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사랑이란무엇인가?
만공滿空을향한불심의수상록
일엽스님은근대한국불교의대표비구니이자,신여성으로서일제강점기여성의의식계몽에앞장섰던문인이다.이번에김영사에서출간하는‘김일엽문집’에는일엽스님의법문과에세이를모은첫저서인《어느수도인의회상》을비롯해,이를갈무리하고보완한대표수필집인《청춘을불사르고》,일엽스님의불교사상에대한면모가잘드러나는수상록《행복과불행의갈피에서》가포함된다.또한‘김일엽문집’은일엽스님의생애와사상에관한연구서인박진영교수의《김일엽,한여성의실존적삶과불교철학》과함께묶여,‘김일엽전집(전4권)’으로구성된다.
김일엽문집의마지막책인《행복과불행의갈피에서》는사랑이라는절벽,행복과불행의갈피를헤맨여성들의이야기를담았다.영원하지않은조건부사랑,무한할수없는상대적행복,오래지속되기힘든자유와평화등모든인간생활에는반면半面이존재한다.아무리행복한순간이라도그속을들여다보면행복의유효기간을걱정하는자신의시선이있다.그래서일엽스님은진정한행복을위해서는무엇보다“나를불러일으켜야한다”라고말한다.다함이없는무가보無價寶와같은자신의생명력을스스로찾아야한다는것이다.
나이의청춘이요,몸의전성시대에는
쇠퇴와노약이라는비청춘非靑春이따른다
전작인《청춘을불사르고》에서도밝힌바있듯,일엽스님은인간생활에서때로생명보다도더중요하게여겨지는‘사랑’이라는문제를이야기한다.인간적사랑에매혹되어그것을넘어서지못하고육체에종속되거나,자신이이미가지고있는창조성을발견하지못하게되는경우가비일비재하기때문이다.그래서일엽스님은“그사랑을이겨내고내가임의로쓸수있는물건으로”만들기위해(인간생활에서는)“이겨내지못할그사랑을유폐시켜야”한다고말한다.이는일엽스님의표현에따르면,일단“살고보자!”하는것이며,한조각의사랑때문에자신전체를녹여버리지않기위함이다.그리하여“사랑의통제력을가진인간만되면,그큰뭉치의사랑을풀어구더기에까지자비심을베푸는대자대비大慈大悲한인간”이될수있다.
이러한근본적논의를이어가면서일엽스님은자신의‘애정역정’뿐만아니라주변여인들의생애까지톺아본다.춘원이광수의아내허영숙,뛰어난화가였던나혜석,<사死의찬미>를불렀던가수윤심덕,속세에서사랑에실패했지만이를극복하기위해입산한장애련과이순실,그리고속세에서의끊지못할인연에괴로워하다가유서를남기고떠난손상좌孫上座까지.이들은모두사랑이라는장애물을넘지못했지만,서로다른선택으로자신의운명을결정지은이들이다.인간에게사랑은피할수없는절벽이기도하지만,일엽스님에따르면“육체는영혼의의복”인만큼“사랑이아무리강력한적이라해도시간이흐르는대로점차해소되는것”이므로,“지그시누르고정진해가면명랑할때가올것”이다.
먼지같이떠도는약한정신을버리고
무념의경지에이르는법을배우자
‘성주괴공成住壞空(성겁成劫,주겁住劫,괴겁壞劫,공겁空劫의사겁四劫)’은만물이생성하고소멸하는과정을일컫는불교용어다.자신의꼬리를물고있는뱀처럼모든일의시작과결말은하나인셈이다.“물질은불멸이기때문에물질의내적본질은시종이없다”라고말하는일엽스님의말씀은그래서현재우리에게도전하는바가많다.우리는근대인으로서매일합리주의와과학적사고를외치지만정작자신의시작과끝을알지못하고,“살차비는커녕죽음의길로만뻗쳐나가는”중이기때문이다.그런인생이어찌행복하다말할수있을까.
결국우리가바라는행복이란“상대적인자족이요.조건부의행복”일수밖에없으니,“그반면에불행이붙어있다는것을알고먼저가진행복은남김없이버려야”한다.이를위해일엽스님은글의후반부에불佛을향한마음가짐과더불어스승인만공스님의법훈을포함한대중설법,중의처세법등을함께담아전한다.“나를아는것이곧인생문제,우주문제를해결하는것”이라는일엽스님의말씀은현재를살아가는우리에게여전히큰울림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