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삼부작 2: 청춘 - 암실문고

코펜하겐 삼부작 2: 청춘 - 암실문고

$14.00
Description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욕망을 거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1부 『어린 시절』에 이은 2부 『청춘』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디틀레우센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난한 여성 노동자인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순했다. 벌이가 적은 직업을 전전하거나 결혼해서 전업 주부가 되는 것이었다. 디틀레우센은 두 선택지를 모두 거부할 방법을 찾아내려 애쓰고, 특히 어린 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시인이 될 방법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아련한 향수로 가득한 1부와 섬뜩하리만치 냉정한 3부 사이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청춘』은 두 작품의 특성을 적절히 나눠 갖고 있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사회에 나오면서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삶을 억지로 살아야 했던 디틀레우센은 단순 노동직을 전전하면서도 문학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삶의 지침을 냉정한 세상에게서 배우게 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지침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은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있으며, 내가 그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나도 그가 욕망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냉정함과 뜨거운 욕망이 함께 들끓는 세상을 헤쳐 가며 시와 사랑을 찾아 헤매는, 이제 스무 살을 향해 다가가는 이 예비 시인은 숙명이나 정의 같은 형이상학적인 미덕보다는 욕망의 거래와 정산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점점 시인에 가까워지는 동시에 ‘어린 시절’로부터 급격히 멀어져 갔다.

저자

토베디틀레우센

저자:토베디틀레우센
20세기덴마크를대표하는여성작가.1917년에코펜하겐에서1남1녀의둘째로태어났다.아버지는공장노동자였으며어머니는전업주부였다.어릴때부터책을좋아했고언어구사에특출한재능을보였지만가난한집안사정때문에고등교육을포기해야했다.섬세한감수성을지닌그는노동자지역에서함께자란또래아이들과쉽게어울리지못했고,어머니와의애착관계형성에도어려움이있었다.이결핍은훗날디틀레우센의삶에많은시련을안겨주지만,동시에가장풍부한작가적영감을안겨주는원천이되기도했다.
10대후반에가정부,사무비서등여러직업을전전하던디틀레우센은작가이자비평가인비고F.묄레르와만나면서그간염원하던문학계로진출했다.1939년첫번째시집인『소녀의마음』을출간한뒤로시집과소설을꾸준히내놓았으며,1950년대에는동화를,1960년대부터는에세이를여러권발표했다.
디틀레우센의작품들은생전에덴마크내에서는많은사랑을받았으나,그를해외에알린작품은사후인1985년에미국에서출간된두권의회고록『어린시절』(1967)과『청춘』(1967)이었다(그뒤의이야기를담은『의존』(1971)은2019년에야영어로번역되었다).특히미국의여성주의작가이자활동가로명망이높았던틸리올슨은이회고록을접한뒤디틀레우센을해당세대에서가장중요한작가중한명으로꼽았다.당시만해도구세대적인작가로여겨지던디틀레우센은이후본격적인재평가를받았고,인간내면의불안을관찰하는데있어독보적인능력을가진작가로자리매김했다.

역자:서제인
기자,편집자,작가등글을다루는다양한일을하다가번역을시작했다.거대하고유기체적인악기를조율하는일을닮은번역작업에매력을느낀다.옮긴책으로『잃어버린단어들의사전』,『노마드랜드』,『아파트먼트』,『아무도지켜보지않지만모두가공연을한다』가있다.

목차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출판사 서평

어른이된다는것은
욕망을거래할수있다는뜻이다

1부『어린시절』에이은2부『청춘』은중학교를졸업하고사회로나온디틀레우센의모습을담고있다.가난한여성노동자인그에게주어진선택지는단순했다.벌이가적은직업을전전하거나결혼해서전업주부가되는것이었다.디틀레우센은두선택지를모두거부할방법을찾아내려애쓰고,특히어린시절부터꿈에그리던시인이될방법을찾기위해분투한다.

아련한향수로가득한1부와섬뜩하리만치냉정한3부사이에서연결고리역할을하는『청춘』은두작품의특성을적절히나눠갖고있다.채스무살이되기전에사회에나오면서세상으로부터주어진삶을억지로살아야했던디틀레우센은단순노동직을전전하면서도문학이라는꿈을포기하지않지만,그꿈을이루기위한삶의지침을냉정한세상에게서배우게된다.그중가장중요한지침은다음과같다.모든인간은서로에게원하는바가있으며,내가그에게서무언가를얻으려면나도그가욕망하는것을주어야한다는것이다.냉정함과뜨거운욕망이함께들끓는세상을헤쳐가며시와사랑을찾아헤매는,이제스무살을향해다가가는이예비시인은숙명이나정의같은형이상학적인미덕보다는욕망의거래와정산에점점더익숙해지고있었다.그렇게그는점점시인에가까워지는동시에‘어린시절’로부터급격히멀어져갔다.

*‘코펜하겐3부작’소개
출간후50여년이지나
『뉴욕타임스』올해의책10선에선정된회고록

비극적인여성작가의삶.최근들어집중적으로조명받는이주제를다룬책은그만큼치열한경쟁과마주해야한다.이때는실비아플라스나버지니아울프처럼유명한작가의삶을그리거나사회의부조리에맞서는내용을담고있을수록주목받을가능성이높다.그러나그공식에거의부합하지않는토베디틀레우센의회고록‘코펜하겐3부작’은조용히사라지지않고오히려태풍처럼그틀을부수었다.덴마크바깥에는반세기가까이거의알려지지않았던작가가무려50여년전에쓴회고록이독자와비평가의압도적인찬사를얻은것이다.

정의正義에서벗어남으로써
정의定義에서탈출하다

1930년대부터1950년대까지,작가의유년기부터서른남짓까지를회고하는이3부작은엘레나페란테를연상시키는설정과아름다운문장으로시작한다.그러나그끝은노스탤지어로부터멀리벗어나있다.흔히애수와소회로채워지는회고록을특별한작품으로승화시킨비결은바로냉정함이다.그는어느타인보다더냉정하게,마치환부를관찰하는의사처럼스스로의결점들을관찰했고,그관찰결과에아무런판단도덧붙이지않았다.합리화도,자책도,원망도없다.심지어디틀레우센은단한번도자신이어떤존재인지자문하지않는다.회고를통한감정적인결론이존재하지않는것이다.이런특징은작가의고백이독자의공감이나연민으로이어지는회고록장르의심리적전통을파괴해버렸다.실로전위적인결과였다.

1985년에『어린시절』과『청춘』을통해처음으로디틀레우센을접한미국여성주의문학계는두작품의이러한특징을격찬했다.디틀레우센이‘불의를깨닫고정의를추구(해야)하는여성’이라는정치적프레임마저벗어던지고오류와불안에기꺼이노출된여성-인간을출현시켰기때문이었다.자신에게부여된정의와윤리로부터스스로의욕망을따라이탈하는것,이는파멸을부르는불의이면서더높은단계의해방이기도했다.당시미국여성주의운동을대표하는인물중한명이었던틸리올슨은디틀레우센의회고록에실린이런문제의식을파악하고그를당대에가장중요한작가중한명으로꼽기도했다.그리고이문제의식은그로부터30년이넘게지난오늘날의독자들에게도새로운숙제처럼다가온다.

또한이냉정함과초연함은특별한종류의온기도가져다준다.자기연민이없는디틀레우센은자신의불행을외부에투사하지않고,따라서적을만들지않기때문이다.그는심지어자신의조국을점령한독일군병사들조차미워하지않는다.시대와운명이그들을거기로이끌었을뿐이고,그것은모든인간에게주어진숙명가운데하나였던것이다.모든인간이자신에게주어진불공평한의무와욕망을짊어진채살아가야한다는사실을어릴때부터깨달았던디틀레우센은타인의과오와오류를자신의그것처럼조용히바라본다.손쉽게내편과상대편을가르지않고온인간이근본적으로같은결핍을지닌동족임을이해한것이다.회고록사상가장냉철한관찰자의내면에담긴이역설적인따뜻함은오래도록잊기어려운감흥을선사할것이다.

책속에서

그가말한다.“나한테그시들을보여주고싶어요?”내가그에게원하는게뭔지그가알아맞혔기에,나는얼굴을붉히면서어떻게알았느냐고묻는다.“아.”그가말한다.“시가아니면뭔가다른걸수도있었겠죠.사람들은늘서로에게서뭔가를원해요.그리고난당신이나를어딘가에이용하고싶어한다는걸내내알고있었어요.”
-37쪽

“네젊은남자친구는어떻게됐니?”한때학교선생님의장모가되는꿈을꾸었던어머니가묻는다.“다른사람이랑사귀어요.”내가대답한다.그러자성격상모든일에아주구체적인이유들을만들어붙여야만하는어머니는이렇게말한다.“너외모에신경좀더써야겠다.그놈의자전거대신에봄에입을정장을사야겠어.자연미인도아닌데조치를좀취해야하지않겠니.”어머니는내게상처를주려고이런말들을하는게아니다.어머니는그저다른사람들의내면에서무슨일이일어나는지에대해철저히무지할뿐이다.
-69~70쪽

“저,파혼했어요.”내가말한다.“잘했구나.”어머니가대답한다.“그사람은별로좋은남자가아니었어.”“아뇨,좋은남자였어요.”나는그렇게만말하고입을다문다.그의좋은점이무엇이었는지어머니에게설명하지못하겠다.“누구에게나뭔가좋은점은있어,알프리다.”이모가침대에누운채다정하게말한다.그리고어머니와나는이모가카를이모부를떠올리고있음을안다.
-140쪽

죽음은내가한때믿었던것처럼부드럽게잠드는일이아니다.그것은잔인하고추악하며역겨운냄새를내뿜는다.나는두팔로내몸을감싸안은채내가젊고건강하다는사실을만끽하며기쁨에젖는다.그렇지않다면내청춘은당장이라도없애버리고싶은하나의결함이자방해물에지나지않을테니까.
-151쪽

그는챙넓은녹색모자를들어그걸로우아하게호를그리더니,다시머리에쓰고는대로를빠르게걸어내려간다.나는거기서서내눈으로좇을수있는만큼그를지켜본다.그러면서문득생각한다.나는늘남자들과헤어지고있다고.그들의등을빤히쳐다보고,어둠속으로사라지는그들의발소리를듣는다고.그들이뒤를돌아보고내게손을흔드는일은좀처럼일어나지않는다.
-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