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

$13.00
Description
“나와 산양의 동그란 눈만 별이에요.
적막하고 우아한 심정이 돼요.”
불시착한 존재들이 우연히 마주쳐
비워진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기쁨과
서로의 슬픔을 끌어안는 순간의 온기에 대하여
당신들 모두에게 빛을 밝혀주는, 시인 이원의 일곱번째 시집
저자

이원

시인이원은1992년『세계의문학』가을호에「시간과비닐봉지」외3편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그들이지구를지배했을때』『야후!의강물에천개의달이뜬다』『세상에서가장가벼운오토바이』『불가능한종이의역사』『사랑은탄생하라』『나는나의다정한얼룩말』등이있다.현대시학작품상,현대시작품상,시작작품상,시로여는세상작품상,형평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차례

시인의말

1부
당신들모두가나오는꿈|공용키친|일련의시도|목도리앵무를본적있니?|배양장|지구에서배운슬픔|모든언어|맹목은시선을이긴다|모든결과|소속감|헬무트랭,옷만드는사람의이름|실내와실외|친목모임|일요일손들유령들|나의덜컹거리는엄마

2부
감자깎기|한골목에나란히|누가죽음의뜨개질을하는가|계절이동|어디로꽃병을던져야하나|조금은식물처럼조금은동물처럼|작은사람공동체|어떤밤에곰이찾아왔다|녹기전에|작은교회|잠봉뵈르가말하기를|일년에반이상은눈에갇혀있습니다|생물권|희귀한지구방정식

3부
아직,지구에서|밤이올무렵|다음페이지도파도라면|협소주택|같은책,pp.17~36.|모든날짜|스크롤|떠날때신는구두|무미류(無尾類)|우정의방식|사랑의종말론|세대론|그소설에서는왜끊임없이사람이죽는가|슬픔의골상학|엄마와내가흘러가는밤을펴들었을때|뿌리삼면화

4부
기억의천재푸네스|구름이여,우리는내일이동한다|46a46b46c|검색결과|완전무결한대화|돌사과파도깎기|나란히밤을구하는수밖에|살구씨공동체|생활의달인|세트장|월요일|아름다운종이|날씨행성뗏목|협소주택|잠금화면|□

해설
무참한기쁨과다정한슬픔·김지윤

출판사 서평

시인이원의일곱번째시집『브로콜리산양작은사람』이문학과지성시인선636번으로출간되었다.여섯번째시집『나는나의다정한얼룩말』(현대문학,2018)을출간한이래8년만에선보이는신작이다.점점더삶의가장자리로,희미한곳으로,연약한곳으로나아가다른이의곁에서서직접그들이되어살아보려한흔적이담긴시61편을총4부로나눠묶었다.“억압하지않는방식으로시가씌어질수있을까”(뒤표지‘시인의산문’)라고묻는시인은존재와동시에종말로나아가는생물의숙명앞에서“작은사람”이되어볼것을권한다.세상을둘러싼비대한슬픔에사로잡히지않고작은식당에들어간작은사람이되어작은세상만이보여주는아름다움을찬찬히들여다보자는것이다.
“사과옆에돌옆에감자옆에어둠이하나씩”(‘시인의말’)드리우는순간,시인은“밤에혼자있는사과에불밝혀주는방법/겨우잠든사과를깨우지않고불을꺼주는방법”에관해“이제조금배웠다”(「□」)라고털어놓는다.누군가곁에있다는사실만으로깊은잠에들수있는사과의마음을깊이헤아리는것이다.이렇듯시인에게시는“내가가진하나의성냥을켜면,그만큼의빛이생겨”“나는하나만있던성냥을잃게되지만우리라고부르는세상에는꼭필요한곳에정확한빛이생기는”(‘시인의편지’)것으로자기자신을구원하고지탱해온희망이다.이번시집의해설을쓴시인이자문학평론가김지윤의말을빌리면“불시착한존재들이우연히마주쳐비워진자리에서서로를알아보는순간의기쁨과서로의슬픔을끌어안는순간의온기에대하여”말하는“이시집은지금이시대에대한조용하면서도강력한저항이자,이원시인이우리에게건네는가장따뜻한위로”(「무참한기쁨과다정한슬픔」)라고할수있다.

“직선의세계로따라가지않은당신들모두의
그림자를나는이해했다”

당신들모두가나와
내가바쁜꿈은나쁘지않았다

당신,부르고싶었으나
당신들모두가나와
나는빈접시를나눠주고있었다

접시를든당신들모두는좋았다
나와당신들모두는
흰셔츠를입고흰접시를든모양이되었다

빛은잘리지않았는데
셔츠에대각선이그어졌다
─「당신들모두가나오는꿈」부분

“자꾸편지쓰고싶어져요/당신은뒤돌아보는법을잊어버렸기때문에”라고말하는시의화자는더는만날방법이없는“눈을감고있던사람”을떠올리며그의등에대고자꾸만편지를쓴다.혹자는‘당신’을2인칭대명사,화자와친밀한관계이거나혹은물리적으로가닿을수없는절대적존재일거라생각할지도모른다.하지만이원의시에서‘당신’은화자와청자,발신인과수신인을특정하지않는다.외려이때의‘당신’은불특정다수로단일한존재가아닌‘당신들’이라는복수로호명되어시적화자와의거리감을확보한다.“닿으면안보일거예요/닿기전까지당신이에요”[「무미류(無尾類)」]라는고백은끝끝내가닿을수없는당신과의단절에서오는슬픔을예견한다.맨처음수록된시「당신들모두가나오는꿈」에서화자는“나와당신들모두는눈을맞추느라바빴다”라고말하면서도“내가바쁜꿈은나쁘지않았다”고,“접시를든당신들모두는좋았다”라고말한다.모두가똑같이“흰셔츠를입고흰접시를든모양이되”어그뒤로자꾸만흰접시가쌓여가는데도그들의손을끝끝내서로겹치지않고그림자만하염없이길어진다.이렇듯광막한우주에서단한명의‘당신’이영원히존재할수없다는슬픔은공동체속에서개개인이가닿을수있는지점은그림자에불과하다는사실을보여준다.

“모든생물은끊임없이장소를이동하기마련이고
그때마다우리는조금슬퍼진다”

헬무트랭,미끄러지는발음을가진사람.단추구멍입모양을만들게하는사람.고요의신소재를알게한사람.고요가남긴바느질자국을내보이면서아직도벗어야할것이있음을알려준사람.존재하지않으면존재하지않음까지없애야한다고,그곳에당근브로콜리아무도모르게네잎클로버기괴하게네잎클로버끔찍하게네잎클로버.농담처럼.다가올인간의형태를미리실측한사람.
─「헬무트랭,옷만드는사람의이름」부분

프랑스철학자클레르마랭은“우리는결코같은자리에있을수없다.우리는끊임없이움직이는모래위를걷는존재다”(『제자리에있다는것』,에디투스,2025)라고말한바있다.이렇듯인간은자신이위치한‘장소’와스스로자각하는‘실존’사이에서끊임없이부유하는존재이다.이는불필요한요소를덜어내고자기안에미지근한온기만을남겨두는자연과다르다.“미니멀에는드라마가없는데”라고읊조리면서도언어“스스로자연의긴장을유지할수있을까”(뒤표지‘시인의산문’)라고묻는시인의말에는자신의존재를최소한으로축소하고그어떤비약없이단순하고자연스러운상태로나아가려는시적지향이담겨있다.“투명에모든가능성을두고온것처럼”“다비치는얇디얇은실크드레스같”(「배양장」)은존재인식은“떨어져도떨어져도계속떨어지는.몸은점점희미해지는데영혼은점점또렷해지는”(「소속감」)것으로“껍질이깎이고끊어지지않고계속속살이깎이면/그러다끝이나오면/처음부터처음까지/펄쩍펄쩍뛰는행렬”(「감자깎기」)에가깝다.현대사회에서끊임없이대체되고과잉되기마련인자기자신을어찌하지못한채헤매기마련인다른인간생물과달리극단적인해체를시도한헬무트랭은“사정없이잘라버려존재할몸도제거해버린사람.존재하지않기를시도한사람”으로“실패의관점에서보면거의에가깝고성공의관점에서봐도거의에가까운”“인간의형태를미리실측한사람”이라할수있다.하지만시인이추구하는최소주의자의미덕을갖춘그마저자신이유지해온고요속에서반드시“바느질자국”을남긴다는사실은삶의단서를끊임없이기록하기마련인생물의처연함을보여준다.“잠은보여주지않지만죽음은보여주었”(「누가죽음을뜨개질하는가」)던한마리새처럼,무언가를“야금야금씹으며나를쳐다보고있었”(「어떤밤에곰이찾아왔다」)던곰처럼모든생물은살아있다는이유로끊임없이장소를이동하고,자꾸만조금씩슬퍼진다.그렇다면시인이라는생물은어떠한가.시인은자신과같은종족의슬픔곁에서서동물과무생물에게미지근한손을내미는존재로,스스로뜨거워지거나차가워지기를거부한채지구의슬픔을담아내는배양장이다.우리가자각하지못한슬픔의언어를골라내어삶에꼭한줄기빛을밝혀주는시인의목소리가한권시집안에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