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광활하게 펼쳐진 프랑스의 대지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한 수도자가 있다. 그가 머무는 곳마다 교회는 북적이고,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의 심장에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타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자신의 수도원 클레르보로 돌아올 때,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의 뒤에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기 위해 따라 걷고 있다. 그의 이름은 클레르보의 수도원장 베르나르도. 그리고 그는 평생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하며 살았다.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불행과 기쁨을 감싸는
하느님의 사랑
베르나르도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자연적이고 옳은 일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본성을 지닌 인간에게,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랑은 인간 존재의 자연적인 성향이지만, 인간 본성의 나약함 때문에 완전히 실현되기는 어렵다.
이를 의식한 베르나르도는 사랑을 네 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육체적 단계. 두 번째, 인간이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식별’의 단계. 세 번째, 인간이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의 단계. 네 번째, 인간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거룩한 사랑의 단계.
이 네 단계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사랑의 여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하느님께서 직접 엮으신 그물 안에서, 영원의 빛과 깊은 평화 속으로 인간을 이끌어 간다.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베르나르도는 아이메리코 추기경의 두 가지 질문, ‘하느님을 왜 사랑해야 하는가’, ‘하느님은 어떠한 척도로 사랑받으셔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전개한다. 그의 답은 단순하다. 하느님께서는 진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사랑받으셔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그 자체로 사랑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사랑은 존엄성, 지식, 덕을 통해 고양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비로소 올바른 방향과 척도를 갖게 된다. 이 모든 사유가 베르나르도가 직접 집필한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에 담겨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은 점점 물질과 욕망의 언어로 환원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랑 안에서 초월과 영속성을 찾지 않으며, 하느님을 향한 사랑 또한 삶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 결과 이웃 사랑은 점점 낯선 개념이 되고, 우리의 지식은 덕과 존엄성을 잃어 가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지는 않는다. 이러한 시대에, 하느님에 대한 사랑 하나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며 그 사랑을 증언하고 실천했던 베르나르도의 목소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세상의 모든 불행과 기쁨을 감싸는
하느님의 사랑
베르나르도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자연적이고 옳은 일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본성을 지닌 인간에게,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랑은 인간 존재의 자연적인 성향이지만, 인간 본성의 나약함 때문에 완전히 실현되기는 어렵다.
이를 의식한 베르나르도는 사랑을 네 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육체적 단계. 두 번째, 인간이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식별’의 단계. 세 번째, 인간이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의 단계. 네 번째, 인간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거룩한 사랑의 단계.
이 네 단계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사랑의 여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하느님께서 직접 엮으신 그물 안에서, 영원의 빛과 깊은 평화 속으로 인간을 이끌어 간다.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베르나르도는 아이메리코 추기경의 두 가지 질문, ‘하느님을 왜 사랑해야 하는가’, ‘하느님은 어떠한 척도로 사랑받으셔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전개한다. 그의 답은 단순하다. 하느님께서는 진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사랑받으셔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그 자체로 사랑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사랑은 존엄성, 지식, 덕을 통해 고양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비로소 올바른 방향과 척도를 갖게 된다. 이 모든 사유가 베르나르도가 직접 집필한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에 담겨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은 점점 물질과 욕망의 언어로 환원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랑 안에서 초월과 영속성을 찾지 않으며, 하느님을 향한 사랑 또한 삶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 결과 이웃 사랑은 점점 낯선 개념이 되고, 우리의 지식은 덕과 존엄성을 잃어 가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지는 않는다. 이러한 시대에, 하느님에 대한 사랑 하나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며 그 사랑을 증언하고 실천했던 베르나르도의 목소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신애론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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