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 (시각장애 언어학자가 전하는 ‘보다’에 관한 이야기)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 (시각장애 언어학자가 전하는 ‘보다’에 관한 이야기)

$17.06
Description
“화통하고 기개 넘치는 에세이다. 답답한 경계를 세게 무너뜨리고자 하는 저자의 태도를 닮고 싶어진다”(정세랑 작가)

“‘눈으로 보지 않는 부족’의 경험과 삶의 가치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급진성’을 품은 글이 가득하다”(김원영 변호사)

우리는 정말 ‘보고’ 있을까?
한 언어학자가 듣고 만져서 본 세상의 풍경
눈을 사로잡는 온갖 것들로 가득한 세상, ‘보다’와 ‘안다’가 같은 말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보지 않고 보는 것이 가능할까? 두 살 무렵 양쪽 눈을 잃은 뒤 ‘보지 않음’이 당연해진 언어학자가 신문과 라디오에서 오랫동안 써내려간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시각에서 자유롭기에 시각 중심의 세계로부터도 자유로운 저자는 이 책에서 ‘정상’의 경계를 유쾌하고 거침없이 뒤흔든다. ‘눈으로 보는 부족’이 시력을 쓰는 모습에 신기해하는가 하면, 승차권 발매기가 터치스크린으로 바뀌어가는 현실에 분노하고, 한편으로는 기계적인 ‘배리어프리’가 피곤할 때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딴짓하는 학생들을 혼내고 ‘요즘 아이들’을 걱정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꼰대 선생님’이다.
이 책은 “세상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만져보고 들어보고 맛보고 맡아보는 것”이라고 외치는 저자가 ‘보호’와 ‘배려’라는 말 아래 가려진 장애인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펼쳐낸 기록이자, 시각으로 기울어진 사회에 던지는 치열한 물음이다.
저자

호리코시요시하루

(堀越喜晴)
일본의시각장애인언어학자이자칼럼니스트.두살무렵에유전율이높은소아암의일종인‘망막아세포종’을앓고두눈을적출했다.언어학과기독교문학을공부하고쓰쿠바대학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은뒤메이지대학,릿쿄대학,일본사회산업대학에서학생들을가르치고있다.자신과같은질병으로한쪽눈을잃고2021년도쿄패럴림픽에서메달을딴마라톤선수호리코시다다시의아버지로도유명하다.
섭외를거절하려고“5분정도는내맘대로말하고싶다”고둘러댄것이받아들여지는바람에10년가까이NHK라디오〈시각장애인여러분에게〉에출연했다.이때쏟아낸이야기들은청취자들의호평을얻으며인기를끌었고,100년이상의오랜전통을자랑하는일본의점자신문〈점자마이니치〉에도9년가까이칼럼을연재했다.지은책으로는《양의농담:집회석에서보내온메시지》《배리어오버커뮤니케이션:마음에바람을통하게하자》《나니아의이웃들》등이있다.
이책에서그는일상에서느낀다양한생각과감정을솔직하게털어놓으며장애인독자와비장애인독자모두에게거침없이다가간다.그의날카로우면서도유머가득한시선은장애인을‘보호받고배려받아야하는’존재로만바라보는납작한생각을깨뜨린다.“상상력을자극하고,눈으로보이지않는풍경을비추며,소통의문을열어준다.그의언어를‘보는’맛이넘쳐난다”(니혼게이자이신문)는찬사를받았다.

목차

한국의독자들에게:보이지않는세상을맛보는법
들어가는말:손가락에거슬리는이야기

1장우리는정말‘보는’걸까?
눈으로보지않는힘│본래다른의자│화장실과라스코동굴│공기전파설│배리어오버와배리어프리│기적을기도하지않는이유│나는왜언어학자가되었나

2장그래봤자말,그래도말
본다는말을자주쓰는군요│‘현실적’이라는말에대하여│굳이위선을행하세요│할일이너무많은증후군│말의외모│배려가권력이될때│자력과자립│침묵이배려라는생각

3장이상한이야기
이상야릇한평등│깎아줄테니참아라?│배리어프리프리│‘보통명함’이야기│“어디가니?”│감동의방정식│장애인없는세상?│발목잡기의논리│장애인을내쫓는공기

4장여섯개의점
점자와수화│그렇다면그런거야│웰컴투점자유니버스│너무자연스러운무지│인간으로간주되기│점자투표100년의의미│거울에비친문자

5장교육의의미
이야기의위기│‘의미없음’의시대│텔레비전화면을뚫는법│불쾌한진화│좋아한다는그마음│등보다얼굴을│환영받지못하는강연자│마지막수업

6장사람,장소,기억
다름을깨닫는날│나의영국│“그렇게간단히없어지겠어?”│어느선생님에관하여│내로캐스트의시대│눈으로보는부족│리우데자네이루의바람│괜찮냐는말을듣지않고여행하는기분│장애인을대하는법

7장계란으로바위치기
고맙지않은배리어프리│지팡이감각│1호사건│찬양과우롱사이│얼굴없는인간│‘강렬한이야기’의그림자│함께일하는진짜이유│가짜평범함│우생사상과핵폭탄

나오는말:속죄와보은
감사의말
옮긴이의말:‘통역’후기

출판사 서평

“어떻게만지지도않고볼수있다는걸까?”
눈으로보지않는언어학자의‘비주얼세계’낯설게보기

오래전부터시각은‘가장고귀한감각’으로여겨져왔다.오늘날도마찬가지다.일상속물건들부터공동체를유지하는제도들까지모든것이‘볼수있음’을전제로만들어지고굴러간다.이책의저자호리코시요시하루는이런불균형에서비교적자유롭다.‘보는감각’을인지하기전인두살무렵,망막아세포종이발병해두눈을적출했기때문이다(193쪽).흔히시각장애는‘빛을잃고어둠만남은’상태로묘사되는데,애초잃을것이없었던저자에게는빛도어둠도존재한적이없는셈이다.따라서그는자신의장애를결핍이아니라차이로여긴다.이책에서반복적으로나오는‘눈으로보지않는부족’과‘눈으로보는부족’도그런맥락에서쓰였다(22쪽).
어린시절“만지면안돼”라는말을듣고만지지않고어떻게봐야하는지이해할수없었던저자에게시력은오히려‘초능력’이다(21쪽).‘손과귀로보는게당연한’그의세상은‘눈으로보는부족’이아는세상과전혀다른모습이다.전철에설치된잠금기능이없는화장실이나(31쪽),요즘앞다퉈도입중인터치스크린기계(93쪽)등‘보는사람’을전제로한시설들은시각에지나치게의존하는사회를문제삼기보다는개인의시각능력을평가하게만든다.저자조차시각중심의사회에서완전히자유롭진않다.‘보다’와‘읽다’라는말을무의식적으로쓰는습관에대해‘지적’받은후,그는시각이사회전체에서인식과소통의중요한메타포가되어있음을깨닫는다(53쪽).
앞으로기술이발달해시각장애인도시각정보에접근한다면이런문제가사라질까?저자는점자문자를비롯한고유의‘맹인력’이사라지는것이쓸쓸하다고말한다.‘보지않는것’이결핍이아니라면‘보지않는문화’역시결핍이될수없으므로.이책을옮긴노수경번역가는시각장애인인저자가목소리로쓴책임을깨닫고뒤늦게오디오북을참고했다고한다(283쪽).이책은‘번역’이아니라‘통역’의작업이었다는그의말은,책은눈으로읽고손으로쓰는것이라는생각조차시각에기준을둔생각임을알려준다.실제로책을점자로읽는저자는읽기힘든문장이나오면눈이아니라‘손가락에거슬린다’고표현한다(11쪽).당연하고익숙한일상을이처럼낯설게만드는것또한저자가이책을쓴의도였을것이다.


“안보이니어쩔수없겠네.”“무슨!보여도어쩔수가없잖아.”
‘답답한경계를세게무너뜨리는’선생님의거침없고유쾌한일상

장애를지닌학생들이흔히공부하는사회복지학,특수교육학,장애학에저자가몸담지않은것은언어학을좋아해서이기도했지만,장애인에대한편견을깨뜨리고싶었던이유도컸다고한다(47쪽).그가공부를마치고강단에서‘눈으로보는부족’들을마주하는모습은여느선생님들과비슷하다.수업에서학생이잡지를읽고있으면빼앗기도하고,딴짓하는학생에게나가라고소리지르기도한다(24쪽).점자는어째서그런식으로쓰느냐는호기심어린질문에“몰라,그렇다면그런거야”라고짜증내고싶은마음을꾹참을때도있다(132쪽).
책에따르면장애인들이길에서가장많이듣는말은놀랍게도“어디가니?”이다(106쪽).환갑을목전에둔저자는지금도이런황당한질문을자주받는다고한다.그래서호의를제공한답시고“내가데려다줄까?”하며접근해오는사람들에게“그러냐,고맙구나”라고똑같이반말로대꾸해준다.병원에서는아내를통해자꾸문진하는의사에게“저에게물어보세요!”라고발끈하기도한다(108쪽).
이책은장애인배려의만능키로여겨지는‘배리어프리(barrierfree,사회적약자들의생활에지장을주는물리적·심리적장애물을제거하는것)’정책에대해서도허심탄회하게이야기한다.저자는전철역계단손잡이의점자표시기능에여전히문제가많다는점을지적하는일과별개로,이러한배리어프리정책이엉뚱한방향으로흐르는것도경계해야한다고강조한다.열차로통근하는저자가환승시간이짧고배차간격이긴역에서서두르고싶은데도자신을‘보호’하려는역무원에게제지당했던경험,다른승객들과달리10분전부터준비하도록채근당한일화를소개하며,융통성없는배리어프리를마주할때의난처함을토로한다(99쪽).물론‘배리어프리’가이제야확산되고있는한국사회에서는이런‘솔직한’논의가아직이를수도있다.일본은100년이상된점자신문이있을만큼인식과제도가한국보다앞서있기때문이다.그럼에도소통이라는알맹이가없는기계적배리어프리가허울에불과할수있다는지적(100쪽)은오늘날한국사회도귀기울여야할부분이다.
‘눈으로보는부족’이그간‘눈으로보지않는부족’에대해넘겨짚어온것을깨뜨리는에피소드들은‘배려’와‘보호’의대상으로만그려지던장애인의일상을입체적으로보여준다.당사자들이들려주는이런평범한이야기들이늘어날수록장애인과비장애인사이의장벽도조금씩낮아질수있을것이다.


“장애인을쫓아내는사회는약하며,무너지기쉽다.”
‘발목잡기’라는오래된논리에대하여

일본은장애인정책이한국보다앞서있긴하지만,장애인이비장애인의발목을잡는다는식의논리는한국과마찬가지로오래되었다고한다.이책에서는2016년일본의한장애인시설에서일어난살인사건이여러차례언급된다.저자에따르면가해자가범행동기로밝힌“장애인은죽는편이모두에게이익이다”라는말에깔린무시무시한‘논리’는정도의차이가있을뿐사회곳곳에퍼져있다(249쪽).공교롭게도일본에서오랫동안시각장애인라디오프로그램을담당했던한연출자가“시각장애인이한사람도남지않게되면좋겠다”는‘선한’소회를밝힌적이있는데(114쪽),그는여기서도‘발목잡기’논리의끈질긴그림자를감지한다.
소수자를위한기술의발전을저자가마냥달갑게만느끼지못하는것은,‘효율성’에방해되지않도록장애인은‘배려’나받으며‘분수’에맞게머무르라고요구하는듯해서다(120쪽).그는유엔의〈장애인권리협약〉에나오는‘합리적배려’개념이배려를하는쪽과받는쪽의권력관계를은연중에전제하므로‘적당한안배’라는용어로바꾸자고도제안한다(73쪽).
한국에서도장애인이동권보장시위가벌어질때반대의견의근거로등장하는‘최대다수의최대행복’이라는공리주의논리에대해,저자는공리주의가그자체로목적이될수없으며“모두가양보하면서모두가만족할수있는토대”를만들어나가기위한하나의과정일뿐이라고강조한다(118쪽).시각장애인으로서그가일본사회를보는방식은,장애관련이슈가찬반논의의영역으로넘어가며갈등이고착화된한국사회도돌아볼수있게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