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바다 - 암실문고

사랑 바다 - 암실문고

$20.00
Description
『세상의 모든 아침』과 『음악 혐오』를 한데 모은 듯한,
파스칼 키냐르 소설 세계의 총화
『세상의 모든 아침』이나 『로마의 테라스』처럼 파스칼 키냐르가 쓴 시대극은 잠잠히 잦아든 영혼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불타 버린 들판에 새로 난 싹들 같다. 극적인 사건들이 몸과 마음을 다 태운 뒤에 그 자리에 새로 피어난 영혼들은 식물처럼 고요하고 그 풀을 먹고 사는 초식 동물처럼 예민하다.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언어보다 자연과 감각에서 오는 자극에 더 민감한 사람들이다. 말이 아닌 소리를 더 사랑하고 글이 아닌 이미지를 더 깊이 받아들이는 인물들.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세상의 중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 이들이 키냐르 소설 세계의 주축을 이룬다.

『사랑 바다』가 키냐르 소설 세계의 총화인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주축들을 반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7세기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 속에는 작가가 기존에 창조 혹은 재창조했던 인물들이 다시금 등장한다. 바로 『세상의 모든 아침』의 주인공 생트 콜롱브와 『로마의 테라스』의 주인공 조프루아 몸므다. 『사랑 바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랑베르 하튼은 이들로부터 이어지는 기존의 키냐르적 인물관을 계승한다. 그들은 권력과 불화하며 고독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끝없이 이어 나간다. 류트가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현실을 한탄하며 잠도 자지 않고 서른여섯 시간 동안 류트 즉흥 연주를 펼치는 늙은 명인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이 작곡한 모든 악보를 불태우는 작곡가. 그들은 음악이며 죽음이다.

그러나 『사랑 바다』에는 그와 대조되는 존재들도 등장한다. 육체성을 사랑하고 세상을 감각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흥미롭게도 이 계열을 대표하는 인물 두 명 중 한 명은 세상에 등을 돌린 작곡가 생트 콜롱브의 여성 제자 튈린이며, 나머지 한 명은 마찬가지로 세상을 등진 판화가 조프루아 몸므의 아내 마리다. 세상과 불화하는 두 남성과 이어진 이 두 여성은 육체와 정신 모두 강렬한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수수께끼 같은 불행 속에서도 자기 삶을 온전히 소유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튈린과 마리를 사랑하게 된 남자들은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계속 샘솟을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이들은 사랑이며 바다다. 특히 음악가로서 예술과 소멸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간 튈린은 키냐르의 ‘고독한 예술가’ 캐릭터와 ‘욕망하는’ 캐릭터가 한데 합쳐진 초유의 인물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키냐르의 소설 세계 전체를 한 몸에 체현한 자다.

그런가 하면 튈린과 닮은 남성 인물도 있다. 실존하는 작곡가인 야콥 프로베르거는 자신의 욕망을 열렬히 탐닉한다. 그런데 그의 제자인 여성 지빌라 공녀는 누구보다 금욕적인 삶을 산다. 기존의 키냐르풍 예술가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프로베르거와 지빌라’는 ‘생트 콜롱브와 튈린’과 정확히 반대로 전개되는 ‘거울 선율’이다. 서로를 비추는 이 거울 선율들은 바로크 푸가 음악처럼 아름다운 대조를 이룬다. 이 대조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며, 그 두 이미지는 하나의 형언할 수 없는 실체를 비추는 서로 다른 상일 뿐이다. 따라서 『사랑 바다』를 쓴 키냐르는 욕망하기와 욕망하지 않기의 구별을 지운다. 『사랑 바다』를 쓴 키냐르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라거나 도피하지 말고 욕망하라는 단순한 메시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도피와 욕망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계 자체를 조망하기에 이르렀다. 죽음은 정해져 있고, 생의 정답은 어디에도 없으며, 다들 타고난 운명을 받아 든 뒤 그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할 뿐이다.

17세기 예술가들의 기구한 삶을 통해 바라보는
이 덧없고도 아름다운 세계에 관한 소설

이 모든 과정을 담은 『사랑 바다』의 구조 자체도 탄생과 죽음을 재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조차 할 수 없는데, 이는 의도적인 연출이다. 소설이 시작할 때, 이들은 마치 막 태어난 아이와 같다. 그들에 관한 정보가 조금씩 추가되며 각각의 캐릭터-인격을 구축해 나가고, 그렇게 그들을 둘러싼 삶의 윤곽을 대략 이해하게 될 때쯤 죽음이 다가온다. 소설 속 여러 인물의 죽음은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면서 영원히 이어지는 음악 같다. 물론 삶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음과 삶이 서로를 마주 보며 끝없이 빚어 가는 이 이중주는 오래된 수수께끼처럼 아름답다. 이 불변하는 아름다움이야말로 키냐르가 평생 탐구해 왔던 주제가 아닐까. 이전 어느 때보다 도피하기와 열망하기의 균형을 완벽히 맞춘 『사랑 바다』는 그 열정적인 탐구 활동이 다다른 작은 경지인 듯하다.

저자

파스칼키냐르

저자:파스칼키냐르
1948년노르망디태생.음악가인아버지와언어학자인어머니의영향을받아어릴때부터다양한악기와여러언어를익혔다.유년기에두차례자폐증을앓았다.1968년에마뉘엘레비나스의문하에서철학을공부했다.68혁명과그쇠락을모두경험했다.갈리마르출판사의기획위원과작가생활을겸하다가1994년부터집필에만전념했다.음악과미술등다양한예술을소재삼아새로운사고를창출하는작업에특히뛰어나다.2002년『떠도는그림자들』로공쿠르상을수상했으며,그외에『세상의모든아침』,『은밀한생』,『음악혐오』,『하룻낮의행복』등많은작품을발표했다.

역자:백선희
프랑스어전문번역가.덕성여자대학교불어불문학과를졸업하고프랑스그르노블제3대학에서문학석사와박사과정을마쳤다.로맹가리,밀란쿤데라,피에르바야르,리디살베르,로제그르니에,파스칼키냐르등프랑스어로글을쓰는주요작가들의작품을우리말로옮겼다.옮긴책으로『사랑을재발명하라』,『노숙인생』,『파스칼키냐르의수사학』,『뒤라스의그곳들』,『호메로스와함께하는여름』,『웃음과망각의책』,『마법사들』,『햄릿을수사한다』,『흰개』,『울지않기』,『하늘의뿌리』,『내삶의의미』,『책의맛』,『폴발레리의문장들』,『식물의은밀한감정』등이있다.

목차

1.첫번째이야기
2.초록융단
3.음악가들의삶
4.노래
5.사랑
6.마르마라해
7.숲
8.강하구
9.폭풍우
10.얼음덩이
11.내포
12.침묵
13.산길
14.방파제

출판사 서평

『세상의모든아침』과『음악혐오』를한데모은듯한,
파스칼키냐르소설세계의총화

17세기예술가들의기구한삶을통해바라보는
이덧없고도아름다운세계에관한소설

파스칼키냐르가쓴시대극은잠잠히잦아든영혼들로채워져있다.그들은불타버린들판에새로난싹들같다.극적인사건들이몸과마음을다태운뒤에그자리에새로피어난영혼들은식물처럼고요하고그풀을먹고사는초식동물처럼예민하다.이들은사람들사이에서통용되는언어보다자연과감각에서오는자극에더민감한사람들이다.이들이키냐르소설세계의주축을이룬다.

특히17세기음악가들을중심으로펼쳐지는이작품속에는작가가기존에창조혹은재창조했던인물들이다시금등장한다.바로『세상의모든아침』의주인공생트콜롱브와『로마의테라스』의주인공조프루아몸므다.『사랑바다』의주인공중한명인랑베르하튼은이들로부터이어지는기존의키냐르적인물관을계승한다.그들은권력과불화하며자신의예술을끝없이이어나간다.그러나『사랑바다』에는그와대조되는존재들도등장한다.육체성을사랑하고세상을감각하기를즐기는사람들이다.흥미롭게도이계열을대표하는인물두명중한명은세상에서등을돌린작곡가생트콜롱브의여성제자튈린이며,나머지한명은마찬가지로세상을등진판화가조프루아몸므의아내마리다.세상과불화하는두남성과이어진이두여성은육체와정신모두강렬한에너지로채워져있다.

그런가하면튈린과닮은남성인물도있다.실존하는작곡가인야콥프로베르거는자신의욕망을열렬히탐닉한다.그런데그의제자인여성지빌라공녀는누구보다금욕적인삶을산다.기존의키냐르풍예술가범주에속하는것이다.다시말해‘프로베르거와지빌라’는‘생트콜롱브와튈린’과정확히반대로전개되는‘거울선율’이다.서로를비추는이거울선율들은바로크푸가음악처럼아름다운대조를이룬다.이대조속에서는서로가서로의거울이며,그두이미지는하나의형언할수없는실체를비추는서로다른상일뿐이다.따라서『사랑바다』를쓴키냐르는욕망하기와욕망하지않기의구별을지운다.세상으로부터도피하라거나도피하지말고욕망하라는단순한메시지에머물지않는다.키냐르는이소설을통해도피와욕망이수레바퀴처럼돌아가는세계자체를조망하기에이르렀다.

『세상의모든아침』과『음악혐오』를한데모은듯한,
파스칼키냐르소설세계의총화

『세상의모든아침』이나『로마의테라스』처럼파스칼키냐르가쓴시대극은잠잠히잦아든영혼들로채워져있다.그들은불타버린들판에새로난싹들같다.극적인사건들이몸과마음을다태운뒤에그자리에새로피어난영혼들은식물처럼고요하고그풀을먹고사는초식동물처럼예민하다.이들은사람들사이에서통용되는언어보다자연과감각에서오는자극에더민감한사람들이다.말이아닌소리를더사랑하고글이아닌이미지를더깊이받아들이는인물들.다른사람들로부터떨어져세상의중심에더가까이다가가는사람들.이들이키냐르소설세계의주축을이룬다.

『사랑바다』가키냐르소설세계의총화인이유중하나는이러한주축들을반복해확인할수있기때문이다.특히17세기음악가들을중심으로펼쳐지는이작품속에는작가가기존에창조혹은재창조했던인물들이다시금등장한다.바로『세상의모든아침』의주인공생트콜롱브와『로마의테라스』의주인공조프루아몸므다.『사랑바다』의주인공중한명인랑베르하튼은이들로부터이어지는기존의키냐르적인물관을계승한다.그들은권력과불화하며고독속에서자신의예술을끝없이이어나간다.류트가세상에서사라져가는현실을한탄하며잠도자지않고서른여섯시간동안류트즉흥연주를펼치는늙은명인들.생을마감하기전에자신이작곡한모든악보를불태우는작곡가.그들은음악이며죽음이다.

그러나『사랑바다』에는그와대조되는존재들도등장한다.육체성을사랑하고세상을감각하기를즐기는사람들이다.흥미롭게도이계열을대표하는인물두명중한명은세상에등을돌린작곡가생트콜롱브의여성제자튈린이며,나머지한명은마찬가지로세상을등진판화가조프루아몸므의아내마리다.세상과불화하는두남성과이어진이두여성은육체와정신모두강렬한에너지로채워져있다.수수께끼같은불행속에서도자기삶을온전히소유하기를포기하지않는튈린과마리를사랑하게된남자들은그들의사랑이어떻게계속샘솟을수있는지궁금해한다.이들은사랑이며바다다.특히음악가로서예술과소멸의세계에가까이다가간튈린은키냐르의‘고독한예술가’캐릭터와‘욕망하는’캐릭터가한데합쳐진초유의인물이다.다시말해그녀는키냐르의소설세계전체를한몸에체현한자다.

그런가하면튈린과닮은남성인물도있다.실존하는작곡가인야콥프로베르거는자신의욕망을열렬히탐닉한다.그런데그의제자인여성지빌라공녀는누구보다금욕적인삶을산다.기존의키냐르풍예술가범주에속하는것이다.다시말해‘프로베르거와지빌라’는‘생트콜롱브와튈린’과정확히반대로전개되는‘거울선율’이다.서로를비추는이거울선율들은바로크푸가음악처럼아름다운대조를이룬다.이대조속에서는서로가서로의거울이며,그두이미지는하나의형언할수없는실체를비추는서로다른상일뿐이다.따라서『사랑바다』를쓴키냐르는욕망하기와욕망하지않기의구별을지운다.『사랑바다』를쓴키냐르는세상으로부터도피하라거나도피하지말고욕망하라는단순한메시지에머물지않는다.그는도피와욕망이수레바퀴처럼돌아가는세계자체를조망하기에이르렀다.죽음은정해져있고,생의정답은어디에도없으며,다들타고난운명을받아든뒤그길을따라최선을다할뿐이다.

17세기예술가들의기구한삶을통해바라보는
이덧없고도아름다운세계에관한소설

이모든과정을담은『사랑바다』의구조자체도탄생과죽음을재현하고있다.처음에는등장인물들에대한정보가부족해서누가누구인지제대로확인조차할수없는데,이는의도적인연출이다.소설이시작할때,이들은마치막태어난아이와같다.그들에관한정보가조금씩추가되며각각의캐릭터-인격을구축해나가고,그렇게그들을둘러싼삶의윤곽을대략이해하게될때쯤죽음이다가온다.소설속여러인물의죽음은다른방식으로변주되면서영원히이어지는음악같다.물론삶역시마찬가지일것이다.죽음과삶이서로를마주보며끝없이빚어가는이이중주는오래된수수께끼처럼아름답다.이불변하는아름다움이야말로키냐르가평생탐구해왔던주제가아닐까.이전어느때보다도피하기와열망하기의균형을완벽히맞춘『사랑바다』는그열정적인탐구활동이다다른작은경지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