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모더니즘’은식민지도시경성을중심으로형성된한국의모더니즘문학을말한다.서울은한양,한성,경성등다양한명칭으로불리면서,조선시대부터지금에이르기까지우리나라의중심도시로자리매김하고있다.이책은식민지시기경성을배경으로모더니즘작품들이등장할수있었던역사적·사회적배경이무엇이고,이러한작품들이다른나라의모더니즘문학과는어떠한점에서차별화되는지등을박태원문학을중심으로알아본다.
식민지도시경성과모더니즘
모더니즘은20세기서구의선진국들에서주도한문학양식으로,자본주의의발달과대도시의형성,물질적풍요로움등을기반으로발전했다.그런데1930~1940년대의경성은파리,런던,뉴욕등의서구대도시들과비교가되지않을정도로낙후되어있었다.따라서식민지조선의‘경성’과서구의‘모더니즘’은쉽게결합될수있는개념이아니다.이둘이결합되었다는것은이들이만날수있었던특별한역사적계기,즉한국의‘식민지근대화’과정속에서우리만의독특한예술적형식이발생했음을의미한다.이책에서본격적으로살피고있는것은,서구주요도시들의자본주의적발전과물질적토대에기반을두고발생한서구모더니즘문학과는다른,조선의특수성이드러나는경성모더니즘특유의문학적성격이다.서구모더니즘문학이자본주의의발달과근대도시의형성등물질적토대에서발생한것이라면,경성모더니즘은‘식민지배’,‘불균등발전’과‘이중도시화’,‘서구적형식과조선적내용간의간극’,그리고‘문명화된국가로부터의직간접적인체험’등에서파생된특수한성격의문학이라할수있다.
경성모더니즘은좀처럼어울릴것같지않은식민치하의상황에서꽃피운한국의모더니즘문학을경성의도시공간과의관계속에서살피려는시도이다.이책에서는경성이라는근대적식민지도시가형성및발전하면서문학텍스트를형성하는데어떠한역할과기능을했는지에대해탐색한다.소설속장소는이야기의단순한배경이아니다.특정한장소가있기에거기에적합한이야기가펼쳐지는것이다.그렇다면경성은우리에게어떠한이야기를가능하게한공간이었을까.북촌,남촌,서촌등은각각어떠한이야기를품고있었을까.
경성의모더니스트,박태원
이책에서본격적으로다루는작가는‘구보박태원’이다.경성모더니즘은경성이라는도시공간을구역별,시기별로구분하여문학작품들과의관련양상을살피려는시도이다.경성의구역적인분화와시기적인변화가문학텍스트에어떠한영향을미쳤는지를살피기위해서는문학텍스트가일종의‘상수(常數)’로기능해야하고,따라서한명의작가의문학세계를대상으로하여경성의구역별,시기별변화를탐색해야도시공간과문학텍스트간의관련성을충분히고찰할수있다.
박태원은그누구보다도경성의도시공간을정밀하게재현해낸소설가이다.그는‘천재시인’이상과더불어한국의대표적인모더니즘작가로알려져있다.박태원소설의대부분은‘경성’을무대로한다.그의소설에서경성의도시공간은단순한서사의배경이아닌작품의중요한주제적역할을한다.박태원의작품들은철저하게실재하는물질적토대를기반으로경성을세밀하게재현했다.이는박태원이‘고현학(考現學)적방법론’에입각해서창작을했기때문에가능했다.그의작품에는당시경성의주요장소인경성형무소,조선총독부,덕수궁,경성지방법원,경성방송국,경성역,한강철교,남대문등이두루재현되며,대부분의경우현실세계에서대응하는장소를찾을수있다.경성의풍경에대한정밀한재현은박태원모더니즘문학의중요한특징중하나라고할수있다.
그런데박태원의‘경성’은구역에따라다른방식으로재현되었다.이는경성의도시구역이변화하면서각각의구역만의특성이강화되며나타난현상이다.조선인들이모여살던‘북촌’에대해서는리얼리즘적성격이두드러지며,궁궐과형무소등이위치하던‘서촌’일대에는역사적알레고리의특성이나타났으며,일본인들이집단으로거주하던‘남촌’은충분히재현될수없었다.일본군부대와사창가가위치하던‘용산’일대와관련해서는군국주의적분위기가암시적으로제시되었다.
경성의도시구역과박태원문학
이책에서는경성을여섯개의구역으로세분하여분석한다.첫번째는조선인들의‘일상공간’인북촌의중앙부지역이다.이지역은경성의오랜중심지로,조선인서민층이주로모여살던곳이다.자연스럽게이곳은근대소설에서도중심지의역할을맡았다.중심인물들은대부분종로일대에서거주하며,경성역에서동대문사이의종로거리를활보하고,화신상회나탑골공원등에들르기도했다.조선색채가강하게남아있는곳이기에일본인의모습은찾기어렵다.박태원의대표작으로거론되는『천변풍경』과「소설가구보씨의일일」등이이곳을중심으로한작품들이다.
두번째는북촌의동북부지역으로,도시확장이후새롭게경성의일부로편입된지역이다.동소문밖의성북동과돈암동일대에는주택난을해소하기위해대규모의‘문화주택’단지가조성되었다.중앙부가조선인들의공간이었다면,동북부지역은조선과일본의생활양식이절충된형태가나타난공간이었다.중심부와는다소거리가떨어져있고도로망과대중교통등의기반시설이충분히갖추어지지않았기때문에,이지역을다룬작품들은공간적이동이빈번하게나타나지않는특징이있다.박태원의1940년대초반작품들은대부분이지역을배경으로하며식민지현실과의‘타협’을주로다룬다.
세번째는‘공적공간’인서촌의서남부지역이다.이지역은정동,덕수궁,남대문등‘대한제국’과관련된전통건물들이모여있던곳이다.덕수궁은고종황제가머물던곳으로,대한제국의좌절된꿈을환기하는곳이었다.각국의대사관들이모여있고근대적인시설이갖추어져있어산책하기에적합한공간이기도했다.전통적인흔적이많이남아있기때문에이곳을배경으로한작품들은동시대의역사적맥락과깊은관련을갖는다.이지역을배경으로하는박태원의작품으로는「애욕」,「윤초시의상경」등이있다.
네번째는서촌의서부지역으로,독립문근처의빈민지역이다.대부분의주택이초가집이었을정도로전근대적인면모가많이남아있던지역으로,이곳을배경으로한작품들의전체적인분위기도상당히어둡다.서대문형무소,화장장,도살장등이몰려있어음산한분위기를자아내는곳이기도했다.이지역을대상으로한작품에는중심인물과주변환경간의‘거리감’이두드러지게나타난다.결혼후경제적으로넉넉하지못했던박태원은1937년이곳으로이사를온후이일대를배경으로한작품들을발표했다.
다섯번째는조선의내부에위치하지만정작조선인은소외감을느끼게되는‘이역공간’으로서의남촌지역이다.이지역은일본인들이주로모여살던주거지역과상업지역이밀집한곳이다.미츠코시백화점등화려한근대적문물이들어선곳이기에조선인들도자주이곳으로산책을나왔다.본정과황금정등의상업지구는전차를통해쉽게접근할수있었다.그렇지만몇몇경우를제외하면이곳에거주하는조선인은그리많지않았다.이지역을대상으로한박태원의작품들로는『청춘송』,『금은탑』등이있다.
여섯번째인용산지역은용산역,일본군주둔지,한강철교등이있던곳이다.‘남촌지역’못지않게일본색채가강한지역이었기에,조선인작가들의작품에는거의등장하지않으며주된배경으로설정되지도않았다.그렇지만일부작품에서는일본군부대와유곽지대등에대한비판적시각이나타나기도하며,사람들이자살하기위해‘한강철교’를찾는장면이나오기도한다.박태원작품중「피로」,「길은어둡고」등이용산을배경으로한다.
박태원의작품은이여섯개의구역과맞물려펼쳐지지만반드시한장소에만국한되지는않는다.일부작품은등장인물과플롯전개의특성에따라두개이상의구역에서이야기가진행되기도하며복수의인물이각각특정구역을대변하기도한다.이러한경우에도실제공간의특성으로인한제약이뒤따른다.예를들어,성밖의구역에서다른장소로이동하기위해서는성안의구역을경유해야만한다.또한조선인의일상생활은‘북촌’에기반을두고있으므로,대부분의소설은이지역에서시작된다.또한경제적으로궁핍한서부지역을배경으로한작품은일본인및부유층이몰린‘남촌’이나거리상으로멀리떨어진‘동북부지역’으로는좀처럼향하지않는다.
박태원은‘경성’의구석구석을균형있게그리고정밀하게재현해냈다.그의작품은경성이라는도시공간안에서대부분의이야기가펼쳐지는일종의‘도시소설’로,그는경성의다양한면모를소설에담고자했다.박태원은소설을통해경성의온전한지도를그려내고자한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