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세계는어디있을까?”
비선형적시간을타고겹쳐지는목소리들
‘너’와‘나’의우주가공명하는낯선멜로디
불가능한날개를달고사랑의궤적을그리는하재연의네번째시집
2002년제1회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으로데뷔한하재연의네번째시집『인간이라는환상처럼』이문학과지성사시인선634번으로출간되었다.세번째시집『우주적인안녕』(2019)을출간한이래7년만에선보이는신작이다.『우주적인안녕』으로2020년제3회영남일보구상문학상을수상하며“사라짐과어긋나는시간에대한감각을예민하게열어가며우주적으로확장해,인간을성찰하는개성적인시선을보여준다”(심사위원최정례·조재룡·이경수)는평을받은시인은진지하고섬세한사유로빚어낸시편들을장고의시간속에담갔다세상에내놓는중이다.
비선형적시간을타고다시금만나는‘우리’.먼곳의별처럼사이를두고동떨어진‘너’와‘나’를깊은고독에서꺼내어부드러운언어로잇는시인의목소리는처음듣는음악처럼새로워오랜여운을남긴다.드넓은우주처럼고요하고심원한시세계를펼쳐보이며미래를향한간절한희구로써내려간시54편을총5부로나눠묶었다.
지나간것과오지않은것,잃어버린것과우연히흘러오는것들이잠시겹쳐지는장소인‘나’.그것들의마주침은환상과도같지만,바로그환상으로우리는아직서로에게닿을수있다.여러갈래의다양한미래에대해이야기하였으나이시집에서끝내열어보이는미래는필연이아닌“우연의미래”다.그러나우연은어쩌다혹은아무렇게나흩어지는시간은아닐것이다.그것은사랑이있었으므로,누군가가묻고또누군가가물음에응답하려했기때문에가까스로도달할수있는미래다.
―소유정해설,「읽지않은메시지1―우연한미래로의초대」에서
시공간너머우연한만남에서전송되는
처음들어보는이야기의미래
음악은선처럼흐르지않는것이다.
너의목소리는수년후에야비로소
비과거적으로돌아오고야마는
빛살이나의귀를뚫는오후
―「플레이리스트」부분
“슬픔이후종말이후재앙이후/살아남아”“지속될수있다는것만이/우리의믿음”.시집의첫시「흑백소음」은어둡지만끈질기다.마음에불안을일으키는세계의소음이덮쳐도살아남아야한다는이목소리는어떤결단처럼읽힌다.눈과마음그리고‘나’였던생각을가린채보고듣게되는것은무엇일까.이어지는시편들은여리지만때때로우리의삶을부드럽게다독이는장면을그린다.“바람에종이풍경이흔들리고”(「소바」),“아름다운동선을지닌새의시뮬레이션이/푸른하늘을너의마음속에가져다놓는다”(「우주조류」).주체의이의미없음,의지없음을드러내는움직임은불현듯‘나’의어둠을파고들어눈앞에전혀다른세상을펼쳐놓는다.각자의자리에서삶을떠도는“우리안의여린박자”는“처음들어보는이야기의미래”(「소량현실」)가된다.낯선‘너’와의조우는당장이아니더라도먼훗날기억을일으켜‘나’의입술을열게하는새로운언어의시작점이될수있다.이처럼하재연의시에는‘너’라는분명한대상이있지만심리적투사나자아분열에서비롯한것이아니라생명공동체적시선에서포착되는것이며,‘나’와함께우주적인삶의활로를찾는동행이다.“너를발견했으므로/나는이쪽의문을연다”(「새」)라는시구에서보듯건물에갇힌새를발견하고출구를열어보이는‘나’가있다.그러나“나는너의미래와이어지지않는길로접어든다”(「사구;또는사건의지평선」).하재연의시에서나타나는독특한연대성은존재들이공명하되선형적시간을따라서로의삶에일관되게개입하지않는다는데있다.우연히만나게되는‘너’와‘나’는한공간에있지않을때도있고같은종(種)이아닐때도있으며각자다른시간에놓여있기도하다.주어진경로를이탈한그들이진심을다해나누는것은존재가지닌근원적인아픔과슬픔이다.
시의화자는유리문바깥에펼쳐진봄,유유히흘러가는목장의구름과바람에서아름다움을느끼기보다“바깥의아카시아나무들로부터/가두어진너의팔딱이는가슴팍을”(「씌어진새」)본다.“인간의복식을위해품종이개량된양은제살집보다더무거운털을두”(「코다―구름과바람의현상학」)른다는사실을떠올린다.“발생한슬픔을/발생하지않은슬픔으로/환원할수가없”(「암흑사이」)어서“서로에게귀기울이는당김음이되”리라는결심으로영혼을깨운다.화자의이러한태도는미지에맞서는확률실험과도같다.하재연의시는‘모든개체는죽지만생명은이어진다’는단정한진실을끝내놓지않는다.인간을벗어난자리에서비로소인간다움을생각하며서러운존재를끌어당기는이장력을‘사랑’이라불러도좋을것이다.사랑이다다른곳에선“우주에서식하는새들이/없는날개를꺼내//날아오르고있다”(「소량현실」).빛을좇는‘너’의궤적을기록하기.이것은곧‘나’의생존을위한실마리가된다.
동시다발의우주적탄생을목격하며
비-인간의자리에서품는인간의마음
내흐릿한반영들이
호수표면에서빛나고있습니다.
궁창의뚫린구멍으로
눈이내리고있습니다.
하늘아래흘러가는나의삶과
하늘위에발생하지않은
너의삶사이에서
―「종의기원―인간시점」부분
“어떤삶에개입하는순간/재이의시간의틈새가계속해서벌어지기시작한다”(「샤이닝」,p.93).시간의틈새로보이는것은때로목격하기두려운장면이다.죽음을목전에둔생명들.끝끝내울음을끌어내는것들.그러나울음이멎은후틈새로쏟아져내리는것은눈부신빛이다.찰나의스침으로‘연속재생되는목소리’에이끌려‘나’는사랑이만든길로나아간다.그것은곧‘나’의미래가된다.어둠을통과하며“겨울과봄사이에생겨난계절의이름을/붙여”(「암흑사이」)주고“기도하듯/배고픔을쪼개다른배고픔에게나누듯이”(「샤이닝」,p.90)띄엄띄엄서로의안부를묻는다.그사이에어떤존재는사라지고흩어지지만“빛의태엽을돌”(「코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온엽서」)려현재에영사되어누군가의삶의일부가된다.그렇게“너를만나기전의삶으로다시는/돌아갈수없다는것을알게되는/시간이/나에게온다”(「샤이닝」,p.103).하재연의시세계는“희미한것들이아주많이떠”(「종의기원―찰리찰리챌린지」)도는세상에서혼자가아니기를택함으로써,떠도는말과혼의안녕을빌며멸종이아닌재생을꿈꾼다.그리하여시인의언어는천천히영원에가까워진다.
시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소유정의말처럼,하재연의시는“중심의언어로는포섭되지않는존재들이서로를감지하고호출하는장소”와“하나로수렴되지않는비동일성속에서느슨하고지속적인관계를형성하다잠시간마주치고반가워하는일”을그린다.알수없는미래에기대어‘너’에게한걸음씩다가가보는일,쉼없이살아움직이며‘너’를기다리는일.비선형적시간속에서우리는만나게될것이다.“괜찮아?//한아이가물어올것이고/그것을위해/나는사랑을하였습니다”(「비인칭미래시점의일」).
시인의말
당신안에서피로써흘러나온고통이
하늘로올라가눈송이가되어내린다.
그눈이
당신을솜이불처럼덮어
부디,
없는꿈과같이
편안하게잠들수있기를.
2026년5월
하재연
뒤표지글(시인의산문)
없었던우리,없는우리,없을우리에대해생각해본다.생각의끝까지따라가면없었던우리가조금쯤있었던것같고,없는우리가생겨나고있는것도같다.없을우리뒤에는무엇이있는지모른채나는살아가고있다.그렇다면가능한것들은무엇일까.만남.만남들?
건물로들어온새한마리를마주쳤다.있어야할세계를찾지못해계속해서날갯짓하는새.그뒤를무한히쫓으며창문을여는사람.그리고날갯짓의뒤에남겨진열린창문들.이런엔딩을어디선가본것같다.
지의류는균류와조류가만나공생하는생물이라고한다.툰드라와사막은물론,우주공간에서조차살아남아지구로돌아와다시성장했다는,1년에겨우1밀리미터남짓아주느릿하게자란다는이공생생물체는인간이후의세계를떠올리게한다.
우리의마음에는수시로구멍이뚫리고,거기로왔다갔다하는바람소리를듣는다.그소리는NASA에서포착했다는,카시니탐사선이토성의고리를가로지르는소리와비슷하게들린다.
우리가살아남을수있는최소한의조건을갖춘상태에서가장고통스러운형태로존재하는것이바로우리가사는세계라는한철학자의말에서,나는지의류의성장을상상한다.가장혹독한곳에서가장느리게그리고함께생장하기.
창밖에비가내리고있다.우주의구멍에서흘러내리듯이.그비가당신의검게열린눈으로흘러들어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