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를 입은 비너스

모피를 입은 비너스

$15.00
Description
인간의 욕망과 권력 역학을 대담하게 탐구한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문제작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출간되었다. 1870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당대의 금기를 넘어서는 파격적인 소재로 문학사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으며, 작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마조히즘’이라는 용어가 정신의학 어휘로 편입될 만큼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제국의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인간 심리의 복잡한 층위와 사회적 권력 구조를 탐구하는 철학적 깊이를 지닌 문학적 성취다.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부터 질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의 이론적 논의를 촉발한 이 작품을 통해 욕망과 복종,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만날 수 있다.

근대 성심리학의 출발점이 된 문학적 사건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정신의학과 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독특한 작품이다. 젊은 귀족 제베린은 우연히 만난 과부 반다에게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고백한다. 그는 모피를 두른 여신 같은 여인의 노예가 되어 채찍질당하고 굴욕당하기를 갈망한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반다는 점차 지배자의 역할에 빠져들고, 두 사람은 주인과 노예라는 관계를 명문화한 계약서까지 작성한다. 이들은 이탈리아로 떠나 환상을 현실로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며 역할극은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치달아간다.
자허마조흐의 작품은 1886년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이 『성의 병리학』에서 여러 사례의 성도착증을 정리하며 ‘마조히즘’이라는 용어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세기 중반 질 들뢰즈는 『마조히즘』이라는 획기적인 연구를 통해 마조히즘이 사디즘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밝혔다. 들뢰즈는 마조히즘이 단순히 고통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계약과 규칙, 과정을 통해 고통을 통제하는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현상임을 논증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채찍, 모피, 계약서 등의 상징들로 가득하지만, 이러한 장치들은 궁극적으로 권력 관계의 전복과 재구성을 다루는 문학적 실험이다.
자허마조흐 자신의 삶 역시 작품 못지않게 극적이었다. 소설 속 반다는 작가의 연인이었던 파니 폰 피스토르를 모델로 한 인물이며, 자허마조흐는 실제로 작품 속 제베린처럼 그녀와 주종 관계를 명문화한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에 그의 아내가 된 반다 폰 자허마조흐는 1907년 남편 사후 회고록을 출간해 그들의 기이한 결혼 생활을 폭로했다. 이처럼 작품과 현실이 뒤엉킨 자허마조흐의 삶은 문학과 인생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권력과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진정한 가치는 남녀 간 권력 역학에 대한 예리한 통찰에 있다. 소설은 꿈의 틀 구조로 시작되는데, 화자가 모피를 두른 비너스 여신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비너스 조각상에 대한 숭배는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모티프로, 남성이 여성의 신성한 아름다움 앞에서 스스로를 복속시키는 이교적 숭배 행위를 상징한다.
제베린의 욕망은 단순한 성적 일탈이 아니라 당대 사회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읽을 수 있다. 자허마조흐는 남성 특권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려는 혁명적 시도를 감행했다. 19세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절대적 지배와 남성의 완전한 복종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전복적이었다. 흥미롭게도 반다 역시 제베린의 환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변화한다. 처음에는 제베린의 욕망에 당혹스러워하던 반다는 점차 지배자의 역할이 주는 쾌감에 눈을 뜨게 된다.
작품은 남녀 권력 역학뿐 아니라 마조히즘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반다는 19세기의 급속한 산업화가 성적 도착을 낳았을 수 있다고 추측하며, 마조히즘을 이교적 자연 상태로의 회귀 욕구로 해석한다. 이는 근대 문명이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왜곡한다는 낭만주의적 비판과 맞닿아 있다. 작품은 괴테, 슈토름, 호프만의 전통을 잇는 독일 노벨레의 정교한 액자 구조를 따르면서, 충격적인 내용을 고전적 형식 안에 담아냄으로써 당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

레오폴트폰자허마조흐

저자:레오폴트폰자허마조흐(LeopoldvonSacher-Masoch)
1836년오스트리아제국의먼변방,현재우크라이나지역에있는렘베르크(리비프)에서경찰국장의아들로태어났다.그라츠대학교에서법학,역사,수학을공부하여박사학위를받고,역사학교수자격논문에통과한뒤렘베르크대학교에서역사학교수로일했다.이후문학에대한열정으로작가생활에전념하면서주로갈리시아지방을무대로하여역사적테마를다루는작품들을썼다.민속적소재를다루는소설들은이국적이고긴장감넘치는작품들로평가받아독자들의많은사랑을받았다.
자허마조흐는하나의틀을가지고사랑,재산,국가,전쟁,죽음을테마로하여여섯권의책을쓰기로하고,거기에‘카인의유산’이라는제목을붙인다.이연작중첫작품이바로‘사랑’을테마로한『모피를입은비너스』(1870)이다.이작품은자허마조흐의극단적인감각주의를그려낸일종의자전적소설로,그의삶과문학전반을지배한피학적인성적취향을전형적으로보여준다.이작품으로인해그는도덕적으로많은비난을받았고,경제난에시달리며사회적몰락의길을걸었다.하지만1886년프랑스에서는훈장을받고『르피가로』의대대적인조명을받기도했다.
1891년독일헤센지방에칩거하기시작해1895년린트하임성에서세상을떠났다.위고,졸라,입센등의대문호들이경의를표했을정도로19세기독일사실주의와자연주의문학에많은영향을끼쳤으며,환상과서스펜스의면에서는독일낭만주의의면모를드러낸다.대표작으로『갈리시엔이야기』,『가짜모피』,『4세기간의사랑이야기』등이있다.

역자:김재혁
고려대학교독문학과를졸업하고쾰른대학교에서수학했다.고려대학교대학원에서릴케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독일튀빙겐대학방문교수를역임했다.1994년『현대시』로등단하였으며시집으로『내사는아름다운동굴에달이진다』,『아버지의도장』(세종도서우수교양도서),『딴생각』이있다.저서로『릴케와한국의시인들』(세종도서우수학술도서),『릴케의시적방랑과유럽여행』(세종도서우수교양도서),『서정시의미학』이있고『노래의책』(대산문화재단번역지원),『푸른꽃』,『넙치』,『베를린알렉산더광장』,『두이노의비가』,Gedankenspiele(한국문학번역원번역지원)외다수의번역서가있다.서정시학상을수상했다.고려대학교독문과교수를역임하고현재명예교수로재직하며핵심교양‘한국시속에살아있는독일문학’을강의하고있다.국제릴케학회정회원이다.

목차


모피를입은비너스
부록자허마조흐의두개의계약서


해설『모피를입은비너스』세계로의안내
판본소개
레오폴트폰자허마조흐연보
역자의말

출판사 서평

근대성심리학의출발점이된문학적사건

『모피를입은비너스』는정신의학과문학이교차하는지점에서탄생한독특한작품이다.젊은귀족제베린은우연히만난과부반다에게자신의은밀한욕망을고백한다.그는모피를두른여신같은여인의노예가되어채찍질당하고굴욕당하기를갈망한다.처음에는당황하던반다는점차지배자의역할에빠져들고,두사람은주인과노예라는관계를명문화한계약서까지작성한다.이들은이탈리아로떠나환상을현실로만들지만,시간이지나며역할극은통제불가능한방향으로치달아간다.
자허마조흐의작품은1886년리하르트폰크라프트에빙이『성의병리학』에서여러사례의성도착증을정리하며‘마조히즘’이라는용어를만드는계기가되었다.이후20세기중반질들뢰즈는『마조히즘』이라는획기적인연구를통해마조히즘이사디즘과는전혀다른독자적세계를구축하고있음을밝혔다.들뢰즈는마조히즘이단순히고통을즐기는것이아니라,계약과규칙,과정을통해고통을통제하는훨씬미묘하고복잡한현상임을논증했다.『모피를입은비너스』는채찍,모피,계약서등의상징들로가득하지만,이러한장치들은궁극적으로권력관계의전복과재구성을다루는문학적실험이다.
자허마조흐자신의삶역시작품못지않게극적이었다.소설속반다는작가의연인이었던파니폰피스토르를모델로한인물이며,자허마조흐는실제로작품속제베린처럼그녀와주종관계를명문화한계약을맺은것으로알려져있다.후에그의아내가된반다폰자허마조흐는1907년남편사후회고록을출간해그들의기이한결혼생활을폭로했다.이처럼작품과현실이뒤엉킨자허마조흐의삶은문학과인생의경계가얼마나모호할수있는지를보여준다.

권력과욕망에대한철학적성찰

『모피를입은비너스』의진정한가치는남녀간권력역학에대한예리한통찰에있다.소설은꿈의틀구조로시작되는데,화자가모피를두른비너스여신과대화를나누는장면은독자로하여금현실과환상의경계를의심하게만든다.비너스조각상에대한숭배는작품전반에걸쳐반복되는모티프로,남성이여성의신성한아름다움앞에서스스로를복속시키는이교적숭배행위를상징한다.
제베린의욕망은단순한성적일탈이아니라당대사회구조에대한도전으로읽을수있다.자허마조흐는남성특권이존재하지않는세계를상상하려는혁명적시도를감행했다.19세기가부장제사회에서여성의절대적지배와남성의완전한복종이라는설정은그자체로전복적이었다.흥미롭게도반다역시제베린의환상을실현하는과정에서변화한다.처음에는제베린의욕망에당혹스러워하던반다는점차지배자의역할이주는쾌감에눈을뜨게된다.
작품은남녀권력역학뿐아니라마조히즘의메커니즘에대해서도흥미로운관점을제시한다.반다는19세기의급속한산업화가성적도착을낳았을수있다고추측하며,마조히즘을이교적자연상태로의회귀욕구로해석한다.이는근대문명이인간의본성을억압하고왜곡한다는낭만주의적비판과맞닿아있다.작품은괴테,슈토름,호프만의전통을잇는독일노벨레의정교한액자구조를따르면서,충격적인내용을고전적형식안에담아냄으로써당대독자들에게큰반향을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