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음의 불편함

태어났음의 불편함

$17.00
Description
생의 무참한 무의미함 앞에서
그것을 감당하며 이겨내게 하는 절절한 각성의 아포리즘!
시오랑은 진정한 역량을 지닌 오늘날의 저술가들 중에 가장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 수전 손택

김정란 시인의 번역으로 새롭게 읽는 에밀 시오랑의 대표작!
1973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유럽 독서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고, 국내에서도 열렬한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시대를 이어가며 읽혔던 에밀 시오랑의 대표작 『태어났음의 불편함(De l’inconv?nient d’?tre n?) 』이 김정란 시인의 번역으로 새로이 출간되었다.
『내 생일날의 고독 』,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이전의 판본과는 다르게 원래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에서 번역자인 김정란 시인은 에밀 시오랑의 독특한 프랑스어 구사법과 우리말과의 간극을 메우며 또는 드러내면서, 세상에 ‘던져진’ 우리 존재에 대한 그의 육성에 가까운 아포리즘적 절규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저자

에밀시오랑

EmilMichelCioran,1911~1995
1911년루마니아에서태어난에밀시오랑은1937년에프랑스파리로이주해세상을떠날때까지그곳에살며글을썼다.그래서우리에게그의이름은‘치오란’이아니라‘시오랑’으로더익숙하게알려졌다.
1928년부터1932년까지루마니아부쿠레슈티대학교에서철학을공부하고‘베르그송’에대한논문으로학사과정을마쳤다.1933년에독일훔볼트재단의장학금을받아베를린대학교에서수학했지만체계로서의철학에서멀어져철학적에세이,개인사상가로서의글쓰기에경도된다.1934년첫책『절망의정점에서(Peculmiledisper?rii)』를출간했고,1936년에는루마니아로돌아가잠시고등학교철학교사로학생들을가르치기도했다.1937년에프랑스문화원장학생으로선발되어파리로가소르본대학교철학과에등록했지만수업과논문쓰기를접어두고자전거를타고프랑스방방곡곡을돌아다녔다.
모국어로쓴책『사유의석양(Amurgulg?ndurilor)』(1940년)을출간하고난다음1947년이후에는루마니아어와결별하고프랑스어로글을쓰기시작했다.1949년프랑스어로쓴첫책『해체의개설(Pr?cisded?composition)』이출간되었고,비평가들의호평을받았다.이후『고통의삼단논법(Syllogismesdel’amertume)』(1952),『존재의유혹(Latentationd’exister)』(1956),『역사와유토피아(Histoireetutopie)』(1960),『고백과저주(Aveuxetanath?mes)』(1987)등의책을출간하며,고독과처절하게맞선글쓰기,절제된아포리즘적절규로많은독자에게큰울림을주었다.
여러차례문학상수상자로지명되었지만수상을모두거부했고,단한차례1950년리바롤(Rivarol)상을받았는데,생계가어려웠기에그상이아니었다면노숙자가되었을것이라고밝히기도했다.
1995년6월20일,파리에서숨을거두어몽파르나스묘지에안장되었다.

목차

1~12
옮긴이의말-전투적이상주의자의절규

출판사 서평

죽음에처절히맞서직면했던전투적이상주의자에밀시오랑
시오랑은극단적인비관주의자다.그에의하면,생에는아무의미도없으며,우리가할수있는것은무의미한생을견디는것뿐이다.태어남은불편함이다.태어남의불편함,태어남이라는모욕.태어나지않는것이이론의여지없이가장좋은방법이다.시오랑은우리가죽음을향해달려가고있는것이아니라태어났다는재난으로부터도망치고있는것이고,그재난을잊기위해분투하는것으로여긴다.
시오랑의이러한관점은생의조건을생사고락(生死苦樂)으로보고,그중에서‘태어남’의고통을맨앞에두었던부처의관점과일치한다.그러나시오랑이부처의제자가되기에는지나치게실존주의적이다.그는생의모든고통을일률적으로지워버리는열반을받아들이기보다는생의문제에성실하게매달린다.열반이라는비전은생의구체적고통을너무나형이상학적으로지워버리기때문이다.그에게삶은그철저한,절대적인,악마적인무의미함에도불구하고맞서싸워야하는,또는소극적으로는,‘견뎌야하는’그무엇이다.

-아침부터저녁까지무엇을하십니까?
-나는나를견딥니다.

생의가장커다란비극은인간이의식을가지게되었다는사실이라고보는시오랑은,인간이의식을가지고있다는사실때문에진보했지만그진보는구원의열쇠가아니라파멸의경사로로여긴다.그것은인간의어리석은환상에불과하다.그러므로시련은벌이아니라축복이다.영적소명을가진자는시련안에서,투쟁의힘겨움안에서존재의정당성을부여받기때문이다.아무희망도없이싸움은지속되지만,아무희망도없기때문에더더욱영광스럽게.따라서시오랑의사유체계안에서‘승리’또는‘성공’이란아무의미도없다.성공은존재를타락시킬뿐이다.인간의존재론적실패는예정된것이며,감당해야하는것이며,가장적극적으로받아들이고껴안아야하는것이다.그것이무(無)로,태어남이전의상태로회귀하는유일하고영광스러운해결책이다.
그러므로이20세기철학자시오랑이중세기의‘사막의수행자’들을실존의전범으로삼는것은충분히이해할수있는일이다.신을찾아인간세계를떠나사막으로갔던수행자들이신을만났다는객관적징표는없다.그러나그들이위대한것은목표를달성했기때문이아니라,끝까지자신의추구안에서성실했기때문이다.그래서시오랑에게이상(理想)으로받아들여지는것이다.
그러나시오랑은사막에가지않는다,또는가지못한다.그는못가기도하고,갈필요가없기도하다.그가머물러있는대도시는이미사막이다.모든것은화려한삭막함이라는모래에덮여있다.그러므로시오랑의수도(修道)는기둥없이기둥에올라가수행하는수도자의고행으로비유할수있다.
그의절망은뒤집어읽으면,그가생에대한엄청나게높은비전을가지고있다는사실을드러낸다.그는그비전을위해자신을부수며끝까지싸운다.그싸움이승리가아니라패배를적극적으로수용하기위한것이라는사실을염두에두면,이투쟁의이상주의는더욱극적으로확인된다.시오랑에게좌절은절망의계기가아니라,각성의계기이다.깨달음,번개처럼후려치는좌절은각성한인간을해방된인간으로변화시키는확실성을가져다준다.그러므로시오랑의어두운글은우리에게오히려견뎌낼힘을준다.그의글은달콤한거짓위안이아니기때문에생의무참한무의미함앞에서그것을직시하고감당하며이겨낼힘을주는것이다.
시오랑과프랑스어
시오랑을시오랑으로만들어준것은프랑스어다.모국어루마니아어를버리고프랑스어로작업하면서시오랑의문체는완전히바뀐다.그는자신의프랑스어사용을‘제2의탄생’이라고불렀다.사유의내용이나철학적추구의방향은바뀌지않았으나문체가완전히달라진것이다.시오랑은그것에대해“내가쓰는것안에변화는없다.나의첫번째책은이미암묵적으로,내가그후에말한것을모두담고있다.문체만이다를뿐이다.”라고말했다.
처음에는외국어작업의어려움때문에짧은문장을선호했던것인지도모른다.그러나점차그아포리즘적인글쓰기는그의사유근저에있는극소주의(지극히절제된언어표현.언어의자기만족을근본적으로차단하는극소지향의문장)와잘어울리게된다.잘쓰려는욕망,또는허영으로부터자유로워진글쓰기였다.그의프랑스어문체는프랑스어를모국어로사용하는작가들이발휘하지못하는매우독특한매력을발산한다.약간뻑뻑하게느껴지는문장.그러나그사이에서발랄하게움직이는유머와냉소,아포리즘.끝까지밀어붙인비관주의.그러나그자체로역설적으로빛나는비관주의.이성,정념,금욕주의,명징함과패러독스.시오랑에게프랑스어사용은‘치유’와같은것이었다.강요된불편함.그러나그덕택에잘라내게된수사학적욕망.그래서그는“강압복이미친사람을가라앉혀주듯이프랑스어는나를가라앉혀주었다.”라고말하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