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과학,장르와대륙을넘나드는
웅장하고우아한세계
탁월한관찰력과섬세한묘사가돋보이는『우리,메아리처럼』은해가지지않는남극의과학기지에서출발한다.〈유령입자〉를찾기위해이곳에온입자물리학자엘사는,어머니가들려주는한국설화속여자들의비극과집안의저주로부터벗어나기위해이와정반대에있는,합리와실증속에서살아가는과학자가되었다.그런데눈보라뿐인지구의끝자락에서어릴적보았던빨간댕기를맨소녀를다시마주하자,엘사는주어진운명으로부터마냥도망칠수는없음을깨닫는다.저주의정체를밝혀내기위해,자기손으로운명을다시쓰기위해,엘사는자신이떠나온곳으로되돌아가가족이감춰온역사와옛날이야기속진실을파헤치기시작한다.
어릴때부터한국의민담과신화를읽고들으며자란저자는비극적운명을맞이하는여자들의설화를재해석해자기만의세계를짓는다.그리고그곳에자신이체험하고목격한전쟁과트라우마,이민자의삶과역사,인종과정체성문제를공기처럼녹여냄으로써작품에깊이를더한다.참신한세계관과통렬한성찰로호평을받으며저자의이름을널리알린작품이다.
메아리처럼되풀이되는비극
다시쓰는여성서사
전쟁의아픔이몸속에흉터처럼새겨진엘사의어머니는늘신경이곤두선사람이지만,옛날이야기를들려줄때만큼은잠깐다른사람이된듯차분해졌다.그러나그의목소리가달라지며광기를드러냈다.끓어오르는청동속에몸을던져야했던에밀레종이야기속여자아이,아버지를위해물속으로뛰어든심청,나무꾼에게옷을빼앗겨땅에발이묶여버린선녀…….어머니가들려주는이야기속여자들은하나같이비극적인운명을맞이하며파멸한다.
너랑나,우리는삶이흔해빠진옛날이야기로전락해버린여자들의후손이야.우리는메아리처럼그들의이야기를반복하고그들의삶을살지만,그위대함은닮지못해.어리석은비극만반복할뿐이야.우리는그들의삶에서그것밖에기억하지못하니까. ̄95면에서
여성이라는이유만으로희생되어야하는불합리한세계로부터벗어나고자과학으로멀리도망쳐왔음에도,운명의그림자는결코떨어지지않는다.결국엘사는다시자신이왔던곳으로되돌아가,어머니가남긴이야기조각들을짜맞추고가족이감춰온역사와고통,자신이물려받은것들의정체를낱낱이파헤치며주어진운명에정면으로맞선다.이책의원제는〈포클론Folklorn〉으로,가족의고독,문화적증후군,가족에게갇힘을의미한다.세대가거듭하도록되풀이되는비극,깊이새겨진상흔과정신적트라우마.이소설은이러한운명의굴레에서벗어나끝내이야기를제손으로다시써내려가는한〈여성〉의모험이다.
세계의이방인,방랑자,그리고생존자
저마다의디아스포라
입자물리학자인엘사가연구하는중성미자,〈유령입자〉라고도불리는이물질은〈여기에서는이런형태로,저기에서는저런형태로〉정체성을바꾸며무한한여행을계속해나간다.엘사는자신도이처럼평생형태를바꾸며사는기분이었다고고백한다.저자자신이투영된이인물은이민자2세대,한국계미국인,남들과다른생김새를지닌채여러환경들속에서어디에도온전히속하지못하며혼란을겪는디아스포라다.이작품은진정한자신,자기정체성을찾는저자의여정이기도하다.
태어나며주어지는가족은자신이선택하지않은불합리한장소인동시에,진정한자기모습을찾기위해서는되돌아가야만하는곳이다.엘사는참된자신으로살기위해바깥세계로나아가지만,결국집안의역사를알아내고어머니가남긴이야기들을해독함으로써자신을알고마침내스스로운명을바꿀수있게된다.물려받은것에서벗어나고자노력한적이있거나,자신이속한곳은어디며자신의진정한모습은무엇인지고민한적이있는독자라면,이작품에흠뻑빠져들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