서마침내내용과형식모두에서‘바다’(분절되지않은하나의총체)가된다.


옛날Jadis과의접속

바다는‘붙잡을수없고,저항할수없는,융합적인,객체화할수없는무정형’(144쪽)의물이다.모든것을품고,모든생명의기원에자리한다.양수속에서태어난우리에게바다는태아시절의은유이자,‘옛날Jadis’과다르지않다.
키냐르문학의핵심개념인‘옛날’은단순한과거가아니다.그것은빅뱅이라는원초적분출의순간을기원의자리로설정하고,그순간의‘분절되지않은무정형의총체’로서모든것이혼재된우주를‘옛날’이라명명한다.인류차원에서는태아가어머니로부터완전히분리되기전의‘모태속삶’이며이시기는‘최초의왕국’이라불린다.출생이후우리는‘마지막왕국’(출생부터죽음까지)의주민이되어‘최초의왕국’의그림자아래살아간다.이잃어버린낙원은이따금섬광처럼떠오르기도하지만,우리는그런행운의순간만을기다릴수없다.옛날과접속할방법을끊임없이모색한다.키냐르의‘새로운글쓰기’는옛날을단순히순간적으로불러오는데그치지않고,마지막왕국에머물게하려는시도이다.키냐르는자신의문학에서그옛날을‘지금여기에되살리는일’을감행한다.바다는옛날의감각적현현이자,비非가시적흔적의상징이다.이제옛날은그리움의대상이아니라,우리가이곳에서누리는‘행복한시간들’로변모한다.


“자유란깊은심연에서스스로벗어나는것”
다시태어난renaissant자들이도달한바다

“다시태어나는여인Renaissante”으로등장하는베누스(아프로디테)의이미지는키냐르의작품에서강박적으로반복된다.변모의원소인바다에서물이줄줄흘러내리는알몸으로솟아오르는이여신은생명의기원뿐아니라,존재의‘자발적변환’을상징한다.베누스는단순히‘태어나는여인’이아니라‘다시태어나는여인Renaissante’이다.르네상스renaissance는곧‘재출생’을의미한다.최초의왕국과마지막왕국을가르는‘출생naissance’이후,다시한번태어나는것이다.누구나태어나지만,누구나재-출생을경험하지는못한다.수동적출생과달리,자발적재-출생은각성을통해존재가변환되는아름다운사건이다.이것이키냐르가‘다시태어나는모든것’-역사의르네상스시대,사계절의봄,하루의새벽-에무한한애정을보내는이유이다.
‘다시태어나는자’는곧‘눈뜨는자’이다.비로소세계를제대로바라보고,그아름다움을발견하게되는자’이다.다시태어난다는것은단순한생물학적순환이아니라,예술적각성이자존재의혁명이며,키냐르에게‘자유란깊은심연에서스스로벗어나는것’이다.
바다와사랑,옛날Jadis과존재,기억과무아지경의상태를넘나들며,키냐르는이책에서바다그자체가된다.그의문장은음표처럼기보되고,문학은물처럼흐른다.『행복한시간들』은격정과반항,그리고사유의에너지로물결치는철학적바다다.


무아지경-이곳이아닌다른곳에있기
세속을떠나는자들만이누리는‘행복한시간들’

이책은‘다시태어난자’들의이야기이다.그들의공통점은‘이곳에있으면서,자주다른곳에있다’는것이다.무아지경.아주먼곳으로떠나버려침묵속에서시선이멍해질때,그‘다른곳’이바로옛날이다.최초의왕국에속한옛날이아니라,마지막왕국에서‘다시태어난자’만이누릴수있는옛날,이곳에현존하는옛날이다.
무아지경은단순한몰입이아니라존재의다른국면으로진입하는사건이다.‘영혼이사라지는황홀한실종’(153쪽)을통해자연속으로,옛날로스며든다.키냐르의세계에서‘옛날’‘자연’‘바다’‘무아지경’‘황홀경’은서로겹쳐져하나로수렴하여‘행복한시간들’이된다.일상속에서문득솟아오르는감각의물결,존재의깊은층위에서감지되는옛날의순간들.
키냐르의작품에서이런행복을느끼는인물들은대개외톨이다.그들은사회적.역사적,심지어가족적연대기의그물망에서벗어나,사생활의어둠속에은닉된호젓한곳에머문다.진정한‘행복한시간들’은세속적연대기에서이탈한외톨이들의순간,자연과의합일,존재의황홀한몰입속에서만가능하다.비엔호수에떠있는루소,파비아전장에서풍경속으로사라진프랑수아1세,차의수증기로스며든바이사오스님……‘행복한시간들’은바로그무아지경,‘이곳이아닌다른곳’에서마주하는시간이다.그리고그것이야말로이책이독자에게제안하는궁극의사유이다.존재의깊은차원에서감각을열고,다시태어나고,‘옛날’과접속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