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이 반가울 때가 해탈이다 (백성욱 박사 법문집 | 양장본 Hardcover)

분별이 반가울 때가 해탈이다 (백성욱 박사 법문집 | 양장본 Hardcover)

$31.08
Description
백성욱 박사가 남긴 법문(法文)과 일화
가짓껏 한번 밝게 살아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지혜의 말씀
백성욱 박사 전집 3권, 《분별이 반가울 때가 해탈이다》는 한국 근현대사의 선구자이자 불세출의 도인으로 알려진 백성욱 박사의 법문(法文)과 일화를 집대성한 책이다. 그동안 백성욱 박사의 법문은 후학들의 기록을 통해 여러 형태로 전해져 왔으나, 체계 있게 정리되지 못한 채였다.
이 책은 흩어져 있던 백성욱 박사의 법문과 일화들을 그러모으고 발굴ㆍ구성하여, 본래 말씀의 형태와 뜻을 살려낸 방대한 책이다. 백성욱 박사에게 직접 가르침을 구했던 후학들의 증언과 기록은 물론,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도 복원하여 추가했다. 각각 동떨어져 있던 탓에 이해가 어렵거나 모호했던 내용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흐름을 만들어 구성했다. 무엇보다도 백성욱 박사의 말씀에 담긴 본뜻을 살리는 데 집중하였다. 불교 수행자, 독립운동가,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 정치가, 교육 행정가였으며 기업인이자 생활인이었던 백성욱 박사의 면모가 법문 곳곳에서 드러난다.
백성욱 박사는 일찍이 금강산 안양암에서 단신 수도에 들어가 1일 1식(一日一食) 하며 ‘대방광불화엄경’을 제창하고, 금강산 지장암으로 옮겨 혜정 손석재 선생과 함께 근대 최초의 수행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며 회중수도(會衆修道)를 이끌었다.
해방 후 이승만 박사를 도와 건국 운동에 참여한 백성욱 박사는 제4대 내무부장관, 동국대학교 제2대 총장을 지낸 뒤,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현 부천시 소사동)에 ‘백성목장’을 세우고 경영하면서 《금강경》을 중심으로 후학들을 지도했다.
백성목장에서 수행자들은 매일 새벽 《금강경》 독송과 ‘미륵존여래불’ 정근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수행자들은 백성욱 박사에게 수행 문답을 청하며 공부했다.
저자

백성욱

1897년8월19일(음력)종로구연건동에서출생했다.만3세에아버지를여읜데이어,9세에어머니마저세상을떠났다.정릉봉국사에서행자생활을시작,13세에최하옹스님을은사로출가했다.전국주요사찰의불교전문강원에서8년에걸쳐공부하다,1917년(20세)에서울로올라와동국대학교전신인불교중앙학림에입학했다.1919년3월1일,한용운스님의명을받아중앙학림학생들을인솔하여탑골공원에서기미독립선언서를배포했으며,이후남대문과대한문에서시위를주도했다.대대적인검문과체포가시작되자상해임시정부를찾아가독립운동을했으며,《독립신문》제작에참여했다.
1921년,24세에충정공민영환의아들범식·장식형제의지원을받아그들과함께1년동안프랑스북부보베에있는고등학교에서프랑스어,독일어,라틴어를공부했다.이듬해,독일뷔르츠부르크대학교의대에서공부하던이미륵을만나철학과한스마이어교수를소개받았다.시험에통과,뷔르츠부르크대학교대학원철학과에입학하여1923년가을부터마이어교수를지도교수로〈불교순전철학(佛敎純全哲學)〉박사학위논문작성에매진했고,이듬해5월에초고완성,9월에인준받았다.
1925년9월,28세에귀국하여신문과잡지에시와논문,에세이등을기고하고,각종토론회와법회에나서는등불교혁신운동에참여하다,1929년(32세)늦여름,불교전수학교(구불교중앙학림)교수직등모든걸내려놓고금강산에입산,장안사보덕암에서수행을시작했다.수행중혜정손석재선생의권유로오대산상원사적멸보궁에함께가서100일기도정진했으며,1930년부터장안사안양암에서1일1식하며‘대방광불화엄경’염송수행을시작했다.안양암3년정진중얻은바가있어,장안사지장암에서손혜정선생과함께근대최초의수행공동체운동을전개하며회중수도(會衆修道)를시작했다.조국독립을기도하고,‘대방광불화엄경’을염송하면서7년여동안500여명의제자를지도했다.1938년(41세)4월,지장암수도중에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지목되어경남의령경찰서로연행,50여일간취조받다가석방되었으나,일제의압력으로하산하게되었다.
이후서울돈암동과치악산상원사동굴에서정진수도하다가,1945년해방이되자애국단체인중앙공작대를조직하고민중계몽운동을시작했다.상해임시정부시절인연이있던이승만박사를중심으로한건국운동에참여했으며,1950년(53세)제4대내무부장관,1951년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사장에취임했다.1953년7월,부산피난중동국대학교제2대총장에취임했으며,이후5·16군사정변으로동국대학교에서물러나게된1961년7월까지중구필동에대학교교사를건립하고시설·학사·교수등다방면에걸쳐동국대중흥의기틀을마련했다.《금강삼매경론》《화엄경》‘인류문화사’등을강의했으며,《고려대장경》영인작업에착수,총48권의현대식영인본을출간하기도했다.
1962년,65세에경기도부천군소사읍소사리의야트막한산을개간,‘백성목장(白性牧場)’을경영하면서《금강경》을쉽게강의하고,인연있는후학을지도했다.1981년8월19일(음력),출생일과같은날,84세를일기로입적했다.후학들이금강경독송회,청우불교원금강경독송회,바른법연구원,백성욱박사교육문화재단,백성욱연구원,여시관(如是觀)등을세워가르침을잇고있다.

목차

1《금강경》
2미륵존여래불,부처님께마음바치는공부
3교리(연기,공,종교)
4삼독심
5육바라밀
6수행
7도통,종합적즉각
8도인
9용심(用心),이야기
10인과,윤회,전생,신통
11행복
12세가지생활:정신·법률·경제
13인연
14일화:학인(제자)들의회고
15혜정손석재선생님
16금강산사람들
17민족,국가
18즐겨인용하신말씀과짧은말씀들
19부처님께서많은법문을하셨다지만

백성욱박사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시대의선구자이자불세출의도인
백성욱박사가남긴법문(法文)과일화
가짓껏한번밝게살아보고자하는이들을위한지혜의말씀

백성욱박사전집3권,《분별이반가울때가해탈이다》는한국근현대사의선구자이자불세출의도인으로알려진백성욱박사의법문(法文)과일화를집대성한책이다.그동안백성욱박사의법문은후학들의기록을통해여러형태로전해져왔으나,체계있게정리되지못한채였다.
이책은흩어져있던백성욱박사의법문과일화들을그러모으고발굴ㆍ구성하여,본래말씀의형태와뜻을살려낸방대한책이다.백성욱박사에게직접가르침을구했던후학들의증언과기록은물론,그동안공개되지않았던자료도복원하여추가했다.각각동떨어져있던탓에이해가어렵거나모호했던내용은대중이쉽게접근할수있도록흐름을만들어구성했다.무엇보다도백성욱박사의말씀에담긴본뜻을살리는데집중하였다.불교수행자,독립운동가,우리나라최초의독일철학박사,정치가,교육행정가였으며기업인이자생활인이었던백성욱박사의면모가법문곳곳에서드러난다.
백성욱박사는일찍이금강산안양암에서단신수도에들어가1일1식(一日一食)하며‘대방광불화엄경’을제창하고,금강산지장암으로옮겨혜정손석재선생과함께근대최초의수행공동체운동을전개하며회중수도(會衆修道)를이끌었다.
해방후이승만박사를도와건국운동에참여한백성욱박사는제4대내무부장관,동국대학교제2대총장을지낸뒤,경기도부천군소사읍소사리(현부천시소사동)에‘백성목장’을세우고경영하면서《금강경》을중심으로후학들을지도했다.
백성목장에서수행자들은매일새벽《금강경》독송과‘미륵존여래불’정근으로일과를시작했다.수행자들은백성욱박사에게수행문답을청하며공부했다.

《금강경》독송과미륵존여래불,
생각이라할것들을모두부처님께바쳐라

《금강경》독송과‘미륵존여래불’염송은백성욱박사가정한수도(修道)의근본이었다.부처님의진리(말씀)가담겨있는곳이곧《금강경》이며,그것에가까워지는방편이독송이고,그말씀을실천하는방법이‘미륵존여래불’하고회향하는것이다.
백성욱박사는《금강경》이2,500년전석가여래부처님께서설한최고의법문이며,부처의살림살이를있는그대로털어놓은말씀이라고하였다.《금강경》을읽고그말씀을실천하면인류역사상가장밝았던석가여래부처님과차츰차츰통할수있게된다는것이다.
또한마음속에갖가지업장분별(業障分別)들이올라올때마다‘미륵존여래불,미륵존여래불’염송을하며올라오는마음들을하나하나부처님께바치고나면,그자리에밝은빛이채워지게된다고하였다.

“‘미륵존여래불’을마음으로읽고귀로들으면서,당신의생각은무엇이든지부처님께바치는연습을하십시오.가지면병이되고,참으면폭발합니다.아침저녁으로《금강경》을읽되,직접부처님앞에서법문을듣는마음으로하고,이를실행하여습관이되도록하십시오.몸은움직여야건강해지고마음은안정함으로써지혜가생기니,육체로는규칙적으로일하고,정신은절대로가만두십시오.그저부지런히《금강경》을읽고‘미륵존여래불’하여자꾸바치십시오.이와같이백일을일기(一期)로대략10회되풀이하면몸뚱이로인한모든근심걱정이사라지고‘장차어떻게사느냐’하는문제가해결됩니다.이것은아상이없어졌기때문입니다.”_p.18

“아침저녁으로《금강경》을읽되,실제로부처님앞에서마음닦는법을강의듣는자세로믿고읽고실행하여습관이되도록하십시오.궁리는가지면병이되고,참으면그견디는힘이다할때폭발하게됩니다.그러므로마음에떠오르는생각은무엇이든지거기에대고‘미륵존여래불’하여부처님께바치는연습을하십시오.
육체는규칙적으로움직이고,정신은절대로가만히두십시오.‘부처님날좋게해주시오’하지말고,‘부처님잘모시기를발원’하십시오.이와같이하는것이닦는사람이그마음을항복받는방법입니다.”_p.21

백성욱박사의수행은곧‘아상(我相)’을녹이며바치는공부이다.마음에병을일으키는분별심인탐(貪)·진(瞋)·치(痴)‘삼독심(三毒心)’은‘나라는생각’,즉아상에서비롯된다.그래서아상을잘닦아소멸하면부처님처럼밝아질수있는것이다.아상을닦는것은마음속에서올라오는여러가지분별들을억누르지않고그대로부처님앞에바치는일이다.내가마음을닦겠다는마음조차가지지않고부처님에게바치고나면,저절로아상에서해탈할수있게되는것이다.

수행의방편과실제를밝힌살아있는지침서

이책은백성욱박사가금강산안양암,지장암,그리고소사백성목장에서설하고몸소보여준수행의방편을담아내고있다.수행에대한기본지침뿐아니라,수행자들이여러상황에서마주칠수있는경계(境界,수행중마주칠수있는환상이나착각)등주의해야할일에대해설한다.나아가수행의방법론에그치는것이아니라,수행의목적과의미를풀어전한다.

“공부하는사람은항상자신의마음만을관찰하고올라오는생각을부처님께바칠뿐이지남의마음을들여다보고참견하지말라.남이라생각하지만사실은남이아니라내생각일뿐이다.바로곁에있는도반을호랑이가달려들어물어간다고하자.안타까운생각에들떠어떤행동을하려할것이다.그러나안타까운생각은일단부처님께바쳐라.그리고부처님께서주신응답에따라행동할뿐,자신의판단에따른행동은하지말라.생사대사(生死大事)를해결하려는자는윗목에서호랑이가사람을물어뜯어도상관치말며자신의공부에몰두하라는말이있다.그것은공부를이루기까지머리에붙은불을끄듯절박하게정진하여주위를돌볼겨를이없어야한다는뜻이다.”_p.298

“무엇을보든지,무엇을하든지다네가부처님의눈으로보고대하는연습을해야한다.자기가마음에항상부처님을모시면,상대방을부처님으로보게된다.자기마음이부처님과같아야부처님의눈으로세상을볼수있다.그렇게되려면‘부처님’하는그마음에대고절할줄알아야한다.”_p.312

“‘고맙습니다’하는마음을일부러라도내는연습을하여라.그러면마음에기쁨이가득하다.그런데사람에게고맙다고하면업보연습이되기쉽고기쁨이오래유지되기어려우나,부처님께‘고맙습니다’하면기쁨이오래유지된다.”_p.328

동서양의가르침을융합한선구자적시대관

백성욱박사는상해임시정부에서독립운동을하다가충정공민영환의아들민범식·민장식형제의집사역할로프랑스에도착한뒤,독일뷔르츠부르크대학교대학원철학과에서한국인최초로독일철학박사학위를받았다.12세에출가하여심도있는불교경전공부를했던백성욱박사는자신과세계를바라보는넓고깊은시야를갖출수있게되었다.
일제강점기의억압과해방기의혼란상,한국전쟁의참상과국가재건기를모두겪었던백성욱박사는,어두운시대를지나던우리나라와동양의상황을비관적으로판단하는대신,당신이몸소겪은서구사회의정신적한계를명확히간파하는동시에,진정우리가찾고지켜야할정신적가치가바로우리동양의정신에있음을직관하였다.구체적으로는불교의가르침이야말로인류를구할최상의정신가치임을결론내리게되었다.백성욱박사가독일에서박사학위논문으로인준받았던〈불교순전철학(佛敎純全哲學)〉은백성욱박사사상을집약적으로잘나타내준다.
이와같은바탕을두고백성욱박사는당신을따르는수행자들에게동서양을아우르는지혜를전해주었다.특히동서양의고사를통해마음공부와수양의방법을쉽게풀어서설명한다.

“임마누엘칸트의《순수이성비판》이라는책을보면,‘종합적즉각(綜合的卽覺)’에대해서쓴것이있다.우리의마음은경험이나궁리로분석하지않고도종합해서느닷없이그냥알아지는능력을갖추고있다는것이다.
분별심이소멸되고마음이밝아지면나와너의구분이없어지며진리니비진리니하는분별심도사라진다.동양과서양을구분하는분별심도사라지게되며이들이모두다른것이아님을알게된다.모든구분이란다밝지못해서발생하는것이기때문이다.분별심이사라진사람이보면동양의성현들이말하는지혜와서양식표현인‘종합적즉각’이하나도다르지않음을알게된다.
도통한이들의판단은과거의경험을분석하는것이아니라종합적즉각이라고해야하는데,우리는그것이느닷없이나온다고말할수밖에없다.”_p.341

“나폴레옹이힘으로유럽대륙을휩쓴영웅이라고알려져있지만,총칼밖에모르던사람은아니었구나싶다.느닷없이나오는지혜,이것은몸뚱이착을닦아서저절로나오는것이다.닦는장소가따로있거나이러저러한형식이있어서나오는것이아니다.성직자가되어겉으로불법(佛法)입네하는형식을갖추면,도리어아상을키우기가쉽다.평소에분별심을부처님께잘바친다면위기에도두렵지않게된다.상대를두려워하지않을때참지혜가나오는법이다.나폴레옹은그당대에는마음을쉬는연습을하지않았겠지만,틀림없이전생에는분별심쉬는연습을많이했던사람일것이다.”_p.454

이책에는동국대학교총장으로재임할당시대학생과교수들에게펼친대중법문도함께담았다.당시넓은세계를아직체험하지못한대중들에게백성욱박사의대중법문은세상의진면모를간접적으로나마보여주는말씀이었다.나아가백성욱박사는우리민족과나라가갖추어야할시대정신과비전을제시하기도하였다.

“일본사람이똑똑해서우리를점령한것이아니고우리가무식해서점령당한것이라고말하는이유는,학문에과학과실증을더하지않고‘공자왈,맹자왈’하던탓이었음을전하기위함이다.조선제22대정조대왕때정약용과그후홍대용등실학파가당파싸움에서나가떨어지지않고나라를일으켜서양과학문물과우리전통학문을조화했더라면쪼끄만왜놈들이어떻게우리를지배했겠는가?”_p.763

“동국대학교시절,총장실에한영국사람이찾아왔다.OECD관계업무차한국을방문한사람이었다.그사람이대뜸작은한국에무슨대학교가그리많으냐고물었다.조금은책망하듯말해서기분이좋지않았다.나는한국에는대학이많은것이당연하고,그런현실에스스로기쁘다고대답했다.
“우리는다른나라처럼자원도많지않고,40년동안식민지배로고생하였다.설상가상으로전쟁을겪고,전쟁이끝난지10여년이지났으나나라가반토막난채아직도기운을못차리고있다.그래도다행히,민중이밥은굶어도자식은공부시킬만큼학구열이높아대학이많은것이다.나중에보아라.우리민족은교육으로성공한다.”
이렇게설명하니그영국사람이대답할말이없는지가만히있을뿐이었다.”_p.770

삶과깨달음을관통하는지혜의순간들

이책의중심에는백성욱박사를따랐던후학들의증언이있다.백성욱박사의말씀을기억하고이를실천하기위해부처님께자기마음을바치는삶을실천해온후학들이전하는백성욱박사의일화,말씀뿐아니라몸소행함으로보인가르침의순간이빛나는감동을선사한다.

“선생님은“몸을가진사람은일하고먹는것이니라”하시며,손수빨래를하고대중들의옷을직접바느질하여지어주시는것외에도도량의크고작은일에몸을아끼지않으셨다.또처음에제자들이공부하러들어오면그들의바지저고리를직접빨아서말려풀을먹이고다림질까지해서입히면서공부시키셨다.그러다가몇달이지나자신들이직접할마음을내면그때부터는본인들이스스로하도록내버려두셨다.”_p.670

“선생님은종종“공부란삶에도움이되고밝아지는방법이되어야한다”라고하시거나“공부는메소딕(methodic,방법)이되어야한다”라고하셨다.누가살아가는방법과관계없는주장이나공부와관련이없는질문을하면침묵을하시거나꾸짖어주셨다.간혹“그건질문이안되지”라고말씀하셨고“그런거,나는모른다”라고말씀하시기도했다.”_p.680

“선생님은“의지하는마음,누가해줄것을바라는마음은약한마음이다.무엇이든할줄알아서이세상사는데걸릴것없는건강한마음이되어라”라고하셨다.김장하는법,메주만들어띄우는법,된장ㆍ간장ㆍ고추장담그는법까지사는데필요한모든것을손수가르쳐주면서‘불가능하다’‘못한다’라는마음을하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