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스탈린에대한설득력있는방어
『스탈린의전쟁』은1939년제2차세계대전발발에서스탈린이사망한해인1953년냉전까지를다루고있으며,격동의시대에스탈린이어떻게상황을인식하고판단했는지를이해하는데초점을맞추고있다.제2차세계대전중소련,영국,미국의대연합에서소련이어떤역할을수행했는지를규명하는작업에서시작한이책은,대연합이어떻게출현하고발전했는지,소련이어떤역할을수행했으며,전후이연합이왜붕괴했는지를탐구한다.이에더해독일과의전쟁을승리로이끈스탈린의리더십과전후소련사회의변화에대해서도살펴본다.그과정에서군사,외교,정치면에서기존에우리가미처알지못했던지도자스탈린의모습을발견한다.
저자제프리로버츠는독일에맞선전쟁에서스탈린이군사지도자로서강력한리더십을발휘해승리를이끌어냈다고평가한다.제2차세계대전에서중요한전환점으로평가되는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그는엄격한규율과가혹한처벌로장교들의후퇴를단속하는동시에기꺼이목숨을바칠사람들을북돋았고,정치적으로는애국주의에호소했다.영국과미국을비롯한동맹국들에필요한지원을구체적으로요구했으며,전쟁에서이기려면독일을두려워하지않아야하며위험을감수해야한다고설득해작전수행에동의를얻었다.규율을위반한군인을색출하고처벌하는형벌부대를운영할정도로가혹했고,독일군의사기를떨어뜨리기위해주민들까지포격할정도로잔인했지만,전쟁터에서승리를목표로하는군사지도자위치에서스탈린의결단력이없었다면독일과의전쟁에서승리할수없었을것이다.
로버츠는스탈린이결과적으로는냉전시대를열었지만,냉전은결코그가의도한것이아니었다고평가한다.스탈린에게영국,미국과의대연합은군사적연합뿐아니라정치적동맹을의미했으며,그는대연합을유지하기위해외교적으로노력했다.스탈린은소련-서방연합을유지함으로써히틀러와영국및미국내반공산주의자들의공격으로부터소련체제를방어하고자했다.1945년얄타회담,포츠담회담등전후처리를위한논의자리에서스탈린은소련의안보와인민민주주의체제수립을위해외교적대화에적극임했다.그러나오해와입장차이로인해스탈린은돌아서고말았다.로버츠는독일과전쟁을치르며소련이너무나큰인적·물적피해를입었고,승리후평화를잃고싶어하지않았다고스탈린을방어한다.스탈린이김일성의남침을승인했으나,미국이개입하자미국과의직접적인대결을피하려고한점도그런맥락에있다고본다.오히려이런관점에서스탈린은서방세계의지도자들보다평화를추구했다고볼수도있다.
종전후,스탈린은피해를입은국토를재건하고,사회와경제를평시체제로운영하고자했다.전시때와마찬가지로주로대외정책결정에몰두하고경제문제에대체로관여하지않는쪽을택했다.이시기민간행정기구와민간법원이여러권한을돌려받았고절차가합리적으로발달했으며,경제운영이체계적으로바뀌고기술관료들이능력을발휘했다.젊고교육수준이높은남성들이당에서활발히활동하면서자연스럽게정치적·이념적행동주의가덜채택되고관리와기술전문지식을존중하는경향이강화되었다.비록소련과서방세계의관계가악화하면서체제를위협한다고여겨지는활동들을검열하고숙청을단행하면서이러한분위기는오래가지못했지만,로버츠는소련의전후체제는전전체제보다더이완된질서로이행하는과도기시스템이었다고평가한다.
저자가「서언과감사의말」에서도밝히고있듯이,이책은스탈린이저지른끔찍한범죄행위를과소평가한다거나그를복권시키려는책이아니다.로버츠는스탈린의잔혹성과스탈린체제가소비에트국민에게미친영향을솔직하게탐구하는한편,러시아기록보관소의풍부한새로운자료들에근거해20세기격동기의역사적장면들을상세히그려내며스탈린의다양한면모를조명한다.역사의범죄행위는그에상응하는대가를받아야하고경계해야하지만,단적인평가는그이면을보는눈을가릴수도있다.그런점에서이책은스탈린에대해균형잡힌시각을가질수있도록안내해준다.
스탈린의관점으로본20세기국제정세
제2차세계대전과전후역사는상대적으로영국과미국을비롯한민주주의및자본주의세계의관점으로해석된내용이더잘알려져있다.이책은스탈린이무엇을원하고소련을어떤방향으로이끌고자했는지,소련의관점에서역사를들여다본다.이를통해우리는지도자로서의스탈린은물론,국제관계에대한소련의인식을더잘이해할수있을것이다.
전후시기,스탈린은소련의안보와이익,공산주의체제의안정이라는관점에서상황을판단했다.스탈린의목표는크게두가지였다.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등인접한동유럽국가에소련우호적인체제를수립해영토의안전을확보하고이념적완충지대를창출하는것이었다.로버츠에따르면,스탈린은인민민주주의체제를수립하는것이서구식민주주의적자본주의에당장해가되지않는다고보았다.전쟁에서큰희생을치른스탈린은소련-서방의연합관계를지속하며독일의힘을억제하고,동시에독일과영국및미국내반공산주의세력이커지지않도록사전에대응하고자했다.
영국과미국의인식은달랐다.런던과워싱턴의정책결정자들은소련과공산주의자들의성장을위협으로여겼다.서방의관점에서,강대국의권한이란지정학적이익과권리를누린다는것이지,특정권역에서권력을행사하는것이아니었다.전후독일을경계대상이아니라공산주의에함께맞설동맹국으로인식했다는점도큰차이점이었다.
영국과미국의개입으로스탈린의계획은번번이난관에부딪혔다.동유럽에뿌리깊은민주주의기반이없었고스탈린이민주주의를난폭한개념으로잘못이해하고있다는점도공산주의세력이확장하는데한계로작용했지만,서방에반공산주의블록이형성된것도주요요인이었다.스탈린은이점을늘우려했는데,현실이되고말았다.1945년과1946년사이에미국군사기지가전지구적으로설치되는것도불편해했다.결국대화로갈등을해결하려는노력이수포로돌아가고대연합이붕괴하자스탈린은강경한입장으로돌아섰다.냉전중에도서방세계와의갈등이전쟁으로확대되지않도록대화의창을열어두었으나,소련의안보에절대적이라고생각하는영토와정치적공간을서방세계가관여하는데대해엄중하게대처하는입장을취했다.
로버츠는이책에서20세기역사해석에대해다른견해를드러낸다.냉전은스탈린이원한것이아니었다.스탈린은전쟁에서승리한후독일의군국주의가서방세력과결합해되살아나는것을두려워했으며,평화를잃지않기위해노력했다.스탈린이의도치않게냉전시대를연것은,소련의이익을보호하고서방의전쟁광들에게정치적·이념적패배를안기기위한것이었다.로버츠는독재자스탈린의과오를비난하기에앞서역사가로서스탈린이라는인물을역사적맥락속에서이해하고냉철하게평가한다.긴박하게흘러간20세기역사를새로운시각으로펼쳐내는이책은,우크라이나와러시아의전쟁이장기화하고있는시점에러시아를보다깊이있게이해할수있는기회를제공할것이다.
추천사
소련의독재자에대한놀라운방어다.이책은활발한토론을불러일으킬것이다.스탈린과그의시대에관심이있는사람들에게는필독서다.―『BBC히스토리매거진』
러시아,영국및미국의기록물보관소자료들을인상적으로배열했다.중요한주제를날카롭게정의하고탄탄한근거로주장을발전시켜기존의견해에도전하고철저히입증된대안을제시한다.―앤드루J,바세비치(보스턴대학교국제관계및역사학명예교수)
스탈린과그의측근들에관한최고의서사적설명중하나이다.―리처드오버리(엑세터대학교역사학교수)
책속에서
*첫문장:군사지도자및평화중재자로서스탈린에대한이연구가첫발을뗀것은제2차세계대전의대연합에서소련이수행한역할을규명하는작업에들어가면서였다.
이책의목적은스탈린을복권하는것이아니라다시상상해보는것이다.본문에서당신은전제군주이자외교관,군인이자위정자,합리적관료이자피해망상에시달리는정치인등여러얼굴의스탈린을발견할것이다.이스탈린들이모여결국총력전이라는궁극의시험에서살아남을수있을만큼강력한시스템을만들고이를통제한매우유능한독재자라는복잡하고모순적인그림이완성된다.―10면
스탈린의민족정책에서이러한〈러시아적전환〉이일어난많은이유중하나는전쟁이다가오면서러시아화가소련을구성하는100여개의민족을묶어주는데반드시필요하다고여겼기때문이었다.또애국주의에대한호소는사회주의국가의건설을위해인민들을정치적으로동원하는데유용한수단으로도생각되었고,그근대화와산업화의대부분은러시아에서진행되고있었다.무엇보다도스탈린은과거러시아가기울인노력들을소련의현재투쟁과연결시키는포퓰리즘적역사해석이강력한정치적호소력이있음을보았다.―64면
또모스크바에서는폴란드에살고있는비소비에트우크라이나인과벨로루시야인들이소련내동포들의파괴활동을위한근거지로이용될수있다는우려가끊이지않았다.실제로1938년에나치선전요원과우크라이나민족주의자들이우크라이나의재통일과독립을위해언론활동과선전운동을전개한바있었다.따라서소련의동부폴란드침공은붉은군대의폴란드진입이소련방어선을서쪽으로이동하는것을보장하고독일의동쪽으로의팽창에대해명확한한계를설정하는분명한지정학적근거뿐아니라특유의〈민족주의적〉논리도구현했다.―92면
스탈린주의정치문화에서는사회적·경제적문제들에대한해결책을일반적으로전위노동자부대가돌격전술을이용해당정책의시행을방해하는적들을뿌리뽑고파멸시킨다는측면에서바라보았다.적국의영토에서미래전쟁을수행한다는붉은군대의개념은소련이념의메시아적경향과도잘들어맞았다.스탈린은무력으로혁명을수출할수있다고믿지않았다.그러나스탈린은붉은군대를해방세력으로보았다.그들의외국영토침입은공산주의관점에서볼때긍정적인정치적충격을가할수있었다.―147면
스탈린에게레닌그라드에대한위협은우크라이나에서소련의입지가무너진것보다훨씬더위험했다.레닌그라드가함락된다면독일군이모스크바를측방에서공격할수있는길이뚫릴터였다.소련은중요한방위생산중심지를나치에빼앗기게되고,볼셰비키혁명의요람을잃어버림으로써받는심리적충격도엄청날것이다.―197면
스탈린은나아가영국과미국은〈독일을두려워하지말아야하며〉,독일의전력을과대평가하는경향이있다고언급했다.스탈린은〈제경험에따르면,부대는실전에서유혈을맛보게해야합니다.만일귀하의부대를유혈에익숙하게만들지않으면귀하는그들의가치를알수없을겁니다〉라고말했다.프랑스에서상륙할가능성에관한대화를좀더나눈후주제는독일에대한연합폭격작전으로옮겨갔다.여기서두지도자는얼마간의공통점을찾았다.스탈린은독일의사기를떨어뜨리는유일한방법이기때문에산업은물론이고주민들도폭격할것을희망했다.이에처칠은진심으로동의했다.―247~248면
스탈린에게영국및미국과의대연합은군사적인연합만큼이나정치적인동맹이었다.1943년중반까지대연합내에서보여준스탈린의외교적노력은히틀러와영국및미국내의반공산주의분자들이소련-서방연합을분열시키지못하게하는데초점이있었다.―289면
테헤란회담이후한해동안대연합에대한스탈린의헌신은약해지지않았고,그는여전히전후세계의모습을영국,소련,미국의3자협상에의해결정되는것으로보았다.이렇게스탈린이3자협상에계속매달린이유는,전쟁이끝난후독일의힘이부활할수도있다는두려움을떨쳐버릴수없었기때문이었다.1944년모스크바에서는승리의예포소리를점점더자주들을수있었지만,소련-독일전선에서는여전히격렬한전투가진행되었고승리는하나하나쟁취해야했다.―339면
궁극적으로스탈린이이지역에서전략과전술을근본적으로변경한것은1947년냉전이발발하면서촉발되었다.대연합이붕괴하자,스탈린은동유럽에서긴밀한통제속에대외정책블록으로결합시킬수있는권역을선택했다.이블록은스탈린이소련안보에절대적이라고생각하는정치적·영토적공간에대한서방의어떤침해에도엄중하게저항할터였다.―424면
익명으로게재된케넌의논문에서는〈냉전〉이라는용어를사용하지않았으나,언론인인월터리프먼은그글에반응해일련의신문기사를썼고,이는나중에〈냉전〉이라는제목의소책자형태로출간되었다.그책자는냉전이라는개념을대중화시킨리프먼의출판물이었다.이개념은전후소련-서방관계의긴장고조를나타내는약칭이었는데,리프먼의말에따르면,이긴장고조는스탈린의이념적충동때문이아니라그의군사력의팽창이낳은결과였다.―509~510면
스탈린대외정책의국내적배경은전후세계에대한그의대응을형성하는데결정적인역할을했다.소련은전쟁에서군사적으로승리를거둔후유럽에서지배적인강대국이자전후평화합의에서유력한주역으로나타났다.그러나소련은전쟁으로엄청난손상을입었고,정신적인충격을받았다.소련의서부국경은소련통치를다시강요하자반란상태에들어갔다.애국주의와민족주의가커지면서나라의공산주의정체성이흔들리고복잡해졌다.이힘든상황에서대연합파트너들이소련의안보요구를수용할자세도,승리를확보한데대해소련의정당한보상이라고스탈린이여겼던것을인정할자세도되어있지않았다는사실은스탈린을크게실망시켰다.―573면
스탈린에게한국전쟁은매우값비싼계산착오였다.한국전쟁의유일한미덕은중국의도움을받아김일성체제가살아남았다는사실이었다.전쟁이발발했을때소련은공산주의중국이유엔에서배제된데항의하여유엔을보이콧하고있었다.이는미국이유엔의깃발아래한국에개입하는것을승인하는결의안을밀어붙일수있는길을열어주었다.그리하여많은다른나라의군대가한국에서미국및남한과나란히싸웠다.스탈린은서방에서전쟁교사자로여겨졌고,북한의공격은극동에서진행되는소련팽창주의프로그램의일부로간주되었다.전쟁은평화운동의노력을훼손했고,유럽의문제들을해소하려는소련의시도를뒤엉키게만들었으며,미국과그동맹국들의대규모재무장프로그램을고무했다.―6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