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인사

잘못한 인사

$13.00
저자

조은

저자:조은
1960년경상북도안동에서태어났다.1988년계간‘세계의문학’에『땅은주검을호락호락받아주지않는다』외의시를통해삶과죽음에대한묵시론적통찰을보여주면등단하였다.그이후세권의시집『사랑의위력으로』,『무덤을맴도는이유』,『따뜻한흙』,『생의빛살』과산문집『벼랑에서살다』,『조용한열정』장편동화『햇볕따뜻한집』,『동생』,『다락방의괴짜들』『또또』등을출간하였다.이밖에도다큐멘터리사진작가최민식과공동작업한포토에세이집『우리가사랑해야할것들에대하여』등의저서가있다.현재서울사직동의소담한한옥에서조요하지만치열하게글을쓰며살고있다.한편,어린이들에게폭넓은사랑과우정의의미를일깨워주는따뜻한동화쓰기에도힘을쏟고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고개를드는순간|오래된통증|잘못한인사|웃기위해|높은시선|애매한경계|나의전야|면전으로온다|우리가여기앉아|반성이과한만두소처럼|탐정처럼

2부
어떤애도|뒤|순간의진실,영원한진실|귓불을봄볕처럼만지는거짓들|꽃피기전|골목집문밖의자|여우비|아직도|극대비|꽃들이오는길로사랑이갔다|스승이꿈에|지름길

3부
꽃무늬손수건|지금은4월|타인의행복|어느간절기|시인의가방|강이여자를|인생총량|처음으로|집으로돌아가자|화사한우울|속살|젠틀맨을들이다|화룡정점|빛의계단참

4부
어제도내일도없는것처럼|달빛에깨다|안녕,안녕|그럴때가있지|눈,눈빛|희한하다|한끝|회복기의봄날|의심을품자|언니의언니|특급인생|허무의반전|바람이오는길|직립

해설
두번의용서·박혜경

출판사 서평

“새순은언제나
통증이심한뭉툭한마디에서
상큼하게돋았다”

착각과엇갈림안에서가장정확하게이루어지는생의이해
그역설만이틔워올릴수있는산뜻한잎망울에안녕,안녕

세계의정면과이면을온몸으로마주하는시인조은의여섯번째시집

1988년『세계의문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조은의여섯번째시집『잘못한인사』가문학과지성시인선637번으로출간되었다.‘땅’과‘무덤’의세계에서골라낸‘흙’에따뜻하게‘빛살’을쬐이며묵중하고야문‘발자국’으로제토양을다져온시인은,차근한손으로씨앗을심듯8년만의새시집을내놓는다.시력(詩歷)40년을목전에둔그가특유의현실감각을발휘하며통렬하게써내려온51편의시가총4부로나뉘어묶였다.

인사를받은사람이
빤히쳐다보며묻는다
저를아세요?

당연히모르겠죠
내겐흔히있는일

이런일이생긴뒤엔
이런말을듣죠
왜사람을보고도모른척해요?

오해하지마세요
내겐흔한일이니

[……]

이젠이런생각들어요
수없이많은삶을죽음이라생각해
피하며살았을거라고
수없이많은죽음을삶이라믿고
와락와락껴안았을거라고
-「잘못한인사」부분

면식과분위기를가늠하다가인사를적절히건네지못하는일.인사를하거나하지않은상대로부터예상과다른반응이돌아오는일.이일상적인‘어긋남’의장면들은오랜세월동안경계와모순의문제를천착해온조은의시를경유하며생과사의차원으로확장된다.상반되어보이는것들간의조화를노래하는『따뜻한흙』(문학과지성사,2003),생동과소멸이자아내는아이러니와대면하는『생의빛살』(문학과지성사,2010),어둠을몸소겪어냄으로써빛을조명하는『옆발자국』(문학과지성사,2018)그리고이번시집에이르기까지,서로뒤돌아있으면서도등을맞대어일정한넓이를공유하는면면의겹침을예리하게포착하는것은시인만의특기이자궁극의화두다.이러한그의시속에서“수없이많은삶을죽음”으로또는“수없이많은죽음을삶”으로믿는혼동은결국“오해”가아닌정확하고기민한‘이해’에가깝다.

표제작의제목에서“잘못한”이라는표현을통해전면적으로표상되는엇갈림의이미지는바로뒤에이어지는“인사”라는키워드와연결되고,“알은체해야하나머뭇대는”(「높은시선」)‘눈길’은이내그보다더적극적인‘눈짓’으로나아간다.삶이죽음같고죽음이삶같은“착각이진실처럼느껴질때”(「그럴때가있다」),그러한감각을놓치지않고“곁눈한번주지않는/그들삶에/한발들여놓듯”“인사를건”(「처음으로」)네기.겸연쩍음과오인의가능성을감수하고서“묵묵히인사나”누는“젖은눈”(「꽃들이오는길로사랑이갔다」)은모순적인경계위의“삶을까발리며빛”(「지금은4월」)나고,죽음의얼굴을한생의“뒷면마다”그“빛이출렁댄다”(「회복기의봄날」).

나지막하고눅진한집터에
타자의고통이틈입하여남긴얼룩을그냥두기

보통의나날을고요하게흔드는생과사,명과암,명랑과애수의잔영은친숙한일상공간인‘집’의안팎에도드리운다.이때조은의시에서집은마냥안락하거나무사한공간으로그려지지않는다.그는“평지에서네계단아래/지층바닥”(「어떤애도」)과“빗물이/뚝뚝떨어지”고“줄줄새는천장”(「아직도」)으로집을짓고거기에들어앉아불안정성과함께지낸다.문학평론가박혜경이이번시집의해설에서짚고있듯시인은“도시생활에정착했지만여전히스스로를이방인처럼느끼는일상인의정서를보여주”며“마치벼랑에서살듯도시의한귀퉁이에매달려살아가는자신의누추한일상을수시로시의소재로불러온다”.

조은의시가도회가장자리에놓인“집의맨살이들춰”(「아직도」)진모습을꾸밈없이내보임에도그곳에서펼쳐지는정경을보고있노라면되려삶을보살피는느낌이든다는점은특기할만하다.바닥이지면보다낮다는것은곧눈에잘띄지않고가려지곤하는존재들을들여다볼수있음을,비가샌다는것은집에틈새가있어무언가가나들수있음을의미한다.“위험도사린바깥”에서“밤새도록”(「젠틀맨을들이다」)우는고양이의울음소리를,“밤낮없이괴성지”(「처음으로」)르는이웃의비명을허용하는그의시속집은변방의“얕은숨결에도감응하”(「순간의진실,영원한진실」)기에제격이다.시인의“집에는손길이필요한목숨들/풀어헤쳐놓은잡동사니/아무에게도보이고싶지않은/소용돌이친내면의흔적들”(「집으로돌아가자」)이있고,그“문바깥에”마저“누구든앉아심호흡하게하”고“눈물을멎게하고/다시일으켜주는의자”(「골목집문밖의자」)가있다.

세계의끄트머리를벗어나“다른곳에서/다른사람되어/다른삶”(「반성이과한만두소처럼」)을살고자도모하기에는도통“죽은자의항문처럼열려있는문”(「뒤」)너머를지나치지못하는사람.“진자리맴도는나/어디로가야할까”(「아직도」)종종자문하지만축축하고너절할지언정제“집떠나살체질/아니라는걸”(「순간의진실,영원한진실」)너무도잘알고있는시인은“체면차릴때가아니다/살아서집으로돌아가자”(「집으로돌아가자」)라고되뇐다.그담백한읊조림을따라“오늘을살겠다는친구”도“내일을살겠다는친구”도“대충슬픈친구”도“집을향해”(「어제도내일도없는것처럼」)간다.그렇게“사력을다해/걸어온길과닿은/틈없는하늘”은또다시“한뼘이열”(「의심을품자」)리고,시인은“물방울이비집고드는틈새”(「희한하다」)로흘러들작은생명의기척을새롭게기다린다.

낭만적꿈이나환상없이일상의현실을끝까지감내해내려는시인의의지는그의시에죽음과의대면을피하지않으면서삶이부여하는절망을고집스럽게응시하는꺾이지않는내면의힘을부여한다.절망을정직하게끌어안는방식으로절망의현실을이기려는것,그것이조은의시가보여주는절망의힘이자고통의품격이다.시인으로하여금고통에굴복하지않고고통을끝까지살아내게하는것은희망이아니라절망이다.조은의시가자신의고통만이아니라타자들의고통을향해서도열려있다는것은그의시가지닌절망의힘을입증한다.
-박혜경해설,「두번의용서」에서

뉘우침과뒤척임으로점철된밤을지나
단단하고의연하게맞이하는용서의시간

잦은반성에발목잡혔다
끝없는반성
과한만두소처럼
내삶을망쳤다
나는둔해서고집스럽게
반성뒤에도반성했다
[……]

이또한,반성!
구제불능이다
-「반성이과한만두소처럼」부분

벼랑에서,경계에서,변방에서시인은잘닦이고정제된세계와맞물리지못하고삐걱대는부조리의순간들을필연적으로목도한다.“늘불화에과민”(「귓불을봄볕처럼만지는거짓들」)한그는“개운치않은느낌의정체를내내”외면하며“그냥푹”(「탐정처럼」)잠들지못해밤새도록“뒤척이고뒤척이고뒤척”(「희한하다」)인다.도저히멈추어지지않는성찰,그로부터기인하는위화감,그럼에도계속해서“반성”하고그“반성뒤에도반성”하는“구제불능”(「반성이과한만두소처럼」)의태도는끈질긴우울을빚지만,이러한반추는시인의천성과도같은것.그스스로도“다스려지지않는이아픔을잘알지만/그때로되돌아가도/달라질것없”(「고개를드는순간」)음또한안다.

그래서시인은“한때이런말자주했다/인간이왜?”.하지만『잘못한인사』에이르러“이젠자주이렇게말한다/인간이니까”(「의심을품자」).“인간이어찌그럴수있지/했던말들”은아주긴시간에걸친겹겹의반성을통과하며“인간은다그런거지/사람만이그래”(「면전으로온다」)라는깨달음이되었다.이는반복되는좌절과비감에깎이고무뎌진타협의결과가아니라,“어둠이붉은해를/바닥으로끌어내”려도“반전이온다”(「허무의반전」)는사실을체득하였기에마침내벼려진,매섭도록날카로운통찰에가깝다.

“용서가안된다고,안된다고,하면서”(「직립」)도세상의불화와현존의고통을,나아가“뽑히지않는뿌리를뽑아온”자신마저“용서”(「고개를드는순간」)하게된시인은이제“맹수같은안개가/등밑에서일어”날지언정“무섭지도않”(「어제도내일도없는것처럼」)다.이는“냉소를머금고/오만”하게“가슴을쫙”(「반성이과한만두소처럼」)편뻣뻣함과는달리“한생꿋꿋했”(「허무의반전」)기에갖출수있는똑바름이고,“수없이삶을경신해온먼지들/거침없이가볍”듯무수한성찰을거쳐왔기에획득하게된가뿐함이다.“삶을꾸준히단련하는자들”(「여우비」)만큼이나,“이끝엔반드시/해방이있다는”믿음아래“우울에단련되”(「언니의언니」)어곧게바로선자는“얼마나대단한가”(「여우비」).

돌아가자,돌아가자,되뇌며
앞으로가고있다

용서가안된다고,안된다고,하면서
이미다용서했다

[……]

고뇌가증발한다

잔잔히
가벼워진다
-「직립」부분

·시인의말

바람에
전신이떨리는
몸을끌고
까마득한곳으로

바람이없으면
아직
거기머물고있을

2026년7월
조은

·뒤표지글(시인의산문)

말라간다

말라간다

바람,
빛과어둠
흔든다

다른꽃
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