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재일조선인문필가서경식의첫문학에세이
디아스포라의눈으로본‘시’와‘문학’의초월성
일제강점기윤동주의시,중일전쟁중루쉰의에세이,
동일본대지진이후일본문학까지
국가와민족을뛰어넘는문학의보편적울림
‘재일조선인디아스포라사상가’,‘우리시대최고의에세이스트’,‘베스트셀러『나의서양미술순례』저자’.서경식을수식하는문장들이다.그는꾸준히글을읽고쓰는‘글쟁이’이지만지금까지그가발표한작품중순수하게문학만을다룬것은없었다.재일조선인으로서의정체성을다룬도서,예술과음악등의문화를다룬도서를집필하다보니정작문학과글쓰기에대해말하는것은너무늦어버린것이다.어린시절부터시인이되길열망했으며,청춘기에는“어떻게든문학과관련된분야에끼어들어살고싶다고생각”한그이기에이책의출간은늦었지만예정된일이었다.
『시의힘』은그의첫문학에세이이자,시대의격류와그흐름에휘말린개인사를아우르는‘언어’에관한비평집이다.제목은‘시의힘’이지만그의사유는‘시’와‘문학’을넘어서서‘언어’의바다에닿는다.인간이태어나면서부터습득하기시작하는‘말’과학습을통해배우는‘글’이어떻게개인의사상을구축하는지,‘모어’와‘모국어’의틈새에갇힌디아스포라의외로움은이해받을수있는지,‘시’와‘문학’이주는힘은무엇이며어디서비롯되는지를진지하게탐구한다.
고립과패배를예감하면서도우직하게길을만드는시의힘
패배의역사에서태어난시와문학이지금여기의삶을뒤흔들다
그는자신의‘글쟁이’인생을거꾸로되짚으며본인글의구조적원형을중학교시절에서찾아낸다.재일조선인인자신의‘타자성’을깨닫고자비를털어문고본을냈던사건이그것이다.그는그때이미조선과일본이라는두세계의균열에발딛고서서양자모두에게‘타자’인식을촉구하려했으며,이문제의식은40년이지난지금까지도변함없이이어지고있다고고백한다.조선과일본,재일조선인피차별세계와중산층주류의세계,그사이에선그는복수의아이덴티티를끌어안고분열의아픔을감내한다.그리고에드워드사이드(EdwardSaid)의언설을빌려“인간은승리의약속이있기때문에싸우는것이아니라부정의가이기고있기에정의에관해묻고,허위로뒤덮여있기에진실을말하려고싸운다”라고말한다.그의‘글쟁이’로서의결심과문제의식은시에관해논하는장으로자연스럽게이어진다.
문학은태생적으로시대적상황과호흡하며쓰인다.저자서경식은조선,중국,일본의시와문학에관해이야기하며역동적인동아시아근현대사를통과한다.당연히일본의침략전쟁과식민지지배에대한비판으로시작되기는하나,여기에주저앉아잘잘못을가리는데치중하지는않는다.그는이러한현실속에서도서로북돋고연대하던힘이문학에있었다는사실을증명하는데더큰힘을기울인다.이시카와다쿠보쿠(石川啄木)의시에흐르는조선독립투사에대한안타까움,침략국인일본의선구자를애도하는루쉰(魯迅)의절절한문장은서로에게칼을겨누던그시대에‘있을수없었던’한줄기희망이다.피로물든동아시아역사는일본의잘못떠넘기기식역사관으로아직도말끔히정리되지못하고있다.만약아직이관계에희망이존재한다면,그희망의상당부분은‘시’와‘문학’에빚지고있지않을까.
그는시의힘을이렇게설명한다.
“생각하면이것이시의힘이다.말하자면승산유무를넘어선곳에서사람이사람에게무언가를전하고,사람을움직이는힘이다.그러한시는차곡차곡겹쳐쌓인패배의역사속에서태어나서끊임없이패자에게힘을준다.승산유무로따지자면소수자는언제나패한다.효율성이니유효성이라는것으로는자본에진다.기술이없는인간은기술이있는인간에게진다.하지만그것과는별개의원리로서인간은이러해야한다거나,이럴수가있다거나,이렇게되고싶다고말하는것이며,그것이사람을움직인다.그것이시의작용이다.”
분단과이산의민족적아픔을타자와의연대로승화하는법
국경과민족마저뛰어넘은새로운차원의‘우리’를꿈꾸다
조선근대사속의유명시인인한용운,이상화,윤동주는모두나라를‘빼앗긴’상황속에서그절절한고통을시로표현해많은이의지지를받았다.국민애송시로평가받는「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서시」,「별헤는밤」은우리가당시시대적상황에심리적으로얼마나공감하고있는지를보여주는지표이기도하다.그러나저자는이공감이좁은세계의‘우리들’이란범위에한정되어서는안된다고외친다.‘우리국토’를빼앗긴‘우리민족’에집중하는게아니라‘빼앗겼다’는고통의핵을인지하는쪽으로나아가야한다는것이다.이러한사고의변화는우물안개구리식의시각에서벗어나세상에존재하는수많은디아스포라와연대할수있는토대를만들어준다.예를들어일본의내부식민지로평가받는오키나와주민,동일본대지진을겪은후쿠시마주민또한국가에의해살곳과주권을‘빼앗긴’자들이다.그들과연대하여기본권을‘빼앗은’국가와자본에함께맞서야한다는그의과감한주장은낯설지만그만큼날카롭게파고든다.
그의태도는한국문학과세계문학을논할때도일관된다.그는우리에게‘한국문학’이무엇인지묻는작업부터시작해야한다고주장한다.같은한국어를공유하는소비자에의해구성되는시장이라는것이답이라면,한국문학은민족문학보다더좁은개념이된다.다른나라에서다른언어로작품을발표한디아스포라작가는자연스레배제되기때문이다.저자는분단과이산이라는현실속을살고있는민족의문학을‘한국문학’이라는말로는담아낼수없다고단언한다.또한‘한국문학’의틀에서벗어나세계적보편성을가진문학으로나아가야한다고말한다.문학은숙명적으로언어의장벽이라는한계성을지닌다.그러나어떤언어로쓰였든국가를빼앗긴자들의싸움,거대자본과거대권력에대한저항이라는공통점이존재한다면,그리하여국가와민족의경계선을뛰어넘은새로운‘우리’를형성할수있다면,그것이야말로문학이가진보편성이자힘이아니겠는가.
모어와모국어,문맹자와지식인…다층적으로존재하는‘언어의감옥’
국민의틀을넘어선언어교육이필요한이유
저자서경식의개인사,즉서승,서준식두형이재일교포간첩단사건으로투옥된이후의지난한과정에대해서는많이들알고있다.그들의어머니인오기순여사의눈물겨운노력또한잘알려졌다.그러나그과정에서재일조선인이자문맹인그녀가처한현실이구체적으로어땠는지는그다지알려져있지않다.
저자는20세기의증인49인을꼽은『사라지지않는사람들』이라는책에서격동의20세기를겪은조선민족의상징으로오기순여사를꼽으며기린적이있다.실제로재일조선인1세대인그녀의삶은많은부분에서우리민족의아픔을대변한다.그중대표적인것이교육과동떨어진삶을살았다는것이다.교육받을기회가없어문맹으로지내던그녀는자식의옥바라지를하며조금씩지식의세계로발돋움했으나끝내글로자신의참된목소리를전하지는못했다.
저자는교육받은지식인으로서어머니를‘해석’하는특권을행사하곤했지만,처지를바꿔보면자신또한일본어의메이저리티에게해석의특권을행사당한다고말한다.일본어를모어(母語)로쓰고있지만조선인인그는‘일본보통국민’의틀밖에있다.그로인해처한부당한처지를설명할만한수단또한일본어밖에없다.일본어라는창살없는감옥에갇힌것이다.
재일조선인1세대이자교육의혜택을받지못했던어머니가갇힌언어의감옥과재일조선인2세대지식인인저자가갇힌언어의감옥은각기다른형태의감옥이다.그는이차이점과함께,그럼에도불구하고일맥상통하는공통점을예민한감각으로다룬다.그리고이에대한대안으로국민의틀을넘어선언어교육을주장한다.‘국어’는곧‘한국어’인가?한국에사는다른나라사람,다른민족은한국에있다는것만으로자신들의국어를버리고‘한국어’로만소통해야하는가?저자의예리한질문은언어와국민을의심없이연결하는습성에대해성찰할기회를준다.
홀로코스트,동일본대지진,원전피해…
피해자와비(非)피해자가함께재난을건너는힘,‘직시하는용기’와‘상상력’
2011년3월,비극적인자연재해동일본대지진은끔찍한원전사고로발전했다.후쿠시마현은방사능으로인해죽음의땅이되었고,많은사람이삶의터전에서쫓겨나듯떠나야했다.서경식은후쿠시마사태와아우슈비츠의홀로코스트를병치하여희생자,생존자,증언자인그들의아픔에관해논한다.
일반적으로제노사이드를주제로하는증언문학은성립하기어렵다.경험자대다수가학살당해부재하며,생존자는입을닫고기억을억압하고자하기때문이다.설사증언이이루어진다해도메시지가왜곡되어소비되거나,진부화,상품화될가능성이크다.이렇게‘증언불가능’한사건을증언한생존자중손꼽히는인물이바로프리모레비(PrimoLevi)다.그는돌아보는것자체가고통인사건을뼈아프게직시하며끊임없는각성을촉구했다.사건을깊이성찰하는곤란한역할을피해자인그가부당하게맡은것이다.“사건은일어났고따라서또다시일어날수있다.이것이우리가말하고자하는것의핵심이다”라는레비의말은‘그런시대는이미지났어’라고쉽게말하는지금의우리에게경각심을일깨워준다.
저자는참극의재발을막기위해서기울여야할노력에대해이렇게말한다.
“피해의진원지에서멀리떨어진사람일수록피해의진실에스스로상상력을발휘하려노력하고,피해의진원지에가까운이들일수록용기를내어가혹한진실을직시해야한다.증언자(표현자)는‘표상의한계’를넘어서는증언(표상)에도전해야만하고,독자는스스로‘상상력의한계’를넘어서는상상력을발휘하려고애써야만한다.”
의문형으로밖에존재할수없는희망
‘생명’은‘픽션화’되지않는다
『시의힘』은「의문형의희망」이라는장으로시작한다.동일본대지진과원전사고를다룬일본시인의시집에대한감상문이다.많은이가죽어간바다,자신이가르치던학생이표류하다죽어간바다.고등학교교사인시인은절망만이존재하는현장에서고요하게분노를토로한다.“꾸며낸혓바닥으로/상냥하게,희망을노래하지마라”라며,애도가끝나지도않은자리의섣부른거짓희망을경계한다.절망의순간,희망은행복한노래로존재하지않는다.아니,그것이존재하는지않는지도알수없다.지금은의문을함께하며헤매야하는시간이라는것이다.이는이책의주제를관통하는루쉰의말과도일맥상통한다.
“생각해보니희망이란본시있다고도없다고도할수없는거였다.이는마치땅위의길과같은것이다.본시땅위엔길에없다.걷는이가많아지면거기가곧길이되는것이다.”
『시의힘』의마지막장「픽션화된생명」은,첫번째장에대한저자나름의대답이라고도볼수있다.모든것을‘픽션화’하며거리를두어자신을보호하는요즘학생이시의힘으로처음‘생명’을실감하는순간을다룬이짧은글은,묵직한질문으로점철된이책에작고연약하지만,그래도확실히존재하는희망의날개를달아준다.유구한역사속에서거듭되는고통에도불구하고꿈을가져야할이유,아무도알아주지않는길,심지어패배할것이뻔한길을묵묵히걷는이유,한편의시를읽는이유.어쩌면이의지자체가희망은아닐까.
작품해설
서경식에게진정한시란패배할것임을예감하면서도쓰지않을수없는어떤운명적인정서,길이있어서가는것이아니라어떤길도보이지않지만그대로갈수밖에없는태도와함께하는것이다.이런시의성격이어떤생산적인의미를담지못한다고생각할수도있지만,그렇다고해서시가의미없는무용한존재라고할수는없다.비록지금우리에게한편의시가지닌가시적인성과가보이지않는다하더라도,“그러한시는차곡차곡겹쳐쌓인패배의역사속에서태어나서끊임없이패자에게힘을준다”라는사실을인식해야한다.
시를유희나실험,아름다움의향연으로보는태도도물론필요하다.또한과거와는달리시와문학에대한기대치가많이바뀌었다는점도일면수긍할필요가있다.그러나지구상의어떤사회보다도극심한경쟁속에서무수한패배자를양산하는한국사회,소수자의아픈상처가켜켜이배어있는한국사회에서‘시’에대한서경식의관점은충분히뜻깊고아름다운것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