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 속의 유령 - 암실문고

목구멍 속의 유령 - 암실문고

$17.00
Description
문학과 삶, 집착과 탐구, 픽션과 논픽션
그 모든 경계를 타고 흐르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실화
2020년, 아일랜드에서 시인으로 명성을 쌓아 가던 데리언 니 그리파가 처음으로 발표한 산문 『목구멍 속의 유령』은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 글은 시인이자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작가 자신에 관한 에세이이자 200여 년 전에 단 한 편의 시를 남기고 사라진 여성 시인 아일린 더브에 관한 전기이다. 그리고 이 두 줄기는 서로 얽히면서 기묘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17세기 말에 죽은 남편의 피를 손바닥에 받아 마신 뒤 전설적인 시를 구술한 여성이 있다. 그리고 21세기 초에 (자신의 결정으로) 아이를 넷 낳고 가사 노동에 전념하며 스스로를 지워 가기를 택했던 여성이 있다. 한 편의 시가 이 둘을 연결하고, 그 연결에서 계시와 같은 예감을 얻은 오늘의 여성이 이 글을 썼다. 이 책이 때로 자전 소설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 계시의 열망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에게는 진실일 수밖에 없는 시적 비전vision이 현실을 수시로 물들이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감각과 판단의 왜곡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에세이는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 에세이라는 장르의 벽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숙명에 처하게 된다.

어떤 인물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는 구성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지만, 시인이 쓴 『목구멍 속의 유령』은 그 깨달음을 보다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안겨 주는 감동은 명쾌하기보다는 마치 어떤 징조처럼 뇌리를 맴돈다. 시의 형태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깨달음은 확고한 형태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이 ‘알게 된 것’과 ‘느낀 것’, ‘깨달은 것’은 무성히 피어난 덤불처럼 서로 뒤얽혀 있다. 시와 문학을 향한 열망이 여성의 몸과 출산에 관한 집요한 관찰과 뒤섞인다. 즉, 이 작품 속에서는 한 시인이 지금까지 열망해 왔던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다. 여기서 삶과 시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선정 및 수상내역
*아이리시 북 어워드 수상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 수상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 최종 후보
*가디언, 뉴욕 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NPR 등 해외 주요 매체 선정 올해의 책

저자

데리언니그리파

1981년아일랜드골웨이출생.아일랜드어와영어를함께구사하는이중언어작가다.2011년에첫시집『주소Resheoid』를출간한뒤2023년까지여섯권의시집을출간하며중견작가로자리잡았다.2020년에는첫산문『목구멍속의유령』을출간했다.이작품은아이리시북어워드와제임스테이트블랙기념상을비롯한여러문학상을받았으며,이후미국과독일등각국에소개되면서국제적인호평을얻었다.

목차


여성의텍스트
액체로된메아리
다른숨쉴곳을찾아
유축실에서
비과학적인뒤죽박죽
해부실
차가운입술을차가운입술에
지하감옥
진흙속의피
제각기흐릿해진두개의길
방울.방울.
전조-비행기와찌르레기
표면을갈라지게하는것
지금,그때
일련의그림자들
야생벌들과벌들의부글거리는호기심
흐릿해진가시금작화

부록
아트올리어리를위한애가
thekeenforartolaoghaire
caoineadhairtuilaoghaire
감사의말
참고도서

출판사 서평

어느시인의열망과불안에서시작된
기이하고아름다운깨달음

시인이자네아이의엄마이기도한니그리파는육아와가사노동에몰두한다.시는가족모두가잠든새벽에쓴다.여기까지만보면가족이라는의무에짓눌린여성의불공평한희생에관한이야기같지만,그기조는금방달라진다.이시인이자신에게부과된가사노동을사랑하고있음이밝혀지기때문이다.심지어그는아이를더낳고싶어하고,모유수유를할수있는한오래이어가고싶어한다.

그렇다면이작품은가부장적인가족논리를옹호하는이야기일까.그렇지않다.이이야기는그런단순한이분법을훌쩍뛰어넘는다.니그리파는문학과역사를공부하면서남성위주의세계관에반기를들수밖에없었던사람이다.그런그가가족의수를늘려가고그들모두를위해자신을내어주는건그자신도알수없는열망때문이다.다른존재를위해스스로를희생하려는이열망은어린시절부터그를사로잡아온수수께끼였다.출처를알수없는그열망이그를사로잡기시작하면,그는희생이선사하는기묘한행복에빠져벗어나지못한다.이것은무척흥미로운소재다.창작과관련된인물의정신적고뇌는주로고립혹은고독과연관되어있지만,니그리파는관계와희생을향한열망이라는희귀한욕망을드러낸다.

한편,니그리파가17세기의시인아일린더브를열성적으로파고든계기역시충동적이다.특히그가역사속에서사라진아일린더브의흔적을찾아내기위해몇년간이나노력했다는점을생각해보면,‘여성이자엄마이자시인이라는동질감’이라는최초의동기는무척빈약해보인다.사실여기에는더큰동기가숨겨져있다.니그리파는이탐구의과정과결말속에자기삶에관한힌트가있을지도모른다고여긴다.어떤대상이나욕망에충동적으로끌려드는자기내면에관한단서를얻을지도모른다고생각한것이다.그는평생에걸쳐마주해야할숙제와비로소정면으로맞닥뜨린것이다.

『목구멍속의유령』에등장하는두시인은자신에게걸맞은자리를찾아가려한다.여자라는이유로역사속에서사라져버린아일린더브는그명성에걸맞은곳으로올라서야하며,통제할수없는열망때문에자신이사랑하는사람들에게압박감을안겨주었던니그리파는그열망을길들여야한다.『목구멍속의유령』은그힘겹지만포기할수없는여정에관한기록이다.이여정이마지막페이지에다다르는순간,독자역시픽션과논픽션의경계를무너뜨려버린‘시(인)의삶’과마주하게될것이다.

책속에서

이것은여성의텍스트,다른누군가의옷을개는동안에쓰였다.내심장이이것을단단히품으면,이것은내두손이자질구레한일들을수없이수행하는동안부드럽게,천천히자라난다.이것은여성의텍스트,죄책감과욕망에서태어나어린이용애니메이션사운드트랙에꿰매진텍스트다.이것은여성의텍스트,존재하는것조차작은기적인텍스트다.이것이활자라는평범한경이를만나또다른의식까지들어올려진지금이순간처럼.
---p.10

만약하루하루가글자들로가득한페이지라면나는거기적힌글자들을문질러닦으며내시간을보내는셈이다.그속에서내노동은내존재를지우는행위가된다.
---p.47

나는내가아일린더브의작품에서가장소중하게여기는요소가어디에있는지알게되었다.(…)내가좋아하는그요소는텍스트너머에서,연과연사이의공백에서,번역할수없는곳에서맴돌았다.그공백에난계단위에서면한여자의숨결을,여전히남아있는그숨결을느낄수있다.나는그숨결을느낄때마다어째서일까하고생각한다.어째서일까,그숨을쉬었던몸은이미다른숨쉴곳을찾아서둘러달려나간지오래인데도.
---pp.57~58

결국‘텍스트’라는단어의어원은‘엮다,녹이다,땋다’를뜻하는라틴어동사‘텍세레texere’다.『아트올리어리를위한애가』의형식은여성에의해쓰이고엮인문학장르에속하며,따라서그시는여성의몸에담겨전해지는여성의목소리가닥들을서로얽어놓고있다.내가보기에그런독특한형태는경이롭고감탄할만한것일뿐,원작자를의심해야할사안으로보이지는않는다.
---pp.98~99

딸아이가태어나면바다이름을따서붙이고싶다고언제나생각했지만,분만실바깥의기다란형광전구들아래누워있는동안생각이바뀌었다.나는빛이라는뜻의이름을충동적으로골랐는데,이유는기억나지않는다.이제내가커튼을열어젖힐때마다내목소리는그애의꿈속멀리까지나아가며그애를부른다.빛아,빛아.
---p.170

나는왼쪽유방속에암모나이트화석처럼멋지면서각각이하나의단서에해당하는두개의덩어리를지니고있다.내몸이해부실에눕혀지고나면,어떤학생은내문신과제왕절개흉터,혹은부러진앞니를읽어내는것만큼이나쉽게이텍스트들을읽어낼지도모른다.그학생은그덩어리들을일종의흔적으로해석할지도모른다.내가다른사람들의몸속으로흘려보냈던그많은모유가남긴흔적.나는그덩어리들을쉼표라고여긴다.마침표에좀더가깝게느껴지기는하지만말이다.내모유의나날들이꿈도꿀수없을만큼멀게느껴지기시작한다.아무래도그런날들에다시가닿을수는없을것만같다.(...)하지만그렇게되진않을것이다.내가그렇게놓아두지않을테니까.나는혼자서되뇐다.어떤일이벌어지더라도언제나나의기념품을,진주와마노로만들어져내가슴속에단단히박힌이내밀한브로치를간직하고있을거라고.결함이든장식이든,이것은여성의텍스트이고,나는그것을내심장가까이에지니고다닌다.
---pp.298~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