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다〉기획의말
시의시대가사라져버린것같던시간속에서젊은시인들과그들의낯선감각을다시읽어준독자들이출현했다는것은기적이아니다.모든헛된풍문을뚫고한국문학의심층에서는본적없는시쓰기와시읽기가끊임없이시도되고있다.〈시보다〉는시쓰기의극점에있는젊은시언어의운동에너지만을주목하고자한다.1년에한번이루어지는이작은축제는선별의작업이아니라,한국시를둘러싼예감을함께나누는문학적우정의자리이다.우리가체험하는것은젊은시인들의이름너머에서꿈틀거리는‘시’라는사건자체이다.시인은동시대가소유한이름이아니라,동시대의감각을발명하는존재이다.시는도래할언어의순간에먼저도착해우리를기다리고있다.지금‘시보다’라는행위는시‘보다’더고요하고격렬한세계를열어준다.
선정위원김상혁백은선소유정신해욱조연정
*구윤재,「미래」외
자고일어났는데배위에무언가올려져있었다
나는간신히눈동자를굴려배위에올려진것이무엇인지바라보았다
축축하고미끄러운하얀솜털로감싸여있는저것,미래였다
―「미래」부분
구윤재의시에서‘미래’는“매번다른형태와질감으로변주되는”(소유정)가능성이자,“과거와미래를동시에움켜쥐는이상한이름”(백은선)이다.시간을선형으로나아가는대신“머물면서이동하”고“나선형으로깊어”(신해욱)지는독특한시공간의지도를그려내는시인은지나간시간과아직오지않은시간을교차하며“제자리멀리뛰기”라는새로운형태의미래를제시한다.
김사라,「ohmypimpmom」외
미꼬씨,공상속에서
네얼굴을내얼굴위에덮어써본적이있다
내것보다덜찢어진입술,
눈매에는빨간소금이엷게한겹
내밀어도짧아지지않는팔을가졌다
당신은그런팔과살았다
평생벗지않았다
―「ohmypimpmom」부분
이방의여성‘이리스’‘미나제이코’‘나나유리’‘화림’‘유림’은폭력과소외로엉겨붙은저마다의흙탕물을헤집는중이다.“김사라의‘타락천사’들이내뱉은오욕의문장들”은“직설적이면서도무덤덤”(조연정)한에너지를분출하고,그들의독백은“어느새셀수없이많은인물을등장시키며한사람이연기하는대형극으로거듭난다”(소유정).국경을넘는그울림은“수사학적경계와분할을지우”는“목소리-물줄기”(신해욱)가된다.
봉주연,「푸른점」외
출현한것은그저균열.문이열린다는것은사이로빛을허락한다는것.흰등위로빛이흐른다는것.연민은어느수준까지만내려가고,그밑으로는더내려가지않는다.그런데증오가그아래까지내려간다면.그렇게낮은곳까지떨어진이들은서로를가엾게생각할까.내가눈앞에없을때에도느껴지는두려움과떨림이너희를구할것이다.
―「푸른점」부분
봉주연의연작시에등장하는서로다른존재들은동명의‘p’와‘pp’로불리며끊임없이몸집을불려나간다.시인의손에이끌려“빈거울”(김상혁)앞에선독자는그존재들과함께증식해가는제모습을발견하고,“모르지않지만본적없는풍경을”마주하며“어렴풋한것을구체적으로알게”(소유정)된다.“포개지고홀연신비감을발산”하는봉주연의시는“상처보다강한사랑”(신해욱)을증명한다.
송희지,「금속음―음경의시」외
그날이후로나는꿈을많이꾸었다.꿈에서나는음경도시를걸었다.음경공장을걸었다.음경공원음경광장을음경교정음경체육관과막허물어지고갓지어지는음경뼈대들을걸었다.
다디단과실위를기는애벌레처럼.
하나음경무덤을걷는꿈은꾼적이없다.
―「금속음―음경의시」부분
‘탈로스의금속음경’‘잘린목’과의여행등신화적요소를차용한송희지의시는“유구한남성적신화를해체”(소유정)하며금기와감각,인식의경계를거침없이뒤흔든다.“한없이복잡하고도분명한,나약하고도대담한인간의마음”(조연정)을파괴적으로써내려가는시인의언어는“뱃머리에서울려퍼지는고동”이자,“꼭닫힌상자속에영원히두근대는심장”(백은선)이다.
이다희,「실리카겔」외
손에남은온기보다입에들어온차의온도가더낮다.발끝에더욱힘을준다.러그의양모가발가락사이로올라온다.무엇인가해결된기분이다.하지만말이되지않는다.나에게는해결해야할문제가없다.나는식어가는찻잔을쥐고러그위를빙빙돈다.
―「실리카겔」부분
“감정의투영이아닌정동의조직화”를통해세계를재구성하는이다희의시는“매우희귀하게현대적이다”(김상혁).빈칠판과유리컵,구름과고속도로같은“정지된사물로부터,혹은공간으로부터시간을발견하는시인”(조연정)은“무너지는마음을가볍게들어올리면서도끝내사라지지않는슬픔의표면을섬세하게비춘다”(소유정).
*이새해,「알고있는것」외
자주가는단층집앞마당에모여서우리는생크림케이크를꺼냈다.축하할일이있었는데축하받을사람은오지못했다.초에불을붙인뒤노래를불렀다.다부른뒤에그의이름을다시불러보았다.나여기있어요.누군가대신대답했고모두웃었다.웃다가우는사람들이있었다.불이붙었다.평상위에꺼내둔성냥개비하나에.
―「알고있는것」부분
“만약과만약과만약들”을끊임없이타진하는가능성의세계에도“유령처럼끝까지남아우리주위를배회”(백은선)하는존재들이있다.“웃는얼굴로아슬아슬하게제압해두고있는일그러진생각들”(김상혁)과그아래웅크린“영영세계의‘일원’이되지못할것같다는불안”(조연정)을결코감추지않는이새해의언어는차분해서더욱공포스럽다.
임유영,「모조」외
우리는여전히거친옷을입고
집아니라돌아갈곳을찾고있네.
품에안은물항아리에무엇이담긴줄도모른채
열심히옮기는하나와
이쪽이라고멀리서손짓하는하나.
―「모조」부분
임유영은기존의이야기-스타일로부터한걸음물러나“세련되고완숙한상징들”(김상혁)의세계로나아간다.물과불,티끌과같은원소를기르는기묘한행위속에서시인은“발생직전의예감으로부풀어오르는모든것”(백은선)의가능성을탐색한다.연금술과축지법으로씌어진그의시는“가야할데까지간다음우뚝멈춘”(신해욱)미련없는시적용기를발판삼아,다시세계를향해도약한다.
조시현,「가위질연습」외
미래에는모든것을다가진이와
모든것을적절하게잘라낸이중
무엇을신이라고부르는지도알수가없어
인간들은벌써부터결백한표정을짓고있는데
우주선은언제나너무차가운스테인리스스틸
잘려나간여자가
가장먼곳까지둥둥날아가고있다
―「가위질연습」부분
조시현의시는“미래에도변치않을재앙들을예측하면서진화된인간삶의불가능성을”(조연정)내다본다.“인류의시원에서멸종이후까지,몸의잔해와흔적을모으고젠더의조립과해체와재조립의물질성을탐사”(신해욱)하는시인은“통로로서의몸,고정되지않는몸,지울수록선명해지는몸”(백은선)을통해인과를벗어난시공간을구축하며인간존재에대한새로운사유를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