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포럼 (키워드로 읽는 2020년대 한국문학)

비평포럼 (키워드로 읽는 2020년대 한국문학)

$26.00
Description
가족과 계급, 기후와 생태를 가로지르며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는 읽기와 비평
열일곱 명의 평론가가 함께 모색하는 문학의 미래
비평을 읽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해도 비평이 대상 텍스트에 대한 거리를 둔 읽기인 것만은 아니다. 읽는 주체 역시 세계의 일원이며, 세계를 읽는 과정은 세계에 대한 이해이자 읽는 주체에 대한 이해일 수밖에 없다. 비평이란 언제나 세계에 대한 읽는 주체의 이해의 변형이자 재구축이며 세계에 대한 재구축인 셈이다. 친숙해지지 않는 낯선 경험을 반복하고자 하는 비평의 열망이 다시 샘솟게 되는 것은 아마도 바깥 혹은 다른 것과 연결되고자 하는, 변형과 재구축을 향한 우리 안의 열망 때문일 것이다.
―‘들어가며’(p. 10~11)에서

세계를 재구축하는 열일곱 개의 시선,
2020년대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열 개의 키워드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과 ‘#문단_내_성폭력’ 이후 한국문학은 소수자와 타자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달려왔다.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시민적 열망이 사회 곳곳을 채우는 동안, 한국문학은 가족·노동·돌봄에서 계급·세대·폭력·사랑을 거쳐 비인간·생태·기후에 이르는 광범위한 키워드로 시대를 사유했다.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가 기획하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비평포럼: 키워드로 읽는 2020년대 한국문학』은 열일곱 명의 평론가가 각기 다른 키워드와 독해 방식으롷 2020년대 한국문학의 다양한 결을 포착한 비평 앤솔러지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가족, 노동, 돌봄’에서는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함께’의 문학적 고민을, 2부 ‘계급, 세대, 폭력, 사랑’에서는 시대적·세대적·계보적으로 뒤얽혀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3부 ‘비인간, 생태, 기후’에서는 지구적 차원의 환경 문제에 대한 한국문학의 관심을 소개한다. 소영현, 백지은, 김미정, 조연정, 오혜진(이하 1부), 황정아, 김형중, 이소, 이은지, 소유정(이하 2부), 양윤의, 박서양, 장은정, 양경언, 송현지, 최다영, 이희우(이하 3부)는 정교하고 섬세한 언어로 한국 시와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노동·돌봄·계급·세대·폭력·사랑·비인간·생태·기후의 문제를 살피고,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대안적 가능성을 찾아 전한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입증했듯, 선진성과 이국성이 미묘하게 뒤엉켜 있는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결코 적지 않다. 소수 언어인 한국어 문학이 번역을 통해 언어의 위계를 가로지르며 다른 세계의 독자와 만날 때, 그것은 언어와 문화, 나와 우리 그리고 세계를 연결하고 해체하며 발견하는 일이 된다. 번역이 언어-문화 간 권력관계를 조정하고 매개하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비평적 시선을 통과한 한국문학을 이해하는 새로운 통로를 연다. 소수자와 타자에 대한 관심은 연원이 긴 한국문학의 특성일 뿐만 아니라 한국 SF와 같은 새롭게 부상하는 한국문학의 특이성이기도 하다. 한국문학은 비중심과 탈중심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잇대어진 채 세계문학으로서의 새로운 좌표를 그리고 있다.
저자

소영현

2003년『작가세계』를통해비평활동을시작했다.비평집『분열하는감각들』『하위의시간』『올빼미의숲』『광장과젠더』『문학은위험하다』(공저)등이있다.현재한국문학번역원에서한국문학을가르치고있다.

목차

■차례

들어가며
문학비평과문학번역을가로지르며·소영현

1부가족,노동,돌봄
소영현「다시만난세계:여성서사의진화와가족서사의재발견」
백지은「친밀한공동체를찾아서」
김미정「재현으로부터상상력해방의장소까지:최근소설속노동이야기를중심으로」
조연정「‘자기돌봄’과‘서로돌봄’이교차하는자리:최근소설에나타난싱글중년여성과‘돌봄’의문제」
오혜진「비규범적유대와퀴어가족의발명:2010년대이후한국퀴어문학의가족구성권재현과소수자정치」

2부계급,세대,폭력,사랑
황정아「비판적서사의존재양식에대하여」
김형중「젊거나늙은계급:최근한국소설에나타난86세대의존재론」
이소「선과얼룩:폭력이지나간자리에서」
이은지「LoveofCapitalism:자본의사랑,자본으로하는사랑」
소유정「사랑의일체화를부정하는세대의‘사랑’:시대와세대를아우르고가르는모순에대하여」

3부비인간,생태,기후
양윤의「세계의끝:조예은과티머시모턴을나란히읽기」
박서양「재난,공생,경계에대한감각:최근한국소설을중심으로」
장은정「()의곁」
양경언「시,녹색계급」
송현지「다잉어스의신-인간들」
최다영「클라우드기술생태계와‘기후시’」
이희우「문학의비인간:재현에서번역으로」

작품목록

출판사 서평

‘함께’하는미래를향한문학적고민:가족,노동,돌봄

1부에서는더나은공동체의미래에대한한국문학의관심이‘가족’을중심으로다시시작되었다는점에주목한다.소영현은페미니즘대중화이후여성서사가‘피해자-되기’를넘어가족서사의갱신형태로확장되는과정을이서수,김병운,정영롱의작품을통해추적한다.다시쓰는가족서사는‘정상가족’이데올로기의재생산이아니라가족을정치화하려는시도이며,혈연이아닌‘가장친밀한관계’자체로서의가족,수행적일상을통해구축되는친밀성의가능성을탐색한다.
백지은은‘사랑-결혼-가족’의통합구조가현대사회에서느슨해지고있음을포착하며,낭만적사랑의의미론이실제가족관계의표면과이면에서여전히작동중인하나의가정(假定)임을드러낸다.가족을“정정가능성을바탕으로한지속적인공동체”(p.70)로재정의할필요성을역설한다.
김미정은노동이자본주의와분리불가능해진현실을분석하면서도,이서수의『헬프미시스터』를통해‘바깥은없다’는인식에서‘안으로부터바깥으로뒤집으면된다’는가능성으로나아간다.“희망이라는것은미래를향하는것이므로〔‥‥‥〕꺾을수는없”(p.87)다는루쉰의말을경유하며,문학과예술에서상상력을해방시켜야할이유를설득력있게제시한다.
조연정은비혼중년여성의돌봄문제를다루며,조안C.트론토의‘돌봄민주주의’와‘더케어컬렉티브’의‘난잡한돌봄’개념을경유해평등한서로돌봄의가능성을가늠한다.“서로의고통을나누는그러한불가능한돌봄의장면을구체적으로상상하도록하는것이문학의몫이기도할것이다”(p.131).
오혜진은퀴어가족구성권재현의가능성과한계를검토하며,‘결혼할권리’만큼이나‘권리를거부할권리’의상상력이필요함을강조한다.


시대적·세대적·계보적으로뒤얽힌자본주의를사유하다:계급,세대,폭력,사랑

2부에서는1부의문제들이결국더큰시야에서자본주의의문제일수밖에없음을확인한다.황정아는브뤼노라투르의논의를경유해비판이“폭로하는사람이아니라,집결하는사람”이고“참가자들에게모일광장을제공하는사람”(p.174)이어야함을강조한다.권여선의「무구」를통해비판적서사의다른존재양식을발견하며,“무엇을갖든,어떤안락을누리든,그것이궁극적으로는중요하지않다는감각을기억하게하는것.삶과기쁨의토대가다른곳에있음을결코잊지않게하는것.그것이권여선소설에스며있는,‘비판’보다더강력한급진성이”(p.181)라고말한다.
김형중은박민규의「절」이후,젊은작가들의소설속86세대부모들의재현을추적한다.세대적이질성과계급적동질성이작동하는방식을섬세하게포착하며,“개와K팝과역기의도움없이는그어떤혁명도꿈꿀수없게되어버린시대에소설을쓰기시작한젊은작가들이그저안쓰럽고고마울따름이다.〔‥‥‥〕이장록이라면이렇게말했으리라.“민주야이제너희들이너희들의세상에대해너희들의방식으로말해보렴””(p.196)이라고적는다.
이소는마르셀프루스트의에세이「알레고리」를경유하며문학이‘잘표현된불행’임을환기한다.편혜영의「포도밭묘지」와강영숙의「더러운물탱크」에서여성들은황량한풍경앞에서서“그때우리가가능하리라여겼던인생은다어디로갔을까”(p.200)하고묻는다.삶의궤적을응축한듯어둡고얼룩덜룩한이곳은그삶을살아낸이에게만의미심장한매듭이나필연적인결정으로보이며,이얼룩은에필로그이자프롤로그,지금까지의결산이자앞으로의예고이다.이기호와손홍규의소설에서조카들이실종된삼촌을추억하는것또한위세대의실패의에필로그이자다음세대의프롤로그다.캐롤라인레빈의분석을빌리자면,“남성적세대에서여성적세대로의교체가진행되고”있다.어쩌면“언제나소설은‘성숙한여성의형식’이었을지도모른다”(p.210)는말에고개가절로끄덕여진다.
이은지는에바일루즈가분석했듯20세기이래로맨스가여가산업에편입되면서경제행위로재구조화된방식을예리하게분석한다.자본의논리를순수하게배제한사랑이아니라,그것을껴안고있는복잡한사랑을직시하는태도가중요하며,사랑은‘세계내의세계’를창조하는과정이자이러한사랑의장기지속은자본의체계를재구조화할가능성을품고있다.
소유정은양귀자의『모순』이26년만에재등극한현상을분석하며,새로운세대에게사랑은‘나’를주체로하며‘나’에게로환원되는능동적행위임을밝힌다.“사랑이하고싶다”(p.244)는말은더이상연애나결혼과일축되지않으며,사랑은한개인을이해하고시대와세대를감각할수있는주요키워드로더욱선명해진다.


인간과비인간이함께만드는미래:비인간,생태,기후

3부에서는지구적차원의환경문제에대한한국문학의관심을소개한다.양윤의는조예은의소설과티머시모턴의생태철학을교차시키며읽는다.모턴의‘어두운생태학(darkecology)’은괴기스러운,기묘한,멜랑콜리한,우스꽝스러운정동들을포함하며,이는조예은소설의좀비,유령,괴물들이유발하는정동과닿아있다.세계의끝에서우리에게필요한것은“희망의기획이아니라친밀함의생성”이며“‘곁’에누군가/무언가있다는실감”(p.279)이라고말한다.
박서양은재난서사속안전지대를그리는한국문학을살피며,김초엽의『지구끝의온실』에서새로운역사적주체로비인간행위자를호명하는방식을주목한다.
장은정은기후위기가시읽기의감각을어떻게바꿔나가는지를살핀다.3월벚꽃에내리는폭설,한반도에서경험되는스콜은오래된시들을떠올리게하지않는다.계절적안정감대신낯선날씨감각이시읽기의감각을바꿔나간다.“내눈물은을위한것입니다”(p.309)라는빈칸에저마다의대답을적어내려가며시편으로엮는이들곁에서,기후위기의시읽기는누구의곁에설것인지결정하는일이다.
양경언은브뤼노라투르의‘녹색계급’개념을경유하며,시가멸종을운명으로받아들이는이들의현재를회복시키고미래를돌려주려는언어의선두에있다고말한다.“살아있고자하는이들이손을잡고,이마를짚으면서서로를알아보고자하는몸짓을시가소중히기록해나갈때,변혁을위한연대와공감이불가능하다는우리시대의소문은거짓으로판명날것이다.살림의문법으로쓰이므로,녹색계급의시는언제까지나멸종의맞은편에있다”(p.336)고말이다.
송현지는거꾸로인간을중심에두고‘새로운인간종’을상상하는시를읽는다.“‘계속’이라는부사만이남아이와같은행위를지속할것을다짐하는그들의시”는,“지금-이곳의인간인우리가무언가를지속적으로행동할때미래가바뀐다는사실을알린다는점에서시를읽고있는우리의행위를요청한”다.“다잉어스를구하기위해지금우리에게필요한일은그들이시속시간을새로이배치하고자했던것처럼시간을거슬러올라가진부하고근대적인질문에서부터새로이시작하는것,그러니까다시인간에대해묻는일일지모른”(p.357)다고말한다.
최다영은생태시와구별되는‘기후시’라는범주의필요성을제기하며,자본주의적가속흐름에대한저항으로서시의형식과내부시간성운용이중요함을강조한다.
이희우는문학을재현(representation)이아닌번역(translation)의기술로볼때,“재현의주체/대상이라는이분법적인틀로설명될수없는매개의연쇄가있”고“재현적관점에서번역의관점으로옮겨갈때,생략되어있고무시되었던수많은매개작용이드러난다”(p.388)고말한다.


비평은세계의재구축,
문학은상상력의해방소

이책은2023년부터2024년까지총6회에걸쳐개최된‘비평포럼’을바탕으로한다.한국문학독자는말할것도없이예비문학번역가,문학번역가,그리고한국어를사용하지않는한국문학독자를향한한국문학소개의필요성에공감하는평론가들이함께기획했다.
이책에실린열일곱편의비평은각기다른글쓰기의개성에도불구하고,한국문학의경향성을살핀다는공통의목표를향해함께모여있다.20년이상의연륜을가진문학평론가부터신진평론가에이르기까지,저마다의언어로문학을,아니세계를사유하는이글들은‘함께’모임으로써한국문학에대한더많은흥미와더깊은이해를이끌어낸다.시와소설,희곡이그러하듯비평그자체가개성뚜렷한문학적작업임을새삼깨닫게한다.
『비평포럼:키워드로읽는2020년대한국문학』은한국문학에대해보다넓고깊게알고싶은이들에게작은발판이되어,한국문학이가족·노동·돌봄에서계급·세대·폭력·사랑을거쳐비인간·생태·기후에이르기까지,얼마나치열하게세계를사유하고미래를모색해왔는지기록한귀한비평앤솔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