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프란체스코. 1

성자 프란체스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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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성자 프란체스코』. 성 프란체스코의 최초 동료 중 한 사람인 레오 형제의 관점을 빌려 자유롭게 재구성한 작품으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에게 헌정한 소설이기도 하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몸을 바친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그리고 있다.

카잔차키스는 성 프란체스코를 '중세의 마지막 영혼'이자 '르네상스 최초의 영혼'으로 보았다. 프란체스코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때는 당시의 보통 젊은이들처럼 부유한 상인이나 기사를 꿈꾸기도 했지만, 선천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의 일생은 여러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닮았다.

프란체스코는 형제회를 세울 때 가난에 아낌없이 자신을 투신하는 열두 동료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알베르나 산에서 오상(五傷)을 받아,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상으로서 이탈리아 중부 지방을 두루 돌아보았다. 그는 자신을 비우고 온전하게 하느님에게 마음을 바치곤 했다.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은 그것에 대한 사랑으로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며, 항상 나그네나 순례자처럼 살 것을 강조하였다. (제1권)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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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사망 50주기를 기리는 최초의 한국어판 전집「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카잔차키스는 두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집은 오랜 번역과 편집 작업을 거쳐 카잔차키스의 시, 소설, 희곡, 에세이 등 전 장르를 망라하였다. 또한 공간의 재배열을 통해 인간 존재와 그 내면을 탐구한 신예 작가 이혜승이 그린 표지화를 만날 수 있다.
저자

니코스카잔차키스

지은이니코스카잔차키스(NikosKazantzakis)
현대그리스문학을대표하는작가이자로불리는니코스카잔차키스는1883년크레타이라클리온에서태어났다.터키의지배하에서기독교인박해사건과독립전쟁을?겪으며어린시절을보낸그는이런경험으로부터동서양사이에위치한그리스의역사적사상적특이성을체감하고이를자유를찾으려는투쟁과연결시킨다.1908년파리로건너간그는베르그송과니체를접하면서인간의한계를극복하려는을부르짖게된다.
자유에대한갈망외에도카잔차키스의삶과작품에큰영향을준것은여행이었는데,1907년부터유럽과아시아지역을두루다녔고,이때쓴글을신문과잡지에연재했다가후에여행기로출간했다.1917년펠로폰네소스에서『그리스인조르바』의주인공이자실존인물인기오르고스조르바와함께탄광사업을했고,1919년베니젤로스총리를도와공공복지부장관으로일하기도했다.1922년베를린에서조국그리스가터키와의전쟁에서참패했다는소식을듣게된카잔차키스는민족주의를버리고공산주의적인행동주의와불교적인체념을조화시키려시도한다.이는이듬해부터집필을시작한『붓다』와대서사시『오디세이아』로구체화된다.이후에도특파원자격으로이탈리아,이집트,시나이,카프카스등지를여행하며다수의소설과희곡,여행기,논문,번역작품들을남겼다.대표작의하나인『미할리스대장』과『최후의유혹』은신성을모독했다는이유로교회로부터맹렬히비난받고1954년금서가되기도했다.카잔차키스는1955년앙티브에정착했다가중국정부의초청으로중국을다녀온뒤얼마안되어백혈병으로사망했다.두차례노벨문학상후보로지명되었고,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에비견될만큼위대한작가로추앙받고있다.
옮긴이김영신
1949년서울에서태어났다.서울대학교사범대학영어교육과를졸업하고한국외국어대학교통역대학원에서문학석사학위를받았으며,미국하와이대학교대학원에서수학했다.한국외국어대학교,한양대학교,서강대학교등에서강의를했으며,TV외화번역등전문번역가로활동해왔다.옮긴책으로는수잔올린의『난초도둑』외에,『마르크스』,『어려운대화』,『클릭이브속으로』,『클릭미래속으로』등이있다.
표지그림이혜승
홍익대학교회화과를졸업하고파리에콜드보자르에서수학했다.독특한화풍을선보이며각광받는신예로떠오른그는최근국내에서도전시회를가진바있다.이번카잔차키스전집에서는틀과벽처럼눈에보이는공간의재배열을통해눈에보이지않는인간의존재나그내면의흔적을찾아가는새로운탐구를시도하고있다.

목차

목차
-머리말
성자프란체스코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카잔차키스는성프란체스코를으로보았다.그러면서추악함과부정(否定)과불의로속속들이물든현대에서는알베르트슈바이처가성프란체스코와마찬가지로새로운르네상스의첫영혼이되길바랐다.
프란체스코는1180년대초에이탈리아움브리아지방의소도시아시시에서태어났다.포목상을하는부유한상인이었던아버지와프랑스출신어머니의유복한가정에서태어나한때는값비싼옷을즐겨입고친구들과파티를즐기며당시의보통젊은이들처럼부유한상인이나기사가되는포부를지니기도했지만선천적으로가난한이들에게관심이많...
카잔차키스는성프란체스코를으로보았다.그러면서추악함과부정(否定)과불의로속속들이물든현대에서는알베르트슈바이처가성프란체스코와마찬가지로새로운르네상스의첫영혼이되길바랐다.
프란체스코는1180년대초에이탈리아움브리아지방의소도시아시시에서태어났다.포목상을하는부유한상인이었던아버지와프랑스출신어머니의유복한가정에서태어나한때는값비싼옷을즐겨입고친구들과파티를즐기며당시의보통젊은이들처럼부유한상인이나기사가되는포부를지니기도했지만선천적으로가난한이들에게관심이많았던것으로전해지고있다.
성프란체스코는그일생이모든점에서예수그리스도와닮았다는것을알수있다.그리스도가전교(傳敎)를시작할때열두사도를불러세속의모든것을멸시하고가난과고행속에자신을따르라한것과같이,프란체스코가형제회를세울때에도지극히고귀한가난에아낌없이자신을투신하는열두동료를선택했다.그리고1224년9월알베르나산에서오상(五傷)을받았다.이제십자가에못박힌그리스도의살아있는상(像)이된그는심한고통에도불구하고이탈리아중부지방을두루돌아다녔으며,가는곳마다성인으로칭송을받았다.그는항상기뻐즐거워하며,자신을온전히비우고구세주의오상속에한적한곳을찾아오랫동안머무르며온전하게하느님께마음을바치곤했다.
1226년봄그는자신이죽어가고있음을느끼고마지막으로간곡한유언을받아쓰게했다.그는모든형제들이그들가운데서는사랑을,가난부인에게는충실을,교회의성직자들에게는존경과순종을실천하라고당부한뒤그들을축복했다.그는초창기의완전한가난,단순,겸손을회상하며특히육체노동에대한기쁨을잊지않았고,모든형제들이어떤일에든종사하도록하고일할줄모르는형제들은일을배우도록가르쳤다.동냥은일의보수가충분치못할때마지막수단으로해야하며애긍을청함에있어서도필요이상으로청하거나이용하지않도록가르쳤다.다른불쌍한사람들이그들의몫을빼앗기지않도록언제나필요한것보다더적게받도록했다.그렇지않다면그것은절도행위라고말하곤했다.그에게있어서가난은구원의특별한방법이며,겸손의근원이며,모든완전함의뿌리이며,결실은보이지않으나풍성한밭에감추어진보물과같은것이었다.그는얻을수없는것은그것에대한사랑으로포기해야하며항상〈나그네나순례자〉같이살것을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