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사랑하는사람이이세상에살고있는한세상은계속돼야해.
아무리끔찍한세상이라도말이야”
되살아나고싶지않은유령,세상을파괴하려는신,믿음을버리고픈교주……
무표정한밤하늘에균열을내며
폭죽처럼터져나오는‘진짜’마음들
제20회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수상자구소현첫소설집
“소설의세계는어디까지확장될수있을까.
얼마나더깊어질수있을까
그리고이작가는얼마나더나를놀라게할까.”
―강화길(소설가)
구소현의첫소설집『환호성』이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2020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구소현은“사랑의양가감정에대해곰곰생각하게만드는작품”(소설가천운영)이라는평을증명하듯,감정의모순과세계의균열을들춰내는“조용하지만이상한방식으로독한소설”(소설가손보미)들로독자에게신선한충격을안겨왔다.이번소설집에는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수상작「요술궁전」과문학과지성사‘이계절의소설’선정작「시트론호러」「화이트데이」를비롯해총여덟편의작품이수록되었다.
구소현의소설은우리의목전에날카로운질문을겨누며묻는다.당신이어디에도닿을수없는유령이라면,지구종말을앞둔회사원이라면,안락사와다름없는장기최면이가능한세계라면,범죄를저지른학생의선생님이라면어떻게하겠냐고.이막막한질문앞에서우리는다포기하고싶어지거나,차라리죽음을원할지도모른다.하지만어떻게든살아가는,살아남는인물을따라가며페이지를한장,한장넘기고나면,문득생의반짝임이묻어있는손을발견하게될것이다.섬세한언어감각으로벼려낸색색깔의고통을즐길준비가되었는가?숨김없이줄줄흐르는날것의욕망을대면할채비를마쳤는가?진짜와가짜,선과악의댐을무너뜨릴각오가되었는가?그렇다면,온갖마음들이폭죽처럼터져나오는구소현의세계에입장할시간이다.
“그럴일은없어요.나는진짜컵이에요.”
진짜와가짜의경계를지우는
이시대의연금술‘믿음’에관하여
무언가에무서우리만치진심인사람들이있다.타인의시선을사로잡을만큼열성적인이들은,불편한진실앞에서는살짝눈을감으며믿음을이어나간다.믿음을잃어버렸지만계속종교활동을하는교주‘재원’(「화이트데이」)과,애인이벌인사기행각을알고서도그를사랑할수밖에없는‘도르마무’(「완치」)처럼소설은“가짜라는허상을뻔히알면서도그속에기꺼이투신하는인물의이야기”를그린다.하지만,이허울뿐인,‘가짜’처럼보이는허상에도아이러니하게“섬뜩한진심이깃들어”(전청림해설,「하강하는유령,환호하는은총」)있다는점은소설을한층깊은차원으로이끈다.교주를따르는이들의무한한신뢰와열기,자신을위해“양파도사과처럼먹을수있”(p.103)는애인의마음까지과연가짜라고손가락질할수있을까.맹목적인믿음은‘진짜와가짜’‘선과악’의경계를무심히뒤흔든다.
반대로믿음을완전히잃어버린이들도있다.인종차별에서비롯된증오범죄로부모를잃은‘진’(「험악한세상」)과가족들로부터아우팅을당한‘은호’(「5월에공부하는아이들」)에게는한톨의희망조차남아있지않은듯하다.그러나이들은자기내면으로깊숙이파고들어끊임없이스스로를의심하고,자신의이면을직시하는과정을반복한다.그러는사이그들은“사람은어디에서든사랑할수있고즐거울수있게태어났”(p.294)다는사실과,“내가사랑하는사람이이세상에살고있는한세상은계속돼야”한다는마음을스스로내뱉고,마침내그것을선선히인정한다.복수가아닌,오히려“낯뜨거운진심”을“세상밖으로”(p.198)내보이는순간,구소현의소설속인물들은잃어버렸던믿음을되찾고“험악한세상”을살아갈힘을다시얻는다.
“이중인격은시대정신이었다.”
죽고싶은마음과살고싶은마음을묶어
내일로향하는이인삼각달리기
끝끝내윤리와존엄을붙잡고마는선함도유약함도온정주의도그의소설에는없다.대신에“세상을바꾸는과정이더는평화적일필요도,옳은방법일필요도없게되었다”(p.131)라는현실직시속에서,기어코착하지않은방식으로세계의임계를뚫어나가는과격함이있다.
―전청림해설,「하강하는유령,환호하는은총」에서
화산이폭발하듯예상치못한순간밀려오는현실의고통앞에서,우리는그에대한해답으로종종죽음을떠올리곤한다.마치게임에서로그아웃하듯,죽음을‘클릭’하기만하면모든것이해결될것처럼말이다.그렇다면,반대로우리가‘살고싶다’라고되뇌는순간은언제일까.『환호성』에는삶의의지를잃어버린인물들이계속해서등장한다.그러나‘작가의말’에“이들을끝없는절망에갇혀있게두지않을거야”라고밝혔듯,구소현은희망하나없어보이는상황에서도삶을향해한발짝다가가려는인물들의“아주작은운동성을발견”(p.22)해낸다.「시트론호러」에서다시살아나고싶지않은유령‘공선’은결말에이르러대학생‘효주’의소설을읽고누군가에게“닿고싶”(p.29)다는강렬한욕구를느낀다.표제작「환호성」의‘세경’은지구종말을앞두고사내따돌림까지당한절망적인상황에서,친구가보낸음성녹음을듣고“알수없는기이한힘이솟”고,“뭐라도해야할것같”(pp.151~52)아평소라면하지않았던일을감행한다.「요술궁전」의‘환’은자살시도를한애인을가까스로살려낸후“죽음보다가치있는삶”에대해확신하지못하면서도,“가을의소리”(p.286)를들으며일상을이어나가고,「오토매틱블루베리」의‘지한’역시안락사와다름없는장기최면을고민하지만,친구의“몸에난땀을몰래쓸고만지”는순간,문득“왜이렇게이순간은가슴이뛰고벅차는지알고싶”(p.239)어진다.
이렇듯‘살고싶다’‘살아봐도좋겠다’는마음은어느샌가,너무나도뜻밖의순간에불쑥생겨난다.구소현의소설속에서이러한마음이움트는과정은결코“평화”롭지도않고“착하지”도않으며,“옳은방법”만을경유하지도않는다.그렇기에인물들이생의의미를되찾는순간을짚어보면어딘가“과격”하고,개연성이부족하고,몇몇단계를성큼건너뛴것처럼느껴지기도한다.하지만구소현은삶의한가운데서돌고있는‘죽음’이라는거대한미러볼아래서,“말이좀안되더라도”(‘작가의말’)속절없이마음에스며들고마는생의충동을기어이찾아내고,우리에게길들여지지않은야생의심장을선물한다.
소설속인물들과우리는크게다르지않다.매일마음둘곳을찾아헤매고,자신마저속여가며하루하루를견딘다.마그마처럼모든걸녹일듯한분노와,하염없는한낮의분수같은지루함에휩싸여절망하기도한다.그러나세상이정해둔기준과정상성에서벗어나자신만의테두리를조금씩만들어나가는그들처럼,이소설집을읽은이들역시언젠가각자의방식으로“해방감”(p.323)을만끽하며,‘진짜’마음에서터져나오는“환호성”을듣게될것이다.
당신에게이런길을왜보여줬느냐면,당신이한번쯤은자신만을위한환호성을들었으면했다.귀가먹먹해질만큼,우레와같이쏟아지는박수소리를말이다.
내가느꼈던것을당신에게도주고싶었다.당신은받았을까?두렵고궁금하다.
―‘작가의말’에서
■작가의말
항상의문이들었다.내가계속해서쓰는사람이어도될까?난소설과시를사랑한다.꽉찬마음으로말할수있다.문학이삶을구원할수없다는말에도반박할수있다.내가구원받았다.
집에가기싫을때,학교에가기싫을때,아무도나를신경쓰지않을때,아무도나와대화해주는사람이없을때,반대로아무와도말하고싶지않을때,화장실에가는것을제외하고는침대밖으로나오지못했을때소설을읽었다.
많이읽을때는하루에다섯권을종일읽었다.집중해읽다보면땀을많이흘리게된다.내면은충만하고,진은다빠진이상한상태가된다.
이때의나는뭔가를해낸다.멈춰있지않고다음일을한다.집과학교에뚜벅뚜벅걸어가고,아무도나에게관심이없어도별생각이없어진다.사람들에게먼저말을걸고다시잘지낸다.침대밖으로나와샤워를하고,놀러도다니고,맛있는것도사먹는다.중간에깨지않는개운한잠을잔다.
소설은나를태워주지않는다.조수석이나뒷자리에가만히앉아있게두지않는다.
나를스스로걷게만든다.걸어가고싶게끔만든다.다음에뭐가있는지궁금하게해뛰게도한다.끊임없이문장을읽으며그안에담긴장면을떠올려야한다.인물이어디로가는지,누구와만나어떤행동을하는지,무슨생각을하는지상상해야한다.물리적으로책장을한장,한장넘겨야한다.
이런행위들은내가여전히움직일수있고,느낄수있고,생각할수있는사람이라는것을알려준다.“넌인간이야,그리고살아있어”라고말해주는것만같다.
매일아침이오는게너무싫고,기분이나빴었는데,어느날내게내려온빛이,그래서잠에서깬그순간천천히내몸에도는에너지가기분좋게느껴졌다.소설을읽으며움직일힘이생겼기때문에그랬다.
진심으로소설을좋아한다.소설은좋다.
하지만내가소설을써도되는지는,자격이있는사람인지는모르겠다.내가소설가라기엔……양심에찔리고,마음에걸리는것들이많다.
항상불안에떨며썼다.이렇게나자기확신이없는사람의소설을누가읽겠느냐며,스스로를몰아붙이기도했다.그런데도아직까지쓰고있는이유는……
나도계속해서걷고싶어지고,어느순간에는정말뛰고싶어지는길을만들고싶었다.걷다보면못보던것들도보이고,예를들어아이스크림트럭과도만나는,강아지들이홍수처럼쏟아지는공원도지나치는,그러다달리고싶어져서계속해서바람을가르며달리다보면어느순간파도가힘차게부서지는바다도나오는그런길을당신에게보여주고싶었다.당신에게이런길을왜보여줬느냐면,당신이한번쯤은자신만을위한환호성을들었으면했다.귀가먹먹해질만큼,우레와같이쏟아지는박수소리를말이다.
내가느꼈던것을당신에게도주고싶었다.당신은받았을까?두렵고궁금하다.
이러다정말책을내지못할것같다는생각이들었을때,많은분이도움을주셨다.한수예선생님,김보경선생님,전청림선생님,강화길선생님께감사한마음을전하고싶다.부끄럽지만,이분들이나와함께해주고있다는사실만으로도감격에잠겼었다.
읽히는경험을하며내가어떤사람인지,어떤글을쓰는사람인지조금은알게되었다.
내생각보다난어둡구나.내생각보다나는당신에게말을거는것에서툴구나.
많은사람에게읽힌다는건이런거구나.다다른걸보는구나.
깨달은게많았다.생각과는다른나,생각과는다른글이지금내앞에있다.
당신에게주고싶어소중히가져온것이,당신에게는고양이가물어온작은시체처럼난처한선물일수도있다는걸알았다.
당신이별로좋아하지않는쑥떡일수도있다.‘왜갑자기쑥떡을?일단받긴받았지만,난이걸안먹는데’라는생각이들수있을것같다.
(나는쑥떡을좋아해서가져왔다.)
그렇다고“내가원하던상황은이게아니야”라고말하고싶지는않다.이런걸좋아해달라고떼쓰고싶은건더더욱아니다.
난이책이당신과만난것만으로도기쁘다.당신에게대화를신청했다는사실만으로도난이미충분한것같다.
계획했던일은아니었지만,소설집을묶으며그동안써온소설들을다시읽어보니하나같이현재상태에서벗어나고싶어하는인물들이나왔다.나아지고싶어하는,해결책을찾으려는사람들은늘매력적이다.멋지다.나는항상글을쓰며‘이들을끝없는절망에갇혀있게두지않을거야’라고생각했던것같다.
그러니마지막에도달하는곳은항상죽을것같지만죽을리없는바다다.걱정없이뛰어들어도된다.가고싶은만큼깊은곳으로하염없이내려가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