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비 (백은선 시집)

비신비 (백은선 시집)

$12.17
Description
“난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돌림노래 같다고 생각했어”
부서지는 꿈속에서마저도 혼자 남아 있다는 감각,
끝나지 않는 불행을 노래하면서도
사랑만큼은 심판하지 않는 시인 백은선의 다섯번째 시집!

시인 백은선의 다섯번째 시집 『비신비』가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627번으로 출간되었다. ‘비신비’는 시인이 첫 시집 『가능세계』(문학과지성사, 2016) 때부터 써왔던 연작시의 제목으로 ‘신비롭지 않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별이 폭발한 뒤 남은 물질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세상의 조각을 이룬다고 믿는 시인은 더는 새롭거나 신비로울 것이 없는 세계와 타자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단번에 연상되지 않는 단어와 이미지를 중첩시켜 전혀 다른 시 세계를 구축해내는 백은선에게 세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 안에 각자의 별이 있다는 말은 시적 은유나 빈약한 상상이 아닌 시인이 정교하고도 치밀하게 만들어낸 꿈속과 꿈 바깥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줘본 사람만이 깊은 절망을 겪는 것처럼 백은선의 시는 끝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모두 쏟아내어 타인의 목소리를 갈구한다. 이번 시집의 발문을 쓴 시인 김승일은 “백은선의 시집을 해로운 시집 취급하라”라고 말하며 “이 시집 『비신비』를 노래하라. 고통받으라, 전부 읽었다고 속단하지 말라, 죽고 싶다는 백은선의 말에 속지 말라, 목격자가 되지 말라, 해로워져라, 숨지 마라”라고 끊임없이 당부한다. 이렇듯 백은선의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여백을 남길 만한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쉼 없이 언어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친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의 죄를 낱낱이 고발하는 듯하면서도 그 누구의 사랑도 심판하지 않는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시. 시인이 온몸으로 다 태우고 남겨둔 신비로운 세계가 이 시집 한 권에 담겨 있다.
저자

백은선

저자:백은선
2012년『문학과사회』를통해등단했다.시집『가능세계』『아무도기억하지못하는장면들로만들어진필름』『도움받는기분』『상자를열지않는사람』,산문집『나는내가싫고좋고이상하고』가있다.김준성문학상,문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소녀경연대회|비신비|침묵의서(書)|노래는빛|세계의배꼽|뾰|말없는애인|빛과놀기|데스노트|나에게밤을주세요|I’mFinallyaGhost|청명

2부

누가내무엇을가져갔는데나는그게뭔지모른다|마법의영역|바닥을치우는방법|21세기식사랑|세계의배꼽|세계의배꼽|샤갈의눈내리는마을|빈칸|비신비|네잘못이아니야|메커닉로맨스

3부

나비안기|인간은신의알레고리|임진각에서|지옥체험관|역할놀이|사랑의이름|아주느슨한시|프랙털|꿈의노래|일그러진세계의반영|기도|목격자

4부

비신비|의미없는삶|사랑하는머리|영원을발음할수없게된다음부터인간은자라나기시작한대|망각의코트(court)|불행중독|눈보라의나날|태양은비누를주조하는커다란솥|기쁨을빚어만든|완벽한투명|노래를듣는사람|무간나락(無間奈落):영원한겨울

발문
가이드-김승일

출판사 서평

자기안의불행을다시한번아로새기며
영원을쥐고미래로나아가는소녀들

아름다움에눈뜨며
생기는불행이소녀들에게는있지

주름진레이스를짓밟으며

나기다렸어
오늘이도래하길
영원히길어지는잠속에서
필름이타오르길

[······]

미래

생각할때마다입속에침이고이는이름
-「소녀경연대회」부분

소녀들은마치“깨진유리조각위에서텀블링을연습”하는것처럼매순간“추락의포즈를연구”한다.그들이살아가야하는세상이란“완성되는순간/허물어지는아름다움”에불과한것이기에.매일밤꿈속에서무엇을무너뜨려야하는지궁리하는이들은금방이라도깨질것처럼불안에떨면서도새된소리를내지르며깨진조각조각사이로다채로운색상과리듬을부여한다.이렇듯백은선의시에서“드뷔시는부서진유리가/아닌/부서지는유리”(「세계의배꼽-생일편지」)와도같고,무엇이든손에쥐고있는마법사들의언어는“멀리서들으면유리구슬이부딪히는소리처럼”(「마법의영역」)느껴진다.이번시집에서시인이‘시인의말’과수록시「기도」에서반복해말하는문장은다음과같다.“나어렸을때매일기도했지.진짜엄마아빠가날데리러오게해달라고.그러나그들은날찾지않았어.//난버려졌어//흘러내리는은빛//누가날갖길원할까?”이때화자는아무도자신을찾지않을거라는두려움속에서“절망속에갇혀노래”(「기도」)한다.하지만절망과고독을깨뜨리고터져나오는목소리에는서글픔이나괴로움이아닌분노와고통의언어가처절하게담겨있다.시인은마치사랑을질병으로취급하는이들을단죄하기위해찾아온메두사처럼제안의언어를쏟아낸다.자신과마주하는모든이를돌로만들어버리는메두사의고대그리스어어원은‘여왕’혹은‘지배자’로,백은선의시를읽는이들은자신의몸과정신이의지와무관하게얼어붙는경험을하게될것이다.그렇다고백은선의시가고통만을전가하는것은아니다.그의처절한고백과끊임없이중첩되는검정과빨강의색채는마치페르세우스의방패와도같이우리자신에게무기를쥐여주는일이기도하다.

세상의신비와우주의비밀을향해
영원히시작되는무수한첫문장

너를빛속에두고돌아설때천사와천사다정한모든것

플랫폼에서서생각해
모든게홀로그램이아닐까우리는작은상자속에누워머리에전선을꽂고있는게아닐까

밀려오는창

[······]

괜찮아어차피우리는다가짜니까
그렇게말하며

차곡차곡쌓여가는어둠속
우리와우리
데시벨을높이며
아아아
빛과유사해질때
마침내불이될때
-「비신비」부분

“사랑을말하면사랑이다사라질거라는이상한믿음”(「불행중독」)으로시인은“사랑을질병으로여기던시대의이야기”(「인간은신의알레고리」)를털어놓는다.시에서사랑은비유의대상이아닌진실을재구성해나가는열쇠로“사랑한다는말은무수한별들을한꺼번에쏟아내는거대한밤하늘”“가시덤불속에핀하얀찔레꽃”(「영원을발음할수없게된다음부터인간은자라나기시작한대」)이되어시속화자의창백한손과발을칭칭묶어버린다.“어차피우리는다가짜”라고말하면서도“내몸에늘어나는멍을/사랑했다”(「세계의배꼽-Watchmeburn」)고털어놓는시인의고백은“아름다움은다망가져버렸으면바랐어”(「나에게밤을주세요」)라고말하면서도이내“흔들리는그림자”밖으로“가장아름다운사물”(「빛과놀기」)을찾아내는백은선시의미학을보여준다.“아프고아름다운울림”을발견해내는시인은“아름다움은참으로무서운것이라고쓴적이있”(「역할놀이」)는사람.이때우리는더는신비를추구하지않는비신비의세계에매혹된다.백은선시인은세번째시집『도움받는기분』(문학과지성사,2021)출간당시‘비신비’가의미하는‘신비롭지않음’이란엄청난신비와포개지는지점이있다고밝힌바있다.자신의시세계안에“비신비”라는장르가있다고말한시인이첫시집부터지금까지불속과물위를서성이며탐구해나갔던세상의신비와우주의비밀이드디어『비신비』라는물성안에담겼다.시집맨뒤에자리한뒤표지글에서시인은이렇게말한다.“다타고남은것들을/여기남겨둔다//네가보고잊을수있게//그렇게사랑해”라고.

시인의말

나어렸을때매일기도했지.진짜엄마아빠가날데리러오게해달라고.그러나그들은날찾지않았어.

난버려졌어

흘러내리는은빛

누가날갖길원할까?

2025년11월
백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