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굴욕

$17.00
Description
“굴욕이란 인격의 지하실인 것 같고
계단 밑에 쌓아둔 쓰레기 더미인 것 같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굴욕이란
‘자아’의 자기인식을 위한 길을 내는 선행 사건이다.”

유명인사의 스캔들에서 성욕과 배설과 혐오와 폭력의 현장까지,
부끄럽고 더럽고 괴로운 굴욕의 밑바닥을 지나 인간적 성찰에 이르는 여정
시, 소설, 영화, 미술, 음악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미국의 작가이자 비평가 웨인 케스텐바움(뉴욕 시립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이 솔직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굴욕’이라는 주제를 탐구한 에세이집 『굴욕』이 출간되었다. 국내 처음 번역, 소개되는 케스텐바움의 이 작품은 사소한 자전적 경험부터 고문과 살해, 역사적 비극까지 방대한 이야기와 심도 있는 문화예술비평을 한데 모아 굴욕의 연대기를 써 내려간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굴욕의 본질을 규명해보고자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굴욕은 개인적이고 신체적이며, 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것의 필수조건은 더럽힘이다. 굴욕은 언제나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라는 삼각관계를 전제한다. 굴욕은 고갈되는 동시에 축적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굴욕은 더러운 안경과 같아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끼친다. 굴욕은 괴로움, 취약함, 욕구와 같은 사적 차원을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공적 차원으로 끌어냄으로써 안과 밖이 뒤집히는 과정이다. 이처럼 저자는 ‘굴욕’에 관한 밀도 높은 통찰을 제시하며 지적이고 감각적인 글쓰기를 선보인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제시한 굴욕의 삼각관계, 즉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의 입장을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타인의 사적 영역을 엿보는 데서 묘한 쾌감을 경험하고, 때로는 잊고 지냈던 자신의 굴욕적 기억을 떠올리며 공감성 수치를 느끼고, 어느 순간에는 그저 읽는 행위만으로도 가해자의 위치에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 책은 배설, 포르노그래피, 퀴어에서 인종차별, 체벌, 아우슈비츠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며 가정과 학교, 직장, 무대, 감옥 등 다양한 공간에서 행해지는 모욕과 굴욕의 사례들을 추적한다. 굴욕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미디어 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도덕적으로 무감각했던 역사적 장면들과 연결짓기도 한다. 글쓰기 행위에, 무엇보다 언어 그 자체에 깃든 굴욕의 정체를 늘 의식하고 있는 저자가 아르토와 바스키아, 글렌 라이곤 등의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언어와 굴욕의 관련성을 깊이 파고드는 10장은 이 책의 백미다. 나아가 저자는 동성애자이자 도둑이자 작가로서 숭고와 굴욕 사이에 길을 내는 삶을 살았던 장 주네, 아우슈비츠에 대한 책에서 부끄러움의 경험을 탈주체화와 연결지어 분석한 아감벤, 언어 자체에서 지배와 종속의 구조를 읽어낸 크리스테바를 비롯해 사드 후작, 셰익스피어, 세지윅 등 방대한 문학적, 이론적 텍스트를 독해하며 논의를 보다 심층적으로 전개해나간다.
라틴어 어원에서 굴욕(humiliatio)과 인간(humanus)이 같은 접두사를 공유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살면서 필연적으로 ‘굴욕’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굴욕감은 회피하고 숨겨야 할 부정적인 감정에 불과한가? 그것은 끔찍함과 좌절을 안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손 내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것들 또는 느낄지도 모르는 것들을 상상함으로써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느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느낌-우리는 다 굴욕의 가장자리에 살고 있는 만큼 언제라도 그 모진 굴욕의 나라로 추방당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느낌-에 대해서 배운다”(30쪽). 굴욕의 양상을 만화경처럼 비추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굴욕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대면하고 보편적인 인간적 연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웨인케스텐바움

미국의시인,작가,예술가,영화제작자,문화비평가.1958년캘리포니아주새너제이에서태어났다.하버드대학교에서학사학위를,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석사학위를,프린스턴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미국의퀴어연구창시자중한명으로알려져있으며,문학,예술,음악,대중문화등경계를넘나들며비평가로활동하고있다.지은책으로3부작시집『핑크트랜스노트』(2015),『캠프마멀레이드』(2018),『울트라마린』(2022)을비롯해,『여왕의목구멍』(1993),『클리비지:섹스,스타,미학에관한에세이』(2000),『앤디워홀:자서전』(2001),『호텔이론』(2007)등이있다.현재뉴욕시립대학교대학원에서영어,프랑스어,비교문학석좌교수로재직하고있다.1994년신진작가들에게수여하는휘팅어워드,2020년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문학상,2023년구겐하임펠로십등다수의상을수상했다.

목차

푸가1알몸수색
푸가2짐크로눈총
푸가3리버부어스트의구린내
푸가4당신의개가되고싶은
푸가5혹부리
푸가6다섯시의그림자
푸가7카테터(트로이의왕비는이제왕비가아니다)
푸가8역겨운혐의들
푸가9질좋은유대인원단의덮개
푸가10충격요법의미학
푸가11똥싸는소리를엿듣는

감사의말
옮긴이후기
그림목록

출판사 서평

타인의몰락에열광하는시대를향한통찰
웨인케스텐바움의굴욕감수업

굴욕의목록은끝없이이어진다.어릴적아버지에게학대당했던마이클잭슨이아동성추행혐의로경찰에출두했을때얼마나모욕적인몸수색을당했는지TV인터뷰에서털어놓는다.아부그라이브수용소에서이라크인포로들로인간피라미드를쌓은사진이보도되었다.그들은알몸이었고,그옆에서미군병사들이활짝웃으며기념촬영을했다.주디갈런드의딸라이자미넬리는〈래리킹라이브〉에취한모습으로등장해폭소를터뜨려가며과장되고선을넘는모습으로일관한다.게이인권에반대표를행사해온래리크레이그상원의원이남자화장실옆칸남자에게음란행위를시도하다가발각된후“저는게이가아닙니다”라고호소하는기자회견을했다.타인의고통에관한웅변적글을남긴손택이사망한후그녀의시신사진이담긴책자가출판되었다.할리우드스타앨릭볼드윈이딸에게수분간욕설을하고으름장을놓는메시지가타블로이드업계를통해만천하에공개되었다.뉴욕주지사엘리엇스피처는성매매를발각당한후아내를옆에세운채사죄연설을한다.TV방송에서동성애척결을주장하던애니타브라이언트의얼굴에누군가과일파이를힘차게던진다.
이책은대위법적모방을선보이는악곡형식인‘푸가’방식을채용한다.즉굴욕에대한포괄적정의를내리는대신역설적단상들을병렬적으로배치하는데집중한다.가볍고유머러스한이야기들과심각하고끔찍한사례를병치하여,이들이서로연결되는미세한지점을,굴욕이라는공통분모를드러내고자시도한다.

“굴욕은굴욕의중지로통하는길이다”

『굴욕』의마지막장에서는저자가평생겪어온굴욕의목록이열거된다.데이트약속에서바람맞은이야기,출판사에서원고를거절당한이야기,어느시인에게선물한서명본책을중고서점에서발견한이야기,화장실에서동료가똥싸는소리를엿들은이야기,병원에서진료를받다가발기된이야기,어릴때종아리가매끈하다고,목소리가높다고,엉덩이가납작하다고놀림당한이야기등.그중에서도가장높은비중을차지하는것은어린시절경험하고목격한굴욕의장면들이다.즉어린시절의끔찍한훈육이나학대,괴롭힘의경험이인생에지울수없는상처로남는다는점이저자가특히관심을기울이는부분이다.저자에따르면,“정체성이라는식물은굴욕이라는토양에서발아한다”(27쪽).이책의마지막에피소드가,공항에서한사춘기여자애가아버지에게엉덩이를걷어차이는장면을목격한일화로끝나는것은우연이아니다.저자는그여자애가이후삶에서겪게될‘모든굴욕의본보기’가될그장면을목격하게된사실을,그런일이일어나버렸다는사실을애도하면서이책을그에게헌정한다.“맹세하자.남에게일부러굴욕을주는일은삼가겠다고.내가그런끔찍한일에관련되어있음을알게되면,당장그만두고입장을바꾸고죄를바로잡겠다고”(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