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마음

버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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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난 20년간 그녀에게 무례했던 사회에 관하여
그리 오래지 않은 대한민국의 트라우마, IMF 구제금융 사태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여성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사실상 부도, 구조 조정 등으로 직격탄을 맞고 고통받는 인물들은 대부분 남자로 그려졌다. 당시에도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된 사람들, 처지를 비관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뉴스에 많이 등장했는데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들이 대부분 가장의 역할을 떠안고 있었던 만큼 해고나 파산 등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당사자는 주로 남성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미처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자들 역시 그때 그곳에 있었다.

1976년생, 여자, 마흔, 경력 단절.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자는 이 단어들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태남’이라는 본명 때문에 남성으로 오인되곤 했던 그녀의 인생은 개인사임에도 오히려 현대사로 읽힌다. 1997년 IMF,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2017년 조선 해양 산업의 몰락. 그리고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 그녀에게 무례했던 지난 20년부터 아직 잿빛 터널을 다 빠져나오지 못한 지금 이 순간까지의 진한 기록을 세상에 공개한다. 듣지 않을 수 없고 읽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경제의 주역으로 산다고 살았다. 여성으로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해양플랜트 구조설계 엔지니어로서의 삶. 그 속에서도 비정규직이었기에 살아남기 위해 더욱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다. 동시에 엄마와 아내, 딸과 며느리로도 살았다. 전문직 여성으로서 회사의 성장에 힘을 실었던 지난 삶에 모두 겹쳐져 있다.
(본문 10쪽)
저자

경심

'마음을비추다.마음을닦다'는의미를담아시어머니께서지어주신필명입니다.책을쓰고싶다는꿈을말씀드렸을때가장먼저용기를심어주신분입니다.글을쓰는동안거울처럼제마음을비춰보며열심히닦아보았습니다.
본명은정태남.나라정鄭,클태泰,사내남男자를씁니다.3대독자이신아버지께서아들을바라지으신그이름으로사십평생을딸로,여학생으로,여사원으로살아왔고지금도그이름으로살아가고있습니다.물론제이름이아닌은우엄마,준우엄마가더큰이름이된아내,며느리,엄마로도살고있지만요.그래도그이름덕에꿋꿋하게잘버텨내고있는지도모르겠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1.잿빛터널의시작
-열아홉
-내가던져진세상
-삶이사막같아도
-이해할수없는일들
-하이힐이아닌안전화를신고

2.어떻게든살아
-다시시작하는봄
-돌이킬수없는
-내잘못이아니야
-연16.5퍼센트의적금을깨다
-봄처럼다가온사람
-그녀를기억하며
-나는IMF시대를살았다
-가시나무
-살고싶어졌다

3.신데렐라는결혼해서행복했을까
-현실도피
-신데렐라는결혼해서행복했을까
-시한부직으로살아내기①
-시한부직으로살아내기②
-예상치못한소식
-가장귀한선물

4.여자는무엇으로사는가
-엄마한살
-두번째선물
-위험한동거
-경력단절은넘어섰지만
-나가주세요
-워킹맘의비애
-내가싫어질때
-별볼일없는삶,참별볼일많다

5.삶의무게를누군가와나눌수만있다면
-수신자가잘못입력된메시지
-바나나와사과
-죽음을기억하며
-네가날알아?
-퇴사그리고재취업
-이대로괜찮을까?

6.마흔셋,퇴준생
-우리,데이트할까요?
-내꿈은어디에
-불안한현실
-새치즈
-마지막출근
-마흔셋,퇴준생이되다

7.잿빛요일의산책
-파란하늘을기다리며
-버티는마음
-협력사가족의유토피아를꿈꾸며
-긴터널밖으로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여자는무엇으로사는가

가난때문에대학을포기하고직업훈련원에입학한날부터심상치않았다.기계를다루는일을배우는학교였기에여학생지원자가적었고합격자는더적었다.그래서그곳에는아직제대로된여자기숙사가따로없었던것이다.입학첫날안내받은곳은문서창고를개조한비좁은공간이었다.씻을곳도변변치않고난방도되지않던그곳에서의생활은마치앞으로펼쳐질녹록지않은인생의예고편같았다.
툭하면사람들은‘여자들은…’이라는말을기분나쁜꼬리표처럼사용했다.그럴수록그녀는남초사회에서살아남기위해서더강하게스스로채찍질하며이를악물고버텼다.무시와편견,실질적인임금차별은물론이고성희롱이나성추행까지도당연한일상처럼벌어졌기에그녀도피할수없었다.몸은망가져갔지만‘버티는마음’만이그녀의무기였다.아무런힘이없었으므로참는것말고는달리할수있는일도없었다.아이둘을낳고도누구보다늦게퇴근하고주말에도업무에매달리며회사일에매진했다.
하지만경력단절의시기는그녀의성과나의지와상관없이불청객처럼삶에끼어들었다.아이들은자꾸아팠다.늘최선을다했는데이상하게가족에게는늘엄마로서아내로서미안할뿐이었다.더는못할짓이라는생각에잠시일을포기하기도했다.현실을감당하기위해다시돌아가도결국‘회사의사정’이라는게그녀를벼랑끝으로내몰아기혼여성고경력자로서눈치껏퇴사를결정하기도했다.분명사랑해서스스로선택한일들이었는데도머릿속엔자꾸이런질문이맴돌았다.‘신데렐라는결혼해서행복했을까?’

내탓이아닙니다

그녀가부잣집에서태어났다면,아니이후에직장에서라도승승장구했다면이책은나오지않았을것이다.그녀를끊임없이노력하게한동력은바로‘결핍’이었다.1분1초열심을다하지않은적이없는데도때때로아니꽤자주세상은그녀를배신했다.그럴때마다그녀는남을탓하기보다는‘모두내잘못’이라고자책하곤했다.하지만부당한일을반복적으로겪으며구조의갈라진틈을목격하고만다.권력의이기심이곳곳에균열을내고있었다.

요즘문제가되고있는‘채용비리’가그때도만연했다.같은부서에직영으로들어온신입사원의경우설계를한다는사람이CAD프로그램도다룰줄몰랐다.알면알수록이나라는어디까지잘못된건지강자들의탐욕은끝이보이지않았다.결코내잘못이아니었다.아이러니하게도비정규직인내가그에게CAD교육까지시켜가며일해야했다.그러나정작업무에필요한교육이나프로젝트회의는비정규직에게철저하게닫혀있었다.
(본문90쪽)

내잘못이아니었다.지금까지도어떻게대처하는것이맞는지모르겠다.남성중심의조직에여사원들의수가상대적으로적었던이곳에선이러한추행이상습적으로이뤄지고있었지만그누구도문제제기를하지않았다.당사자들스스로가가해자라는사실조차도인지하지못했다.
(본문121쪽)

즐겁고신나는이야기로고단한현실을잠시나마잊고싶은독자에게『버티는마음』이적당한책은아닐것이다.그럼에도이책을권하는것은그녀가‘내탓이아님’을깨달아가는중요한장면들을놓치지않았으면하기때문이다.당신은반드시큰목소리로동의하며응원하고싶어질것이다.함께버티는우리로서.‘당신의잘못이아니’라는그메시지는저자가독자들에게해주고싶은말이기도하다.

협력사가족의유토피아를꿈꾸며

얼마전『중공업가족의유토피아』라는신간도서를접했다.이책에서는조선업을휩쓴침체와위기를직면하면서성장국면에서견고하게구축된‘중공업가족’이라는공동체에대해명확하게분석해놓았다.그런데이책에서말하는‘중공업가족’에합류하지못한존재들이바로나와우리가족이었다.‘중요한업무를담당하는하청노동자’였고‘여성엔지니어들을잘기용하지않는업계’,나아가‘여성들의일을가사노동혹은사무직보조의영역에국한하는‘남초’지역’이라는혹독한현실이바로내가버텨온삶의현장이었다.
(본문237쪽)

17년이넘는시간동안저자가몸담은조선해양산업에서흔히말하는‘하청업체’,‘하청노동자’란대기업직영이아닌‘협력사’,‘협력사직원’을말한다.당사자인저자는자칫비하적으로느껴질수있는하청이라는표현대신이들을협력사직원이라고일컫는다.
대한민국중공업계가어려움을겪고있다.대기업직영이아닌협력사소속노동자들은업계불황에더해불안정한고용환경이라는이중고를떠안는다.(수많은협력사직원들은작년에이어올해도최저임금인상이라는정부지원카드의혜택을받을수없다.토요일유급휴일을강제로없애임금은사실상동결이되거나오히려더줄어드는상황이비일비재하다.)불안정한노동환경과낮은임금으로살길을찾아다른지역으로원정노동을떠난그녀의남편과구조조정이라는바람을맞아퇴사한후업무공백의시간을보낸그녀.우여곡절끝에결국일자리를얻었지만저평가된조선업에서인건비가최저치로떨어진시기에턱없이낮아진연봉으로재취업을할수밖에없는저자의현실이바로증거이다.

올해로벌써IMF21주년을맞았지만여전히불황의늪에서허우적거리는오늘,지난20여년간우리나라경제의주역으로살아온독자들에게결코우리잘못이아니라고말해주고
싶었다.지나간숱한잿빛요일을걷어내고다가올오늘은행복한산책을준비할수있는선택으로채워볼수있기를간절히바란다.
(본문241쪽)

하지만저자는남의탓만하며비관하지않는다.그녀에게는살아야할이유가있다.절대로포기하지않는사람에게는어떤빛이난다.아무리애써도끝이보이지않는터널이라지만그녀가스스로불을밝히며분명히앞으로나아가고있다는걸독자는느낄수있을것이다.
버텨내는삶은현재진행형이다.그녀는오늘도‘그럼에도불구하고’로시작하는문장을쓴다.꽃을피우기위해필요한밤을견디며.

글쓰는삶을통해오롯이내삶을다시살아가는이시간이내겐그무엇보다중요하다.지난삶을정리하는과정에서세상을바라보는시각이열리고나스스로의가능성에자신감을얻는다.살다보니살아졌던것처럼,쓰다보니써졌다.긴터널을빠져나오려하는나와여러분의내일에건투를빈다.
(본문2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