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보다정원이더많은세계를담고있다”
사계절꽃이피는정원에서결실한‘땅의예찬’
정원의철학자가전하는,땅을향한갈망과사랑의노래
독일에서가장주목받는철학자이자사회비평가인한병철의신작《땅의예찬》이2018년새봄,독일과한국에서동시출간되었다.겨울에도꽃을피우는아름다운정원을만들겠노라결심한저자는3년동안땅을일구며비밀의정원을가꾸었다.그렇게베를린의정원에서봄여름가을겨울,모든계절을겪는동안,디지털세계에서잃어가던현실감,몸의느낌이되돌아오는것을경험했다.
정원일을하면서그는,변화된공간감각과시간감각에대해,기다림,인내와희망에대해,색채와빛과향기에대해,수국과옥잠화에대해,슈베르트의〈겨울나그네〉와낭만주의에대해,삶과죽음에대해철학적으로명상한다.그리하여결실한것이때아닌‘땅의예찬’이다.정원의철학자가건네는이책은오늘의디지털사회에대한확고한반대기획이며,끔찍한자연재해에직면한세계에보내는경고인동시에약속이다.땅의질서,다가오는땅에대한갈망과사랑의노래다.
정원으로간철학자
자기착취의세계,긍정성이넘쳐나는사회에대한예리한비평으로유명한이철학자는왜정원사로변신했을까?혹독하다못해파괴적인베를린의겨울,영원히계속되는축축하고어두운추위,빛이꺼져버린것만같은잿빛속에머물다보니“겨울한가운데서밝게꽃피는정원을바라는형이상학적소망”이깨어났다.땅에가까워지고싶다는날카로운욕구를느꼈고,그래서매일정원일을하기로마음먹었다.
온몸이녹초가될정도로정원일을하는그에게땅은많은것을돌려주었다.고된정원일은도리어‘고요함속에머무는일’이었으며,시간의향기를느끼게해주었다.계절을훨씬더강하게느낄수있었고,겨울이다가오면서는점차스러져가는빛에더주의를기울이게되었다.정원은땅의리듬에따라일이이루어지는곳,불확실한기다림,꼭필요한참을성,느린성장이특별한시간감각을불러오는곳이었다.식물들을향한사랑어린인식을통해구원이이루어지는곳,바로정원은구원의장소였다.
비밀정원의식물들
거기서그는자기식물들의이름을하나하나부른다.아네모네,미선나무,동백,영춘화,겨울바람꽃,풍년화,옥잠화,나무수국,밀짚꽃,노루귀,부겐빌레아...수많은나무와화초,꽃들의생김새에서부터,이들이뿜어내는향기,이들이등장하는문학/철학텍스트들,그리고무엇보다저자자신이이살아있는존재들과맺어가는관계에대한풍성한이야기를들려준다.책의후반부‘정원사의일기’에는저자의전작들에서볼수없었던저자의사적인이야기,내밀한고백들이담겨있다.
독일의영화감독이자화가인이사벨라그레서가그린24컷의일러스트도인상적이다.꽃의생장과정을오랜시간지켜본끝에탄생한이그림들은신비로운느낌을전하는데,본문의예리하고시적인언어,그에담긴저자의‘형이상학적욕망’과도잘어울린다.
땅의예찬,땅의경고
“땅을보호하라는명령,곧땅을아름답게대하라는명령이땅에서나온다.‘보호하다(sch?nen)’라는낱말은어원으로보아‘아름다운것(demSch?nen)’이라는말과친척이다.아름다운것은우리에게그것을보호할의무,아니명령을내린다.아름다운것은보호하는태도로대하는것이옳다.땅을보호하는것은인류의절박한과제이자의무이다.그것이아름다운것,뛰어난것이니말이다.”_10쪽
완전히죽은것처럼보이는나뭇가지에서새로운생명이깨어나는봄에출간된이책은특별히주목할가치가있다.한병철은그동안신자유주의세계를살아가는사람들의자기착취현상을예리하게분석,비판했고,이러한그의진단은폭발적인반향을불러왔다.《땅의예찬》의문제의식은여기서한걸음더나아간다.생산성을높이려는자기착취는자기착취에그치지않고자연을착취하는것으로이어졌다는것이다.“우리는오늘날땅을잔인하게착취하고마모시키면서그를통해완전히파괴하는중이다.”(10쪽)우리는우리만착취한것이아니라자연을착취하고있다.성과를내기위한자기착취가당사자를소진시켜쓰러지게하듯이,자연착취는필연적으로땅의소진을불러온다.오늘날지구도처에서일어나고있는자연재해는바로이러한자연착취의결과다.그런데땅이몰락하면인간도몰락한다.인간(human)은후무스(humus),곧땅에서온존재이기때문이다.인간의자기착취,자연착취,땅의파괴,인간파괴로이어지는이악순환,몰락의고리를끊고,땅과다른관계를맺어야한다는것이이책에서저자가던지는중요한메시지다.책에서횔덜린의《휘페리온》,노발리스의《하인리히폰오프터딩엔》,슈베르트의〈겨울나그네〉,슈만의〈아침의노래〉등독일낭만주의작품들을다수거론하는것도다른이유가있지않다.바로이들작품들에서는자연을‘사랑의대상’으로보기때문이다.
디지털문화가잃어버린세계를찾아서
“세상의디지털화란완벽한인간화및주체화라는것과같은뜻으로,땅을완전히사라지게만든다.우리는우리자신의망막으로온땅을뒤덮는다.그를통해우리는타자에대해눈멀게된다....세상에서온갖비밀,온갖낯섦을없애고,모든것을알려진것,진부한것,친숙한것,내마음에드는것,동일한것으로만들어버린다....세상의디지털화에직면하여세상을다시낭만화하고,땅을,땅의시를다시찾아내고,땅에신비로움,아름다움,고귀함의품격을되찾아주어야할것이다.”_28-29쪽
세계의디지털화에대한비판도이어진다.인터넷에서는검색만하면필요한정보가튀어나오고,SNS에는친구들의소식이끊임없이올라온다.디지털기기와그네트워크를통해우리는우리의감각과세계가확장되었다고믿지만,전혀그렇지않다는것이저자의주장이다.‘손가락’을뜻하는라틴어‘디기투스(digitus)’가암시하듯,디지털문화는인간을헤아리기만할뿐인작은손가락존재로축소시킨다.디지털문화는헤아릴뿐,이야기를들려주지않는다.“트윗이나정보는서로합쳐봐야이야기가되지않”고,“타임라인(timeline)도삶의이야기,또는전기(傳記)를들려주지않”으며,“페이스북친구들은무엇보다도헤아려진다.”(75-76쪽)이러한디지털세계에비해정원은감각성과물질성이넉넉하고“모니터보다훨씬더많이세계를포함”한곳이다.그에겐얼음장같이차가운물이주는고통조차“오늘날잘조율된디지털세계에서점점더잃어가고있는현실감,몸의느낌”을되돌려주는경험이었다.그리고무엇보다도정원에는내가어쩌지못하는타자,저마다의시간을지닌존재들이있었다.“생명을살리고행복하게하는힘”,오늘날‘모니터크기로축소된’힘을땅에서얻을수있었다.땅에서유리되어디지털세계를떠도는스마트한현대인들에게,이책은자신이발디디고있는땅을새로운눈으로보게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