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작여시관 (백성욱 박사 전기 | 양장본 Hardcover)

응작여시관 (백성욱 박사 전기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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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근현대 불교의 선지식 백성욱에 대한 최초 본격 일대기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 건국 운동가이자 내무부장관, 동국대 총장이자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 금강산의 수행자이자 활불(活佛). 백성욱을 일컫는 말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반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연구, 기록은 많지 않다. 대중적으로도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강설한 《금강경 강화》, 제자들이 전하는 일화와 법문 일부가 책으로 엮여 있고, 불교학 연구자들이 그의 금강산 수도 시절을 중심으로 논문을 몇 편 발표한 정도다.
이 책은 《백성욱 박사 전집(전6권)》 출판 기획에 따라 준비된 백성욱의 일대기를 다룬 최초 본격 전기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출생과 성장, 청년기, 금강산 수도 시절, 소사 백성목장 시절 등을 인터뷰와 역사 자료, 편지와 기사, 취재 등을 통해 발굴·정리하였다. 동시에 그동안 잘못 알려진 채 인용되고 있던 내용도 수정·보강하였다. 기록을 하나하나 비교하여, 보다 정확하게 연보와 생애를 꿰어맞추고, 백성욱의 깨달음과 가르침의 방향을 법문과 학인들의 수행기를 통해 명확하고 풍성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백성욱 박사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금강산 수도 생활 시절’, 그중에서도 안양암에서의 단신 수도 생활을 가장 의의 있고 보람 있던 때로 말하고 있다.
저자

고세규

1972년전북부안출생.서강대학교에서국어국문학과사회학을공부하였다.1998년김영사편집부에입사,대표이사로일하고있다.

목차

서문:백성욱박사의전기를엮으며

1부.이인(理人)을꿈꾸며
1.한용운의부름
2.지혜는곧생명력
3.상해임시정부를오가며
4.독일철학박사가되다

2부.금강산의수행자
5.갈팡질팡하누나
6.숙세의인연,일엽을만나다
7.나는가서없어져야한다
8.백성욱의선지식
9.안양암의활불
10.금강산에모여든500화엄성중

3부.한국불교교육의중흥조
11.돈암동선방에서의보림
12.치악산의백로선생
13.해방-나라다운나라를위한선택
14.종로네거리에내려온철인
15.정치를떠나교육으로
16.백성욱특강
17.5·16으로대학을떠나다

4부.미륵존여래불
18.응작여시관
19.왜‘미륵존여래불’인가
20.백성목장사람들
21.어느부처님회상
22.다바쳐라

화보
백성욱박사연보
감사의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독립운동가이자한국최초의독일철학박사,건국운동가이자내무부장관,동국대총장이자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사장,금강산의수행자이자활불(活佛)이라불린
한국근현대불교의선지식백성욱에대한최초본격일대기

“한용운의명을받고독립선언서를경성시내와지방에배포한자”(조선총독부경무총감부가3·1운동직후인1919년3월22일작성한3·1운동계보도에서),상해임시정부와국내를오가며독립운동을이어가고〈독립신문〉제작에기자로참여한인물,1921년충정공민영환의두아들민범식·민장식의집사역할로유학길에오른뒤독일뷔르츠부르크대학원철학과에서〈불교순전철학〉으로박사학위논문을인준받은한국최초독일철학박사,1929년가을불교전수학교(동국대학교전신)철학과강사직을버리고금강산에입산하여10년동안정진한안양암의수도자,해방과함께민중계몽운동과건국운동을실천한내무부장관,동국대의기틀을세운동국대학교총장,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사장,그리고1962년65세에경기도부천군소사의야트막한산을개간하여‘백성목장(白性牧場)’을경영하면서20년가까이《금강경》을강화(講話)하고인연있는후학을지도한선지식,3세에아버지5세에어머니를여읜뒤12세에출가하여나는바도없고죽는바도없다는듯태어난바로그날(음력8월19일)입적한시대의활불(活佛)이라불린인물.
백성욱을일컫는말은다양하고특별하다.반면그에대한구체적인자료나연구,기록은많지않다.대중적으로도그다지널리알려져있지않다.그가강설한《금강경강화》,제자들이전하는일화와법문일부가책으로엮여있고,불교학연구자들이그의금강산수도시절을중심으로논문을몇편발표한정도다.
이책은《백성욱박사전집(전6권)》출판기획에따라준비된백성욱의일대기를다룬최초본격전기이다.그동안알려지지않았던출생과성장,청년기,금강산수도시절,소사백성목장시절등을인터뷰와역사자료,편지와기사,취재등을통해발굴·정리하였다.동시에그동안잘못알려진채인용되고있던내용도수정,보강하였다.기록을하나하나비교하여,보다정확하게연보와생애를꿰어맞추고,백성욱의깨달음과가르침의방향을법문과학인들의수행기를통해명확하고풍성하게전달할수있도록하였다.
백성욱박사는그의생애전반에걸쳐‘금강산수도생활시절’,그중에서도안양암에서의단신수도생활을가장의의있고보람있던때로말하고있다.그는자신의삶에대해이렇게회고한다.

“나는유럽에서유학을마치고귀국하여중앙불교전수학교의교수로취임했습니다.그러나얼마지나지않아교수직을사임하고금강산안양암에들어가단신수도를하였습니다.그곳에들어가수도를한것은내자신이좀더부처님속에살고싶었기때문입니다.부처님을멀리하고는무엇인가허전하여일을할수가없었습니다.처음3년동안은오직혼자서기도를올렸습니다.
그러나3년이지나던해가되자,금강산에들어와수도하는많은종중(從衆)이같이있기를간청하는바람에그들의뜻을물리칠수없어지장암으로옮겼습니다.이때부터는여러수도자와같이기도하면서그들을지도하는데온갖정성을기울였습니다.안양암에서3년,지장암에서7년,그래서이기도는만일(萬日)기도였습니다.그런데만일기도가끝나는1938년어느날,일본경찰이나를체포하러왔습니다.
(…)지금회고해보면,내생애의전반에걸쳐금강산수도생활의시절보다의의롭고보람있던때는없었습니다.그가운데서도안양암의단신수도생활은더욱그렇습니다.그때의신심은불이붙고있었습니다.그리고그때의기도는석가모니불앞에서의본존불(本尊佛)정진이었습니다.나는나의모든것을부처님앞에바치고있었습니다.나는지금도부처님곁을떠나는날이없습니다.나의마음속에,그리고나의생활속에는항상부처님이계십니다.나의이러한신앙심은내가부처님과인연을맺은날로부터지금에이르도록변함이없습니다._p.353

지인과학인들의회고,각종역사와언론자료를토대로정리한백성욱박사의생애와세계

“저사람들점심은내가가져다줄테니다른대중은나서지마시게.”(p.113)조계종초대종정에추대된근대한국불교계의대표스님인방한암선사의말이다.백성욱이스승이자도반인혜정손석재보살과함께오대산적멸보궁에서정진을이어가자,당시오대산상원사에주석하던방한암선사는백성욱을‘큰사람백성욱’이라칭송하며,그의공부를위해친히끼니를나르며격려하였다.약초연구가인산김일훈이남긴일화를보면,당시주요인사들의백성욱에대한생각을읽을수있다.

“방도인(方道人)으로불린형님이한분있었다.그형님이해방을보지못하고죽음에다다르자임종을지키던많은독립운동가는그에게물었다.‘선생님께서떠나시면어찌될까요?선생님같은이인(異人)이과연또다시나올수있겠습니까?’라고물으니,‘모르는소리…,나보다월등한재주들이많지.해방이틀이후묘향산의김운룡이몽양집으로올걸세.그리고금강산중백성욱이있지않은가.모두천하의기재(奇才)들이니나라에큰일이있거든나이를관계치말고물어서의견을듣도록하게나.’”_p.168

“수개월전에나는금강산에서백성욱사(師)를만나서3,4일간설법을들을기회를얻었소.”[이광수,《문장》(1939년9월)]춘원이광수는백성욱보다나이가다섯살위였지만힘든일이있을때면금강산까지백성욱을찾아와마음을털어놓고갔다.재혼한부인허영숙과크게다툰뒤면어김없이백성욱에게달려와푸념을늘어놓곤하였다.사상적인갈등을거듭하고병약한체질이겹쳐실로위안받을데가없을때에도불원천리백성욱을스승으로모시고찾아갔다.(pp.166-167)

소설가이병주의〈백로선생〉이라는작품은1944년치악산에서백성욱을스승으로동굴수행을하던청년셋을소재로한작품이다.이소설은KBS〈TV문학관〉에단막드라마로방영되기도하였다.(pp.186-187)
한편시인서정주는“한반도5,000년역사가운데여자로서는선덕여왕이가장매력적이고,남자로서는백성욱총장이가장매력적인남자”라고백성욱박사를회고하였다.(p.243)

이책은백성욱에대한다양한인사의기억과일화,평가를함께담아그를입체적으로이해할수있도록하고있다.특히소사백성목장시절,바로그의곁에서수행의길을걸었던제자들의생생한기억은백성욱의가르침과세계를고스란히전해준다.

“무슨일을바라볼때면,내안에백선생님이들어앉아계심을느낀다.백선생님께서는무슨일을두고‘왜’라는말을쓰지않으셨다.‘너는왜…?’하면,그건시비(是非,옳음과그름)를가리는말이될텐데,그러지않으시고‘너는그렇게해야했더냐?그게좋아보이더냐?’이렇게말씀하셨다.선생님께서는시비경계를짓는말씀을하지않으신것이다.이런데서,백선생님의법문을듣고공부하거나백선생님의말씀을책으로읽어공부한사람하고,백선생님의체취를곁에서느끼며공부한사람하고차이가난다.(…)곁에서모시고공부하면스승이그대로딱들어오기때문이다.”_학인김강유(p.9)

“소사에서학인들이무언가를사러가게될경우,(백선생님은)예상되는가격의두배정도되는돈을건네주었다.돈이이렇게나많이필요하지않을거라고말하면,‘그래도혹시모르니헛걸음하지않도록일단풍족하게갖고나가봐라’하였다.학인들은늘넉넉하고풍요로운마음으로길을나설수있었고돌아올때도같은마음이었다.물건을사는과정에서지켜야할사항에대해서는이렇게말했다.당시는으레흥정이나에누리과정이꼭있던시절이었다.‘판매자와흥정하되,물건값을너무많이깎지마라.팔때는사는사람도잘샀다는생각이들어야하고,살때는파는사람도손해를보지않게해야한다.’(…)누구도손해보았다는마음이들지않도록한것이다.”_학인이선우(p.333)

“타인때문에괴롭다고말하자,(백선생님은)이렇게법문하였다.‘제마음속에있는분별을제마음이아니라고한다든지,또남의마음이라고한다든지,누구때문에그렇게됐다든지이런생각들,또그건옳지못한생각이라든지,그건또좋은생각이겠다든지,이런분별을낸다면영원히그마음을항복받기어렵다.자기마음속의전부는자기것이지남의것이있을수가없다.그런데도아무개때문에내가속이상했다고?제마음이약하니까속상하고괴롭지왜아무개때문에상하겠는가?그러니까자기마음속에는자타(自他)가전연없는줄알아야마음이닦아지지,자타가있다면마음은닦아질수없을것이다.’”_학인정천구(pp.330-331)

이밖에도백성욱을만나고함께했던명사와학인들의회고와인터뷰를다양한형태로소개함으로써그의생애를이해하고면모를발견할수있는단초를제시한다.

백성욱의시와에세이,편지와논문,주요강의와법문등을집약하여정리한일대기
한권으로맛보는백성욱박사의문장과말씀과삶과가르침

“이번길에내가다시살아온다면무슨짓을하거나무슨행동으로세상을대하거나,그는결코시방적멸보궁을찾아가는빈약하고더러운위선자인,좋은동기면서도죄악의결과만을가져오는‘무호산방(백성욱의필명)’은아닐것이다.그는적어도부처님의사명으로중생을제도하고자오는환주장엄(幻住莊嚴,실제가아닌방편의장엄)의인물일것이다.무호산방은그의죄악을참회하고그의환구(幻軀,덧없는몸)를해탈하였으리라.또반드시그리해야할것이다.
이것이나로서는이길을떠나면서동지에게아니전할수없는말이다.이는사실인까닭이다.동지여,이더러운나를보낸다고섭섭해하지말라.나는당연히가서없어져야한다.앞길이망망한나인지라.이말로여러분을작별한다.제위여!보중(保重)하라.나는당신들의죄를갖다가불전에동시에참회하겠노라.”_백성욱,〈다시적멸궁을찾아가면서〉에서(pp.104-105)

금강산출가를단행하면서남긴백성욱의글이다.백성욱은,이길에다시살아온다면적어도부처님의사명으로중생을제도하고자오는인물이되기를결심하고발원하였다.자신에게용기에용기를더하여떠나는이길에서,부처님의은혜에감격하여수없이눈물을흘리며,덧없는몸을해탈하기를참회하고기도하였다.이책은백성욱이남긴글과말씀을곳곳에함께배치하여전기한권을통해백성욱의작품과법문을고루접할수있는기회를제공한다.아래는철학박사학위논문〈불교순전철학〉을쓴배경에대한글이다.

“1924년2월이곳철학교수마이어박사로부터‘불교순전철학’이라는논제를받아서그해5월2일에완성한후이곳철학과에제출하여박사논문을인증받은것은무슨,박사나하고자하는마음에서종사하였다기보다,이곳유럽인이늘묻는,‘불교는어떠합니까?’‘당신들의사상계는어떠합니까?’‘동양철학역시그리스철학을토대삼는사상입니까?’와같은질문에졸지에응답하기어려웠다는것이제일원인이었습니다.또우리스스로가근대에와서이방면에대한새로운저서를내놓지못했을뿐만아니라,불교가무엇인지를알지못하는것은이들유럽인에비해그다지다를바없다고느끼기도했습니다.
세계인들은보통불교가철학이거니합니다.그러나오늘날동서양을막론하고‘불교철학의주관(主觀)’방향으로는한권의책을두지못하였습니다.이와같은현황들은저자로하여금없는능력과용기를내어서소임을맡게하였습니다.”_백성욱,〈불교순전철학〉에서(pp.67-69)

아울러책에소개한백성욱의편지를통해당시그의형편과시대적상황,내면의진솔한고백을읽을수있다.동시에그가작성한편지는전기를작성하는훌륭한소재가되어주었다.

“올해2월부터7월까지는박사논문을준비하느라고모든것을부채로살아왔지요.이와같이생활을계속하는중에어디무엇이없었으리까?즉생으로하여금오늘생명이있게하는힘은산중에서획득한불경의선문(禪文)이었나이다.나의진실한신앙은외부의환경이험할수록견고해지더이다.”_1924년11월22일뷔르츠부르크에서권상로스님에게보낸편지일부(p.70)

“이곳지식계급들의생각인즉벌써‘인류’라는관념하에서행동합니다.즉지식계급간에상조(相助)라는개념속에는국경이나인종이라는관념은없습니다.그들은항상저에게‘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