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과회복의스펙트럼속,
인류그리고나는지금어디에서있는가
미국컬럼비아대학교정신의학과교수이자중독전문의사,칼에릭피셔.겉으로봐서는전형적인엘리트일것같지만,그의또다른정체성은바로<회복중인중독자>라는점이다.심각한알코올중독자이자약물중독자였던그는환자로서그리고의사로서힘겨운회복의과정을몸소겪었다.생명윤리학자이기도한그는이책『중독의역사:우리는왜빠져들고,어떻게회복해왔을까』에서자신이겪은중독과회복의생생한경험을들려주면서,인류가여러세기동안제대로다루지도이해하지도못한<중독>이라는현상의역사를다채롭게추적한다.의학,과학,문학,예술,종교,철학,사회학,공공정책까지아우르는이책은,우리가중독의역사를파고들어그성공과실패를되짚어보아야만,중독의위험성에노출된사람들에게현실적이고희망적인길을제시할수있다고말한다.
고대부터현대까지,중독과씨름해온인류의역사
술담배커피같은일상기호품,한번시작하면손놓기힘든게임과도박,정신을어지럽히는각종약물,그리고현대생활의필수품SNS와스마트폰까지…….중독은다양한형태로인류와함께하며쾌락또는고통을안겨왔다.미국사회는50만명을죽음으로이끈마약성진통제<오피오이드>문제에이어,최근엔좀비마약이라불리는<펜타닐>문제로혼란에빠졌고,한국도청소년층을비롯해전세대로퍼지는신종약물문제로큰위기를맞았다.그런가운데,중독의본질은대체무엇인지,그적절한대처법은무엇인지를둘러싼논쟁은끊이지않고있다.
저자는중독의본질과적절한대처의방향을파악하기위해,중독과씨름해온인류의역사를차근차근짚어간다.고대그리스와중국,인도,그리고유럽의중세와근대를거치며중독이라는개념이어떻게형성되어왔는지추적하고,이후물질사용문제가심각해지면서현대에이르기까지그개념이어떻게변했는지,어떤대응책이나왔는지알아본다.특히중독을질병으로보는관념,각종중독에대응하기위한운동등이주로근대이후미국을중심으로형성되어왔기에,근현대의이야기는미국을중심으로전개된다.
이책은역사의과정을거치며중독에대한대응이대략네가지방향으로이루어졌다고정리한다.처벌과강제로써억제해야한다는금지론적접근법,강박충동에의한것이므로의학적으로다루어야한다는치료적접근법,두뇌의기능이상에서비롯하므로생물학적으로치료해야한다는환원론적접근법,그리고치료보다는연대를통한정신력의고양으로써극복해야한다는서로돕기접근법이그것이다.
중독은물리치기힘든인간의본성……
전쟁말고,현명한공존의방법을찾아야한다
그러나이런접근법들에는각기문제와한계가있었다.금지론적접근법과환원론적접근법은인종주의와계급적편견의양상을띠어열등한하층계급,부도덕한자들이라는낙인을찍거나특정인종과젠더에대한혐오를불러일으킨측면이있다.치료적접근법은약물치료를확산시켜제약회사만배불리는결과를낳고,좋은치료약과중독을일으키는나쁜약이라는이분법이생겨오히려중독문제를심화시키는부작용을낳기도했다.
이런혼란과조정을거쳐,근래에는중독을확연한질병이라기보다인간정신의보편적인특징으로보기에이르렀다.모든정신질환은일종의스펙트럼위에있는것으로봐야하고,중독역시그렇다는얘기다.저자는중독과싸워이겨야한다는생각을버리고그것을인간삶의한부분으로인정해야,물질사용문제를겪는사람들을실효적으로도울길을찾을수있다고강조한다.
결국중독과의현명한공존이필요하다는얘기다.물론해로운물질은적절히규제하고,범죄로이어지는경우는단속하고처벌해야하지만,중독에대한정책이금지일변도라면역효과를불러올수있다.그러므로다양한물리적,개인적,사회적자원이두루어우러지는회복의길을찾아야한다고이책은정리한다.아울러중독문제를둘러싼여러차별과불평등의요소를줄여나감으로써,회복이개인의여정이아니라공동체의경험으로쌓여가도록하는것도중요하다.
한편정신과의사이자회복중인중독자인저자는,책중간중간자신이겪은심각한중독의증상과회복을향한고투를들려준다.집안의오랜내력인중독증을피하지못하고대를이어알코올과약물중독의늪에빠져허우적댔던칼에릭피셔.정신과의사이면서정신과병동에갇히는아이러니한좌충우돌의시절을견뎌내고이제자신의경험을주변과나누게된그의인생이야기는이책을읽는또하나의묘미이다.중독의본질에대한깊고넓은인문적탐구,그리고솔직하고절절한에세이가함께하는『중독의역사』는,새로운장르의탄생이라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