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무게 (양장)

언어의 무게 (양장)

$22.59
Description
모두가 잊은 낭만을 되살리는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후 16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전세계를 매혹한 파스칼 메르시어가 16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언어의 무게》로 독자들을 만난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탈리아와 영국을 배경으로 여러 문학인의 삶을 다채롭게 조명한다. 유서 깊은 출판사를 경영해온 레이랜드는 생의 끝자락에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번역가로서 살아온 세월과 흘러간 인연, 수많은 작가와 번역가와 출판인……. 문학을 삶의 지침으로 삼은 이 모든 사람을 돌아보며 레이랜드는 그동안 외면해온 창작을 향한 열망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섬세하면서도 깊은 사색, 문학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물들의 극적 에피소드와 유럽의 낭만적 풍경. 《언어의 무게》는 ‘파스칼 메르시어를 세계적 작가로 만든 모든 강점이 담겼다’는 극찬을 받고 〈슈피겔〉 연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작가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 될 자격을 증명하고 있다.

저자

파스칼메르시어

1944년스위스베른에서태어났다.독일하이델베르크대학철학부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다.버클리대학,하버드대학,베를린자유대학등여러곳에서연구활동을했으며,마그데부르크대학철학사교수및베를린자유대학언어철학교수를역임했다.2014년트락타투스상을수상한《삶의격》과《자기결정》《자유의기술》등다수의철학서를저술했다.문학창작에도뛰어난재능을발휘하여‘파스칼메르시어’라는필...

출판사 서평

“우리의시간을멈추는것은아름다운문장뿐이었다.”
문학에기대어살아가는고요한삶에관하여

이야기는런던의저택에서시작한다.시한부판정으로좌절했던레이랜드는그것이오진임을알게되고,삼촌이물려준저택에서새삶을살고자한다.의미있는기억을남기려조급해하지도않고,시간을낭비하며하루하루를보낸다.정기적으로하는일은죽은아내에게편지를쓰는것뿐.레이랜드는책상앞에앉아그간의일을돌아본다.동양학자인삼촌을동경해번역가를꿈꾼어린시절.강압적인아버지와학교가싫어서가출해,낡은호텔의야간경비원으로일한나날.번역을독학하던숱한밤과끝내번역가로데뷔한날의환희.열차에서아내를처음본순간.아내가운영하는출판사에서만난수많은문인.책으로둘러싸인나날.온전히문학만을사랑할수있던시절.하지만소중한사람들은먼저세상을떠나고세상은점점시끄럽게변한다.

《언어의무게》는이처럼레이랜드의과거와현재를교차하며,이탈리아와영국을횡단하며차츰차츰진행된다.아내의출판사가있던트리에스테와삼촌의저택이있는런던에서레이랜드는새로운사람들을만나고,지인들에게서는의외의면모를발견한다.러시아인번역가안드레이는연적을죽인죄로감옥에갇혀한권의소설을읽고또읽던끝에자신이바라는여러결말을직접쓴다.이웃이자친구인케네스버크는약사로서불법체류자들에게처방전없이약을내주다법정에섰고,소설가프란체스카마르케세는누구에게도보이지않을소설을집필한다.젊은나이에성공한작가메리앤은돌연절필을선언하며,출판경영인크리스티모자(母子)는새로운세상에적응하기어려워한다.이들의삶을직간접적으로함께살아내며레이랜드는마침내자신의소설을쓰기시작한다.

“내가쓴글이곧나이고,내가곧이글이니까요.”
온전한정신으로세상과부딪치는자존에관한이야기

《언어의무게》속인물들은언어와문학을삶의지침으로여기며살아간다.문학이라는것이단순한애호의대상이아닌,삶을헤쳐나가기위한도구로제시되기에《언어의무게》는다채로운의미를지닌다.‘모든것은이름이불리고이야기된후에야실제로존재했다’‘언어로이해해야제대로경험할수있다’고믿는레이랜드는생과죽음의기로에섰을때여러단어를머릿속으로되뇌며정신이온전한지강박적으로점검한다.새로주어진삶을어떻게건너고있는지복기하고자죽은아내를향해쉼없이편지를쓰기도한다.끝이없을듯불안하고괴로운나날에도즉물적쾌락이나욕망,허무에빠지지않는것.오히려언어와문학으로정신을벼리는모습은세상을마주하는가장숭고한태도를제시해주는듯하다.

이같은모습은다른인물들에게서도볼수있다.출소한안드레이는러시아망명작가들의작품을번역한다.마르케세와파올로등작중소설가들은세간의평과무관하게자신이써야한다고믿는글을마치그것에자기존재가걸린듯필사적으로집필한다.《언어의무게》는문학으로삶을버텨내는인물들의사례집처럼읽히는데,이들이읽고쓰는글을액자식으로제시하며삶이문학으로승화되는과정을효과적으로표현한다.소설속인물의이야기와그인물이읽고쓰는또하나의이야기…….소설내에서도가상과현실의경계가점차모호해지며유럽문학계의여러인물,사건이환상적으로펼쳐진다.《언어의무게》가더없이작가주의적인작품이면서,동시에번잡한세상에서도문학을사랑하는모든독자를위한선물처럼읽히는이유다.

“언어로무엇까지할수있는가에관한우아한사색.”
파스칼메르시어가세상에내놓은또하나의명작

파스칼메르시어는독문학평단에서문제적작가로통한다.그는페터비에리라는본명으로《삶의격》《자기결정》등철학서를발표해온철학자이면서다섯권의장편소설을집필한소설가다.철학자로서면모를유감없이발휘하듯파스칼메르시어는인물및사건중심의일반적소설형식을뛰어넘어철학적사색과잠언적문장이켜켜이박힌독특한스타일을구사한다.평단일각은서사와인물이사색적이며현학적이라고보지만,대중독자는파스칼메르시어의작품에열광적으로호응해왔다.전작《리스본행야간열차》는독일어권국가에서만200만독자의사랑을받고30개이상언어로번역되었으며,《언어의무게》역시〈슈피겔〉연간베스트셀러에오르며광범위한지지를받았다.

‘날카로운작가의식이특유의고백적문체로서술되며소설적재미를구현’함으로써‘파스칼메르시어를세계적작가로만든모든강점’이담긴작품이라는〈쥐트도이체차이퉁〉의평가처럼,작중에서레이랜드를비롯한여러인물은저마다감정을숨기지않고직설적으로드러낸다.그리고그감정이란언어와문학에대한애정,그것을통해명징한정신으로세상을이해하려는의지다.문학가이자철학자로서의문제의식을정교한소설적구성으로빚어낸작품《언어의무게》는문학의힘이약해진시대에문학으로각자의삶을온전히살아내려는이들을그리며,깊고장중한소설을기다리던독자들에게강렬한감동을안겨줄것이다.

책속에서

문장이마음에들면늘그렇듯이레이랜드는크게소리내어읽으며그리듬에,음색의리듬과뜻의리듬에,그리고그두리듬이서로섞이는방식에귀를기울였다.잠시후에그는자신이말의울림을즐기는것말고다른일도하고있음을깨달았다.리비아에게문장을낭독해주고있었던것이다.11년이라는세월이지난후에.아내가그의말에귀를기울일때집중하는방식은그를사로잡고불길에휩싸이게했다.20년이지나도마찬가지였다.트리에스테집에서둘은계단제일위쪽층계에앉아단어와그의미에대해서,그리고그걸독일어와영어,이탈리아어와프랑스어,가끔은트리에스테사투리로어떻게번역해야하는지이야기를나누곤했다._23쪽

밤마다접수처에앉아있던3년동안레이랜드는그전에는책으로만알던일을직접보고들었다.술에취해돌아온손님들은자기객실번호를기억하지못했다.서류를잃어버리고숙박비를갚지못하기도했다.복통이심해서의사를불러야한손님도있었다.어떤여자는산통이예상보다일찍시작되어구급차가달려왔다.경찰이나타나누군가를데려가는일도있었다.정신나간어떤음악가는새벽3시에트럼펫을연주했다.너무급해서미처침대까지가지못하는연인도있었다.어떤영화팀은하필한밤중에촬영하려고했다.낯선도시에와서급하게변호사를구하는사람도있었다.그냥이야기를하려는사람들은자기모국어를할줄아는레이랜드를반가워했다.실망과불안,고독에대한토막난이야기들이었다._60쪽

“난약사였습니다.아버지약국을넘겨받았지요.이스트엔드의해크니지역이었어요.그곳에는노동자와빈민,서류가없는외국인도많이삽니다.의사는적고,오래기다려야하지요.약을구할수없는사람들이왔습니다.명백한질병,명백한증상이었지요.내가알아본건의사도똑같이판단했을겁니다.난첫해에는약사가해야하는말을했어요.처방전이없으면약을팔수없다고.그러다가힘든겨울이왔어요.전염병과폐렴,위험한질병이많이돌았지요.기침을하는엄마와병든아이들.‘의사에게갈
수없는데,우리가뭘어떻게할수있겠어요.’그들이말했지요.그래서처방전이필요한약을처방전없이주기시작했습니다.약의도움을받은사람들이와서감사인사를했지요.소문이나자점점더많은사람이왔습니다.난회계장부를조작했지요.직원은그걸보며침묵하다가말했어요.‘너무위험한일이에요.’그래서대답했습니다.‘나도압니다.하지만이러는게옳아요.불법이긴하지만옳다고요.’_131쪽

그래서번역을시작했네.2년이넘게걸렸는데,예상보다긴시간이었지.거의모든문장마다다른버전도썼으니까.바스크어문장과조화를이루는일관된러시아어음색을찾아내는일이중요했네.시작하고서야그일이얼마나어려운지알게됐지만,죽은시간을조금이라도살아있게해주는그어려움이고마웠지.마지막이가까워오자공황상태에빠졌네.수감기간이아직6년이나남아있었으니까.그러다가이이야기를바꿔서써보자는,나를구원해줄아이디어가떠올랐지.앙투안을파괴적인친밀함에서해방시킬다른가능성을시험해보자고말일세.이중적인의미에서흥미로운계획이었네.나자신의이야기를나의문장과장면으로쓰고,앙투안에게그감정을겪게함으로써내감정을알아볼수있으니까._360쪽

인생에서일어나는반복……이게소설주제가운데하나가될수도있을것같았다.질서와안전감을주는반복이어떤점에서좋은지,그런반면삶이지루하다는권태와는또어떤연관이있는지.레이랜드는몸을일으켜앉았다.오랫동안은밀하게동행해오다가이제거기에맞는정확한언어를찾을만큼명백해진감정,소설의주제는그감정을드러냄으로써생겨나는걸까?은퇴한노인,모든것이지겨워진남자,무엇보다도어쩔수없이되풀이되는일들이지겨워진남자에관한이야기도괜찮을것같았다.자신의감정을서서히인정하는과정을다루는게중요할듯했다.불현듯그남자의모습이눈앞에떠올랐다.베레모아래로헝클어진허연머리카락이보이는마른남자,담배파이프와지팡이와개한마리._5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