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보다 Vol. 5 대피소

SF 보다 Vol. 5 대피소

$14.00
Description
“우리를 지키기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무언가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

구원 혹은 구속의 공간, 환대 또는 대립의 시간
점멸하는 불빛 너머, 대피소 문을 열고 들어가
S-F의 끝을 보다!
독자들에게 무한한 자극과 지적 상상력을 제공할 ‘S(story)’를 담은 다채로운 ‘F(frame)’가 되고자 202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첫선을 보인 〈SF 보다〉 시리즈가 ‘대피소’를 테마로 다섯번째 출간을 맞았다. 한국 SF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문학과지성사는 이 시리즈를 통해 신작 SF 단편을 만나는 즐거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생동감 넘치는 문학적 교류의 현장으로서 한국문학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혀나가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하나의 테마가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눈부신 상상력과 만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이 시리즈는 테마와 다각도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신작 단편소설’, 테마를 관통하여 장르 전반의 흐름을 담아낸 ‘크리티크’로 구성되어 있다. SF 스토리텔링의 선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 문지혁, SF를 향한 애정으로 국내외 작품들을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고 쓰는 SF 평론가 심완선이 기획위원으로 함께하며 ‘하이퍼-링크’와 ‘크리티크’에 참여하고 있다.

전쟁과 기후 위기, 각종 재난과 기근이 잇따르는 시대에 생존 배낭을 장바구니에 넣고, 대피소 위치를 사전에 알아두는 일은 이제 더는 우리에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SF 보다 Vol. 5 대피소』에 수록된 김달리의 「수옥폭포 순례길」, 조시현의 「셔터」, 김성중의 「트리허거」, 이경희의 「등각 순환 하는 시공간 원점의 위험성에 대하여」, 김성일의 「인류의 유산」. 다섯 편의 작품은 최후의 보루이자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공간으로서의 대피소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

김달리,조시현,김성중,이경희,김성일

저자:김달리
소설가겸영화감독.2019년제1회K스릴러작가공모전에서최우수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머큐리테일』,중편소설『밀림의연인들』,장편소설『이레』『렉카김재희』『플라스틱세대』등이있다.

저자:조시현
2018년실천문학신인상에단편소설「동양식정원」이,이듬해현대시신인상에시「섬」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아이들타임』,소설집『크림의무게를재는방법』등이있다.

저자:김성중
2008년중앙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개그맨』『국경시장』『에디혹은애슐리』『왼손잡이는꿈을잘기억한다』,단편소설『두더지인간』,중편소설『이슬라』,장편소설『화성의아이』등이있다.젊은작가상,현대문학상,김용익문학상을받았다.

저자:이경희
2019년제4회황금가지타임리프공모전에「꼬리가없는하얀요호설화」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너의다정한우주로부터』,단편소설『매듭정리』,장편소설『그날,그곳에서』『모래도시속인형들』『모두를파괴할힘』『테세우스패러독스』등이있다.2019년제6회황금가지작가프로젝트공모전,안전가옥스토리공모전에선정되었다.2020년과2023년에SF어워드장편소설부문대상을받았다.

저자:김성일
2016년부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별들의노래』『늑대사냥』,청소년소설『널만나러지구로갈게』등이있다.2018년SF어워드중·단편소설부문우수상과2024년SF어워드장편소설부문대상을받았다.

목차

문지혁하이퍼링크hyper-link
―우리가숨는곳

김달리수옥폭포순례길
조시현셔터
김성중트리허거
이경희등각순환하는시공간원점의위험성에대하여
김성일인류의유산

심완선크리티크critique
―일어나지않은미래라는공백의순간

출판사 서평

“이제거기들어가볼차례다.의자를올리고,몸을웅크려서.”
─견고하고물리적인,그러나결코집이될수없는세계

어쩌면최후의대피소는이야기인지도모른다.인간을둘러싼불가해한세계에맞서기위해우리가만들어낸질서와의미.이가장오래되고근원적인대피소의이름은바로서사이며,그규모가크든작든우리는모두이곳으로대피중이다.잠자리에들기전언제나동화책을찾는아이처럼,무작위로흩어진밤하늘의별들을이어별자리를만들어낸고대인처럼,혹은불안한밤마다작게빛나는화면을스크롤하며타인의이야기를엿보는우리처럼.
―문지혁,「하이퍼-링크:우리가숨는곳」에서

1866년헤겔이처음사용한용어‘생태학Ecology’의접두어‘Eco-’의어원은고대그리스어‘집Oikos’에서기인한다.“가장선한것의타락이가장비극적인것”(『아리스토텔레스시학』)이듯집과자연의상실은곧세계의상실이다.『SF보다Vol.5대피소』에는생태시스템이붕괴한후절단과단절만남은다섯세계가묘사된다.점멸하는불빛너머,대피소문을열고SF의끝으로들어가보자.

굉음이울렸고대지가진동하며하늘과땅이뒤집혔다.페이지가뭉텅이로사라진책을덮는것처럼기억은언제나거기에서멈췄다.볼거라고는수옥폭포뿐인작은산촌에서살아남은사람은236명중단한명,수옥뿐이었다.
―김달리,「수옥폭포순례길」(p.28)

세상은수천년동안지하에갇혀있던고농도황화수소의분출로순식간에오염된다.값비싼특수방독면을살수없는이들은다층에어로크시스템을갖춘대피소에머물수밖에없다.작은산촌의유일한생존자인수옥은인공폐를단트랜스휴먼이되어대피소를관리하며,그곳에서나고자란경선과주희에게마음을쏟는다.한편대피소폐쇄명령으로물자지원이끊기자사람들이시신을먹고,병든노인을내쫓는상황까지발생한다.한편의재난영화를보듯흥미진진하게읽히는소설은극한의상황에서충돌하는인간본성과도덕적윤리의잣대를묻는다.

떠날수있는사람은떠났다.남은사람이남기를선택한것은아니었으므로그렇게말하는편이옳았다.그리고너는목격자.너는너의역할을목격자로둔다.그러면남았다는사실에의미를부여할수있다.인간은누군가로부터버려질수있는존재가아니라고생각하는것만으로도존엄성을지킬수있다.
―조시현,「셔터」(p.48~49)

42일째해가뜨지않은세상에서지구를떠날수있는이들은사전에큰돈을들여우주로향한다.‘나’는무너진시멘트더미속에서도움의손길을건넨난나와함께버려진집에들어가산다.하릴없이잔해를치우고,인스타그램을새로고침하며생존을확인받는나날,나는난나의아기사진을몰래훔친적이있다.길에서만난폴락,잔해사이로미끄러지는발레리나의망령을나는카메라렌즈에담아보지만셔터가고장나사진이찍히지않는다.한편난나의아기사진은나의선함과신원을타인에게증명하는빌미로쓰인다.소설은시적언어로무채색디스토피아를묘사하는동시에멸망한세계에서재정의하는정체성에질문을던진다.

나는펑펑우는가운데발작처럼웃고싶기도,소나기를맞으며천둥소리를듣고싶기도했어.그좁은대피소에서,최소한의중력과산소만있는곳에서,바닥을구르며치우와한덩어리가되어울고또웃으며짐승이되어원초적인해방감을느꼈어.
―김성중,「트리허거」(p.109~110)

우주제국을통치하는황제는태양마저자원화하려는야망을품고다이슨구체를건설한다.황제의딸이자가뭄의여신인한발은아버지가설계한생체병기로,반란군수장치우를감시하라는명을받아트리허거행성으로파견된다.한편태양광패널전송회로의폭발사고로잔해에깔린한발을치우가구해주면서두사람의관계는예상치못한방향으로흘러간다.치우의머리에타투를새긴황제는고통으로그를다스리려하지만,치우와함께대피소에들어간한발은81일간그를지극정성으로보살핀다.사마천의『사기』에기록된‘탁록전투’설화에신화적상상력을더한작품,「트리허거」에서대피소는타자를받아들이고화해하는공간으로다시태어난다.

“하지만,과거는아니야.과거는다시써내려갈수있어.당신의선택과행동은똑같이반복되겠지만,선택의이유는매번새롭게정할수있어.몇번이고,몇번이고,의미를찾을때까지.”
―이경희,「등각순환하는시공간원점의위험성에대하여」(p.163)

「등각순환하는시공간원점의위험성에대하여」는현재시점‘0’을기준으로,과거사건인‘-1’부터‘-10’까지,또미래시점인‘+1’부터‘+10’까지를오가는독특한구성으로전개된다.욕망구현장치가보급된미래도시에서스스로욕망할능력을잃어버린사람들은장치에의존해삶을이어간다.주인공한은부모를잃고스스로욕망할능력마저상실한다.그런한을돌보는양육보조로봇로잘린은그에게새로운욕망을부여하고자그가욕망구현장치에손을대도록유도한다.한편감찰국요원들의등장으로폭발이일어나자시간이등각순환하는루프가발생하고한과로잘린은끝없이변형되는순간들을마주한다.소설은현실의재구성과반복,인공지능의돌봄이라는테마를독창적인시간구조안에배치하며인간욕망의본질을되묻는다.

“나는인류가멸망을피하기위해이곳을만들었다고생각해요.대피소라기보다는……”
자무가적당한단어를찾지못해망설이는데,미르치가중얼거렸다.
“방주.”
―김성일,「인류의유산」(p.189~190)

한때인간에게지성을부여받은범고래들은해군첨병으로서침략전쟁에이용되었다.인류의멸망이후남겨진범고래의후예자무는체중이3톤에달하고,밀폐슈트안에서액체로호흡하는문명종이다.멸망을자초한인류의과오를되풀이하지않기위해여러종족이평화와비폭력을약속한사회이건만,어느순간그들은인류가대피소에남긴유산과고대과학기술을차지하고자무력을동원한다툼을벌인다.알수없는바이러스에모두가감염된사실을깨달은자무는인류가남긴유산의정체를확인한다.소설은인류세의책임과위험을조명하며우주적폭력과평화에대한근원적인물음을던진다.

SF쓰기가인간과물질과시공간을둘러싼미지의잠재성을실현시키는일이라면,SF읽기는그세계의예측불가능성을경험하는일이다.Science,Space,Speculative,Society등의수많은‘S(story)’와Fiction,Fantasy,Fabulation,Future등의다채로운‘F(frame)’가열어보이는〈SF보다〉의독서공간에서,대피소의불을켜고책속의세계를펼쳐보길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