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과 왕릉 (조선 국왕의 사후 상징과 만나다)

국장과 왕릉 (조선 국왕의 사후 상징과 만나다)

$26.16
Description
조선의 왕실 문화를 상징성의 측면에서 탐색해온 ‘왕실문화총서’의 완결판!
국장 절차와 왕릉 조성 과정을 통해 본 국왕의 사후 상징성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
조선 시대 국왕과 왕실 문화를 상징성의 측면에서 탐색해온 왕실문화총서(전 4권)를 완결 짓는 「국장과 왕릉」은 조선 시대의 국장 절차와 왕릉 조성 과정에서 보이는 국왕의 사후 상징성에 대해 심도 깊게 탐구한 책이다.

국왕의 사후에 육신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문제는 유교 윤리의 실천과 종법 사회의 건설, 왕권의 유지와 영속성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하기에 국장의 절차와 왕릉 조성의 각 단계에는 국왕의 권위를 세우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산처럼 크고 높은 왕릉의 규모는 백성이나 신하의 무덤과 차별화되었고, 국장이나 왕릉 조성 과정에서 쓰이는 여러 물품이나 조형물은 죽은 국왕이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이 국왕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유지하게 만드는 시각적인 장치로 그 시대의 문화 역량이 응집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 왕실에서 국왕의 사후 그 육신을 어떻게 다루어 국장을 치르고 왕릉을 조성했는지를 세세하게 재현하듯 보여주면서 거기에 쓰인 물품이나 조형물 등의 시각적 요소가 드러내는 의미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내내 지키고자 했던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한다.
저자

장경희

홍익대학교미술대학공예과를졸업한후같은대학의대학원미술사학과에서석ㆍ박사과정을마치고1999년「조선왕조왕실가례용공예품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는한서대학교문화재보존학과교수이자한국전통문화연구소소장으로있으며,문화재청문화재수리기술위원을비롯하여충청남도,서울특별시,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의문화재위원으로활동중이다.
지은책으로는북한에있는고려왕릉을연구해정리한『고려왕릉』을비롯하여『조선왕릉』,『의궤속조선의장인』(전2권)등다수가있고,논문으로는「조선후기흉례도감의장인연구」를비롯하여「조선후기산릉도감의장인연구」,「조선태조비신의왕후제릉(齊陵)연구」,「조선후기왕릉정자각내부의물연구」등이있다.2014년『의궤속조선의장인』으로우현학술상을수상했다.

목차

책을내며
머리말
1장국장과왕릉의전통
1.조선까지이어진통일신라의능묘제도
2.조선왕릉의원형이되는고려왕릉
3.조선태조의4대선조릉조성

2장국왕의승하와초상(初喪)
1.혼을부르는복(復)
2.시신을씻기는목욕(沐浴)
3.새옷아홉벌을입히는습(襲)
4.열아홉벌의옷을입히는소렴(小殮)
5.음식을드리는반함(飯含)
6.아흔벌로보공을채우는대렴(大斂)
7.얼음을설치하는설빙(設氷)

3장빈전(殯殿)설치와재궁(梓宮)제작
1.편전에빈전을설치하다
2.내외재궁의제작
3.찬궁에재궁을안치하다
4.재궁에덧칠하는치벽(治?)

4장인산(因山),백성들로인해(人海)를이루다
1.발인(發靷),반차도(班次圖)를그리다
2.길의장,생시처럼장엄하다
3.국왕의상징인책보와함께하다
4.흉의장으로국왕의체백을호위하다
5.대여(大轝)에올라궁을떠나다

5장현궁(玄宮)을만들고산처럼쌓다
1.명당(明堂)을찾아내다
2.왕릉에지하궁전을만들다
3.현궁에체백을모신재궁을묻다
4.생시처럼사용할명기(明器)를넣다

6장석물,국왕의체백을지키다
1.비석,국왕을기억하고존재를알리다
2.석망주,혼령이왕릉을찾아오게하다
3.장명등,영원히불을밝히다
4.혼유석,국왕의혼이뛰놀게하다
5.석양과석호,국왕곁을지키다
6.문무석인,죽어서도국왕의명을받들다
맺음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왕실의연속성을영원히기억하도록하는상징코드
조선시대국왕의상장례(喪葬禮)는유교적예법에대한고증을거쳐조선초기에정리되었다.국장절차와왕릉에대한조성과정등은국가전례서를범본으로삼아조선시대내내대체로비슷한경향을보인다.
이책에서는국장과왕릉에서의의례절차에서국왕의몸,사후육신에주목한다.곧국왕의죽음에걸맞은흉례절차에따라소용되는각종물품들의종별과세부요소및그것들이갖는의미와상징성을밝힌다.조선왕실의흉례와관련된기물을살펴보면조선시대내내시대적변화의진폭이크지않아대단히보수적이고전형적인것을알수있다.국장과왕릉관련기물의형식이나조형이거의변화를보이지않는것이야말로왕실의연속성을영원히기억토록하는상징코드가작동한것이다.
국왕의사후에는예서에정해진대로국왕의시신을닦거나감싸거나입히거나담거나덮거나장식하였는데,이러한물품들은눈에보이고손으로만질수있는시각적대상물이어서,국가는그수준을일정하게유지하고통제함으로써국왕의권위와왕실의위엄을시각화하려했다.재료의품질이나상태를일정하게유지하기위해최고품질의천이나실,나무나못,칠이나안료등까지규정대로확인하고기록하였다.이러한재료가준비되고도구나시설이마련되면그것을능숙한솜씨로구현할수있는장인이나화가가규정된크기나형태및문양으로기물을제작했다.

초상(初喪)과인산(因山),그리고왕릉
왕이승하한후3일부터5일까지이뤄지는염습(殮襲)과정은시신의몸을감싸는습(襲),소렴(小斂),대렴(大斂)의세단계로이뤄진다.이염습절차는이승에서분리된시신이저승에서새로운출발을하도록해주는것을의미한다.대렴이끝나고승하한왕의육신(체백)을왕릉으로옮기기까지5개월간왕의관(재궁)을모시는곳은,사대부가에서‘빈청’이나‘빈소’라고부르는것과차별하여빈전(殯殿)이라불렀다.빈전은왕이생전에거처하던궁궐내편전에설치했다.입관하기전에국왕의시신이부패하지않도록재궁에얼음을채우기도했으며,재궁에는이틀에한번씩30회,두달간옻칠을했다.옻칠을하면방충ㆍ방부ㆍ방습에탁월해국왕의시신은훼손되지않고온전하게보존될수있었다.재궁을칠하는자리는후대왕이동참하여왕위계승의정통성을확인받는자리이기도했다.
궁궐에머물던국왕의체백을왕릉이있는산으로모시는것을인산(因山)이라부른다.이때국왕은비록시신이지만백성들에게마지막으로인사를고하고먼길을떠나게된다.국왕의몸을실은가마는수백명이4교대로메고그길을가야했다.그리고죽은국왕이지만그를한치의오차없이제대로호위하기위해누가어디에어떻게무엇을가지고왜서있는지를미리그림(발인반차도)으로확인했다.
풍수에따라명당이정해지면국왕이영원히누울현궁(玄宮),즉지하궁전을마련했다.이승에서국왕이누렸던것과마찬가지로죽은뒤저승에서도국왕으로서권위와품위를지킬수있도록지하궁전을꾸민다는관념이오랫동안지속되었다.그래서그곳에국왕이평소읽었던서책과더불어사후세계에서도여전히국왕으로서제향을받을수있도록제기를들여놓았고,음악을향유하도록악기를만들고국왕의권위를지킬무기를만들어함께두었다.이것들은크기가작은명기(明器)로만들었지만,이렇게갖춰놓음으로써지하궁전에서국왕이국왕으로서의권위를영원히누릴수있다고여겼다.
이밖에도장명등을만들어구천을떠돌던국왕의혼령이왕릉에있는자신의체백을찾아올때길을잃지않도록소상때까지불을밝혔고,이렇게찾아온국왕의영혼이쉬고뛰어놀수있도록혼유석(魂遊石)을배치했다.또한멀리서도지하궁전이있다는것을알게하기위해석망주(石望柱)를좌우에세웠다.국왕의혼령과체백이머무는곳에국왕을모시는신하가없을수없다.왕이살아있을때와마찬가지로죽어서도신하들의호위를받도록문무석인(文武石人)을배치하였다.또한석양(石羊)ㆍ석호(石虎)등석수(石獸)가왕릉을둘러싸게했다.이러한여러물품이나조형물은죽은국왕이살아생전의국왕과다름없이국왕으로서의권위와위엄을유지하게만드는시각적인장치의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