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볼프강폰괴테
저자
저자:요한볼프강폰괴테
1749년8월,황실고문관인아버지와프랑크푸르트시장의딸인어머니사이에서태어났다.1765년에법률학을배우기위해라이프치히대학에입학했다.이때처음으로자유롭게레싱,빙켈만등을읽었다.그러나1768년폐결핵으로학업을중단하고귀향했다.1770년슈트라스부르대학에입학하여다시법률공부를하는동시에의학강의도들었다.이때헤르더와교제하면서호메로스,성서,오시안,민요,셰익스피어등을알게되는데,이로써'슈투름운트드랑',즉질풍노도문학운동이준비되기시작했다.법률학위를받은괴테는고향프랑크푸르트로돌아와변호사활동을시작하는한편,문학에도열성을다하여『괴츠폰베를리힝엔』의초고를완성했다.이희곡은출간되자대중과지식인들의열광적인갈채를받았고,괴테는독일의작가로명성을떨쳤다.
1772년괴테는베츨라의고등법원에서견습생활을시작했다.이곳에서의생활은괴테에게남다른의미를갖는다.바로그를독일의작가에서세계적작가로우뚝서게한『젊은베르터의고통』의무대가된곳이기때문이다.베츨라에서괴테는약혼자가있는샤를로테부프를연모했는데,이체험은『젊은베르터의고통』에거의사실그대로담겨있다.부프에게사랑을거절당한괴테는도망치듯고향으로돌아왔다.그후3년간괴테는프랑크푸르트에서생활하면서많은문학적결실을거두었다.바로기존의무미건조한형식미에서탈피하여인간본연의감정에충실할것과인습적에것에대한저항을모토로한슈투름운트드랑의시기였던것이다.그절정을이룬것이『젊은베르터의고통』이었다.
1775년카를아우구스트의초청으로바이마르를방문하여그곳에정착하기로결심했다.이로써괴테는슈투름운트드랑의시기를마감하고추밀참사관에임명되어행정적인활동을했다.다망한정무생활틈에서도지리학,식물학,광물학등자연에대한연구에도몰두했다.그러나창작면에서는침체기였다고할수있는데,1786년(37세)이탈리아여행길에오름으로써다시예술의세계로돌아가는계기를마련했다.2년간의이탈리아여행은괴테에게예술가로서의자신을재발견한시기였다고할수있다.
1788년바이마르로돌아온괴테는정무에서떠나고독속으로숨었다.이때나중에정식부인이된,평민출신의크리스티아네불피우스를만나동거를시작했고,실러와도처음으로만났다.1794년부터실러와깊은친교를나누기시작한괴테는실러가발행하던문학잡지인『호렌』에글을기고하기도했다.
1805년부터1815년에걸친나폴레옹전쟁동안나폴레옹을세번이나만난한편,독일문학최초의사회소설로평가받는『친화력』를완성했고,자서전의백미로꼽히는『시와진실』1∼3부도완성했으며,『서동시집』집필에도착수했다.1821년『빌헬름마이스터의편력시대』를완성했으며,죽기1년전대작『파우스트』를완성했다.1832년바이마르자택에서운명했다.
역자:정현규
서울대독어독문학과에서학사,석사학위를받은후독일베를린공과대학독어독문학과에서『괴테의문학작품에나타난베일모티브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원광대인문학연구소,성신여대인문과학연구소전임연구원을거쳐,지금은이화여대이화인문과학원HK연구교수로재직중이며,서울대,인천대등에서강의하고있다.「암호와문학-『서동시집』에나타난자연미」,「번역가와돌아온탕자-타문화수용과자기이해라는관점에서본괴테와릴케의동방여행」,「은유와가상공간」등다수의논문이있으며,『생각하며읽는문화교양』(공역),『웃는암소들의여름』등을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