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2 (기원과 개전 | 양장본 Hardcover)

러일전쟁 2 (기원과 개전 | 양장본 Hardcover)

$38.30
Description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비교하고 연구한 전쟁사학의 결정판!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조사한 전쟁사학의 결정판 『러일전쟁』 제2권. 저자는 이 책에서 러일전쟁의 성격을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려 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러시아로 하여금 인정하게 한 전쟁이었다고 정의한다.

저자는 전쟁의 가장 큰 결과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라고 밝힌다. 전쟁의 명칭은 ‘러일전쟁’이지만 전쟁의 본질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조선전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샅샅이 훑으며, 이를 통해 1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따로 떼어 해석할 수 없으며 이 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단일 범죄임을 밝혀낸다.

일본이 전쟁을 기획, 모의하고 마침내 실행하는 현장을 마치 동영상을 틀어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이제까지 밝혀진 것과 달리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하며,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범죄였다는 증거를 장장 1,300여 쪽에 걸쳐 입증한다.
저자

와다하루키

(和田春樹,1938~)
와다하루키는1938년일본오사카(大阪)에서태어났다.도쿄대학교문학부를졸업한후1998년까지도쿄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교수및소장을역임했다.현재도쿄대학교명예교수,도호쿠대학교(東北大?)동북아시아연구센터방문교수다.러시아사·소련사,조선사·현대북한사등동북아국제관계사가주요연구분야다.1974년부터1987년까지한국민주화운동일본연대회의(韓國民主化運動日本連帶會議)와연대위원회(連帶委員會)에서사무국장을역임했으며,1995년부터2007년까지아시아여성기금의발기인,운영심의회위원,이사,전무이사,사무국장을역임했다.2016년부터는북일국교촉진국민협회(日朝?交促進國民協會)의이사및사무국장으로활동중이다.주요저서로는『니콜라이러셀:국경을초월한나로드니키』(1973),『김일성과만주항일전쟁』(1992),『역사로서의사회주의』(1994),『한국전쟁』(1999),『북조선』(2002),『동북아시아공동의집』(2004),『한일100년사』(2015),『동북아시아영토문제,어떻게해결할것인가』(2013),『북한현대사』(2014),『‘평화국가의탄생:전후일본의원점과변용』(2015),『스탈린비판1953-1956년』(2016),『일본군위안부문제의해결을위하여』(2016),『러시아혁명,페트로그라드1917년2월』(2018),『아베수상은납치문제를해결할수없다』(2018)등이있다.

목차

러일전쟁2
기원과개전

제6장새로운노선의등장
701.새해의첫나날들
704.제2차해군대학도상(圖上)훈련
711.신임해군상과신임군령부장
715.만주철군의기한이임박하다
719.극동의베조브라조프
721.베조브라조프와보가크
724.극동정책의신구상
726.경비대파견문제
729.페테르부르크의보가크호출과중앙의반응
732.4월8일(3월26일)협의회
737.무린암(無隣庵)회의
742.러청교섭결렬
744.러시아를향한비난의목소리가높아지다
748.일본참모본부의개전론
752.쿠로파트킨의출발과보가크의견서
756.베조브라조프의상주보고와황제의지시
761.5월20일(7일)협의회
767.5월협의회이후
772.베조브라조프,극동으로출발하다
774.일본의의주(義州)개방요구
777.쿠로파트킨육군상의일본방문
780.조선의반응
782.참모본부와일곱박사
789.일본의쿠로파트킨
794.일본,대러방침을결정하다
800.니콜라이와아바자의새로운방침
802.쿠로파트킨,일본을떠나다
805.뤼순(旅順)회의
819.일본의반응
822.일본에서고조되는개전론
826.차르의사로프수도원방문
828.베조브라조프와쿠로파트킨의논쟁
838.극동태수제도입

제7장러일교섭
855.교섭개시
858.일본의제1차제안
860.러시아의사정
864.세장관의경질위기
868.쿠로파트킨,황제를수행하다
869.러청교섭의중단
871.러시아의회답준비
878.베조브라조프의움직임
880.한국정부,중립을추구하다
885.주일무관의경고
889.러시아의제1차회답
892.가을의위기
898.러ㆍ일해군력비교
900.러시아정부의대응
905.일본의제2차서한
912.『도쿄아사히신문』,교섭결렬을촉구하다
914.알렉세예프의펑톈(奉天)점령
915.일본과러시아군인들의의견
919.극동특별위원회설치와임업회사문제
926.얻어맞는수병들,사살되는동물들
929.러시아측의제2차서한
935.개전을촉구하는일본여론
940.공상소설『러일전쟁하네카와로쿠로』
945.일본의제3차서한
951.일본군의조선출병에관한정보
955.러시아의12월특별협의회
964.일본,대러작전계획을결정하다
968.한국에대한방침
971.일본과러시아의상호인식
976.주재무관의경고전보
977.러시아의제3차서한

제8장전야
999.뤼순의긴장
1003.황제와육군상은망설이다
1006.가는해,오는해
1007.이탈리아군함의매입
1008.구리노공사와베조브라조프
1016.베조브라조프의러일동맹안
1027.일본정부,개전을포함한최종회답을결정하다
1031.주재무관들의보고와증원함대
1034.대한제국의중립선언
1038.러시아정부내의검토
1044.중재조정의요청
1046.일본한국을죄다
1050.마지막장관협의
1055.일본의개전준비
1057.협의회가끝난뒤,람스도르프
1065.일본,각의에서국교단절을결정하다
1071.러시아외상최후의몸짓
1076.낭패한알렉세예프
1079.일본의단교통보
1080.일본군전투행동을개시하다
1081.“러시아는전쟁을원하지않는다”

제9장개전
1095.1904(메이지37)년2월6일(1월24일)토요일
1103.2월7일(1월25일)일요일
1112.2월8일(1월26일)월요일
1128.2월9일(1월27일)화요일
1136.2월10일(1월28일)수요일
1143.2월11일(1월29일)목요일
1146.2월12일(1월30일)금요일
1148.2월13일(1월31일)토요일
1150.2월14일(1일)일요일
1153.2월15일(2일)월요일
1154.2월16일(3일)화요일
1155.2월17일(4일)수요일
1156.2월18일(5일)목요일
1156.2월19일(6일)금요일
1157.2월20일(7일)토요일
1159.2월21일(8일)일요일
1159.2월22일(9일)월요일
1162.2월23일(10일)화요일
1164.2월24일(11일)수요일
1167.2월25일(12일)목요일
1168.2월26일(13일)금요일
1169.2월27일(14일)토요일
1169.2월28일(15일)일요일
1172.2월29일(16일)월요일
1175.3월1일(2월17일)화요일
1176.3월2일(2월18일)수요일

제10장러일전쟁은이렇게일어났다
1188.일본이노린것
1190.조선과러시아
1192.청일전쟁의개시와그파문
1195.러시아의만주진출
1197.가쓰라-고무라내각의성립
1198.러일교섭
1200.러시아의새로운노선
1202.최후의순간
1203.국민의정신은전쟁에동원되었다
1206.전쟁의확대
1207.전쟁이끝난뒤

1215.맺는말
1217.옮긴이의말
1225.참고문헌
1253.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전쟁사학의결정판

러일전쟁은우리민족의운명을결정지은전쟁이었을뿐아니라20세기세계사의대사건이었다.대한제국은전쟁직후을사늑약체결을강요받았고그때부터국권침탈까지3년밖에걸리지않았다.또한일본에서는제국주의국민이탄생했고러시아에서는혁명의열기가끓어올랐다.하지만그간러일전쟁에관해일본과러시아그리고한국의자료를전면적으로비교하고연구한책은없었다.
일본의역사학자이자‘행동하는일본의양심’이라불리는와다하루키(和田春樹)의『러일전쟁:기원과개전』1,2는러일전쟁에관해일본과러시아그리고한국의자료를전면적으로조사한최초의책으로전쟁사학의결정판이다.
와다는러일전쟁의성격을‘조선을지배하고정복하려한’일본이러시아와맞닥뜨려전쟁으로‘몰아간’뒤“조선을일본의것으로한다는점을러시아로하여금인정하게한전쟁이었다”(36쪽)라고정의한다.그는전쟁의가장큰결과는“일본이대한제국을말살하고,조선전역을식민지지배한것이다”라고밝힌다.전쟁의명칭은‘러일전쟁’이지만전쟁의본질은조선을차지하기위한‘조선전쟁’이라는것이다.

제국주의자들에게보내는준엄한
경고장이자단죄의논고(論告)

이책을읽은한국과북한의여러분이일본제국주의의교묘한행보에관해서,일본의침략때문에망국의위기에떨어졌던자국의행보에관해서보다깊이생각해준다면기쁘겠다._37쪽

『러일전쟁:기원과개전』1,2는각주를2,402개나넣을만큼사료를철저하게고증했으며이를바탕으로꼼꼼하게재구성한서사극(敍事劇)이다.‘사건’중심의서술이아니라‘등장인물’들의관계를통해역사의지류가‘어떻게’러일전쟁으로흘러가게되었는지밝힌다.러시아,일본,조선,중국,영국,미국,독일,프랑스그리고태국등9개국에서700여명에이르는인물이등장해사실관계를고증한다.와다는러일전쟁이발발하게된원인을샅샅이훑는다.이를통해10년의간격을두고벌어진청일전쟁과러일전쟁은따로떼어해석할수없으며이전쟁은일본이조선을차지하기위해용의주도하게계획한단일범죄임을밝혀낸다.
청일전쟁은‘제1차조선전쟁’,러일전쟁은‘제2차조선전쟁’이었다는독특한시각을제시하는『러일전쟁:기원과개전』1,2는이두차례의조선전쟁이한반도비극의출발점이되었음을명쾌하게규명하면서,비극의서막을연역사법정의피고(被告)는반성해야한다고준엄하게질타한다.
『러일전쟁:기원과개전』1,2는일본이전쟁을기획,모의하고마침내실행하는현장을마치동영상을틀어놓은것처럼생생하게보여주면서당시상황을재구성한다.이제까지밝혀진것과달리러시아는전쟁을원하지않았다는사실을명백하게제시했고일본이용의주도하게계획한범죄였다는증거를장장1,300여쪽에걸쳐입증한다.

1904년2월17일자『브룩클린이글』(BrooklynEagle)에실린「너무나도헌신적인」

그림에서짓밟히고있는인물,즉조선은“나는이로써귀하가조선영내를종단하는것을허가한다”라고쓴종이를들고있다.그아래로흐르는강에는‘압록강’이라고쓰여있고발끝에는‘만주방면’이라는이정표가보인다.

전쟁으로몰아가던군국주의시대에도침묵하지않고평화를지키려는양심이있었다는사실까지세세하게기록해이성적판단이결핍된야만의시대만은아니었음을보여준다.역사의법정에울려퍼지는예리하고도부정할수없는증거로가득찬이대작은전범(戰犯)을겨눈논고의전범(典範)이다.

일본의간섭,지배,침략에일관되게저항한고종

고종이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게서벗어나직접정사를다스리겠다고선언한것은1873년이다.그의나이21세였다.현재까지고종은‘암약’(暗弱)한인물이고민비에게완전히좌지우지되었다는게통념이지만최근에는이런통념을비판하며고종을재평가해야한다고주장하는학자가많다.
『러일전쟁:기원과개전』1,2에서도고종이“일본의간섭,지배,침략에일관되게저항”(1199쪽)했으며이는동북아시아의역사를이해하는데결정적인사실이라고평가한다.“분명고종은대원군의정치에비판적인시각을지니고있었고,개명(開明)성도갖추었으며,백성의생활에대한배려심도있었다”(127쪽)라는것이다.

채용신,「고종어진」,1901,원광대학교박물관.

지금까지고종은‘암약’(暗弱)한인물이고민비에게완전히좌지우지되었다는게통념이다.하지만최근에는이런통념을비판하며고종을재평가해야한다고주장하는학자가많다.
러시아에접근하는고종과일본의반응
고종은임오군란과갑신정변을겪으면서조선의운명을구원할수있는길은러시아에의존하는것이라고생각하기시작했다.“오래전부터종주국이었던청국도거부하고,새롭게밀고들어오는일본도거부했으며,북쪽의러시아제국의보호하에들어감으로써자신의통치를확립하는길을모색”(1190쪽)하기에이른것이다.“고종이러시아에처음으로밀사를보낸것은갑신정변이전인1884년5월이었다.”(128쪽)
이사실이전해지자일본의외무경이노우에가오루(井上馨)는격노했다.그는1885년6월5일청국공사수청쭈(徐承祖)에게“청국과일본이협력해방법을모색하지않는다면,그나라외교의졸렬함으로인해귀국과아국양국에화를초래할것이경각에달려있다.”(1190쪽)“따라서조선왕의임정(臨政)을약간구속하고,외교상의망동을하지않도록해야한다”(1190쪽)라고말했다.이때부터1910년병합때까지일본에대항하는고종의긴투쟁이시작되었다.한편러시아의태도는소극적이었다.러시아는조선이어느국가의보호국도되지않은현재의상태를‘유지’하고자했다.

청일전쟁과삼국간섭이후
청일전쟁에서승리한일본은조선에서청국을몰아냈을뿐아니라막대한배상금까지요구했다.또한타이완,랴오둥반도,남만주의할양까지요구했는데이는“제국주의의기준으로봤을때도지나친욕심”(1192쪽)이었다.
일본이만주에진출하려하자러시아가즉각반응했다.러시아는독일,프랑스와함께‘삼국간섭’으로일본을압박했고일본은랴오둥반도를반환할수밖에없었다.반면조선이러시아에거는기대는높아졌다.“고종과민비는러시아의힘에의지해일본의간섭을배척하는방향으로움직였다.”(1193쪽)
다급해진일본은청일전쟁에서‘획득한’조선에대한지배권을주장하려했다.이과정에서미우라고로(三浦梧?)공사가민비를시해하는폭거를저지른다.비(妃)를서민으로격하한다는조칙을내도록강요받은고종은분노해서아관파천을감행하는반격에나섰다.
일본은조선에서힘을강화한러시아와어떻게든협상하지않을수없게되었다.이때부터조선을남북으로분할해일본과러시아의세력권으로하자는안과만주와조선을교환하자는‘만한교환론’(滿韓交換論)이생겼다.

러시아의만주진출
일본은그동안소극적인자세로‘만한교환론’을주장했다.하지만러시아가만주를점령하자‘만한교환론’을강하게밀어붙인다.그러자고종은대한제국의중립국노선을처음으로내세우며일본정부에게교섭하자고제의한다.이를“주일러시아공사이즈볼스키(Izwolskii)가강하게지지했고,그의설득으로러시아외무성도대한제국중립국노선을지지하게된다.”(1196쪽)하지만일본은이제안을“단호하게거절했다.”(1196쪽)사실러시아가만주에진출했을때부터일본은‘만한교환론’으로는만족하려하지않았던것이다.일본은“조선을완전히일본의것으로하고,더불어남만주로진출하는것을목표”(1197쪽)했다.이는완전히전쟁을하겠다는자세였다.

러일교섭
당시일본외상고무라주타로(小村壽太?)는즉각러일교섭을시도했지만‘만주문제’와‘조선문제’를해결하기위한교섭이아니었다.고무라는“교섭의장에서조선은일본의것이고일본이보호국으로삼는것을인정하라고러시아에게요구한다.러시아가이를거부하면전쟁을시작한다.전쟁은시베리아철도가완성되지않은지금이찬스다”(1198쪽)라고말했다.당시러시아의상황을보면러시아가일본의요구를거부할것이라는점은분명했다.일본도이를잘알고있었다.
“고종은러일교섭이시작되었다는것은개전이가까워진것이라생각하고,1903년8월전시중립을인정받기위한움직임을시작했다.”(1199쪽)고종은“8월15일자로러시아황제에게보내는밀서를작성했다.”(880쪽)

“만약전쟁의막이열리면우리나라가전쟁터가되는것을피할수없을것같아두렵다…우리백성들로하여금귀국군대의세력을도와서,적[일본군]이올때에는재물과곡식을옮겨감추게하고,몸은산의계곡사이에숨도록하게할것이다….”_881쪽

이는러시아에게전시협력을제의하는것이었다.물론이는고종의개인적인소원을표명한데지나지않았다.고종은이밀서를쓰고난후에외부대신이도재(李道宰)에게,러시아와일본양국에대해서중립국으로서의승인을요청하는내용으로양국의주재공사에게보내는훈령을작성하라고지시했다.고종은이렇게전시중립의승인을러시아와일본양쪽에촉구함과동시에러시아에게는제한없는연대협력의의사를은밀하게표명했던것이다.

러일전쟁이후
일본과러시아는포츠머스강화조약에조인했다.“양국의평화를강조한제1조에이어제2조에는일본의가장중요한전쟁목적이적시되었다.”(1210쪽)

“제2조러시아제국정부는일본국이한국에서정사상,군사상및경제상의우월한이익을지니는것을승인하고,일본제국정부가한국에서필요하다고인정하는지도,보호및감리의조치를위함에있어이를방해하거나또는이에간섭하지않을것을약속한다.”_1211쪽

강제로체결된을사조약의실태를묘사한
「코리안뉴스페이퍼」의풍자화.

일본군인이칼을앞세우고있지만고종은분노하며조약서에서명하지않고있다.하지만조약을부추긴‘을사오적’이공모해조약을체결하는장면을묘사하고있다.특히그림오른쪽아래글자에서‘협’자를화합하다의뜻인‘協’이아닌위협하다는뜻의‘脅’자를써서조약체결의부당성을풍자한다.

일본은이결과에기초해서움직였다.1905년11월17일이토히로부미는서울로들어가고종과한국정부각료들을위협해제2차한일협약,즉을사조약을체결했다.참정대신한규설(韓圭卨),탁지부대신민영기(閔泳綺),법부대신이하영(李夏榮)만이무조건‘불가’를썼고,학부대신이완용(李完用),군부대신이근택(李根澤),내부대신이지용(李址鎔),외부대신박제순(朴齊純),농상공부대신권중현(權重顯)은찬성했다.

최후의저항
이렇게대한제국은완전히일본의보호국이되었다.이토히로부미는초대통감이되었다.그러나고종은저항을멈추지않았다.이협약의무효를여러나라에은밀하게호소하는밀사를계속해서파견했다.그최후의노력이1907년제2회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특사세명을파견한것이었다.그러나회의의주최자에의해서이특사들의회의참가는거절되었다.이토통감은이행동의책임을추궁해고종을퇴위시켰다.

헤이그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왼쪽부터).

고종은저항을멈추지않았다.이협약의무효를여러나라에은밀하게호소하는밀사를계속해서파견했다.그최후의노력이1907년제2회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특사셋을파견한것이었다.

1907년7월19일고종은퇴위했고,황태자가순종(純宗)으로즉위했다.7월24일에는제3차한일협약이체결되어통감이한국정부내정의모든것을지도하게되었다.보호국화의완성이었다.그시점부터한국병합까지3년밖에걸리지않았다.

“고종은1880년대중반부터1919년사망할때까지자신의나라에대한일본의간섭,지배,침략에일관되게저항했다.그저항의방법에대해서는여러가지평가가있겠지만,그일관된저항의사실은역사의중요한요소이며,그것을모르면이시대동북아시아의역사를이해할수없다.”_1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