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를 두고 (백가흠 소설집)

가를 두고 (백가흠 소설집)

$17.00
Description
“죽음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것입니다.
나는 근래 그런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지연된 감정, 제때 읽지 못한 시도, 유예된 애도,
전달되지 못한 사과는 연착되었으므로 현재를 바꾸는 것이다.
소설가 백가흠의 여섯번째 소설집 『가를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 겨우 살아내다가, 자신을 관통했던 죽음을 다시 마주하는 것.
바로 이 과정에서 그들은 스스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일을 겪은 것인지를 이해합니다.
─고명재 시인 발문, 「서서히 내게 오는 것」에서
저자

백가흠

2001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귀뚜라미가온다』『힌트는도련님』『사십사四十四』『같았다』,짧은소설집『그리스는달랐다』,장편소설『향』『마담뺑덕』『아콰마린』등이있다.현재계명대학교문예창작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차례

우다브노에서아침을
빗소리
석별─아무도모르게2
라오까이라이까이─가을이오면
감귤모텔부흥회
복숭아를씹으며
아무도모르게
가를두고

해설│연착과사후·조형래
발문│서서히내게오는것·고명재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소설가백가흠의여섯번째소설집『가를두고』가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지난5년동안발표한여덟편의단편소설을묶은것으로모두코로나19를지나오면서씌어졌다.데뷔이후인간의비틀린욕망과잔혹성을묘파하며그로테스크한작품세계를구축해온그는이번소설집에서평범한사람들이겪을법한보편의이별과상실의자리를다룬다.해설을쓴문학평론가조형래의말을빌리자면백가흠의신작소설집에“삶의잔혹성이라는조건자체가사라진것은아니다.그것은간병,파산,실종,노년의고립,가족의해체,뒤늦은애도의형식으로변주되어있다.백가흠의초기소설이폭력앞에노출된몸을통해생의민낯을드러냈다면『가를두고』는그야말로잔혹무도한세계속에서이미지나간사건이뒤늦게인물의삶에도착하는방식에관해”(해설「연착과사후」)보여준다.출간을앞두고“쓰면서편안했고많이슬펐던기억”이난다고말한바있는작가는소설의소임을두고“남의일은내일이되고내일은남의일이되는것”(‘작가의말’)이라정의한다.그의말처럼타인을온전히이해할수없다는사실을알면서도나아닌다른이의삶의형태와마음을들여다보는것이야말로인간의삶에서문학을떼어놓을수없는이유일것이다.이번작품에는가장가깝다고여겼던가족조차“아무도모르게”떠나보낸인물들이주로등장한다.사랑하는사람을먼저떠나보낸이들이할수있는일이라곤아무것도없다.혹여울음소리가바깥으로새어나가지않도록숨을죽여우는것뿐이다.

우다브노에아침이올때까지나는울었다.사라졌던빛이산맥을넘어아주천천히평원을가로질러,아버지의무덤위를지나서,서서히내게오는것을오래도록바라보았다.다시곧돌아오겠다고내게오고있는것들에게대답해주었다.
─「우다브노에서아침을」에서

「우다브노에서아침을」의‘지은’은아버지의장례를치르기위해비행시간만열아홉시간반이걸리는조지아트빌리시로긴여정을떠난다.단역배우였던아버지는자신이여섯번이나죽는영화를딸의손을꼭잡고볼만큼애정이많은사람이었으나어느날갑자기자취를감춘다.처음에는행방불명이된아버지를찾아실종신고까지했었던지은은결혼과출산,이혼을거치면서아버지를찾는일을점차단념하게된다.그렇기에아버지의죽음은‘슬픈사건’이라기보단‘난처한일’에가깝다.아버지의유언에따라트빌리시에서두시간정도떨어진아르자니평원의작은마을우다브노에도착한지은은그곳에서아버지가운영했다는의성식당과이복동생‘애나’를마주한다.식당에는한국식우물과지하수펌프등아버지의손길이안닿은곳이없고,의성에서나고자란아버지가기르던개의이름까지도‘마늘’이었다는것.줄곧자신을그리워했던아버지의마음을알게된지은은그제야“아버지는언제나나를기다리고있었으나나는몰랐다”(p.41)라고말하며눈물을흘린다.뒤늦은그리움의눈물은산자가죽은자를애도할수있는유일한방법이자묵은감정을씻어내기위한시도라할수있다.하지만모두에게애도의자격이주어지는것은아니다.진정서로를아끼고사랑하고,평생을그리워했던관계만이슬픔을드러내어치유에다다를수있다.반대의경우,끝없는후회만이사는내내이어질뿐이다.

인생의뒤안길에서고향으로돌아와여생을보내는노인이등장하는두작품,「빗소리」와「복숭아를씹으며」에는아들의원인모를자살과한국말이서툰며느리그리고가족이아닌타인의돌봄노동에의탁해야만하는공통된설정이등장한다.일본인며느리와손자의갑작스러운방문에당혹스러워하는「빗소리」의화자는재일교포2세로,하루하루를술로연명하는아버지처럼살지않겠다는다짐과함께한국으로돌아온다.하지만그의선택에는아들‘상현’이일본에서‘마키소타’로살아야만했던시간이배제되어있다.한국과일본어디에도속하지못한채이방인으로살아야했던깊은고독과외로움이삼대에걸쳐반복되는것이다.아버지에대한원망과아들에대한자책으로살아온그는장맛비에둑이무너지고마당으로강물이들이치는걸보면서“아버지가들어오고있었다.상현이도같이온것같았다”(p.75)라고말하며그옛날아버지처럼서럽게울기시작한다.젊은시절학자이자문학평론가,사회운동가로명성을떨친「복숭아를씹으며」의‘김영태’는말년에이르러대중에게비난과조롱을받는처지에놓인다.그는평생을정치판에서일하며약자의편에선것처럼살아왔으나실상은법의안전망속에자신을보호하기에급급했고이러한이기심은하나뿐인아들의죽음앞에서도자신의명성을염려해장례조차치르지않는비정함으로이어진다.미국에서나고자란며느리‘재경’은남편의죽음을존중하지않는시아버지의태도를비난하지만,그누구에게도제대로된사과를해본적이없었던김영태는아들과며느리,과거에자신이배신했던연인에게끝까지미안하다는말을하지않는다.자식을먼저떠나보낸부모의처절한상실감과남아있는가족과소통이불가능한현실,유일하게자신의안위를살피는타인‘마을이장’과베트남청년‘민’에게기댈수밖에없는노인이할수있는일이라곤자신이평생을외면해왔던기억을상기하면서적막속에쓸쓸히죽음을기다리는것뿐이다.

상실의자리에서우리는당혹감을감추지못하곤하지만갑작스러운이별이란존재하지않는다.떠나는사람은생의마지막순간까지반드시신호를보내기에결국후회는남겨진이들의몫이다.「아무도모르게」와「석별─아무도모르게2」에는아내가떠난후혼자남겨진노인과치매에걸린아내를간병하는노인이등장한다.집앞스타벅스창가자리에앉아사람들을구경하는게유일한낙인「아무도모르게」의‘김영근’은사십대중반에만난아내와결혼식을올릴당시만해도삶의모든것이소박하고고요하게진행되기를바랐다.그런그에게아내는“왜그렇게숨어서아무도모르게결혼을하자는거예요?”(p.229)라며처음으로언성을높인다.이렇듯아내가무얼원하는지평생모르고살아온그는아내가세상을떠난후에야그녀가자신에게얼마나큰존재였는지비로소깨닫는다.치매에걸린아내를돌보며전쟁같은하루하루를보내는「석별─아무도모르게2」의화자는“많은것이이미지나가버렸고돌아오지않는시간속으로함몰됐다.우리는그저생을버틴다.아무런소망도없고더는절망도없다.죽고싶지도않고살고싶지도않다”(pp.79~80)라고말하며자신에게닥친상황을비관한다.가족들에게막대한빚을안긴채사라진아들‘선규’와그런오빠의빚을대신갚느라극심한생활고에시달리는딸‘선희’역시괴롭기는마찬가지다.아픈아내를돌보며최소생활비와밀린공과금을걱정해야하는지금의현실과아내가아프기전아들과함께셋이서제주도에갔던과거의기억을회상하며전개되는소설은이내아들선규의부음으로이어진다.아들의소식을들은순간에도온전히슬퍼할수없는그는우는딸에게“선희야,엄마,들을라.작게,작게······울어라”(p.108)라고말할뿐이다.작품속두노인은자신에게닥친외로움과고독함이“아무도모르게”부지불식간에닥쳤다고믿고싶지만,실상은그렇지않다.바로옆에있는사람이무엇때문에괴로운지살피지않고넘겨온지난세월의무심함이결국노년의자신을외롭게만든것이다.아내를잃은사람도옆에아픈아내가있는사람도똑같이외롭고,자식이있는사람도자식이없는사람도손내밀곳이없기는마찬가지이다.그누구에게도자신의고독함을털어놓지못한채어둠만이천천히드리운다.

소통의단절은비단노년에만국한된이야기는아니다.「라오까이라이까이─가을이오면」과「감귤호텔부흥회」에는자신의처지를비관하느라주변을향한관심과인정을잃어버린청년세대의현실이고스란히담겨있다.공단사거리에서4년째토스트를팔고있는‘태형’은낮에는푸드트럭을운영하고오후에는물류창고에서일하며하루하루열심히살아간다.하지만대학생때얻은자취방에여전히살며학자금대출을갚아나가는그에게는뚜렷한희망이남아있지않은듯하다.그런태형에게느닷없이나타난‘만두트럭아저씨’는눈엣가시나다름없고,비오는날발생한사고이후단골손님중한명인베트남유학생‘흐엉’의발길마저뜸해지자태형의불안하고조급한마음은더커져만간다.나중에야흐엉이제고향으로돌아갔다는사실을알게된태형은언제고발음하기도어려운그녀의고향‘라오까이라이까이’에가봐야겠다고다짐한다.「감귤모텔부흥회」는삼십대에사회인야구단에서만난이들이세월이흘러친목포커모임을하게되면서달라진각자의처지와상황을묘사한다.다른사람들의불참으로단둘이제주의외진무인모텔에오게된‘상수’와‘상원’은“너하고둘이오붓하니좋네.”“그렇죠,형하고는기회가없었죠”(p.158)라는말만반복하며어색한시간을보낸다.이후밤이되고술자리가무르익자‘상수’는최근비트코인과프랜차이즈사업이연이어대박이난대학동기‘흥식’에게전화를걸어자신의처지에관한넋두리를늘어놓는다.상원은다른사람의노력을단한번도제대로들여다본적없으면서투정만부리는상수를힐난한다.그런상원에게아무런대꾸도하지못하는상수는자신이좋아했던것은야구가아닌공을주고받는행위,즉다른사람과소통을하는과정이었음을비로소상기한다.다음날상원은자신이운영하는카페에일이생겨가봐야한다며급히떠나고발코니에선상수는축구연습을하는아이들을보며“너희들모두잘될거야”(p.183)라며되뇐다.팍팍한현실과관계의단절그리고미약하게나마회복의가능성을그리는두작품은다른사람을인정하는순간자기자신을부정하고저버리는것이라여기는인간의이기심과연약함을그리면서도그누구도혼자살아갈수없음을,그무엇도혼자이뤄낼수없음을말하며관계회복의가능성을보여준다.

“지난밤에는밤새울었습니다”(p.255)라는자기고백적어조로시작하는표제작「가를두고」는부모님을연이어떠나보내고오래전에여동생마저보내면서단한번도울지않았던화자가짐승과도같은자신의울음소리를들으면서삶을돌아보는이야기다.모나지않고평탄하게살아왔다여겼던그는실은“어떤일에한번도용기를내어본적이없”(p.270)는삶을살았고,읍내에서귀래식당을운영하는동갑내기친구‘금비’의말한마디는그의적적한삶에위로가되어준다.제목“가를두고”는마을에큰불이나고마을회관으로대피하던할머니가집에묶어둔누렁이를떠올리고는“내가미쳤는갑다.가를두고그냥왔다”(p.283)라고말하는데서비롯된것으로,생사가위급한순간에서야집에두고온식구를떠올리는장면은인생의많은것을함축해보여준다.인간에게는단한번의삶만이주어지고때때로이러한자명한사실은낯설게느껴진다.백가흠의이번소설집은이별이남긴상처가아닌자신이두고온대상,즉우리가살면서반드시한번쯤후회하게되는순간을그리면서당신에게묻는다.당신은어떤삶을살고싶은가.

이소설집의연착은단순한지연이아니다.제때말하지못한것들이무덤앞에서야말이되는시간이다.[······]무덤에서는쓸수없으므로무덤앞에서쓴다.죽은뒤에는말할수없으므로아직살아있는사람이대신말한다.『가를두고』의마지막울림은죽음을이기는힘이아니라죽음앞에서이름을불러두는힘에있다.
─조형래해설,「연착과사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