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의 한국 병합 구상과 조선 사회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 병합 구상과 조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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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본에 강제 병합되었는지 밝혀낸 책. 일본의 대표적 진보 사학자 오가와라 히로유키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주도한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한국 병합을 둘러싸고 복수의 구상이 있었으며, 조선 사회의 동향에 따라 이 구상들의 판도가 크게 변화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병합 구상을 중심에 놓고, 국제 정세와 조선 사회와의 길항 관계 속에서 일본의 대한 정책이 어떤 변화를 거쳐 실제 병합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

오가와라히로유키

저자오가와라히로유키는1971년일본나가노현에서태어났다.2008년메이지대학대학원문학연구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전공은근대조일관계사.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와지바대학교에서비상근강사를?했으며,현재는교토도시샤대학교언어문화교육센터의조교수이다.논문으로「이토히로부미의한국병합구상과제3차한일협약체제의형성」,「일진회의한일합방청원운동과한국병합」,「러일전쟁기일본의대한정책과조선사회」,「이토히로부미의한국통치와조선사회」등이있다.

목차

목차
한국의독자들에게
서장
이책의과제:한국병합구상의재검토
분석시각:제국주의연구로서한국병합사ㆍ조일관계사의과제
국제관계사연구에서민중사적시각의도입
일본과조선에서왕권관의위상
제1장러일전쟁과조선식민지화의전개
들어가며
조선의근대국가구상과왕권관
러일전쟁중일본의조선식민지화정책
한국보호정책구상의대립:통감의군대지휘권문제를단서로
소결론
제2장이토히로부미의한국병합구상과제3차한일협약체제
들어가며
황제권축소와제3차「한일협약」체결
제3차한일협약체제의성립과이토히로부미의한국병합구상
소결론
제3장이토히로부미의병합구상좌절과조선사회의동향
들어가며
제3차한일협약체제의전개와좌절:한국사법제도개혁의전개과정을사례로
소결론
통감이토히로부미의민심귀속책과조선의정치문화:황제의남북순행을둘러싸고
소결론
제4장병합론의상극
들어가며
이토히로부미의통감사임과한국병합을둘러싼일본정부의동향
론의봉쇄:일진회이용구의구상과천황제국가원리와의상극
소결론
제5장한국병합
들어가며
한국병합계획의개시
한국병합단행
소결론
종장
맺으며
과제와전망:식민지연구의자립적전개를위해서
후기
찾아보기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내가이책을집필할때가지고있었던일차적관심은
한국병합으로상징되는식민지지배를의식적혹은무의식적으로합리화해
버릴지도모르는일본의역사인식을실증적작업을축적해나가면?서
어떻게해체할것인가에있었다.
일본의대표적진보사학자가밝혀낸한국강제병합의전말
한국은어떤과정을거쳐일본에강제병합되기에이르렀는가?일본의대표적진보사학자오가와라히로유키는이책『이토히로부미의한국병합구상과조선사회』에서일본의식민지정책을주도한정치지도자들사이에는한국병합을...
내가이책을집필할때가지고있었던일차적관심은
한국병합으로상징되는식민지지배를의식적혹은무의식적으로합리화해
버릴지도모르는일본의역사인식을실증적작업을축적해나가면서
어떻게해체할것인가에있었다.
일본의대표적진보사학자가밝혀낸한국강제병합의전말
한국은어떤과정을거쳐일본에강제병합되기에이르렀는가?일본의대표적진보사학자오가와라히로유키는이책『이토히로부미의한국병합구상과조선사회』에서일본의식민지정책을주도한정치지도자들사이에는한국병합을둘러싸고복수의구상이있었으며,조선사회의동향에따라이구상들의판도가크게변화했다고본다.이러한관점에서저자오가와라는초대통감이었던이토히로부미의병합구상을중심에놓고,국제정세와조선사회와의길항관계속에서일본의대한정책이어떤변화를거쳐실제병합에이르게되었는지를동태적으로분석하고있다.
한국어판서문에서,저자오가와라히로유키는자신은식민지지배를합리화하는일본의역사인식을해체하려는의도를가지고있으며,20세기초제국주의국가로서일본이한반도에서벌인역사적사실을일본인들에게알리는것이자신의책무라고밝히고있다.최근활발하게벌어지고있는한일간문화교류에도불구하고,역사문제만나오면서로에게본능적인거부감을드러낼만큼양국의역사인식에는뛰어넘기힘든엄청난간극이가로놓여있다.오가와라는이러한역사인식의간극을매우지않는한,한일양국국민사이의화해는거의불가능하다고본다.
이책은한국독자를염두에두고쓰인것이아니다.오가와라는일본독자,그것도일본사연구자를주요독자로상정하고쓴글이기때문에한국의독자들이이책의내용에어떤반응을보일지불안감을감추지못하겠다고말하며한국독자들이혹시가질지도모를위화감을우려한다.역사학자로서한일양국의역사인식에놓인틈을메우고자하는바람을피력하면서도,거기에는뛰어넘기힘든간극이자리하고있음을저자로서도의식하지않을수없었던것이다.
분명,일본에의한강제병합과정에서이토히로부미의대한정책구상은상대적으로온건했다고보는기존일본역사학계의판단과그를일제강점의원흉혹은주역으로기억하는한국국민의인식사이에는심연과도같이깊은간극이가로놓여있다.2010년5월10일서울과도쿄에서동시에발표된「한국병합100년에즈음한한일지식인공동성명」은연구의현재적의미에대해이렇게말하고있다.그런점에서조선사회의동향을중심에놓고일본의한국병합과정을재검토하는이책의한국어판출간의의는실로크다고할수있다.

이토히로부미의한국병합구상과제3차한일협약체제
일본은1905년11월에체결된제2차한일협약에따라한국을보호국으로만들게되자,1906년2월에통감부를설치했다.초대통감으로부임한이토는기본적으로점진주의를취하면서도정치적변혁의기회를노렸다.황제의권한을억제하고괴뢰정권구축을통해국가적종속관계를확고히마련하려한것이다.이토는조선식민지화를추진하면서제2차한일협약에의한외교권탈취에서한단계더진전시켜한국을속국으로만들려했는데,1907년6월에발생한헤이그밀사사건은그런생각을가진이토에게절호의기회를제공하였다.
이토는이사건을빌미로삼아한국황제고종을양위시키고,제3차「한일협약」과「한일협약규정실행에관한각서」로일본이한국내정에간섭할법적근거를획득하고,통감과통감부의식민지권력기구화를진전시켜나갔다.제3차「한일협약」으로행정지도권,입법승인권,인사동의권등통감의권한을강화하는한편,「한일협약규정실행에관한각서」에따라일본인이정권중추를장악할방책을얻었다.이른바다.이토는한국의주권을침탈하면서도한국황제의존속을추진하며일본의지도·감독에의해식민지재정독립을기조로하는한국의육성을기대하였다.
제3차「한일협약」은통감부의식민지기관화,일본인에의한한국정권중추의장악,황제권의제한과친일괴뢰정권을통한국가적종속관계의구축시도를특징으로한다.이러한제3차「한일협약」의역사적역할에주목하면,이협약을전후로한시기에성립한통치체제를제3차한일협약체제라고부를수있다.
제3차한일협약체제는이토의한국병합구상에기초한과도기적지배체제였다.그러한이토의병합구상은복합국가형식으로한국을일본에편입하는,더구체적으로는자치식민지형식으로한국을일본에편입하는것이었다.이토는그러한전제에입각해한국에대한식민지지배를실행했고,그런의미에서제3차한일협약체제는이토히로부미의한국병합론을그대로보여주는것이었다.
이토히로부미의한국병합구상의좌절과한국병합
통감부가추진한정책은광범위한저항운동을불러일으켰다.이에대해이토는제3차한일협약체제에기초하여근대화정책을추진하는한편,한국황제의권위를이용한민심수습책을추진해나갔다.이토는갑오개혁이후함양된적황제관에기초해조선민중을수습할수있다고보았기때문이다.그러나황제순행을통해의병의귀순등을꾀하려했던이토는도리어다양한형태로나타난의병과조선민중의반발에부딪히게되었다.사상이민중속에서확산되는가운데한국황제의권위를이용해한국을지배하려한이토의구상은일본에게양날의검이었다.황제순행은예상과달리민중의시원적내셔널리즘을이끌어냈다.사회를희구하는조선민중앞에서이토의의도는빗나갔고,이토는조선민중의자율적움직임에좌절을겪게되었다.유교적민본주의가뿌리깊고,적왕권관이확산되고있던조선사회에서황제권을이용한다는것은중개세력인일본과친일괴뢰정부에대한조선민중의투쟁을더욱치열하게만들여지가있었다.한국병합에중추적인역할을담당한외교관고무라주타로가한국병합안을작성하면서한국황제를정치적으로무력화해야만한다고판단한이유는바로여기에있다.
민심수습책이좌절된이후통치는물리적폭력으로일원화되어갔다.오가와라는이로써이토가성립시킨제3차한일협약체제가좌절되었다고본다.이러한관점에서오가와라는이토의통감사임과암살을대한정책의전기로파악하는종래의한국병합사연구에이의를제기한다.그러한견해는제3차한일협약체제하의식민지정책과조선사회사이의모순관계를동태적으로파악하지않고있다는것이다.즉종래의연구는조선사회의동향에대한이해를결여한체통치자측의시각과일본사의문맥에서만한국병합을이해하고있다는것이다.한국사의시각에서볼때제3차한일협약체제는본질적으로조선사회와관계를설정하는데실패한것이었다.
민심수습에실패하자,일본정부는이미러일전쟁중의병탄압과정에서보여주었듯이조선사회전체를치안유지의대상으로삼았다.란유교적민본주의라는조선사회의전통적질서관을부정하는가운데비로소성립하는관념이었다.오가와라는바로여기에한국병합후의가배태될계기가있었다고본다.일본정부는1909년말에일어난친일단체일진화의합방청원운동조차천황제지배원리에저촉될지모른다고우려하며아예공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