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과위기의기로에선시기,고려중기
고려사회의변화를세시기로구분해본다면,중앙집권적지배체제를구축하여발전한전기(10∼11세기),사회모순이드러나고국제정세가변화하는가운데정치운영론상의갈등과정치변란및민의항쟁등이벌어진역동적변화의중기(12세기초∼13세기중반),원간섭기에지배층과지배구조가재편된가운데자주성유지와개혁이정치적과제였던후기(13세기말∼14세기)로나눌수있다.이중중기는번영과위기의기로에선고려사회가어느방향으로나아가느냐를결정짓는중요한시기였다.
그동안고려중기를다룬선행연구들은대개문벌귀족사회론을바탕으로11세기말부터무신정변이일어난1170년까지의정치사를고찰하였다.출신신분ㆍ계층이나가문을살펴서정치세력의성격을파악하는방식을중심으로삼고,정치운영상에나타난귀족제적면모를강조하였다.그결과,당시의정치를귀족정치라고규정하고문벌귀족들이왕권을제약하고특권을공동으로보장하였다고보았다.이자의,이자겸,묘청등의난이이어진것은귀족사회내부의모순이축적되어가는과정으로서,정치권력과경제적특권의확대를둘러싸고지배층내부에서분열이생겼다고파악하였다.그리고그분열양상을왕과문벌귀족간의대립,문벌귀족상호간의대립,문벌귀족과신진관료간의대립등의유형으로나누어이해하였다.그런귀족사회의동요가1170년무신정변의발생조건이되었으며,그결과커다란정치적ㆍ사회적변화가초래되었다고파악하였다.문벌을존중하는문신들이지배하던때와달리실력유무가정권장악여부를결정하게되어무신사이에서정권이빈번하게교체되었다는것이다.그리고그정권교체를출신기반에따라이해를달리한정치세력간의대립,즉좋은가문출신과미천한신분출신또는고위무신과하급무신간의차이에따른대립의결과로파악하기도하였다.
이같은신분ㆍ계층론적분석방식은역사현상을고찰할때개인보다신분ㆍ계층ㆍ계급등사회구조적요소가핵심이라고보는연구방법론에바탕을둔다.즉개인보다집단에초점을맞추어역사를인식하고,사회를움직이는체계와규칙에주목한다.그결과역사에대한구조적ㆍ객관적파악의수준이높아졌고,지배층의사회적기반확대를확인함으로써한국사를발전론적으로이해하는데기여하였다.
기존연구들의한계
하지만이러한방식은몇가지한계를안고있다.첫째,인간의활동을출신신분ㆍ계층에따라파악하다보니,개인적의지와행위의능동성은물론다양한요인들의상호작용으로인한가변성을깊이있게고려하지못하였다.장기지속적경향이있는신분ㆍ계층을역사진행의주된동인으로파악하는시각으로는상대적으로단기적인정국변화를동태적으로이해하기가어려울수밖에없다.또한문벌출신관료대신진관료,문신대무신등으로갈라고찰하는이분법적파악방식은정치현상이나정치세력을간략하고강렬하게설명하는데는효과적이지만단순화ㆍ도식화의위험성도있다.관료들간의이분법적대립을강조하다보면공통점과상호영향등을간과할가능성도있다.
둘째,12세기전반기에형성된새로운정치세력을진보로보고,보수와진보의이분법적대립관계로정치과정을파악하였다.그러나문벌출신이모두보수적이지도않았고,신진세력이반드시개혁을지지한것도아니었다.보수와진보(개혁)라는이분법만으로는정치사를제대로설명하기가어렵다.
셋째,12∼13세기에사회변화가현저하였음에도불구하고선행연구에서는정치사를사회ㆍ경제ㆍ사상등의변화들을유기적으로연계하여고찰하는데에한계가있었다.가家ㆍ족族질서의중시와문벌화,족당세력또는호협豪俠논리에바탕을둔세력화,농장확대나억매매抑賣買ㆍ고리대등을통한사리추구등의현상이관료제와예제禮制,토지분급제등공적질서와대립하는경향이심화되었고,국가ㆍ지배층ㆍ민사이에갈등이고조되었다.정치가권력을수단으로상대방을통제하고질서를유지ㆍ강화하는작용이라면,정치사연구에서는사회경제적변화와연계하여정치적권력관계나가치배분을둘러싼정책등을살펴보아야한다.사상ㆍ이념적지향과현실문제에대한인식,정치적이해관계와개혁방안,지배층사이의갈등ㆍ대립이심화되면서나타난왕의측근세력이나특별한지위ㆍ권력을인정받은신료의존재등을고려하여검토할필요가있다.
넷째,무신정변을야기한문ㆍ무반의차별이문신중심으로운영된문벌귀족사회의모순이라고설명하지만,무신도양반귀족의일원이었을뿐만아니라12세기에접어들무렵부터무신의힘이성장해왔다는연구결과와잘맞지않는다.또한문ㆍ무반의차별이당시에만고유하게나타난것도아닐뿐더러,왕과문신의무능과실정을탓하는것은역사해석을개인적ㆍ도덕적차원으로좁힌다.또한무신정변에참여한정도나가문배경의차이에따른권력쟁탈에초점을맞추다보니파행적ㆍ부정적면만부각되고,구조결정론적한계때문에정치사이해의폭이좁아지며,왕권강화와문신의권력회복이바람직한발전방향인것처럼인식될수있다.
다섯째,그동안고려의국제관계에대하여주로국민국가의시각에서자주와사대,명분과실리외교라는분석틀을갖고접근하여선진문물수입과교역,북진정책,대몽항쟁등에초점을맞추어연구해왔다.최근들어새롭고다양한시각과주제를다룬연구들이이루어지고있으나,자주와사대는국제관계연구에서상당한자리를차지해왔다.민족주의사학의시각에서신채호가칭제건원과금국정벌을주장한묘청파와사대외교를주장한김부식파의대립에서김부식파가승리한결과한국사가결정적으로후퇴하게되었다고파악한것이대표적예이다.이제그런관점에서벗어나국가간의외교와충돌,대외정책들이어떤배경과과정을거쳐이루어졌는지를더객관적으로고찰해볼필요가있다.
다양한요인들을총체적으로고려한새로운시각의정치사연구
선행연구가국내정치에서문벌귀족과신진관료,진보파와보수파,문신과무신,국제관계에서자주와사대,명분과실리외교등으로대비하여파악하는방식이그동안기여한점을인정하되,이제그한계를인식하고보완할시점이되었다.그러기위해서는정치사를연구할때사회ㆍ경제ㆍ사상ㆍ문화등제반요인들을다양하게고려하는시각이중요하며,문벌강화와왕의리더십,국내외상황변화에대한대응과그로인한정파나정치운영론의분화등을새롭게탐구할필요가있다.
이책은이같은문제의식에따라고려중기의정치사를사회변화와정치의상관관계,특히지배층의현실인식과내용,정파결집과정치운영의방식등에주목하여연구한결과물이다.
첫째,왕의역할과리더십을정치의중요변수로고려하였다.왕은국정의최고책임자로서,왕의리더십유형과수준에따라정치목표의제시와달성,정치세력구성등이크게달라졌다.고려중기처럼사회가급변하는시기에는특히갈등조정과소통의리더십,위기관리자로서의리더십등이중요하였다.또한왕은문벌이나권세가들사이에서자신의위상에걸맞은국정장악력을확보ㆍ강화하려고하였다.따라서각왕대별로정치현안,정치운영과개혁방식,정치세력의분화등의지표에맞추어정치사를분석하였다.이렇게하면왕대별비교도가능해져서고려중기정치현상의변화를장기적으로살필수있다.
둘째,정책결정이나정치과정이주로어떤정치기구를통하여이루어졌는지를살펴보았다.관료제하에서권력은정치기구와관직을통해서구현된다.그동안재추宰樞,정조政曹,대간臺諫,승선承宣ㆍ내시內侍와같은근시近侍직,무신집권기의중방과교정도감등의위상과역할이연구된바있으며,그점은고려중기의정치구조를이해하는데에도필수적이다.
셋째,정치과정에서신료들가운데핵심인물들이누구였으며,그들을정치세력으로분류할수있는지,세력결집의계기와양태는어떠하였는지를살펴보았다.이와관련하여부계가문분석을통한연구의한계,즉각가문을특정정치세력으로간주하는방식의문제점을비판하고정치세력들이족당族黨ㆍ당여黨與형태로결집되는면모를보인다는점을밝힌연구성과에유의하였다.또한관료들의인간관계망이친속관계뿐만아니라좌주-문생,학문ㆍ문예적성향,세계관이나종교신앙등에따라서다양하였고,그관계망의결속이연성적軟性的네트워크로존재하였다는점을고려하였다.
넷째,당시보정輔政이여러번논의되고시행된까닭이무엇인지,외척이자겸과최씨집권자들의비상한권력행사가어떻게가능하였는지,특히최씨정권의장기간권력세습이어떤명분과논리로정당화되었는지등에주목하였다.왕정과관료제가유지되는가운데특정관료가왕을대신할정도로비상한권력을행사할수있었던배경은,강력하게구축된사적세력기반만으로는설명하기가어려우므로그것이가능하도록용인한사상적ㆍ제도적근거를확인할필요가있다.
다섯째,권력배분문제와함께사회경제적현안에대한정책수립과정치운영양상에주목하였다.자연재해가빈발하고사회모순이확대되는가운데공적ㆍ사적지배방식이공존ㆍ대립하면서정치권에위기의식을불러일으킴에따라,종교나풍수도참설에근거하여왕조의연기延基와양재초복禳災招福을위한행사와천도나이궁離宮건설등의비상한조치가필요하다는주장이조정에서논의되었다.또한국가의공공성강화나지배질서확립을위한개혁의필요성을인정하여유교정치이념에입각한여러가지개혁방안들이논의되었다.이책에서는그논의가정치갈등과연계된점에주목하고,각개혁방안의사상ㆍ이념적기반을검토하였다.외교와전쟁,대외교역과문화교류사안도주요정치이슈였다.국가이익과안보를위하여공격적인팽창정책을쓸것인지,세력균형정책을쓸것인지,강대국에외교적으로굽히는방식으로라도평화를유지할것인지,또는외교와경제ㆍ문화적교류를결합할것인지,분리하여이원적으로대할것인지등을놓고의견이갈라졌다.그리고그분화는국내정치사안과도연계되어진행되었다.
여섯째,문벌의강화와문벌사이의네트워크가정치에미친영향을살펴보았다.문벌은국가ㆍ왕실에대한훈공의결과로이루어진것이며,훈공에대한은사차원에서문벌출신을우대하였다.즉문벌은왕조보위세력으로인식되었다.또한권력을가진문벌이관료임용과인사에영향력을행사하여사회통합을저해함에따라아래로부터그제약을넘으려는노력도전개되었다.이같은양면성을고려하여문신중심의문벌귀족정치라는관점에서중시해온왕대문벌귀족,문벌귀족대신진관료,문신대무신이라는대결구도가과연적합한지를검증하였다.
일곱째,고려중기론의시각에서무신정변의성격을파악하였다.사실상이책의구상은무신정변에대한재해석으로부터시작되었다.이책에서선정한주요논점은다음과같다.12세기전반기의정치과정이무신정변과어떻게연결되었는가?의종대의정치가어떠하였기에무신정변의직접적원인을제공하였는가?12세기전반기에일어난정변들과무신집권기의정변들을같은맥락에서이해할수있는가?
저자는지금까지축적된연구성과들을바탕으로하여고려중기정치사연구에있어폭넓은문제의식을제시하고당시의정치사를좀더심도깊게해석하고자하였다.‘정치사의재조명’은그러한저자의시도를대변하는제목이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