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양장본 Hardcover)

여행자 (양장본 Hardcover)

$13.80
Description
가장 폭력적인 시기 독일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누군가는 반드시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 놓인다.
〈슈피겔〉
소설이 역사적 증언이 될 수 있을까? 소설은 허구성에 바탕해 쓰이지만, 훌륭한 작품은 그 어떤 사료보다도 당대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나치에 쫓기며 집필 활동을 한 유대인 작가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의 장편소설 《여행자》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소설은 체계적 유대인 박해의 시발점인 ‘수정의 밤(Kristallnacht)’을 배경으로 한다. 유대인 박해가 합법이 되어버린 독일을 벗어나려고 전 재산을 여행 가방에 담은 채 전국을 떠도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치를 피해 유럽을 떠돌다 끝내 죽임을 당한 작가의 실제 모습과 맞물려 독자에게 강력한 실감을 안긴다. 작품이 너무 생생했던 탓일까? 《여행자》는 독일국립도서관 문서실에 잠들어 있다가 2018년에야 저자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출간되었고, 《안네의 일기》(1942~1944)보다 앞서 집필된 유대인 당사자가 쓴 최초의 소설인 만큼 기념비적인 고발문학으로 주목받았다.
저자

울리히알렉산더보슈비츠

1915년독일베를린에서,유대인사업가인아버지와정치인집안출신어머니사이에서태어났다.제1차세계대전에참전한아버지는그가태어나기얼마전전사했고,화가이던어머니가사업을이어받아이끌었다.1935년나치당이유대인의재산을몰수하는뉘른베르크법을제정하자독일에서의삶을뒤로한채가족과함께국경을넘는다.스웨덴으로이주했다가노르웨이로,이듬해에는프랑스로삶의터전을옮기는틈틈이첫소설《삶의옆에있는사람들(MenschennebendemLeben)》을집필했다.이작품은스웨덴어로번역되어‘욘그라네’라는필명으로스웨덴에서출간되었다.소설의성공에힘입어프랑스소르본대학에입학해두학기를다녔다.이후로도보슈비츠는수도없이경찰에체포되고추방되고벨기에와영국등지로거처를옮겨야했지만,계속되는망명생활중에도집필을이어갔다.1938년11월독일에서대규모의유대인박해사건인일명‘수정의밤’이벌어졌고,이소식을들은그는사주만에이사건을소재로한두번째소설《여행자》를써냈다.

《여행자》역시필명으로1939년영국에서,1940년미국에서출간되었지만,보슈비츠는작가로서영광을누리지못했다.제2차세계대전이발발하자영국에있던그는독일국적자라는이유로적국인으로분류되어맨섬의수용소에격리당했다.1940년에는오스트레일리아뉴사우스웨일스주의포로수용소로옮겨졌다.이때도그는‘죽는것보다원고를잃는게더두렵다’고말할정도로원고에매달렸는데,이미출간된《여행자》를철저히손본것도이때의일이다.그는개정판원고일부를동료수감자편으로어머니에게보냈고,1942년영국귀환이결정되자마지막원고를지닌채배에올랐다.출발전어머니에게보낸편지에그는이렇게썼다.“저는이책에분명성공할만한힘이있다고믿어요.”하지만이배가독일잠수함이쏜어뢰에맞아침몰하면서보슈비츠는원고와함께죽음을맞았다.사망당시그의나이는스물일곱살이었다.

보슈비츠가고쳐쓴원고는사라졌지만,1938년에집필된《여행자》독일어초고는남아있었다.전쟁직후독일지식인들이이책을출간해야한다고목소리를냈고,소설가하인리히뵐이발벗고나섰다고전해진다.그러나부담을느낀출판사들이출간을거절하여《여행자》는독일국립도서관문서실에잠들어있게되었다.그렇게수십년이흘렀고마침내2018년,보슈비츠의친척과연락이닿은독일편집자의손을거쳐독일어로쓰인《여행자》가출간되었다.원고가모국어로출판되기까지꼭80년이걸린셈이다.《여행자》는독일역사의어두운면을당대에묘사한최초의소설로,자국의치부를다룬작품임에도언론과독자의찬사를받으며문학성과역사성을동시에인정받았다.2019년,보슈비츠를기리는걸림돌(나치희생자를기억하는설치물)이베를린의슈마르겐도르프에설치되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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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안네의일기》보다먼저집필된,유대인박해의증언
“세상은잊었다.우리가시민이던시절을.”

1938년,나치돌격대와지지자들이유대인상점을깨부수고약탈한‘수정의밤’사건이벌어진다.더놀라운것은단지유대인이라는이유로재산을뺏고체포하는것이합법이라는사실이다.성공한유대인사업가인오토질버만은하루아침에도망자로전락한다.위험이목전에닥칠때까지도질버만은이렇듯야만적인일이20세기유럽에서벌어진다는걸선뜻믿지못한다.그러다나치지지자들이자신의집에까지찾아오자급히재산을처분해도주에나선다.그가믿는것은유대인특징이거의보이지않는얼굴과여행가방에든거액의현금.출국의기회를잡을때까지어디로도갈수없는질버만은기차를타면안전할거라는생각에끝없이티켓을끊어독일을배회한다.기차에서그는다양한인간군상을만난다.독일군장교부터열성나치지지자,침묵하는시민,도주로를찾으려는유대인수공업자,혼란을틈타사업기반을마련하려는기회주의자까지…….결국질버만은사업파트너였던아리아인에게배신을당하고,독일에갇힌채서서히미쳐간다.

사회에서배제된인물의눈으로당대풍경을살펴보는것만으로도이작품은가치있지만,《여행자》의주제의식은거기서한걸음더나아간다.저자보슈비츠는오토질버만을전형적인약자나희생자로그리지않는다.아니,질버만이야말로작중의가장입체적인인물이다.그는유대인이라는이유로나치의탄압을받지만,박해가시작되기전에는자본가로서기득권에속했고,도망치는중에도다른유대인들과자신이엄연히다르다고여기며내심그들을책망하기도한다.이처럼인간과사회의맨얼굴을응시하는시선은《여행자》의작가보슈비츠자신의배경에서비롯되었다.보슈비츠의아버지도주인공처럼부유한사업가였으며,그가기독교로개종한까닭에보슈비츠역시개신교환경에서성장했다.유대인으로분류되어사회적낙인이찍히기전까지만해도유대계라는사실은그의가족에게전혀중요하지않았다.주인공오토질버만이사회를보는시각에는자전적요소가짙게담겨있으며,그덕분에독자는사회적낙인이어떻게작동하는지다층적으로이해할수있는것이다.

집필후80년이지나비로소모국어로출판된고발문학
오늘의차별을돌아보는거울이되다

독일을탈출한보슈비츠는가까스로영국으로망명했지만,독일국적자라는이유로적국인(敵國人)으로분류되어오스트레일리아포로수용소에수감되었다.수용소생활끝에영국으로돌아오는배에탔지만,이배가독일잠수함이쏜어뢰에맞아침몰하면서사망한다.《여행자》는보슈비츠생전에영국과미국에서번역출간되었으나정작저자가모국어로직접쓴원고는수십년간잠들어있게되었다.전후독일에서이소설을출간하려는시도가없지는않았다.소설가하인리히뵐이《여행자》를출간하고자출판사에추천한적있으나,부담을느낀출판사측에서거절한것으로알려졌다.결국《여행자》는집필후80년이지난2018년에야보슈비츠의친척과연락이닿은출판인의손을거쳐독일에서출간되었다.이소설은독일의어두운역사를유대인의시각으로담아낸최초의소설로서문학성과역사성을동시에인정받으며,자국의치부를다룬작품임에도독일언론과독자의찬사를받았다.2019년에는보슈비츠를기리는걸림돌이베를린에설치되기도했다.

80년이라는시간을지나역사적사실과내재된본질을생생히전하는《여행자》를과거의이야기만으로치부할수는없다.지금도세계곳곳에는전쟁을피해도망친난민이줄을지어있으며,어느국가에도속하지못하고공항에서기약없이심사를기다리는이들도적지않다.이들의삶역시전쟁전에는지극히평범하고당연했으리라.또한,2020년대의우리는팬데믹사태를맞아타인을배제하고낙인찍는일에대해고민하게되었다.《여행자》의주인공오토질버만은안부를묻는지인에게이렇게답한다.“생각하는습관을버렸어요.그게모든것을견디기에가장좋은방법이지요.”집단적인두려움앞에인간은자신과타인을구별해내고픈충동을느끼고,그충동은쉬이폭력으로이어진다.이책의옮긴이전은경은‘옮긴이의말’에서독자에게묻는다.‘오늘날한국사회는‘우리’라는울타리와그너머의타인을어떻게구분지으며살고있을까.’질버만이체포당할까두려워하며‘인정있는사람이한명이라도’있기를바랐듯,우리사회의약자들역시행동하는양심을간절히기다리고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