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질병과 의료, 명의 이야기

메디컬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질병과 의료, 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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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을 뒤흔든 10가지 질병으로 보는 생로병사 풍속도
감기, 종기, 중풍부터 홍역, 천연두, 학질까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위협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조선인들이 가장 두려워한 질병은 무엇이었을까? 고작 감기로 생사가 갈렸던 시대엔 질병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역병으로 온 나라가 팬데믹에 빠지면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의학 교육의 산실 전의감과 대표 서민 병원 혜민서 등의 의료 시설부터, 세종의 소갈증과 송시열의 치질 등 조선 땅을 휩쓴 10대 질병과 그 치료법, 왕들이 앓았던 질병과 사인(死因), 그리고 의술로 이름을 날린 명의와 각종 의서까지. 열악한 환경에서도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을 세우고 백성을 구제해온 조선인들의 질병에 대한 끈질긴 투쟁기.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500년 조선 의료의 모든 것, 조선 메디컬 사전.
저자

박영규

역사,문학,철학,종교등에관한50여권의책을출간한밀리언셀러작가.1996년《한권으로읽는조선왕조실록》을시작으로고려왕조실록에서대한민국대통령실록까지‘한권으로읽는역사’시리즈를펴냈다.역사서외에역사문화에세이,동서양철학사등다양한분야의책들도집필하며30여년동안인문학에몰두해왔다.

저자가말하는인문학의궁극적목표는한마디로‘사람알기’다.그는그동안...

목차

들어가는말_조선인들의질병투쟁기를펴내며

1장조선의의료체계와의료시설
조선의료행정의중심,전의감
업무와조직|의관선발|약재재배와관리|내의원에서밀려나면전의감으로?|동물치료도병행한전의감의사들
왕실전담병원,내의원
업무와조직|내의원의실질적수장,어의|내의원에서발생한도난사건
서민의료전담병원,혜민서
업무와조직|의녀선발과교육|의녀의임무|사건으로본혜민서의역할
행려병자구제를위한시설,활인서
업무와조직|활인서의터줏대감무녀들|버려진시신들
조선시대의찜질방,한증소
승려가관리한치료소|한증소는사라졌을까?
한국최초의서양식국립병원,제중원
탄생과정과개원|초대병원장으로취임한알렌|제중원의시작과끝

2장조선백성을괴롭힌10대질병
의외로무서운질병으로인식된감기
어전회의에서아들감기를고쳐달라고호소한형조판서|감기를핑계로사신을피한세종|감기에대한의학적인식과치료
천민에서왕까지쉽게피하지못한치질
송시열을괴롭혔던고질병|치질때문에원접사를바꾸다·76|치질로고생한문종과성종,토끼똥을발랐을까?
걸리면인생종쳤다고생각한중풍
중풍에걸리면벼슬에서물러나는것이관례|중풍치료약으로쓴누금원과속명탕
세종과황희를평생괴롭힌종기
종기로고생한세종|종기때문에사직을청한황희|종기치료약으로쓰인고약과거머리|신비의제독제흡독석
부자들이가장무서워하던소갈증
부자들만걸리던병|어떤방식으로소갈증에대처했을까?
살아서죽음의고통을맛보는학질
어린아이와노인이가장두려워하던질병|학질을물리치는노래를지어부른정약용|학질의증상과대처법
소문만듣고도10리밖으로달아났던염병
염병에대한조선백성의두려움|연일죽어나가는죄수들|염병에대한대처와민간요법
집안의대를끊는악귀홍역
대유행으로10만명이상의사망자가발생하다|문인들의글에등장하는홍역|전설의영약백화사환
사회적거리두기의원조천연두
천연두의역사|천연두예방은강력한‘거리두기’방식으로|천연두에대한의학계의대응|정약용과지석영의종두법도입
악병의대명사나병
하늘이내린천형으로여긴질병|태워지거나버려진나병환자들|나병환자를치료한관리|나병치료에쓰인명약

3장조선왕들의질병과죽음
종기를가볍게여겼다가풍을맞고쓰러진태종
온갖질병으로온몸에통증을달고산세종
종기를등한시하다허망하게급사한문종
아토피와흉복통으로고생한세조
감기를앓다돌연사한예종
대장암으로젊은나이에죽은성종
얼굴아토피에시달린연산군
심열증과종기의늪에서허우적거린중종
고의로영양실조에걸린인종
어머니가만병의근원이었던명종
어이없는죽음을맞은선조
폐위가오히려장수의비결이된광해군
피해망상증으로진찰조차거부한인조
뜻밖의의료사고로죽은효종
각종질병으로평생환자로지낸현종
잔병치레없이비교적건강을누린숙종
병상을벗어나지못한경종과무병장수한영조
평생종기로고생한정조

4장조선을풍미한명의
죽음의문턱에서태조이성계를회생시킨양홍달
태종의총애를한몸에받은일본출신의사평원해
조선초기최고의의사반열에오른노중례
왕의주치의가된유일한의녀대장금
허준과쌍벽을이룬명의양예수
동방의편작으로불린허준
침과뜸의달인허임
인조의총애를독차지한번침의명인이형익
한낱마의에서어의로발탁된까막눈백광현
고약하나로종기치료의명인이된피재길

5장조선의학의초석이된의서
동양의학의뿌리,《황제내경》
우리나라에서가장오래된의서,《향약구급방》
조선최초의향약사전,《향약집성방》
조선최대의학백과사전,《의방유취》
약이되는음식을다룬식이요법서,《식료찬요》
가장대중적인민간용의서,《구급간이방》
핵심만간추린요긴한의서,《의림촬요》
동양의학을대표하는명저,《동의보감》
사상의학의뿌리,《동의수세보원》
그밖의주요의서

출판사 서평

“천연두가성안에널리퍼져있는데,
전하께서어찌경솔하게위험을무릅쓰고멀리가십니까?”_《숙종실록》

조선을뒤흔든10가지질병으로보는생로병사풍속도
500년조선의료의모든것,조선메디컬사전

백신이개발되었지만여전히전세계가코로나19로부터자유롭지못하다.그런데놀랍게도조선시대에는이러한전염병이거의매년찾아와팬데믹이일상이었다.이같은극한의상황에서조선인들은어떻게살아남았고,가장혹독했던질병은무엇이었을까?고작감기로생사가갈렸던시대엔질병에어떻게대처했을까?역병으로온나라가혼란에빠지면무엇으로이겨냈을까?
《메디컬조선》은열악한환경에서도체계적인의료시스템을세우고백성을구제해온조선인들의질병에대한끈질긴투쟁기다.의학교육의산실전의감과대표서민병원혜민서등의의료시설부터,세종의소갈증과송시열의치질등조선땅을휩쓴10대질병과그치료법,왕들이앓았던질병과사인(死因),그리고의술로이름을날린명의와각종의서까지.그동안우리가몰랐던500년조선의료의모든것을흥미롭게담아냈다.
저자박영규는역사대중화열풍을일으킨밀리언셀러실록사가로서정치,사회,문화등주제의경계없이다채로운조선사를집필해왔다.그런그가이번에는조선의질병과의료에초점을맞춰우리역사의새로운얼굴을조명했다.마음의병인심열증에시달린왕들,의료사고로사망한효종과찰밥이목에걸려죽은선조등구중궁궐의사연부터감기에걸렸을때꼭지켜야할금기사항,신비의약재흡독석등민간의대증요법과생활상까지조선의생로병사풍속도를생생하게그렸다.“왕은격무와스트레스에시달려장수하지못했다?”“문종은원래부터병약했다?”“조선왕실에는종기인자가있었다?”등세간의오해도바로잡는다.


부자병소갈증,거리두기의원조천연두,악병의대명사나병…
조선인들은보이지않는위협에서어떻게살아남았을까?
그들의끈질긴질병투쟁기를만난다

오늘날한국인의기대수명은80세가넘는다.그러나조선시대에는사람이80세이상산다는것은상상하기어려운일이었다.조선의평균수명은기껏해야30대중반에불과했고,장수의기준은고작환갑을넘기는것이었다.
현대의학으로는간단하게치료하는질병이조선시대에는공포의병마로인식되었다.지금이야간단한외과시술로제거할수있는종기가당시에는최고의의료혜택을받았던왕들을사망으로몰고갔다.얼마나무서운질병으로여겼는지종기전문기관인치종청까지두었다.감기또한의외로혹독해서오래지속되는경우과경(過經)이라고부르며몹시두려워했다.세종시기형조판서였던김점(金漸)은어전회의석상에서자식이감기에걸렸으니어의를보내달라고요청하기도했다.
이러한질병의위협에대응하기위해국가차원에서서민들이무료로이용할수있는찜질치료소인한증소와행려병자구제를위한시설활인서등여러의료기관을운영했다.또전의감과혜민서를위시해체계적으로의관과의녀를양성했다.덕분에허준,대장금등시대를풍미한명의들이탄생할수있었다.민간에서가장인기있었던의서《구급간이방》과동양의학을대표하는걸작《동의보감》같은의서를편찬해전국에반포하여모든백성이이용할수있도록했다.
조선인들역시무방비하게질병의공격에당하지만은않았다.이처럼질병을이겨내기위해끈질기게분투하는모습은팬데믹시대를지나고있는요즘의우리를떠올리게한다.500년전조선인들이겪은위기와그극복과정을담은이책을통해우리사회가직면한갈등의일면도이해할수있을것이다.


밀리언셀러실록사가박영규가복원한
우리역사의새로운얼굴
그동안몰랐던다채롭고풍성한질병이야기가펼쳐진다

?팬데믹대처법,조선판거리두기정책
당시사람들은팬데믹같은거대한역병에서어떻게살아남았을까?백신이없었기때문에강력한‘사회적거리두기’만이전염병에대처하는유일한방법이었다.돈있는양반들은산속에피신처를구해때때마다그곳으로달아났고,거리두기와봉쇄의단계를넘어역병때문에아예마을을버리고산으로피신하는경우도있었다.지금도1급감염병으로분류되는천연두가유행하면제사뿐아니라결혼과같은잔치도금했으며,심지어부부간에동침도하지못하도록했다.나라에서는외출을금지하는봉쇄령과접촉금지령을내렸다.연산군시기에는원자가천연두를앓는중에국상이생기자곡읍(哭泣,소리내어슬프게우는것)을중지하고궐문을닫아걸었다.천연두가만연한시기에숙종이교외에서청나라사신을만나려고하자당시대사헌이던윤휴(尹?)가임금의거둥을강력하게반대하기도했다.거리두기는중국사신이왔을때도예외가아니었다.

?피해망상증으로진료조차거부한인조가사술에빠진이유는?
반정으로왕위에오른인조는의심이많아쉽게다른사람을신뢰하지않았다.그는자신의필체를누군가흉내내어모반의도구로사용할지도모른다는생각에자식에게도친필로편지를보내지않았다.병을앓는사실역시철저히숨겨서의관이진찰을권유해도항상거절했고,설사의관을부르더라도철저히입단속을시켜병명이밖으로새어나가지않도록했다.그런인조가유일하게총애한의관은당대번침(燔鍼)의달인이형익이었다.불에달군침을의미하는번침은극히위험한처방이었고,내의원에서는사술(邪術)이라하여전혀사용하지않았다.그러나인조는자신의오랜병마가그의침을맞은후호전되었다며,임종의순간까지오직이형익만을곁에두고번침치료를받았다.그런까닭에인조가도대체무슨병을앓다가생을마감했는지《조선왕조실록》에조차전하지않는다.

?조선최초의백신은누가,어떻게도입했을까?
18세기말에이르러서야천연두예방접종법인종두법이처음으로조선에도입되었다.그주인공은바로정약용이다.그는자신의의서《마과회통》에인두종법(人痘種法)을소개했다.이는천연두를앓는사람에게서두즙(痘汁),즉진물을취하여인체에주입하는방법이다.소의두즙을접종하는우두종법(牛痘種法)도함께기술했는데,인두종법에비해훨씬안전하지만서양에서들어왔다는이유로배척되어본격적으로시행되지못했다.이후한동안종두법이중단되었다가1876년강화도조약에따른개항이후지석영에의해널리퍼져,천연두극복의시금석을마련하게되었다.





책속에서

조선시대에수의사는주로말을치료했기때문에대개마의(馬醫)라고불렸다.마의는조선에서매우귀한존재였다.조선초기의기록에따르면마의의수는기껏해야손에꼽을정도였다.그런데당시조선에필요한말은수만마리였고,그중에상품(上品)은명나라에진상했기때문에마의양성이시급했다.거기다중국에사신을보낼때면반드시마의가있어야했다.사신과그일행이모두말을타고다녔기때문인데사신이행차할때면대개마의두명이따라다녔다._27쪽

염병으로온집안식구가모두사망하면관에서그시신들을치워줘야한다는내용이다.그만큼염병탓에일가족이목숨을잃는경우가많았다는뜻이기도하다.심지어부모가염병으로사망하면자식들이장례도치르지않고달아나는경우가허다했다하니,당시사람들이염병을얼마나무서워했는지알만하다.(…)염병은전염성이강했기때문에집단생활을하는곳에서는금세퍼졌고,환경까지열악하다면상황은더욱악화될수밖에없었다.환경이열악하고집단생활을하는대표적인곳이바로감옥이었다.그런까닭에감옥에염병이퍼지는경우가잦았다._107쪽

천연두를옮기는귀신을‘두창신’이라고불렀는데,이때문에각종금기사항이생겼다.두창이발생하면제사를지내지못하도록했고,결혼과같은잔치도금했으며,심지어부부간에성관계도하지못하도록했다.결과적으로보면서로접촉하지못하게했는데,이는현대의바이러스성전염병을예방하는방식과유사하다.제사든잔치든부부관계든모두접촉이일어나는일이므로접촉을막기위해이런금기사항을둔것으로보인다.요즘말로하면강력한‘사회적거리두기’를실시했던셈이다._121쪽

인종은즉위당시만해도매우건강했다.잔병도거의없었다.그런데왜즉위후에갑자기죽었을까?야사에는건강하던인종이문정왕후가내놓은독이든떡을먹고시름시름앓더니갑자기죽었다는기록도있다.이것은사실일까?
사실문정왕후가준떡을먹고죽었다는것은낭설에불과하다.건강하던인종이병을얻은것은누구탓도아닌바로인종자신때문이었다.(…)이때인종은국상을치르는중이었다.그때문에빈전을지키며제대로식사를하지않았고,몸이몹시쇠약해져있었다.이를염려하여모든신하들이건강을돌볼것을요청했으나인종은듣지않았다.도리에얽매여건강을돌보지않은것이다._180~181쪽

이성계가병상에서꼼짝도하지못하며사경을헤매는사이이방원은정도전,남은등정적을제거하고권력을장악해버렸다.이른바제1차왕자의난을일으킨것이다.아마도이방원은이성계가병상에서영영일어나지못하리라고판단했던모양이다.하지만이성계는기적처럼건강을회복했다.이때태조를회생시킨인물이바로양홍달이었다._231쪽

이형익에대한인조의총애가끊이지않자조정신하들사이에서는이형익이요술로임금을현혹하고있다는말이돌았다.몇몇간관들이이형익을멀리할것을직언했지만인조는화를내며그들을지방관으로내쫓아버렸다.이형익의의술에대한인조의믿음은아주대단해서인조는그에게현령벼슬을내렸을뿐아니라특명으로어의로서용했다.
이형익은당시인조의총애를독차지하고있던후궁소용조씨와도친밀했다.심지어조씨의친정어머니와왕래가잦아두사람이내연관계라는추잡한소문까지돌았다.그래도인조는전혀개의치않았다._285~286쪽

중국에서는일본보다먼저《동의보감》을가져갔지만《동의보감》을인쇄한것은1766년이었다.놀라운것은국가에서먼저간행을계획한것이아니라청나라의사들이《동의보감》을보급해줄것을요청했다는사실이다.《동의보감》의명성을익히들은청나라의사들이1731년에황제에게단체로청원서를넣은것이다.그로부터35년뒤인1766년에국가에서목판본으로인쇄하여중국각지에보급했다.당시청나라의사들이이책을얼마나귀하게여겼는지는책서문만봐도알수있다.
“한줄기햇빛이작은구멍을통해들어오기만해도어둠이금방사라져버리는것처럼《동의보감》은피부깊숙이감춰진몸속을환히꿰뚫어볼수있는거울과같은책이다.”_3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