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했다. 1982년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입학, 1995년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7년 한국연구재단(당시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으로 중국 산동사회과학원에서 박사후과정(Post-Doc)을 마쳤다. 성균관대, 중앙대, 동덕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대전대, 협성대에서 강의하다가 중국산동사범대학 외국인교수, 서일대학교 교양과 주임교수,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문화학과 교수(교학처장, 연구처장, 효교육문화연구소장), 중국사회과학원 교환교수, 한국양명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보건복지부와 대전시가 공동 출연한 재)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으로 있으면서 효관련 정책연구와 전국의 유무형 효문화자산조사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통쾌한 동양학』(글항아리), 『명말청초 사회사상』(한국학술정보), 『공문의 사람들』(논형), 『삭혀먹는 나라 비벼먹는 나라』(지혜문학),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삼성출판사), 근 · 현대사 속 겨레의 효자들』(다른 생각), 『한국 기독교를 빛낸 사람들』(다른 생각), 『옛날 옛적 한밭골 효문화 이야기』, 『효문화로 만나는 북한』(한국효문화진흥원), 『동아시아 효문화 이해』(도서출판 시아북) 등이 있고 공저로 『현대 중국의 모색』(동녘), 『동양사상』(전통문화연구회), 『정보기술사회의 윤리매뉴얼』(서광사), 『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아세아문화사), 『왕양명철학 연구』(청계), 『전통 청바지 - 옛것은 과연 낡은 것일까?』(웅진지식하우스),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생각의 나무), 『효, 사랑실천입니다』(성산서원), 『효와 행복』(성산서원), 『꿈나무 세대를 위한 예절』 · 『인터넷 세대를 위한 예절』 · 『글로벌 세대를 위한 예절』(이상 대한교과서), 『儒家傳統與人權民主思想』(齊魯書社, 중문), 『儒林』(山東大學, 중문), 『한국효문화자료보감 - 대전시 편』 · 『한국효문화자료보감 - 충청남도 편』 · 『한국효문화자료보감 - 강원도 편』 · 『세계 각국의 효문화』 · 『한국의 효문화 뿌리를 찾아서Ⅰ-Ⅴ』(이상 한국효문화진흥원) 등이 있다. 역주서로 『명이대방록』(한길사, 제41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부문 수상작), 『잠서』 상 · 하(소명, 한국학술진흥재단 명저번역총서), 『역주 고문효경』 · 『그림으로 읽는 동양의 효문화』(이상 문사철)가 있고 번역서로 『중국 봉건사회의 정치사상』(동녘)이 있다. 논문으로 양명학, 중국철학, 한국철학, 효문화 관련 연구논문 50여편이 있다.
명말청초 격변기의 사회 상황과 신사조의 형성 명말청초의 사회는 정치 경제적인 격변기였다. 안으로는 이자성(李自成)과 장헌충(張獻忠)의 농민봉기로 혼란스러웠고, 밖으로는 강성해진 만주족이 명조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조정 내부에서는 동림파(東林派) 대 비동림파의 대립이 극심하였는데, 이 당쟁은 위충현(魏忠賢)을 중심으로 한 환관들의 동림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한편 경제적으로는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 정치·행정의 중심인 북경을 비롯한 행정 중심지역에서는 내분과 전쟁이 끊이지 않은 반면, 강소·절강 등 강남지역에서는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한 중대형 도시가 형성되어 번창하고 있었다.
'명이대방록'이 후대에 미친 영향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명이대방록]이 추구하는 정치 경제적 형태는 매우 개혁적이고 혁신적이다. 전제왕권하에서 개혁과 혁신을 주장한 것은 그만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아마도 황종희는 이미 회생 불가능한 명조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새로운 왕조-물론 그가 바랐던 새로운 왕조가 만주족 정권이라고 못박을 수는 없지만-에 대한 강한 집념과 의지를 이 책을 통해 표현했던 것이다. 그 왕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회의 제도와 형태는 매우 분명한 어조로 그리고 있다.
새로운 사회의 주체는 비록 구체적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다음 세 가지 방향에서 추론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 멸망한 명왕조 회복을 통해서, 둘째는 새롭게 들어선 청조를 통해서, 셋째는 제3의 세력을 통해서이다. 여기서 첫째, 둘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황종희는 잘 알고 있었다. [명이대방록]의 저술시기로 볼 때, 그가 명조 회복의 불가능함을 알고 썼다는 것과 극렬한 반청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명조를 비롯한 역대 전제왕권이 [명이대방록]의 정치 경제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전 왕조가 여기에 해당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마지막 세번째가 아마도 황종희가 기대를 걸고 추구했던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황종희 자신의 구체적 언급이 없는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명이대방록]이 신시대에 대한 열망과 과거 잘못된 사회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자못 강렬하다는 점에서 과연 신시대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두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황종희가 갈망했던 신시대는 [명이대방록] 내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특정 왕조가 주체가 되는 사회라기보다는 '군객민주'에 보이듯 백성이 주인이 되고, 정치의 주역으로 사대부 지식인 출신의 재상과 관리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근대적인 민주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기존의 전제왕조사회에서 논의되던 '군주민본'(君主民本)과는 분명 다른 차원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명이대방록]은 신시대·신사회를 갈망하는 청말 지식인들에게는 유용한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명이대방록]은 수백년 간의 전제정치에 대한 과감한 비판을 시도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발현하였는데, 이것은 손문·양계초·담사동·장개석을 비롯한 지식인들의 정치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황종희의 공리적(公利的) 민본 정치사상은 청말민초 변화된 사회의 요청과 요구에 적합한 논리로서 당시 환영받던 이론이었던 것이다.
명이대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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