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모형

축소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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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마음은 입체라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어”

자그마한 세계를 품은 입체구조 안에서
부드럽게 돌올하는 우연한 포용의 순간

다각 다면의 심장을 고요히 소묘하는 시인
신원경의 첫번째 시집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원경의 첫 시집 『축소모형』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28번으로 출간되었다. “생활에 기반한 모티프를 확장하고 변주하며 세계의 겹을 더해가는”(시인 신해욱) 특유의 상상력으로 써 내려간 시 59편을 총 5부로 나눠 묶었다.

이곳에서만은 캄캄한 어둠이라고 설정하면 해가 뜨지 않고, 눈이 쌓이고 있다고 적으면 그치지 않는 눈이 내린다는 게 여전히 즐겁다. 그러나 분명 지켜보고 있는데도 쏜살같이 불길 속으로 흘러갈 때가 있어서 언제나 그것이 가장 어렵다. 내가 만든 세계를 내가 제어할 수 없다는 것.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어떤 시인의 작품과 지향을 논할 때 ‘시 세계’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데서 알 수 있듯, 한 권의 시집에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신원경은 “너무나도 사소해서 미처 인지할 수 없는 기척과 기미 들을 잘 포착해내어 그것들만의 이름과 자리를 마련해주는 섬세한 감정과 감각”(시인 이제니)으로 자신이 꾸려온 세계에 ‘축소모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글자로 빚은 해와 구름이 오르내리는 이 작고 담백한 세상에서 그는 시인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수많은 생물을 구현해”(「동족포식」)가며 “무엇에라도 이름 붙일 수 있는 능력으로 생존”(「전도와 대류」)한다.
‘모형’이라는 단어가 건축물의 콘크리트 벽이나 미니어처의 스티로폼 골조를 연상시킴에도 『축소모형』의 빛깔이 마냥 창백하지만은 않은 것은 시인의 축소모형이 햇볕과 빗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제 손으로 지어 올린 세계의 자생력과 독립성을 존중하며 그 안에서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이 이리저리 일어나”(「사샤-해인과 사샤에게」)도록 둔 채, “소묘하는 마음”(「소묘하는 마음」)으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행과 운행을 스케치할 뿐이다. 신원경의 시가 간직한 미덕은 자신의 내면을 응축하여 조성했음에도 “언제쯤 완공되는지 알 수 없는”(「포포 만들기」) 축소모형의 세계를 가만히 지켜보는 시선, 그곳에 외인의 개입을 선선히 허용하는 도량이다. 이것이 “하트 모양 영토에” 세워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신비의 문」)는 마음의 기하를 이해하는 시인만의 방식이다. 그의 축소모형이 “체념과 슬픔의 정서보다는 어쩐지 다정한 온기를 더 많이”(문학평론가 조연정) 안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자

신원경

시인신원경은2023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생성되기
작은불길|바늘꿰기|후숙|아침()|청혼|포포만들기|재앙과복됨|포포기르기|넘어간공|가풍|전도와대류|밝은곳에서만나|탐조|성묘|코끼리의코|결정체|발파해체|실비와제롬|배영과잠영|가드닝|투명한돌|명환과나|소등|추분
2부축소모형
축소모형|축소모형|축소모형|축소모형|축소모형|축소모형|축소모형
3부동족포식
정육각체의눈|동족포식|포옹해체
4부재생지
예정밖외출|공터의탄생|축|사워캔디|해변피아노|유실물들|아마추어의선율에의함|하농이거나체르니|신비의문|천장생각|정면반사|휴일|소묘하는마음
5부진동을느끼는사람
육교|조각하는손|봄|정전|날개아래어두운면|사샤|실종된숲|약속시간|진공|쇠오리인오리|기도배우기|굴절률
해설
2-인용자화상의삼중구조(TheTriadicStructureoftheDoublyQuotedSelfPortrait)·전승민

출판사 서평

“잠결의네가쳐다보는얼굴의구성은
침묵과응시로범벅된첫만남의모형”
과거를전시하고미래를부감하는박물관에서
영영초면으로남는익숙한얼굴들

스위치를눌러

당신이살던지형에불을붙인다

모형은마을의연대기를끌어안고있다첫번째버튼을누르면기원전의세계가켜진다마지막버튼을누르면우리가오랫동안사랑한얼굴들이잠든땅이밝아지고

[……]

버튼을눌러확인해봐
네가살았던마을의지형도를
나의마을은어느날에는식민지였으며
어느날에는잘다듬어진공원이된다

당신은박물관에서
모형과연결된스위치여러개를한꺼번에누른다
[……]

빛이들어오지않는모형중앙에는
비석하나가놓여있다해가뜨지않던시절에태어난아이들의이름과개들의이름이이리저리뒤섞여있다

내핵속에서발견되기를기다리는
얼굴하나둘셋……

홀로그램모형안
떠도는영혼하나
-「축소모형」(p.100) 부분

신원경의축소모형은오래된건조물의형태를본떠축조된입체모델의성격과훗날지어질설계물을검토하고조망하기위해만들어진디오라마의성격을모두띠고있다.과거와미래양쪽에충실하게걸쳐있는이모형은시점에공간감을부여하여그내력을켜켜이재구성한,가장무궁에가까운구조물인셈이다.박물관이란시간의흐름과유리됨으로써영겁의감각을체험할수있는장소라고표현한조각가이사무노구치(IsamuNoguchi,イサムㆍノグチ)의말을빌리자면,그의축소모형은전시실한가운데놓여관람객으로하여금“영원속에들어온것처럼느”(「진공」)끼도록하는중층의조형물이다.
“역사없는곳에사는사람은커서재미없는어른이된다”(「축소모형」,p.81)는마음으로“마을의연대기를끌어안고”(「축소모형」,p.100)사람들을기다리는축소모형은“시간이흘러”도과거의얼굴들이“완전히사라지지는않는다는것을”(「유실물들」),또그잔여가다시금미래와맞닿을수있다는것을안다.“땅은언제나땅이고이곳에심어지고생존하는생물만달라질뿐”(「축소모형」,p.85)이며시공간의모습이변화할지언정그위에서“너와보냈던시간과사랑이사라지는건아”(「축소모형」,p.100)니다.“집이었던것과영혼이었던것”이“언제든들어올수있”(「발파해체」)도록틈을열어놓는축소모형은과거로하여금“심겨진자리에서”미래가되어“처음부터다시자라나”[「아침()」]도록하고,이구조물의스위치를눌러작게불을당기는“우리는서로에게머무”(「약속시간」)르며“서로의눈동자에담긴/얼굴을처음발견”(「정면반사」)하는“첫번째발견자”(「재앙과복됨」)가된다.어제와내일을교차시키며오늘의영원을만들어내는축소모형이세워진땅,“죽은것으로가득한이들판”(「성묘」)은이제“일어나지않은일로가득찬들판”(「청혼」)이다.


“정말좋은그림자들이었어
잘모르는우리가함께만들어낸”
너를이해하기위해빛의방향마저꺾어내는나
불투명한온기로도모하는우리의조우

잠시
인간이기를포기하고
필요없는말을
몸에서
덜어낸채로
되고싶은것을발음해본다
세번되뇌면
내몸은
유리가된다
유리가되는것은
참쉽구나
세번만되뇌면
될수있다니
정수리위로빛이들면
다른곳으로
빛을
옮길수있는
그런유리가
그러나정말옮길수있나?
원하는곳으로?

[……]

지나가던새가남긴
새똥자국
내몸에닿고

점차
불투명해지는과정이

따뜻하다
따뜻하다
따뜻하다
-「굴절률」부분

『축소모형』의세계에서어둠은파괴적인장악력을행사하는빛의영향권으로부터벗어날수있도록하는생성과창조의자리로,이번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전승민은시속화자들이“빛을아예옮겨버리거나빛이없는‘어둠’을창안하기를거듭하”고있음에주목한다.‘나’와‘너’는서로“다른상태의물질적존재이므로빛이라는층위에서서로만날수없”기에빛살이들지않는그림자안에서비로소“서로를만질수있”다.시인의눈이“빛이드는방향을유독잘발견하”(「넘어간공」)며기민하게움직이는것은빛의행로와궤도를옮겨내고자하기때문이고,그의화자들이“빛을/옮길수있는/그런유리가”(「굴절률」)되고자하는것은“붙잡는손길을통해서만알아볼수있”(「축소모형」,p.91)는‘너’에게닿아“어둠속에서손을잡고나아가”(「축소모형」,p.97)기위함이다.
“캄캄하고아늑한”(「동족포식」)그림자의자리를마련함으로써“같이손을잡은채로이어져보자고제안하”(「넘어간공」)는신원경의시에서화자들은제몸의(불)투명도를조정하여빛의투과를저지하고밝음으로부터비켜난다.이때그들은온기어린침범을수용하는방식으로불투명해진다.서로에게손을뻗느라묻은얼룩을부러닦지않아“지문자국이남은카메라”렌즈처럼,“지나가는새가남긴/새똥자국”을그대로두는“유리문”(「굴절률」)처럼,“만지면만질수록불투명해”지는“돌”(「투명한돌」)처럼.상대를선명하게파악하는일은가능하지않으리라는진실에다가서며“서로의존재론적한계와그로인한만남의불가능성을오롯이감당하는”신원경의세계에서“따뜻한촉각의서정이최후로탄생”(문학평론가전승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