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속에이어진인쇄와출판
책과성물로신앙을전한사람들
《조선천주교출판사》는책과성물이어떠한경로로신자들에게전달되고,신앙이전파되었는지를고찰한다.먼저제1부‘조선천주교출판의역사’에서는중국에서간행된한문서학서의조선유입과정과조선후기지식인들의서학서이해및유포과정을살펴본다.교회창설이후에는천주교서적이한글로번역·필사되고명도회를통해보급되는과정을추적하며,이어1861년베르뇌주교의목판인쇄소설립을시작으로병인박해이후일본과조선에서이어진성서활판소의설립과운영과정을되짚어본다.이를통해조선천주교회의서적제작과보급이어떻게발전했는지,나아가오늘날가톨릭출판사로이어지는출판의기반이어떻게마련되었는지확인할수있다.
‘제2부조선천주교출판공식언어:한글’에서는조선천주교의서적출판과정에서한글이공식언어로자리잡는흐름을살펴본다.초기신자들과프랑스선교사들이천주교서적을한글로번역하고제작한과정도함께다룬다.조선에하느님의말씀을전하고자했던프랑스선교사들은조선어를배우고한글을익히는일을중요하게여겼다.그노력은프랑스어와한글이서로를이해하기위한다리를놓는작업으로이어졌으며,리델주교가편찬한최초의조선어사전《한불자전》과최초의조선어문법서《한어문전》의출판으로결실을맺었다.이를통해한국천주교의복음화과정이한국어와한글을이해하고기록하는작업과도긴밀히연결되어있었음을보여준다.
마지막으로‘부록’에서는초기신자들의신심생활에중요한의미를지녔던성물의역사를살펴본다.이승훈이중국에서가져온성물부터성화와그림목판,예수의화상,묵주와십자패등에이르기까지다양한자료를통해초기조선천주교회의신앙생활과성물의제작및유통과정을확인할수있다.
《조선천주교출판사》는조선천주교회의역사를신앙과순교의역사에만한정하지않는다.책을만들고번역하고베껴쓰고유통하던사람들,인쇄소를세우고운영하던이들,그리고한글로복음을전하고자했던선교사들의활동을통해조선천주교회의또다른역사를보여준다.한국가톨릭교회출판역사를따라가다보면,우리선조들이혹독한박해속에서도진리를향한열망을잃지않았으며,복음을받아들이는데그치지않고스스로이를전하기위해적극적으로나섰음을확인할수있다.그리고그들의모습을통해오늘날우리는신앙인으로서어떤모습으로살아가야하는지돌아보게된다.
“《조선천주교출판사》는책을통한문서선교를집중적으로살펴보는책입니다.한문서학서가조선에유입되어이를서로나누고,한글로된천주교서적을필사본,목판본,활판본으로만들어보급하고유통하는과정을꼼꼼하게기술하고있습니다.이를통해신앙선조들의활동을보다다각도로살펴보고있습니다.신앙의선조들을천주교를믿다가관원에게붙잡혀신앙을증거하고목숨을바친순교자로만바라보는것이아니라사람들에게진리를전파하기위해목숨을걸고노력한분들로기억하게해줍니다.”
─염수정안드레아추기경
책속에서
톨릭출판사본관1층에는묵직한검은색인쇄기한대가서있습니다.한반도의변화속에서종이위에수많은메시지를담아냈던이인쇄기는이제출판사의역사를보여주는소중한자료가되었습니다.그인쇄기를바라보며출판의역사를정리하고기록해야겠다는생각은점차구체적인과제가되었고,시간이흐를수록그필요성을더욱크게느끼게되었습니다.결국이작업에뛰어들게되었고,그마음은하나씩결실로이어지고있습니다.
-12p.‘가톨릭출판사역사연구회가맺은결실’중에서
베르뇌주교는서적의대량생산을위해조선대목구공식목판인쇄소설립을추진했다.서적을대량으로간행하면가격을낮출수있었기때문이다.
목판인쇄소가필요했던또다른이유도있었다.헌종4년무렵에조선조정은천주교서적이유입되는것을철저히막았다.프랑스선교사들은천주교서적수입에차질이생기자조선내에서직접책을생산하기로하고,인쇄소를설립하여대량으로보급하고자했다.특히신자들에게필요한책이한글로된서적이었다는점을고려할때선교사들의결정은이해할만한것이었다.
-109p.제1부제3장‘제3장조선대목구목판인쇄소,1866년병인박해까지’중에서
블랑주교가인쇄소이전을추진한이유는두가지였다.
첫째는국내에서인쇄하는것과국외에서인쇄하는것이가격차이가컸기때문이다.1882년5월24일에보낸서한에따르면블랑주교는코스트신부가활판설비를갖추고조선에들어오는것이시간과비용을모두절약할것이라고생각했다.예를들어《천주성교공과》또는《교리문답》을국내에서간행하는경우1냥30전인데반해,일본에서간행하면일본에서부산동래까지의운송비용을제외하더라도서울까지운반하는비용을감안할때책값이약4냥에이르렀다.이는국내인쇄소에서간행하는것보다두배이상비싼가격이었다.나가사키에서조선까지의운송비가비쌌던까닭에책값도비싸졌고,현실적으로가난한신자들에게부담이되었다.이러한이유로블랑주교는코스트신부가운영하던모든인쇄시설을조선으로이전할것을제안한다.
둘째는국내인쇄소에서간행하는책과나가사키성서활판소에서간행한책이인쇄품질의차이가컸기때문이다.1882년10월8일자블랑주교의서한에따르면,최우정이심혈을기울여발행한《천주성교예규》와《신명초행》을받아본블랑주교는이를나가사키인쇄소에서간행한책들과비교하며그한계를인식했다.당시신자들은주로밤에책을읽었기때문에활자가선명하고커야했지만,국내인쇄소에서발행한책은활자가선명하게인쇄되지않는아쉬움이있었다.이때문에블랑주교는최우정에게《천주성교예규》의인쇄작업이마지막이될것이라고말한다.
-152~153p.제1부제4장‘성서활판소설립과출판및보급경로,1867년부터1888년까지’중에서
뜻을이해하며기도를바치는것은교리서와같은천주교서적을읽는것과또다른차원의일이었다.거룩한기도문을한문이아닌우리말로번역하여누구나쉽게바칠수있도록한시도의결과는놀라웠다.신자들은한글의가치와중요성을새롭게깨닫게되었고,한글의위상도높아졌으며,그결과교세도더욱확장되었다.앵베르주교는1838년11월24일자서한에서파리외방전교회지도부에보고하면서한글기도서가조선교회의신자수증가에매우중요한역할을했다고밝힌다.
-194p.제2부제1장‘동아시아문서선교와지역언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