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생일

축 생일

$12.80
Description
“사랑은 사랑하려 한다 거의 영원히”

서로의 숨결이 맞닿을 때
촛불처럼 켜지는 축 생일의 시간

존재의 온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김선우 일곱번째 시집
1996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만 30년 동안 삶과 사랑, 관계의 결을 깊숙이 탐문해온 시인 김선우의 일곱번째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전작 『내 따스한 유령들』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신작은 “둥근 순환을 표상하는 여성성의 전복적 언어들”(박수연, 해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이라는 평단의 평가를 이어받아, 모든 존재를 경탄하는 축 생일의 시간을 화두로 총 53편의 시를 세 개의 부에 나누어 담았다. 공을 차는 소년들부터 빈 배에 서린 고요함, 강가를 걷는 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세세한 장면에서 길어 올린 시적 사유는 독자에게 더 많은 감응과 더 넓은 공명의 순간을 열어주며 우리 앞에 당도한 작고 구체적인 사물을 새롭게 호명한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이번 시집을 “인간의 세계에서는 비가시적이었던 존재들을 출현시키고 대화하며 인식하게 하는 시집”이라 평한 바, 우리는 『축 생일』에서 김선우 시학이 도달한 새로운 지평과 넓어진 인식의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김선우

저자:김선우
시인김선우는강원도강릉에서태어나1996년『창작과비평』겨울호에「대관령옛길」등열편의시를발표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내혀가입속에갇혀있길거부한다면』『도화아래잠들다』『내몸속에잠든이누구신가』『나의무한한혁명에게』『녹턴』『내따스한유령들』등이있다.현대문학상과천상병시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폴짝인입니까?|지푸라기의시|만져도될까요?|고비의당신|푸른닭언니네|산골,폴짝인들|달봐요파티|폴짝,초원에서|평평으로|시인이책날개를접고나비들꽁무니를따르는이유|달봐요|빈배로부터|가을강에떠가는나뭇잎배로부터|한마을의시가태어나는자리|행복의기원|찬란,소녀들|어떤날|새야

2부
손을보는슬픔|시간의창조자|환삼덩굴의노래|미륵의고독1|미륵의고독2|상사화로부터|벼랑끝나무로부터배운운명론|밤의여로|너무마음끓이지마요|시인은이쪽에한청년의꽃잎을놓을텐데|아무도아닌자의장미|달봐요2|늑대발목|독각,또각또각|겨울나무에얼음세포가자라는이유|무화과|글라스하모니카를위한아다지오와론도

3부
축생일|엄마|엄마의배꼽|시에나오는사람|여명|아버지라는시대|망백|자존|구름을기르겠습니까?|완경기|우리쑥캐러갈까?|초희생각|밤이치자나무잎사귀곁에서속삭인말|거대한착각|잘익은복숭아한알|축생일2|겨울숲에서배운것|환절기

해설
세개의세계,하나의선·박수연

출판사 서평

톡톡튀는언어의탄성(彈性)으로일깨운,
삶의탄성(歎聲)을안은김선우식존재론

어디서부터시작됐을까요?우리의폴짝은

바람타고떠돌다우물속이궁금해들어와본풀씨하나로부터?풀이전해준바깥의하늘과햇살과바람으로부터?바깥따위하나도궁금하지않다고,모든의미는우물에있다고,이속에서나는행복하다고,주먹을꼭쥐고거듭거듭말할때“그래요?정말그래요?”되묻는풀의부드러운초록색웃음으로부터?

폴짝나도요폴짝폴짝나도요

?폴짝인입니까??부분

『축생일』에서는햇빛이“양양양양”빛나고,푸른닭은해를“콕콕콕콕”쪼아먹으며,달빛은달을“톡톡톡톡쓰다듬”(?푸른닭언니네?)는다.각시편에고인의성어와의태어로표현되는언어의활달함은생명력넘치는세상을바라보는시인의태도를보여줄뿐만아니라,보다근본적인층위에서“인간의세계에서는비가시적이었던존재들을출현시키고대화하며인식하게하는”시적전략으로읽히기에충분하다.그래서시인은세계를묘사하는데에서머물지않고,가시적세계너머에드리워져있던은밀한거처를부각하며생명력의근원으로다가간다.그는“착취당하고싶지않아/착취하고싶지도않아”“도시로부터폴짝폴짝,산골로폴짝!”(?산골,폴짝인들?)뛰어나와“나로존재하기위해애쓰며살던”“대도시의나날”에서벗어난다.그리하여시인이도착한곳은작고유한한존재인“독수리에게바람에게풀씨들에게훨훨”(?폴짝,초원에서?)힘을줄수있는곳이다.이곳에서시인은논리의관절을“폴짝”건너뛰고세계의율동과생명력을몸소체득한다.특히“또각또각”걸을때에도단독자의개별성을고집하기보다,“하나가다른하나를부축하며”?독각,또각또각?)가듯서로에게기대고잇대는관계양태를그린다.조용히자신의길만을걷는이는이러한장면을결코체감할수없을것이다.이렇듯『축생일』은“폴짝폴짝”“우물과우물사이를뛰어다”(?폴짝인입니까??)니는순간에만타자와의감응과교감할수있다고,소리내어말하고있다.

삶의반복에서새롭게빛나는,
『축생일』이빚은시작의노래

축배꼽의날
하하하,오딧빛멍!
축탯줄의날
하하하,햇빛의싹!

뜁니다
뜁니다
뜁니다

배꼽에서탯줄이자라
엄마에게닿을때까지
?축생일?부분

1부와2부에서존재와의감응을말하던시집은,3부에이르러조금다른방향으로선회한다.“예순에처음쓰러진”(?엄마?)엄마는“여든넘어”“요양원”갔으며,시인은이제그와작별인사를나눌시간이얼마남지않았음을직감한다.그러나이러한작별의순간에시인은돌연히두려움을넘어새로운깨달음을얻는다.그는“이제엄마의저쪽을두려워하지않”(?엄마의배꼽?)으며,“마지막이아니라는느낌이분명하게”(?여명?)체감한다.또한시인의눈에엄마는“어딘가를향해막태어나려는/우리의소중한아기”처럼,“걸음마를배우기전아기처럼”(?엄마의배꼽?)더없이지극하고소중해보인다.이는시인이존재의시계를물리적으로뒤바꾸는자기안위적논리를세우는것이아니라,죽음과탄생을중첩되는복합적인흐름으로인식하는일종의‘시간론’을개발한것에가깝다.“태어나면죽고마는생의법칙”은삶이단회적이라는뜻이아니라,끊임없는반복과새로움속에서이를“고귀하게만드는”(?환삼덩굴의노래?)순간을적극적으로발명해야함을역설한다.그래서시인은엄마의죽음을마지막이아닌새로운시작으로받아들이며,시간과존재에대한깊은통찰을완성한다.그제야우리는표제시에담긴의미를정확하게이해할수있다.“새로운것이실은태곳적의것이라는사실이드러날때/생일을이해하는일은좀처럼쉽지않지만/나는끝모를정체를가지길원해요”(?축생일2?).

존재와시간을새롭게발명하는시인에게시는단지언어의사용이아니라,삶과함께공명하려는실천적의지를담은것이다.따라서시인은이미기울어진존재간의격차를“고르게/고르게될때까지/작고가벼운쪽으로/[······]/끊임없이중심축을/이동하려는의지”(?평평으로?)를표명한다.시인의표현에따르자면시인의일은,“발견할아름다움조차야위어간다면/발명해내는것”(?환삼덩굴의노래?)이며,“한마을의시가태어나는자리”는“법의언어”“경전의언어”“숫자의언어”가아니라“아침놀의가슴”“걸어서하루안에만날수있는이웃”“한사람한사람의오늘을살피는다정함”(?한마을의시가태어나는자리?)에서온다.거친땅을평평하게고르듯시의표면을,나아가세계의토양을고르게다지는시인의행위위에새로돋아나는시어를수확하며시집은마침표에이른다.그순간,우리의창밖에펼쳐진세상과다르지않은시적풍경이눈앞에다가온다.“이모든우주가다좋은/환절기에이르렀다”(?환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