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 : 내 삶에 내렸던 아름다운 소나기들(양장)

하심 : 내 삶에 내렸던 아름다운 소나기들(양장)

$24.00
저자

차석용

저자 : 차석용
28년에 걸쳐 여러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맡아 온 전문경영인이다. 쌍용제지와 한국 P&G, 해태제과를 거쳐 LG생활건강을 18년간 이끌었다. 재임 기간 LG생활건강의 매출을 9배 성장시키고 영업이익 22배 이상 성장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차석용 매직〉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는 경영의 성과보다 그 성과를 만들어 내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위기 앞에서는 절박하게 답을 찾고, 잘될 때일수록 다가올 위험에 대비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절제와 헌신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부터 엄격하게 다스렸다. 화려한 말보다 실행을, 직위의 권위보다 책임을 믿었다.
오랜 경영의 시간을 지나 그가 끝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사람과 삶을 대하는 마음이었다. 높은 곳에 오를수록 자신을 낮추고, 사람 앞에서 겸손하며, 자신의 몫을 묵묵히 다하는 것. 『하심』에는 그가 평생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지키려 했던 삶과 경영의 원칙을 담았다.

목차

여는 글

제1부 나는 어떻게 성장했는가

제2부 내가 걸어온 길, 그들이 읽은 뜻

CEO MESSAGE

맺는 글

출판사 서평

원칙은 결정의 순간에 드러난다

『하심』에서 차석용 회장의 가치와 원칙은 추상적인 주장에 머물지 않는다. 당사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기업의 결정적 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했고 끝내 무엇을 믿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백억 원이 오가는 인수 협상부터 무너진 조직을 다시 세우는 과정까지, 책에 담긴 경영 비화는 〈차석용 매직〉을 만든 생각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중 가장 극적인 장면은 코카콜라 인수다. 당시 코카콜라의 한국 보틀링 사업은 3~4년간 적자가 이어진 데다 세 개의 강성 노조가 있어 인수를 둘러싼 우려가 컸다. 최종 입찰을 이틀 앞두고는 경쟁자를 넘어서려면 인수 가격을 400억 원 더 써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자신의 확신이 객관적인 판단을 넘어선 집착은 아닌지 고민하던 차 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에게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다음 날 마포대교 끝에 차를 세운 구 회장은 돈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업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과 그것을 해내려는 열정이라고 말했다. 그 믿음은 포기하려던 차 회장에게 다시 결단할 힘을 주었다. 그는 곧장 하얏트 호텔로 향해 밤 10시가 넘도록 코카콜라 측과 협상을 이어 갔고, 이튿날 최종 입찰서를 제출해 인수를 성사시켰다. 한 사람의 믿음이 멈춰 있던 결정을 다시 움직이고 기업의 새로운 성장 축을 만든 순간이었다.
쌍용제지 인수는 철저한 검토와 직관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 준다. 신뢰하기 어려운 자료와 상장기업 공개매수의 전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차 회장은 수십 차례의 협상과 법률 검토를 거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거래 상대의 얼굴과 말에 담긴 진심이었다. 인수 직후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거래가 되었지만, 차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행운이 아니다. 숫자와 논리를 끝까지 검토한 뒤 작동하는, 오랜 경험이 압축된 직관이다. 그는 이를 〈첫 2초의 힘〉이라 부른다.
해태제과에서는 판단의 출발점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첫 출근 날 차 회장이 발견한 것은 나쁜 실적보다 먼저 무너진 조직의 마음이었다. 그는 회의실을 벗어나 직원들을 만나고 회사 뒤편 삼겹살집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에게는 훌륭한 브랜드들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살렸다. 이후 호두마루와 구운감자, 오사츠가 잇따라 성과를 내며 회사는 정상화되었다.
세 경영 비화는 서로 다른 판단의 기준을 보여 준다. 코카콜라 인수의 배경에는 사람의 믿음이, 쌍용제지 인수에는 철저한 검토 끝에 얻은 직관이, 해태제과 정상화에는 조직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태도가 있었다. 『하심』은 무엇을 결정했는지에 그치지 않고 그 결정이 어떤 가치와 신념에서 나왔는지를 보여 준다. 〈차석용 매직〉을 만든 것은 한 번의 묘수가 아니라 사실과 논리를 끝까지 살피고, 축적된 경험을 믿으며, 사람의 진심과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태도였다.

높이 오르는 법보다, 높은 곳에서 지켜야 할 마음

성공을 말하는 책은 많다. 남보다 앞서는 방법과 빠르게 성과를 내는 기술, 위기를 돌파하는 전략도 끊임없이 소개된다. 그러나 차석용 회장의 글은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간다. 모를 때는 모른다고 말하고,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며, 분명한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것. 잘못된 방향에는 질문을 던지고, 남들이 지나치는 마지막 5퍼센트를 끝까지 살피며, 나쁜 소식일수록 더 빨리 알리는 것.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매일 지키기는 어려운 태도들이다.
이러한 생각은 책 후반에 수록된 〈CEO MESSAGE〉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차석용 회장이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임직원들과 나눈 짧은 글들은 본래 회사 안에서 함께 읽기 위해 쓰였다. 정식으로 출간된 책이 아니었지만 누군가 파일로 만들어 전하면서 회사 밖으로 퍼졌고, 그의 이름보다 먼저 차석용이라는 경영자를 알린 글이 되었다. 『하심』에는 그 가운데 열여섯 편을 골라 다시 실었다.
〈CEO MESSAGE〉는 거창한 경영 이론보다 일하는 사람이 매일 마주하는 질문을 다룬다. 조직에서는 직급이나 영향력보다 사실과 논리가 더 큰 권위를 가져야 하며, 명확한 원칙은 판단을 늦추는 제약이 아니라 빠른 결정을 돕는 나침반이라고 말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잘못된 결정에 침묵하지 않는 태도, 작은 차이를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 문제가 생겼을 때 사실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도 강조한다. 앞부분이 차석용이 살아오며 만난 사람과 시간,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면 〈CEO MESSAGE〉는 그 마음으로 일하고 사람을 대했던 방식의 기록이다.
『하심』이라는 제목도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배움 앞에서 겸손하며, 삶 앞에서 겸손하려 애써 온 마음을 뜻한다. 차석용은 자신을 여기까지 이끈 것이 혼자의 능력이나 거대한 성공이 아니라 삶에 소나기처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고 돌아본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받은 믿음과 가르침을 다시 다음 세대에 건네고자 한다.
『하심』은 더 높은 곳에 오르는 방법보다 그곳에서도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자세, 작은 일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성실함과 삶 앞의 겸손. 눈에 띄는 성공의 비결은 아닐지라도 오래가는 사람과 기업을 만드는 힘은 결국 이러한 기본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하심』이 전하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결론이다.

책 속에서

젊은 시절의 저는 늘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더 큰 성과를 이루고, 더 좋은 회사를 만들고, 더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쉼 없이 달렸습니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높이. 그때의 저는 그것이 성장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지나 돌아보니, 제 삶을 가장 빛나게 한 것은 완벽한 순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실수와 실패, 뜻밖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견뎌 준 사람들이었습니다.
- 여는 글 4면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좌절〉의 순간들이 있는가 생각합니다. 오해받을 때의 억울함, 무모한 욕심에 대한 후회, 노력하고 추구하던 일의 실패,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실망, 좌절의 숲속에서 고민하고 꿈속에서 번민하다 벌떡 일어나는 어두운 밤의 외로움이 있습니다. 한 겹을 벗어 버리면 그 안은 예전 같은 것을, 그 한 겹을 벗겨 내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있습니다.
- 〈1장 나를 지켜 준 첫 마음〉 26면

본사는 공장을 이전해야 하는 이유로 뉴욕의 높은 인건비와 세금, 운영비를 이야기했습니다. 노조는 공장의 원가가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가장 비싼 원재료 가운데 하나인 향수의 사용량을 줄이고 있었습니다. 스프레이 건을 일부러 구부려 향수의 투입량을 줄였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품질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습니다.
- 〈2장 리더는 어떨게 만들어지는가〉 42면

구본무 회장님과의 첫 인연은 뜻밖에도 짧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P&G를 떠나 해태제과의 CEO를 맡고 있었습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제게 주어진 책임이었습니다.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한 뒤, 저는 약 3년 동안 경영 정상화를 이끌었습니다.
수많은 임직원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해태제과는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고, 마침내 크라운제과에 인수되었습니다.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어 가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구본무 회장님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분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차 사장, 해태제과 끝나면 뭐 할 거예요」
당시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에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찾아봐야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3장 사람은 혼자 성공할 수 없다〉 72~73면

더 힘들었던 것은 그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곧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두 달만 버티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고 해가 넘어가도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봄이 와도 마음은 봄이 아니었고, 여름이 지나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저는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위기를 이겨 낼 수 있을까. 우리는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 낼 수 있을까.
리더에게 위기는 늘 외롭게 찾아옵니다. 함께 의논할 수는 있어도 마지막 책임은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지어야 하지만, 마음속에는 수없이 많은 질문과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도망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도망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곳이 제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 구성원들이 불안해할 때, 시장이 흔들릴 때 리더가 먼저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말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이기자. 견디자. 도망가지 말자.
- 〈4장 위기를 이겨 내는 힘〉 100~101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제게 그늘이 되어 주었던 큰 나무 같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바로 구본무 회장님과 강유식 부회장님이셨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비재 기업인 P&G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후 LG에 합류했을 때,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기업 문화도 달랐고 일하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수없이 부딪히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저를 믿어 주고 이끌어 주신 분들이 바로 두 분이셨습니다.
- 〈5장 오래 가는 사람, 오래 가는 기업〉 13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