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13.00
Description
“내 인생은 피를 보고서야 멈추는 농담”

2000년, 한국 문단을 격렬히 뒤흔든 한 권의 시집
태풍목에서 오롯이 시작(詩作)해온 ‘단독자’ 김언희

김언희의 두번째 시집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R 21번으로 복간되었다. 2000년대 한국 문단을 격렬히 뒤흔들며 이른바 ‘김언희 논쟁’을 촉발한 이 시집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날카롭고 집요하게 응시한 김언희 시 세계의 정수를 담고 있다. 김언희는 똥, 피, 살, 음부와 같은 ‘저급base 존재’의 파격적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시로 여성성과 인간성을 둘러싼 통념을 전복하는 한편 몸과 욕망,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며 한국 현대 시사에 깊은 구멍을 남겼다. 2026년 다시 독자를 만나는 이 시집은 사반세기라는 시간을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낯설고 강렬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저자

김언희

시인김언희는1989년『현대시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트렁크』『말라죽은앵두나무아래잠자는저여자』『뜻밖의대답』『요즘우울하십니까?』『보고싶은오빠』『GG』『호랑말코』등이있다.박인환문학상,이상시문학상,시와사상문학상,청마문학상,오장환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차례
시인의말

1
그섬에가고싶다|햄버거가있는풍경|그라베|0시의부에노스아이레스|말라죽은앵두나무아래잠자는저여자|누가내시에마요네즈를발랐지?|밀롱가1|그것47|벗겨내주소서|설마이런것이|선데이서울|랄랄랄1|랄랄랄2|황혼이질때면|쥬시후레쉬|990412|홍도야|저수지|버섯국을끓이다|똥의방점|팔보채|서역(西域)|역겨운,역겨운,역겨운노래|이저녁

2
이책|그것을누르면|ARS|밀롱가2|FA|여섯시|달걀속에서주르륵|한잎의구멍|아침마다그것은|그것은이제|미얀마|오지게,오지게|식탁위로더러운|이따만한|연기|문상|봄은똥밭이네|어어떤귀|거미|털난구름|벌레먹은장미|피치카토|시

3
가족극장,TE|가족극장,구렁이|가족극장,과부가된아버지|가족극장,껌|가족극장,반죽|가족극장,중절되지않는|가족극장,이리와요아버지|가족극장,목단|가족극장,고등어대가리|가족극장,냄비속에인형이|가족극장,소작(燒灼)된|가족극장,살진어머니|가족극장,문고리|가족극장,언젠가|가족극장,나에게벌레를먹이는|가족극장,코없는콧구멍으로|가족극장,왜파의나라|가족극장,그러엄,이내|가족극장,쥐덫속에|족극장,클레멘타인|가족극장,삭망(朔望)

해설
‘가짜’시체의긍지·이연숙

기획의말

출판사 서평

임산부나노약자는읽을수없습니다.심장이약한사람,과민체질,알레르기가있는사람도읽을수없습니다.이시는구토,오한,발열,흥분의부작용을일으킬수있습니다.드물게경련과발작을일으킬수도있습니다.무엇보다이시는똥핥는개처럼당신을

싹핥아치워버릴수도있습니다.
―‘시인의말’에서

부패하는삶에울려퍼지는진혼곡
빛나는‘가짜’시체의긍지

여섯시가되었나
아직아니다

똥이목젖까지차오른다
―「여섯시」부분

한평생죽음이라는명백한결말을두려워하지만살아있는한그목적지에“아직”도달할수없는것이인간존재의아이러니이자비운이다.김언희의시는“설마이런것이”(「설마이런것이」)오리라고는상상조차하지못한“모독의/환멸의/팔보채”(「팔보채」)같은삶,“똥이목젖까지차오”(「여섯시」)르듯끝없이밀려드는모욕만을견디는삶의근원적고통을포착한다.그에게인생은“더러움위에찍힌……똥의방점”(「똥의방점」)이며그주인공인인간은“랩으로말아놓은살코기덩어리”(「이저녁」)이자“똥만드는기계”(「990412」)에불과할따름이다.물컹거리는살과똥,흘러넘치는시취(屍臭)와시즙(屍汁).시인이집요하게응시하는생의진실은온통그런곯아터진‘저급물질’에놓여있으며그의눈에우린모두‘가짜’시체나다름없다.썩어가는몸으로영겁회귀의운명에처한인간삶의불행은“추잡한추잡한추잡한”(「밀롱가1」),“역겨운역겨운역겨운”(「역겨운,역겨운,역겨운노래」),“지긋지긋해지긋/지긋하옵니다”(「벗겨내주소서」)처럼맺어짐없이반복되는시어들의합창으로대변되며시집전반에걸쳐슬픈돌림곡으로울려퍼진다.

개같은
똥같은
갈보같은구멍
천역에찌든구멍,피로로
썩어가는구멍,이미
끝장이난구멍
끝장이난다음에도중얼거리는
크르륵거리는구멍,풍선껌을
씹는,말랑말랑한이빨로
내머리를씹는,옴쭉
옴쭉나를
삼키는
구멍
―「황혼이질때면」부분

진저리나는세계를향해김언희는해체와전복의언어로“끝장이난다음에도중얼거리는”여성성의파괴력을선보인다.시집에수없이등장하는‘구멍’은단순히남성욕망을수용하는수동적기관이아니라“꾸역꾸역처먹어들어가는”“식탐”(「ARS」)을지닌채‘나를빤히바라보는’포식자이다.“가랑이를쩍벌리고”“잠든그것의얼굴을걸타고있”(「선데이서울」)는군림자이자“대가리까지/푸욱푹”(「쥬시후레쉬」)빠뜨린뒤“말랑말랑한이빨로”“머리를씹”어삼켜분쇄해버리는블랙홀이다.무언가를갈라만든듯한모양새로피흘리며“헐,헐,헐”(「황혼이질때면」)웃는김언희의구멍은그렇게여성그리고여성-몸이지닌역능의메타포가된다.그쩍벌어진자리에서우리는긍정을넘어선‘긍지’를목격할수있을것이다.

절대적고립이벼려낸단독자의언어
지금다시읽어야할김언희의가장불온한목소리

자궁으로가는길은불태워졌다

소작된길
위에서
타고남은내몸은

내가낳은난자를먹어치운다
―「가족극장,소작(燒灼)된」부분

이렇듯‘저급존재’를시의전면에내세우며우리시대의대표전위시인으로자리매김한김언희에게‘시’란더럽고처절한생을견디게하는유일한실천에가깝다.시쓰기를향한맹렬한결의와집착적완벽주의는‘뱉지않고서는살아갈수없는’그의삶을증언한다.그렇게35년의시력(詩歷)동안김언희는숱한파란속에서도오롯이시작(詩作)해온,‘어디에떨어져도나는나’라는마음가짐의단독자였다.특히『말라죽은앵두나무아래잠자는저여자』의「가족극장」연작에는어머니로부터의‘동일시적유대’와아버지로부터의‘상징적유산’을모두거부하는단독자의형상이선명하게드러난다.상속과연대를등지는김언희의시는아이러니하게도“소수자적부정성을자원삼는젊은여성-퀴어예술가의‘부적절한’동일시를가능하게했다”.“김언희가생산하는시적언어의육체―남자도여자도인간도심지어는‘시체’도제대로‘못’되는극단의‘미만’과‘가짜’의육체가여태그런식으로만살아왔고살아졌던소수자적삶을외려긍정하기때문이다.”거목의운명이그러할수밖에없듯,의도했든아니든“그는우리모두에게누울자리로‘오지게’아늑하고뜨끈대는‘똥무더기’를제공한다”(시각문화평론가이연숙).

‘부패하는몸’을지닌채살아가는한,김언희의시는시대를불문하고끊임없이우리에게되돌아올것이다.그렇다면‘여성시인’이더는예외적존재가아니며‘페미니즘’이더는낯선개념이아닌오늘날,이시집은어떻게제광기를형형히발하게되는가?새천년에벌어졌던케케묵은논쟁으로부터그의시집을끄집어내“흠씬피를빨아먹은페이지”(「이책」)를새로이펼쳐보자.2026년에다시찾아온『말라죽은앵두나무아래잠자는저여자』는아주오래전부터김언희의시가그래왔듯이“독자를선택할것이다.......배반하려고”(‘시인의말’,『트렁크』,세계사,1999).사반세기전시인은잔뜩갈고벼린언어로상징계에검고깊은구멍을냈다.그안에서어떤실재계를마주할지그리고어떻게‘배반당할지’는여전히당신,독자의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