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 (김리윤 시집)

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 (김리윤 시집)

$13.00
Description
“우리가 보는 것들에게도
우리의 눈이 돌이킬 수 없는 마주침일까?”

실재하는 대상을 완전히 재현할 수도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는 이중의 불가능성 속에서
언어만이 구축할 수 있는 영원으로 나아가는
시인 김리윤의 두번째 시집
시는 시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보여준다. 응시를 가로지르며 찢는다. 찢긴 응시를 다른 방향으로 이어 붙인다. 우연을 도입한다. 의미화될 수 없는 우연들이 서로 뒤엉키며 멈추고 굴러가고 튀어 오르며 관계 맺는다. 보기를 흔든다. 완결된 보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 언어는 영원을 가능하게 하는 보여주기라고. 없는 몸을 통해 피와 살과 뼈를 가진 몸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보여주기. 그리고 투명한 자루에 가능한 모든 지각을 담아 시선 앞에, 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응시 앞에 놓아주는 재료라고.
─2023년 문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 소감에서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리윤의 두번째 시집 『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35번으로 출간되었다. 2023 문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 당시 “무엇을 믿기 위해 나를 작동시키는 것보다 무엇을 보기 위해 나를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는 시인은 자신의 믿음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세계를, 끊임없이 훼손되고 상처 입는 물질을 완결이 아닌 영원으로 전망하기 위해 기꺼이 ‘보기’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투명한 얼굴을 내보인다.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 단지 있음의 상태만으로 그 존재의 가치를 입증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선언하는 것처럼”(문학평론가 강동호) 읽히는 김리윤의 시는 “동시대의 가장 정교한 구축과 해체의 과정을 실현하고 있다”(문학평론가 이광호)라는 평과 함께 “도무지 지름길을 모르는 듯한 그 걸음이, 느릿느릿 더듬듯이 나아가는 그 손길과 눈길이, 희미한 탐조등처럼 빛나는 자리에서”(시인 김언) “사유와 감각이 ‘동시에’ 가장 예리하게 깊어지면서 ‘동시에’ 드넓게 퍼져 나간다”(시인 김행숙)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 시단에 전에 없던 새로운 미래가 등장했음을 예고했다.
시의 언어를 하나의 기호 체계가 아닌 변형의 장소로서 정의하는 이번 시집은 세계를 온전히 재현할 수도, 그 안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이중의 불가능성에서 출발한다. 시집의 제목 “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에서의 눈은 인간의 신체 기관 중 하나인 ‘눈〔目〕’과 땅 위로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결정체 ‘눈[雪]’의 이중적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 사물을 지각하는 주체로서의 눈과 외부적 요건에 따라 녹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물질의 중첩을 통해 본다는 것의 의미와 감각과 언어가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를 조직하는지에 관해 묻는 것이다. 세계에 의해 오염되고 변형되는 물질은 타인의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형되기에 김리윤의 이번 시집은 ‘보기’를 전제로 한 ‘보기’의 실패를 의미한다. 시인에게 어떤 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눈앞의 물질을 분별하는 게 아닌 그 대상을 온전히 보는 것이 불가능함을 견디는 일에 가깝다. 자신과 관계하는 사물을 한자리에 고정시키지 않은 채 서로의 시선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정동까지도 들여다보는 것. 이렇듯 그의 시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깨뜨리는 동시에 새로운 눈으로, 마음으로, 감각으로 어떠한 오해 없이 온전히 바라보는 방법을 함께 찾아갈 것을 촉구한다.
저자

김리윤

시인김리윤은2019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투명도혼합공간』,산문집『부드러운재료』등이있다.문지문학상(2023)을수상했다.

목차

■차례

시인의말

눈이야생을베끼는동작
전망들|전망들|손에잡히는|공간의속도|사물의속도|전망들

나의꿈이너의몸을
스케치업(SketchUp)|영영|녹는눈감는|전망들|전망들

잠을태우는불소리
감정과형상|감정과징후|감정의자연스러운상태|깊은손|깨끗하게씻은추상|조명하지않는빛|전망들|전망들

모자를뒤집으면시작되는
숨과올|새숨|비유와착각|돌보는숨|돌보는숨|가정동물|착각엎지르기|잠과뼈|빈손없이

사랑이시간을다루듯이
함께떨어지며열리는|전망들|전망들|손에잡히지않는|전망들|무른무너지는|재료의기계적성질|부드러운재료

즉흥기억
우리의여기의이것의|겹겹|미미한더미|미끄러운복원|문턱에서기다리기|언제나신선한프레임|물만지기|손의정면|새문서

소음이영원의둘레를감싼다
전망들|기억술|물질세계의디테일|검은돌안에서|아늑해지는|두사람의새창|가변테두리의사랑

발문
추위길들이기·김예솔비

출판사 서평

“영원을알아버린것처럼겁에질린얼굴로
개를잃어버린영원처럼겁에질린얼굴로”

일단개라고불러봐.

새수첩의첫페이지에적은문장이다.어디서본것인지,꿈에서들은말인지,누군가일러줬던이야기인지,일러준이가있었다면그이는심리상담사였는지,꿈속의마녀였는지,스님이었는지,점쟁이였는지기억나지않지만일종의주술이나부적같은문장이라고생각했다.일단개라고불러봐.개라고부르면눈쌓인비탈길에서미끄러지듯사랑에빠지기때문이다.사랑이두려움을다루는방법으로만두려움을갖게되기때문이다.사랑하는것은어떤공포와도다른방식으로두려워할수있기때문이다.
─「전망들─한마리하나한개」부분


니체에의하면“인간은본성상망각의동물”에가깝다.삶의고통에서벗어나현재의행복을추구하는것이야말로인간의필수적이고도능동적인본능인것이다.반면베르그송은‘기억’이야말로하나의생명체가주어진환경에적응해미래를창조해나가는원동력,즉생명과도가깝다고말한바있다.인간은다름아닌기억을통해타인과자신을구별하고자기존재를확인한다는것이다.이렇듯인간은삶을영위하기위해기억하고행복을좇아망각하는존재이다.그렇다면인간을인간답게살아가도록하는기억은무엇일까.김리윤은인간이기억하고자하는대상이사랑하는상태임을보여준다.순간의감정을훼손하지않고보존하기위해우리는상대를끊임없이호명하는것이다.이렇듯육체적죽음을피할수없는인간이영원을말할수있는유일한방법은무언가를기록하고남기는일일것이다.시의화자는자신의존재가능성마저잃어가는개를,“영원을알아버린것처럼겁에질린얼굴로”“걷는법을잃어버리며걷는/기억이몸의내용인것처럼점차작아지는”(「감정과징후」)개를다시불러본다.‘쿵’이라불리는개는“마치기억으로빚은개인것처럼,기억이살점을덧붙이는물질처럼,기억이이루는부피처럼작아지고있”고시의화자는“슬픔이라는단어를잃어버려도,슬픔이라는단어를갖지못해도슬픔을알게되고야말듯이”(「감정과형상」)끊임없는감정의이동을경험한다.시집에서‘개’는정서적교감의대상이아닌그무엇도소유할수없는세계의구조를비유적으로보여주는형상에가깝다.자기자신의이름마저잃어버린개,목줄이헐거워질정도로작아지는개,반복되는부름을듣지못하는개의모습을반복적으로보여줌으로써도무지이해할수없는세계의불능속에서서로를소유하는게아닌돌봄으로써나아갈수있는미래를,눈앞의현실을재현하는게아닌끊임없이주어지는상황을재설정함으로써‘개’는하나의상징이아닌사건으로작용한다.부름이실패한후에도몇번이고다시‘개’의이름을부를수있는까닭은지금눈앞의물질이한순간에사라져영영볼수없을지라도,이해할수없는세계의혼돈속에놓여있을지라도바라보고,부르고,돌보는일을포기하지않을거라는다짐,예기치못한망각에휩싸이더라도자신을붙들고있는기억들을헤집어다시한번불러보겠단의지의표명일것이다.“그것은사라짐을향해움직인다.도무지이해할수없는일이었지만자연은이해를필요로하지않는다.나는그것을향해움직인다.더욱움직인다”(「감정의자연스러운상태」)라는시구는인간의운명이소멸이라면이를향해손을뻗고움직이는것은사랑의실천임을보여준다.


“기억은표면을사랑하기때문에
얼굴은추상이되지못한다”

추상은꿈꿀공간을준다지만
너는구체적인창문을필요로했다
꿈꿀공간말고
손에잡히는눈에보이는
설명할필요없이
보여주면그만인그런것
그런창문을

원했다
시간을잘게부수어눈을위해사용하기를
─「깨끗하게씻은추상」부분


“잠에서깨듯이장면을깨뜨릴수있다면좋을것이다”(「감정의자연스러운상태」).김리윤의「전망들」연작은단어의뜻그대로펼전(展)과바랄망(望),자신이원하는것을있는그대로펼치는것을의미한다.하나의대상을바라보는시선과이를염원하는마음이맞닿는다는점에서이는눈앞에놓인현실인동시에아직가닿지않은미래를의미한다.시인이바라보는풍경은물리적인조건에기반한보기의양식만을의미하지않는다.그것은“지각과감정,언어와형상,인식과이미지가뒤얽혀발생하는하나의관계적형식이며,불확실성과의공존을감각하고감당하려는실천에가깝다.전망은눈앞에실제로놓인장면이면서동시에아직도래하지않은감각의방향을포함한다”(시인이쓴시집소개글에서).아직도래하지않은풍경을그림으로써현실의이면을포착하는김리윤의시는영원히불가해한사건으로남을사랑의본질은기다림으로부터비롯된다는것을보여준다.사랑의가변적인속성에관해속단하지않는태도야말로이번시집의마지막에수록된시의마지막구절,“사랑과함께미래의사랑을향한다”(「가변테두리의사랑」)라는다짐이지금의시대에도유효함을보여준다.허물어지는세계를해명하기보단살아움직이는물질을곁에두고바라보는일.시인에게시는세계를만지고,말하고,변형되어영영길들일수없는야생의자연을자신의눈안쪽에남겨두는일이다.


시인의‘보기’는결코깨끗하고무결한원시적인눈에서출발하지않는다.시인은우리와마찬가지로보기와믿기가불확실하게뒤섞여있는지대에서본다.이때시인의제안은보기와상상을대척점에두는것이아니라,보이지않는것과상상의관계를끊어내는것이다.[······]적나라한것,과도한가시성으로스스로취약함을갖는것.그런모양새로세계에투신하는일이다.세계가희망을녹여만든것이라면,무엇이텅빈상태의세계를보지못하게만드는지의식함으로써거꾸로희망을더듬어보는일이다.이것이시인이말하는추상이다.세계의지저분한이미지들을날려버리는표백으로서의추상이아니라,사유를위한보기방식으로서의추상이다.
─김예솔비발문,「추위길들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