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데레사 성녀는 어떻게 성화해 나갔을까?
우리는 누구나 대인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한번 그렇게 관계가 얽히면 쉽게 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갈등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우리의 삶의 무게를 가중시킨다. 특히 우리 주위 사람, 우리와 가까이 지내는 이들에게서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하고, 계속 고통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공동체 안에서 상처받고 냉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에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소화 데레사 성녀와 이웃과의 관계를 심도 있게 조명한 책이 개정되어 나왔다.
이 책은 성녀가 되기까지의 한 인간으로서 데레사 성녀의 성장 과정과 내적 변화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데레사 성녀가 대인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부정을 어떻게 성화해 나갔는지 분석했다.
이웃에 대한 데레사 성녀의 인간적이면서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책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속앓이를 하고,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그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시각을 갖게 한다. 즉 이웃을 우리 자신의 성화를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좀 더 겸손해지고 그들에게 너그러워지는 열린 마음이 되도록 일깨워준다.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사람들을 회개시켜 그분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임을 깊이 깨달은 데레사 성녀를 통해, 우리 역시 매일 매순간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비록 작은 일에도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짧은 생애, 긴 메아리
24년 9개월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인내의 대가’ 성녀 소화 데레사
24년 9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간 ‘작은 꽃’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그녀는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줄곧 작은 것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작은 길’이라고 하는 영성의 길을 걸었으며, 그녀 스스로 ‘작은 꽃’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소화(小花) 데레사’라고 불린다. 작은 것, 하찮게 보이는 작은 일일지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데레사 성녀는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온몸으로, 그리고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었다.
데레사는 자연의 여러 가지 꽃들을 비교한 다음 자기 자신을 가장 작은 꽃인 방울꽃이나 오랑캐꽃으로 비유한다. 데레사는 이런 작은 꽃들도 백합이나 장미꽃처럼 역시 하느님의 눈길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사랑의 특성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면, 영적 가난의 본질도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더욱 낮추어 겸허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데레사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영적 가난에 대한 의식과 또 이웃과의 연관성은 영성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웃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적 진보를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
데레사는 이웃을, 하느님께서 그녀 자신이나 또 다른 영혼들의 영적 진보를 위해 사용하신 도구로 보았으며,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그들을 우리가 사랑해야 할 불쌍한 죄인으로 여겼다. 이웃 안에서 그녀를 정화시키고자 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보았기에 데레사는 이웃에게서 받아야만 했던 모든 시련과 고통을 인내하며 주위의 모순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데레사는 이웃에게 모욕을 당해도 그들을 용서해주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을 위한 희생을 바쳤다.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한 영혼들에게 얼마나 자비로우십니까? 자연 속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어요. 이 작은 완두콩을 보세요. 껍질이 아주 얇고 당분이 가득해서 입 안에서 살살 녹아 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완두콩은 달갑지 않은 태양의 열기와 밤의 서늘함도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이 완두콩은 완전한 영혼의 표상이에요. 그 반대로 불완전한 영혼을 나타내는 이 통통한 잠두(蠶豆)는 아주 두터운 모피에 잘 보호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이 하신 것처럼 불완전한 영혼을 위해서 우리는 섬세하게 사랑하고 친절해야 해요.
-본문 중에서
판단하지 마라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
우리는 우리 이웃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데레사는 자기가 보기엔 잘못인 것도 그 의도를 알고 나면 아주 좋은 덕행이 될 수 있고, 좋은 의도로 한 행동도 주위에서 그릇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판단하지 마라’는 복음의 권고를 지키고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준다.”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충고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 안에서 무엇이 선한지를 눈여겨보고 또 그들의 결점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여러 여건들과 언제든지 그들을 용서해주시고 변하게 해주실 선하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데레사는 이웃의 참된 가치를 알려고 애썼으며 거기에 사랑을 구축하려고 했다.
겉보기엔 지극히 추한 이 배나무를 좀 보세요. 그것들은 마치 수녀님을 불쾌하게 했던 자매들 모습 같지요. 그렇지만 가을이 되어 제 모양을 흉하게 하던 이상스런 몸뚱이에 과일이 열리고, 거기서 익은 과일이 수녀님께 제공될 때, 수녀님은 전에 경멸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것을 맛있게 먹겠지요. 마지막 날에도 이처럼 온갖 불완전함에서 벗어나 수녀님 앞에 위대한 성녀로 나타나게 된 당신 자매들을 보고서 놀라게 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사랑은 마음속에만 간직해 두어서는 안 되고 아주 따뜻하게 밖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 사랑은 절대로 마음속에만 간직해 두어서는 안 되며 밖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데레사는 강조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덕행을 이웃들에게는 숨기고 싶어 했다. 그것의 진가를 하느님의 눈에만 고스란히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별히 저는 사랑이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루카 8,16) 여기서 ‘등불’이란 우리에게 친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집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빠짐없이 다 밝혀 주고, 기쁘게 해 줌으로써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중에서
데레사가 이토록 이웃에게서 숨어 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낀 것은, … 진정 가난한 영혼 안에 즐겨 거처하시는 그분을 자신 안에 모시기 위함이었다. 데레사가 마음에서 자아를 완전히 비우고 싶어 한 것은 좀 더 완전하게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본문 중에서
데레사가 지닌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은 다른 이들을 위해 언제나 가장 안 좋은 몫, 가장 불편한 자리를 취한 점이다.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힘들고 분주한 몫을 골랐으며, 가장 불편한 자리를 택함으로써 남들이 그 자리에 가지 않도록 해주었다. 또한 데레사는 자신의 휴식 시간마저 언제나 다른 이들을 위해 할애했으며,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늘 노력했다. 특히 사람들이 기피하거나 자신에게 비호의적인 사람과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했으며 친절하게 대했다. 이처럼 데레사는 이웃들에게 사랑 어린 미소를 지으며 늘 상냥했다.
데레사가 비록 작은 일이지만 선을 행한 것은 단순히 주위의 이웃을 기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닌, ‘선하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베푸신 무한한 사랑에 대한 반영이었기 때문이다. 작고 하찮은 일이지만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데레사의 선한 행동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나 무언가 거창한 일을 해야만 만족해하는 우리의 태도를 반성하게 하고, 이웃 사랑의 참뜻을 일깨워준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
이 책에서 우리는 데레사 성녀가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승화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성격의 결함이나 인간적인 나약함이 신앙 안에서는 완덕으로 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는 점을 데레사 성녀는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특히 데레사 성녀는 이웃 관계에서 비롯된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내심과 지혜를 본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고 평범한 일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사랑가득한 말 한마디 미소 한 번이 이웃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신앙 안에서 이를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생애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의 알랑송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과 젤리 게랭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신심이 두터운 부모 밑에서 자란 데레사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데레사는 10살 때인 1883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았는데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한 뒤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또한 1886년 성탄절 전야에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닫고, 언니 마리아와 폴리나에 이어 15세에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데레사는 지극히 평범한 수도 생활을 했다. 하지만 까다로운 성격에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에게서 비롯된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데레사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기도 생활에 열중했으며,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해나갔다.
1893년 데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