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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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파이낸셜타임스〉 〈BBC 히스토리 매거진〉 2016 올해의 책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2016 최고의 책
오늘의 세계를 결정지은 파국의 시대를 새롭게 조명한 문제작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에 주목한 첫 전쟁사

2018년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지 100년 되는 날이다. 1,000만 명의 전사자와 2,000만 명의 부상자를 낳은 사상 최악의 ‘대전’은 과연 독일이 정전협정에 서명한 100년 전 그날 종지부를 찍었을까? 주목받는 소장 역사학자 로버트 거워스 교수는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에서 대전 종식 이후 안정과 평화가 아니라 새로운 폭력의 논리와 혼돈이 전후 유럽 대륙을 빨아들였음을 밝힌다.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등 패전국이 직면한 전후 세계에 초점을 맞춰 ‘끝나지 않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유산을 세밀하게 파고든다. 이 책은 또 한 번의 파괴적인 세계대전과 냉전, 피비린내 나는 민족 분쟁이 100년 전 유럽의 파국적 상황에서 비롯되었음을 규명한 심층 보고서다.
저자

로버트거워스

더블린유니버시티칼리지의현대사교수이자같은대학의전쟁연구센터소장이다.1976년독일베를린에서태어나훔볼트대학에서역사학과정치학석사학위를받았으며,옥스퍼드대학에서유럽사로박사학위를받았다.영국학사원BritishAcademy박사후과정펠로십을거쳐프린스턴대학,하버드대학,네덜란드국립전쟁연구소NIOD에서도펠로십을받아연구했다.그는방대한분량의사료를철저하게조사하는성실한연구자로인정받고있는데,이책《왜제1차세계대전은끝나지않았는가》또한6개국어로된다양한1차,2차사료를종합해그간누구도주목하지않았던제1차세계대전전후의참상을디테일하게분석한다.
지은책으로《히틀러의심복:라인하르트하이드리히의삶Hitler’sHangman:TheLifeofHeydrich》《비스마르크신화:바이마르독일과철혈재상의유산TheBismarckMyth:WeimarGermanyandtheLegacyoftheIronChancellor》《전시의제국들:1911-1923EmpiresatWar:1911-1923》(공저)《평화속의전쟁:1차대전이후유럽의준군사조직의폭력WarinPeace:ParamilitaryViolenceinEuropeaftertheGreatWar》(공저)등이있다.

목차

서문

1부패배
1봄의기차여행|2러시아혁명|3브레스트리토프스크|4승리의맛|5전세의역전

2부혁명과반혁명
6끝없는전쟁|7러시아내전|8민주주의의외관상승리|9급진화|10볼셰비즘에대한공포와파시즘의부상

3부제국의붕괴
11판도라의상자:파리와제국의문제|12중동부유럽의재발명|13패자는비참하도다|14피우메|15스미르나에서로잔까지

에필로그‘전후’와20세기중반유럽의위기
자료목록(지도목록,도판목록)

참고문헌
감사의글
옮긴이의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이전쟁은폭력의끝이아니라시작이다.”
승전국뿐아니라패전국관점에서파고든최초의제1차세계대전사

전후패전국전역에감돈분열과대립의양상은이제껏어떤책도상세히다루지않은내용으로,이책이다루는핵심주제다.혁명과반혁명이거듭되고,해체된패전제국의폐허에서생성중인국가들이내전과분쟁의소용돌이속으로빠져들면서,1918년대전의공식적종식과1923년7월터키국경선을확정한로잔조약사이전후유럽은지구상에서가장폭력적인공간이되었다.저자는17세기30년전쟁이래로유럽대륙이이시기보다더치명적이고뒤죽박죽이었던적은없었다고말한다.
폭력의지속은그리스-터키전쟁처럼국가간영토전쟁의형태를띨때도있었고,러시아,핀란드,헝가리,불가리아,독일일부지역처럼사회혁명,즉내전의형태를띠기도했으며,발트3국등의경우처럼민족혁명,즉독립전쟁의형태를띠기도했다.어떤형태를띠었든,공산주의자부터민족주의자,농민에서노동자,좌파부터우파까지,다양한계층과정파가충돌한무력시위에는어김없이잔혹한보복과테러가뒤따랐다.그러나경제적정치적위기국면에서,전후동유럽과중유럽에세워진민주정부는사회소요를제어하기에는역부족이었고,극단적인정당은안정과질서를갈구하는사람들의표심을확보해나갔다.

오리엔탈리즘적시각에서벗어나공정하게본
전후유럽의참상

기존의역사가들은동유럽과중유럽이문명화되고평화적인서구에비해폭력적이고야만적인성향을지니고있다는오리엔탈리즘적인시각에서대전이후세계를조망했다.하지만서유럽못지않게패전국지역에서도다양한정치실험이다양한양상으로진행되고있었다.새롭게대두된이데올로기인민족주의의영향으로민족국가수립을위한정파가생겨났고,농민과노동자편에선혁명세력이세력을규합했다.한때오스트리아에서는무력쿠데타보다는대중시위를통한의사표현으로대단히평화롭게혁명이진행되어오스트리아공화국이탄생하기도했다.
그렇다면유독전후서유럽이외의패전국지역이폭력적격변을겪은이유는무엇일까?저자는러시아에서불어닥친볼셰비즘에대한공포를주요원인으로지목한다.책의2부는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불가리아그리고승전국이었으나패전국과같은혼란상에직면한이탈리아등지에서볼셰비키혁명과그에반대하는혁명이거듭되면서혼돈으로빠져드는모습이생생하게드러난다.헝가리에서는급진공산당정권에대항하여이전의지주계급이농민과있을법하지않은동맹을형성하게되었고,불가리아에서는농민당지도자스탐볼리스키가반대파에의해잔혹하게살해되자농민-공산주의자-무정부주의자가연합해봉기를일으켰으나처참하게진압되었다.

히틀러와무솔리니를세계사의한가운데로불러낸
제1차세계대전직후세계를조명하다

제2차세계대전의원흉인히틀러를만든것은이러한항구적인위기의체험이었다.1918년의패전은29세의참전병히틀러에게씻을수없는굴욕으로남았다.1917년과1920년사이에무려27차례의폭력적정권교체를경험한유럽의아수라장같은현실속에서히틀러는사회주의에서극우로전향한다.국제주의와민주적평등주의보다극렬민족주의와‘질서잡힌’권위주의에투신함으로써패전으로겪은정신적붕괴를극복했던것이다.
히틀러가극우진영지도자의모범으로따른무솔리니또한한치앞도내다볼수없는정치상황에서질서와규율을앞세운반민주적인프로파간다로권력을장악해갔다.오늘날역사가들은당시이탈리아군대가무솔리니의파시즘준군사조직을쉽사리물리칠수있었으리라고판단한다.그렇다면어째서무솔리니가독재를수립하는데별다른어려움을겪지않았을까?저자는당대사회엘리트들이너무안일하게생각했다고지적한다.파시스트들을주류정치에편입시켜길들일수있다고봤거나,파시즘을곧흐지부지될한시적운동에불과하다고오판했다는것이다.독일의자유주의적언론인하리케슬러백작이일기에쓴대로,“무솔리니의쿠데타는혼란과전쟁이재개되는시대의도래”를알렸다.

20세기를폭력과갈등으로물들인
새로운폭력의논리

저자에따르면,제1차세계대전이후전쟁의목표가바뀌었다.더이상특정영토를획득하는데그치지않고,‘계급의적’이나‘민족의적’과같은‘이질적인분자’를일소한동질적민족공동체를수립하는것이전쟁목표가된것이다.한헝가리의민병대장은“나는뒤틀린마르크스이데올로기에취한이광신적인간짐승들한테50대의매질을추가로지시했다”고회상했는데,그에게비인간화되고(‘인간짐승’)비민족화된(‘볼셰비키’)적은아무런가책없이고문하고죽여도되는존재였다.이제적은비인간화된,살려둘가치가없는범죄자가되었다.극단적폭력을통해내부의적을발본색원하는것은패전의폐허에서국가를다시수립하기위해정당한행위로간주되었다.
그러한‘내부폭력’은공산주의자나사회주의자등전복세력이후방전선에서‘배신’했기때문에패배했다는패전국의군부와보수세력의믿음을부채질했다.이배반의서사는음모론으로발전해독일패배의주요원인으로부각되었고,이는전간기독일우익의신념의주춧돌이되었다.특히히틀러와무솔리니정권의내부분열에대한강박은전체주의,인종주의와결합해체계적인대규모민간인학살을낳았다.제2차세계대전뿐아니라유고내전에서또한그러한‘종족청소’는대단한위력을발휘했으니,100년이지난지금도제1차세계대전전후시기의유산은건재하다.

오늘날까지이어지고있는민족분쟁의기원,
윌슨의민족자결주의와밸푸어선언

전후세계는민주주의에더안전한곳이될것이라는우드로윌슨의낙관적인예견과는반대로1918년유럽에수립된대부분은민주정은권위주의정권으로교체되었다.그렇게된데에는패전국들이위선적이라고느낀윌슨의민족자결주의에도원인이있었다.윌슨의민족자결개념은승전국의우방으로간주된민족(폴란드인,체코인,남슬라브인,루마니아인,그리스인)에게만적용되고,적으로간주된민족(오스트리아인,독일인,헝가리인,불가이라인,터키인)에는적용되지않았기때문이다.설상가상으로종족구성이복잡한영토들에민족자결원칙을적용한다는것은처음부터순진한구상이었고,실질적으로는대전의폭력을다수의국경분쟁과내전으로옮긴것에지나지않았다.
1917년밸푸어선언또한승전국의일방적인영토재편의일환으로,오늘날까지도지속되고있는중동문제의근원이다.팔레스타인지역에유대인의민족적고향을만들어주겠다는밸푸어선언은영국정부를상대로한시오니스트정치인이벌인오랜로비의결과였다.하지만팔레스타인인구의압도적다수는아랍인이었고,팔레스타인거주유대인의대다수는독립국가를요구하지않았다.그대신많은이가오스만제국내유대인자치권을지지했다.게다가밸푸어선언이전에체결된사이크스-피코협정에서영국정부는아랍인들의독립을약속하기까지했다.전쟁기간동안의약속들은단지현지주민의지지를동원하기위한단기적인방편으로의도된것에불과했고,이런전시전략의결과는오늘날까지도중동을괴롭히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