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계절의소설
선들거리는봄바람속에서희미해졌던삶의감각은뜨거운여름볕이온몸을감쌀때되살아난다.『소설보다:여름2026』은그러한여름의시선으로‘인간’의존재기반을치열하게묻는다.우리가인간으로살아남기위해세계에게요청해온것,나아가세계가마땅한‘인간됨’의조건으로우리에게요구해온것은무엇인가.세편의소설을따라가다보면작열하는태양아래형형히드러난만물의얼굴이낯설게느껴지듯우리삶의저변을떠받쳐온가치들또한이전과는다른모습으로다가올것이다.
구소현,「화이트데이」
“나는지금속고있는게아니야.믿고있는거야”
2020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구소현을2021년가을에이어두번째로‘이계절의소설’에서만난다.“독한소설”(소설가손보미),“우중눅눅한느낌”(문학평론가조효원),“불편함”(문학평론가김형중)등의평가를받은구소현의소설은책한권이우리안의얼어붙은바다를깨야한다는카프카의격언을반추시키며동시대문학의중심에섰다.데뷔당시“살고싶어서”(수상소감)소설을쓴다고밝힌작가는,이번선정작「화이트데이」에서믿음이라는문제를둘러싸고‘살고싶은’사람들의몸부림이들추는세계의어두운면을담아낸다.
사이비종교단체‘약속천익사원’에서유년기를보낸‘승현’과그녀의동생‘연주’는내부고발로집단이와해되면서뒤늦게세상에편입한다.“구조에중독된사람”처럼난민구호단체일에몰두하는연주와달리승현은겉보기에무난한삶을살고있지만,사회에나온16년간그어느곳에도마음두지못하고헤매는처지다.그러던중사원에서함께자란친구‘재원’과의재회는승현에게새로운가능성을열어젖힌다.재원은여전히약속천익사원을믿는데다가교주의역할까지수행하고있다.승현은그가자신을포교해믿음이라는견고한삶의토대를마련해주길기대하는반면,재원은승현이자신을설득해이거짓된종교로부터끄집어내주길기대한다.그렇게두친구는엇갈린바람을안은채함께밤을보내게된다.
“어긋나는소망들,갈곳을잃은믿음들을과감하고생생하게장면화하는데이소설의탁월함이있다”(문학평론가이희우).‘허울뿐인희망’대신명백한불행을내보이고있음에도독자는이소설의끝에서닫힌문이아니라여러갈림길을마주하게된다.작가와인물이한마음으로독자를향해질문을던지고있기때문이다.“깨달음을얻게되거나,새로운길을찾아내거나,희망을발견하는사람이있다면자신을포함해모두에게공유해주길”바라면서.그렇게구소현의소설은고통에겨운각각의인생을세밀하게소묘하며그토록애써삶을버텨내는이들에게건네줄말을끊임없이궁구한다.
어떤일을겪어도계속해서꿋꿋하게살아가는인물,삶이고통스러운와중에살고싶어서별의별짓을다하는인물등을소설속으로불러와그들을따라다녀보기도하고,앞으로어떻게할건지물어보기도하면서오히려제마음이좀나아진적도많습니다.가끔은제가현실에서풀지못한문제의답을알려달라며그들을귀찮게하기도하고요.가끔이아니라요즘은거의매번그러는것같아요.넌알고있냐고,알고있으면알려달라고요.
「인터뷰구소현×하혁진」에서
남궁지혜,「측은지심」
“내실적이좋은이유는거기에있어.난진심으로걔네를대하거든”
2017년『경향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남궁지혜를처음‘이계절의소설’에서만난다.“우리사회가함께고민해야하는문제를주제로잡고그것을끝까지밀어붙”(심사위원윤대녕,김형경)이는힘은특기이자동력으로서남궁지혜의꾸준한활동을이끌며그를열성적인작가로자리매김시켰다.이번선정작「측은지심」은인간의마음을빌미삼아기만과범죄를정당화해온화자가역으로동일한구조속피해자의위치에서게되는과정을그린한편의블랙코미디이다.
러브챗인공지능을가장해상대남성에게서얻은성기사진으로금전을갈취하는사기범죄에가담하는‘나’.“로맨스스캠이라는것은결국진심이필요”하다말하며자신이사기대상을향해느끼는‘측은지심’이바로실적의비결이라설파한다.동정심과우월감에고취된‘나’에게‘아캄베’는처음으로거북함을안기는상대다.아캄베는‘나’를인공지능이아닌실제사람처럼대하며그만의이야기를요구한다.이에이끌린‘나’는전여자친구‘이민경’과의실패한연애담을털어놓지만,아캄베는“시발,너징그럽다”“진짜같아”라는말을남기고사라진다.이윽고아캄베가자신에게들려준모든이야기가거짓임을알게된‘나’는자신의‘진심’에화답받지못했다는사실에당혹감과분노를느끼며그를찾아나선다.
소설속‘나’에게인간의몸은화폐와의교환대상이고,사랑은로맨스스캠의수단이며,낭만은데이트폭력의구실이다.작가는소설의힘으로그런‘나’를고스란히상대편,즉피해자의자리에서게만든다.“서사가진행될수록‘나’의신체는점점더‘여성화’되어무차별적으로침입당한다.신체일부분으로축소되어권력의착취물이되는그를독자는측은히여겨야할지우스워해야할지곤란해진다.”이이야기는결코단순한복수극이아니라‘인간성’‘진심’등의본질이흐려지는세계에대한고발이자경제적논리아래누구든물화될수있다는경고이기때문이다.이는곧“소설이던진농담이우리에게결코가볍지않은이유다”(문학평론가강도희).
어쩌면진심이란말이이토록절실해진까닭은그것이자꾸만의심받는시대가되었기때문일거예요.인공지능을사람이라믿고사람을인공지능이라믿어도전혀이상하지않은시대지만,이제와진짜를찾고싶어하는마음도그절박함에서비롯한다고생각해요.자신의인간성이누군가로대체될수있다는두려움이진심을호소하게만드는촉매가된거예요.한때가장뻔한변명처럼들리던진심이라는말은재밌게도이제더는잃고싶지않은인간성의마지막보루가된셈이고요.
「인터뷰남궁지혜×홍성희」에서
박민경,「즐거운나라」
“크고실한것을기특하고대견하게여기는마음이분명존재하는데,
오직‘사람의몸’만은왜예외가되는걸까”
2022년『세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후“동시대현실의단면”을“통렬하게드러낸”(문학평론가강동호)이야기들로독자들의열띤반응을일으키며,최근첫소설집『랠리』(문학동네,2026)를출간하는등활발한활동을이어가는박민경을2025년겨울에이어두번째로‘이계절의소설’에서만난다.지난선정작「별개의문제」에서개인의삶이자본주의체제로포획되며치닫는비극적행로를참연하게담아낸작가는이번선정작「즐거운나라」에서뚱뚱한몸을향한우리사회의고질적인편견들을박진감있게스케치한다.
소설은거구의여성이“나좀살자”라고절규하는영상이‘살자녀’밈이되어퍼지는모습으로시작된다.역설적이게도‘신나라’라는이름을가진그녀는타고나길비대한체구때문에어릴적부터자신을향한시선과괴롭힘그리고소외감에시달린다.모범생,유도선수,시인,파워블로거등커다란외피를활용하거나감출수있는자리를찾아헤매지만모조리실패로귀결되고만다.“그냥……나를그냥좀읽어달라”는간절한바람이저물어갈무렵,신나라는시내한복판에서코끼리한마리를목도한다.그와눈이마주친순간자신이잘못된껍데기에갇혀태어난존재임을깨닫고,자기만의나라를‘건국’하기시작한다.
이소설은‘정상’의울타리가허물어지고있는오늘날에조차유난히엄격한잣대로평가받는비만여성의삶을대담하게압축해그린다.“박민경은한여성의몸을둘러싼시선과언어의폭력성을치밀하게배치한다.그해석의연대기를따라가다보면,신나라를바라보는세계의시선속에독자자신또한놓여있음을깨닫게될것이다”(문학평론가소유정).한편소설은한마리의코끼리와같이우직하게작품을써나가는작가의초상을언뜻드러내며‘예술가소설’의면모또한빛낸다.수없이한계에부딪히더라도계속해지평을넓혀가려는묵묵함을향한조명은많은이에게나직한용기를전할것이다.
이소설에서가벼움이꼭얕음을의미하지는않는다고믿어보고싶었어요.나라의절규는반복되고퍼져가는과정에서분명훼손되겠지만,바로그가벼움때문에많은이에게도달할수있었으니까요.그리고운이좋으면작게나마어떤의미를만들수도있을거라고생각합니다.입바람한번에도훌훌날아가지만일단닿으면콘크리트틈에서도기어이뿌리를내리는씨앗처럼요.
「인터뷰박민경×이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