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소설집)

$17.00
Description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

환상과 욕망을 유예하지 않고 미지의 여정을 이어가는 이들
선택과 책임의 순간마다 깃드는 은연한 천사의 숨결

젊은작가상ㆍ문지문학상ㆍ이효석문학상ㆍ문학동네소설상
수상 작가 함윤이 첫 소설집
뚜렷한 색채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구축해온 소설가 함윤이의 첫번째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안정적인 문장과 전개, 각각의 인물이 주는 독특한 매력, 독자가 흥미롭게 채울 수 있는 여백”(심사평) 등 다채로운 역량을 선보이며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함윤이는 그해 여름 「강가/Ganga」가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되면서 “특별한 사건이나 스토리의 주제 의식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분위기 전체를 장악하는 문체적 역량을 갖춘, 보기 드문 스타일리스트의 등장을 예”(선정의 말)고했다. 「천사들(가제)」을 통해 이러한 예견을 사실로 굳히며 “함윤이의 문장은 대체할 수 없는 스타일을 이루어가는 것 같다”(심사평)라는 찬사 아래 2024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매끄럽고 스타일리시한 문장 사이 갑자기 입을 다물게 하는 아교”를 이번 소설집 위에 “장인의 인장”(소설가 이희주)처럼 찍는다.

소수의 동질적 인물들의 성찰 대신 다수의 이질적 인물들의 역동적인 조합을 다루면, 당연하게도 다종다양한 힘의 경합이 두드러진다. 확률이나 합리의 힘처럼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법칙 또는 공식적인 규범이 아닌 주술의 힘, 미신의 힘, 마법의 힘, 기도의 힘, 우정의 힘, 연대의 힘, 상상의 힘, 죄의식의 힘 등 온갖 자잘한 힘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오해하지 않길. 힘은 주변이 요동하도록 반향을 일으킬 뿐, 결코 선도 정의도 보장하지 않는다. 소문의 힘, 거짓의 힘, 저주의 힘, 적대의 힘처럼 부정적인 힘도 존재하고, 공포의 힘, 불안의 힘, 원한의 힘, 슬픔의 힘처럼 강렬한 정동 역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미지의 힘으로 작용한다. 다수의 힘과 운동이 연결되는 과정은 이음새를 노출하며 덜컥거리기 마련이고, 이렇게 그려진 힘들의 지도는 독특하게 소란한 함윤이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소 해설, 「유토피아는 아닌 것들」에서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성원을 고루 받은 「강가/Ganga」 「천사들(가제)」, 202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자개장의 용도」 등 일곱 단편이 묶인 함윤이의 이번 소설집은 “정동의 파도를 따라 넓어지고 흩어지는 원심력과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로 응축되는 구심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역장”이다. 여러 갈래의 힘이 교차하며 뒤엉키는 이 경합의 장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각각의 힘 사이에서 갈등과 투쟁이 아닌 조력과 연결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흘러 “앙금이나 자국으로 남”을지언정 나가떨어지거나 탈락하는 힘은 없으므로, 그의 소설은 점차 중심보다는 변방에, 전형보다는 이형에, 고요보다는 역동에 가까워지며 무이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마치 “독특한 패치워크”와도 같은 함윤이의 ‘헤테로토피아’에서 우리는 “삶을 운영하기 위해 풀어야 할 유일한 문제”를 성실하게 들여다보면서도 “다른 차원의 힘을 상상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상상은 “여러분을 지지”하며 “어떤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작가의 말’)다.
저자

함윤이

2022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젊은작가상,문지문학상,이효석문학상우수작품상,문학동네소설상을수상했다.

목차

자개장의용도
구유로舊遊路
강가/Ganga
수호자
규칙의세계
나쁜물
천사들(가제)

해설|유토피아는아닌것들ㆍ이소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아름다운신물神物이벌려둔세계저편의틈
젖은발로뭍에남기는선명한모험의족적

제안에들어온자를그가닿고자하는곳으로순간이동시켜주는소설속‘자개장’처럼,표제작「자개장의용도」는소설집가장첫머리에위치하여책을펼친독자를함윤이의매혹적인소설세계로안내한다.이자개장은비일상적이고기이한면모를지닌다는점에서「규칙의세계」의‘거울’과포개어진다.둘은모두고아한장식으로꾸며져있고,매끄러운표면에무언가를비추어내며,공간과공간을매개하는일종의통로역할을수행한다.다만이러한사물들의초월적인능력은인물들을함부로또는손쉽게다른차원으로데려다놓지않는다.자개장과거울은자신의앞에선이들을돌연히끌어당기거나집어삼키는대신직접문을열어젖히고손을내미는자에게만지금여기너머의풍경을내보인다.
고로소설에서두사물의쓰임새는원래부터정해져있는것이아니라그것들을손에쥔인물들에의해결정된다.「자개장의용도」의‘나’와「규칙의세계」의셰어하우스식구들은각사물의신비로운힘을포기하지않고그것과함께하기를,또그뒤에따라붙는염려와책임을감당하기를선택한다.자개장과거울이의존이나파괴가아닌반려의대상이될때둘은두려운이물異物이아닌근사한비기祕器로변모하며,“비밀이무엇인지조금쯤이해하게”(「자개장의용도」,p.44)된주인들은한층더용감한모습으로거듭난다.
신묘한두사물의반사면을경유하며피어오른용기는「강가/Ganga」의‘나’와「나쁜물」의‘나’에게닿아그들로하여금지금껏외면해온내면의물속으로뛰어들도록추동한다.두소설속‘나’는작품의초입에서부터비행기와고속버스를타고먼거리를이동하며낯선여정을감행하지만,그들의진정한모험은‘갠지스강’과‘나쁜물’의수면위에비친자신의얼굴을마주할때시작된다.「강가/Ganga」의‘나’가“오래기다린죄책감”(p.122)을쏟아내게되는것은자신의새이름을스스로지었을때나남자를샀을때가아니라갑작스레강에빠져온몸을적시고난뒤이고,「나쁜물」의‘나’는“안에서솟구치는질문들의거품을”수그러들게하는대신“그안으로직접들어”(pp.247~48)감으로써노래를멈추지않던현관문뒤의존재들과대화를시도한다.빼내버리고싶던물에몸을담가침잠하고축축한손으로그아래가라앉아있던부채감을건져올림으로써그들은비로소물밖으로걸어나온다.

너를지킴으로써나를지탱하는우정은
미약하지만강인한천사의마음을닮았다

한데모여살거나한철을같이지낸이들이만남과헤어짐을겪는장면을섬세하게그려내는함윤이의소설은‘나’를소중하게아끼는친구의마음을통해소중히여겨야마땅한‘나’를발견하도록이끄는‘우정’이라는정서에집중한다.기절놀이중목이졸려머릿속이아득해지는느낌을“썩나쁘지않”(p.127)다고,“이게마지막이라면그것도괜찮다”(p.139)고생각했던「수호자」의‘나’를삶쪽으로“붙잡고끌어”내는것은얼핏자기자신을쉽게방기하지말아달라는친구‘무조’의말이나뒷덜미에붙은귀신의악력인듯보인다.그러나‘나’가“온힘을다해헤엄쳤고물밖으로빠져나왔”다는룸메이트들의서술은그가실은“아주절박”(p.140)하게살고자했기에스스로살아남았음을보여준다.그리고우정을통과하며확인된이‘살고자하는’마음은점차‘잘살고자하는’힘센마음으로발전한다.오직도보로만국경을횡단해넘어가면친구가건강해질수있다는바보같은믿음을행동에옮기도록만들고,아무도없이텅빈습지마저도축제의무대로바꿔놓는다.진창과바닥에서도우정을나눠가진이들은은빛으로반짝이는아이섀도처럼,누구에게나웃으며손을흔들어주는연예인처럼빛난다.
우정을따라걷는“오래된친구의길”(p.49)위로종종찬바람이감돌때면함윤이의소설속인물들은“따뜻한거”(「구유로舊遊路」,p.86)를챙겨먹으며“목도리를턱까지두”른(「수호자」,p.160)다.살기위해,살아서친구를제대로맞이하고또떠나보내기위해스스로돌보며영영사라지지않을귀한마음들을되뇐다.‘너’와‘나’의안녕과행복을바라는모든마음을읊조리는입술에서새어나오는보얀입김을함윤이는‘천사’라고부른다.애틋한호명아래천사로서현현한우정은공기중을떠돌며따스한숨으로친구들의몸을조금더덥힌다.그“미묘한”온기가“천사덕이라는사실을모르”면서도어슴푸레미소짓는이들의걸음을독자는내내응원할수밖에없다.그렇게그들곁에머물며“관계에서태어난”[「천사들(가제)」,p.259]천사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