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야만의시대에저항한’지식인의뜨거운상징
블로크는양차세계대전을겪는사회적위기국면을방관하지않고현실에맞서싸우는실천적역사가로서의삶을살았다.그는역사를‘내일은어떤방향에서어제와다를것인가를예견하는방법을모색’하는‘변화의학문’으로여겼다.이런신념을바탕으로제1차세계대전당시보병대위로참전했으며제2차세계대전이발발했을때는무려53세의나이로참전했다.프랑스군이붕괴된뒤에는레지스탕스로활동하다나치에적발되어1944년에처형된다.그의죽음은폭력과야만의시대에저항한지식인의뜨거운상징이되었다.
이런그의행보는단순히그와그의가족이유대인이었기때문만은아니다.물론그는유대인으로서성장기에드레퓌스사건(DreyfusAffair)을경험하기도했다.그렇지만그가중대한위기에직면한프랑스사회를구하기위해죽음을무릅쓰고싸웠던이유를민족감정만으로는이해해선안된다.
그는프랑스혁명이후프랑스사회가발전시켜온인간의존엄성과자유그리고평등같은인류의보편가치에대한믿음이있었다.국민주권이실현되는공화국이없이는국민의자유도없다는공화주의자로서의신념또한지니고있었다.또한,역사는변화의학문이라는소신에서개혁을적극적으로지지했던진보적세계관,역사는현재와분리해생각할수없는현실적학문이라는인식에서오는현재에대한강한문제의식과책임감등과같은세계관과소신도지니고있었다.
이런점은그의저서『이상한패배:1940년의증언』(L’tranged?faite:t?moignage?criten1940,김용자옮김,까치,2002)과레지스탕스활동기간에쓴『역사를위한변명』(Apologiepourl’istoireoum?tierd’istorien,정남기옮김,한길사,1979)에서볼수있다.특히역사에대한자신의견해를요약하고정리한『역사를위한변명』에서는역사는정당하며현재를이해하고미래를예견하는데유용한것이지만,한편으로는현재에대한관심과지식없이는과거를이해할수없다는소신이피력되어있다.
비교사적연구를통한영국과프랑스의비교
마르크블로크는20세기초영국과프랑스의농촌에서볼수있는풍경과경제적구조의차이가어떻게생겨났을까하는문제의식에서출발한다.“외관상영불해협의프랑스쪽땅은울타리가없이탁트인개방경지제와집촌(集村)을특징으로하는풍경이펼쳐지는데비해,영국쪽은울타리로둘러쳐진경지제도와외딴집(散村)으로된풍경이전개된다.”(29쪽)또한,“농촌사회의구조에서도영국은프랑스에비해농업인구의비중이훨씬낮고,토지가운데곡물경작지가훨씬적은대신목초지의비중이높아곡물의자급률이매우낮으며,대토지소유제가지배적이다.
이에반해프랑스는농업인구의비중이훨씬높고,“곡물경작지의비중과곡물의자급률이매우높으며,대토지소유가존재하지만중소규모의농민적토지소유와병존한다.”(29쪽)블로크는이렇게차이가생기는이유가‘자연발생적’이지않으며두국가의‘장원제’를비교하면서그이유를밝히겠다고선언한다.
이처럼이책에서단연돋보이는연구방법은비교사적방법이다.현대영국과프랑스농촌사회가지니는차이의원인을시종일관양국의장원제역사를비교해고찰함으로써규명하려고하고있기때문이다.
완전한형태의장원은두부분의토지로구성된다.한부분은땅의소유주이자지배자인영주가여러가지노동력을이용해직접경영하고그수확물을차지하는영주직영지다.다른한부분은소규모의농장들로구성되며그보유자는영주에게각종부역노동과공납을이행할의무를지는농민보유지다.
장원제는본질적으로경제적차원의제도다.하지만장원제를제대로이해하려면장원제가중세에사회구조를구성하는기본요소가운데하나이기도했다는것,즉가족,봉신(封臣)집단,도시공동체처럼사회생활을하기위한기본단위조직가운데하나였다는사실을간과해서도안된다.
장원제는이런경제적차원의이익도모와지배권과의결합이며,강한지배권과경제적으로착취할수있는권력이영주의수중에집중되어있었다.
마르크블로크(MarcBloch,1886-1944)는『서양의장원제-프랑스와영국의장원제에대한비교사적고찰』에서‘장원제의역사’를추적한다.하지만모든유럽사회의장원제를탐구하지는않는다.그와는정반대로,여러가지점에서서로닮고동일한추세의영향을받았는데도서로몹시다른두이웃사회,곧프랑스와영국의장원제역사를탐구한다.
이를통해당시사람들이장원제속에서어떤생각을하면서살았고어떤사회를구성하려했는지를살펴본다.더나아가장원제가두국가의역사에어떤영향을미쳤는지를밝힌다.
마르크블로크의삶
‘폭력과야만의시대에저항한’지식인의뜨거운상징
블로크는양차세계대전을겪는사회적위기국면을방관하지않고현실에맞서싸우는실천적역사가로서의삶을살았다.그는역사를‘내일은어떤방향에서어제와다를것인가를예견하는방법을모색’하는‘변화의학문’으로여겼다.이런신념을바탕으로제1차세계대전당시보병대위로참전했으며제2차세계대전이발발했을때는무려53세의나이로참전했다.프랑스군이붕괴된뒤에는레지스탕스로활동하다나치에적발되어1944년에처형된다.그의죽음은폭력과야만의시대에저항한지식인의뜨거운상징이되었다.
이런그의행보는단순히그와그의가족이유대인이었기때문만은아니다.물론그는유대인으로서성장기에드레퓌스사건(DreyfusAffair)을경험하기도했다.그렇지만그가중대한위기에직면한프랑스사회를구하기위해죽음을무릅쓰고싸웠던이유를민족감정만으로이해해선안된다.
그는프랑스혁명이후프랑스사회가발전시켜온인간의존엄성과자유그리고평등같은인류의보편가치에대한믿음이있었다.국민주권이실현되는공화국없이는국민의자유도없다는공화주의자로서의신념또한지니고있었다.이를바탕으로역사를변화의학문으로인식했으며개혁을적극적으로지지했다.또한,역사는현재와분리해생각할수없는현실적학문이라는인식에서오는현재에대한강한문제의식과책임감등과같은세계관과소신도지니고있었다.
이런점은그의저서『이상한패배:1940년의증언』(L’tranged?faite:t?moignage?criten1940,김용자옮김,까치,2002)과레지스탕스활동기간에쓴『역사를위한변명』(Apologiepourl’istoireoum?tierd’istorien,정남기옮김,한길사,1979)에서볼수있다.특히역사에대한자신의견해를요약하고정리한『역사를위한변명』에서는역사는정당하며현재를이해하고미래를예견하는데유용한것이지만,한편으로는현재에대한관심과지식없이는과거를이해할수없다는소신이피력되어있다.
■한길사에서번역해출간한마르크블로크의저작
『역사를위한변명』,고봉만옮김
『봉건사회』ⅠⅡ,한정숙옮김
『기적을행하는왕』,박용진옮김
장원의구성과성격
완전한형태의장원은두부분의토지로구성된다.한부분은땅의소유주이자지배자인영주가여러가지노동력을이용해직접경영하고그수확물을차지하는영주직영지다.다른한부분은소규모의농장들로구성되며그보유자는영주에게각종부역노동과공납을이행할의무를지는농민보유지다.
장원제는본질적으로경제적차원의제도다.하지만장원제를제대로이해하려면장원제가중세의사회구조를구성하는기본요소가운데하나이기도했다는것,즉가족,봉신(封臣)집단,도시공동체처럼사회생활을하기위한기본단위조직가운데하나였다는사실을간과해서도안된다.
장원제는이런경제적차원의이익도모와지배권과의결합이며,강한지배권과경제적으로착취할수있는권력이영주의수중에집중되어있었다.
“길게따질필요없이우리는그와같은장원제가조금만보급되어도사회구조전체에어떠한영향을미치는지곧바로알아차릴수있다.장원제는순수한의미의노예는아니지만주민가운데가장많은수를차지하는예속민계급위에지배자계급이군림하는것을전제하고,상당히강한지배권력과경제적으로착취할수있는권력이이들지배자의수중에서결합되는것을전제한다.”_50쪽
자크리의난
백년전쟁중인1382년에프랑스남부의랑그도크지방에서군인의노략질,일부영주의영국군과의타협,염세를비롯한많은세금의부당한징수등에대한항의로빈민층을주축으로일어났다가그이듬해에진압된농민반란을말한다.여기에는도시의부르주아층도가담했다.
비교사적연구를통한영국과프랑스의비교
블로크의비교사적연구
블로크에따르면비교사(比較史)는상이한인근사회들간의영향과역사적현상들사이의연관관계를설명하고,‘일반적인참다운원인’또는‘유일한실제원인’을파악하며,유사점과함께상이점과개별적특성및차이의원인을밝히려한다.비교방법에는두가지가있다.
첫째,“시공간적으로동떨어져있어상호간의관계나공통의기원을찾을수없는사회들사이에유사한현상이나타나는경우의비교다.”(26쪽)이는인류학에서많이사용하는방법이다.역사속에서개별적으로는상이하지만같은부류에속하는제도들을찾아내고,이제도들을비교해특이하게만보이는문화적요소가어떻게생겨났는지밝히며이런사회에서사람들이어떻게살았는지보여준다.
둘째,“지리적으로나시간상으로근접해기원과발전과정의작용요인을공유하고서로큰영향을미치는사회들의비교다.”(26쪽)끊임없이영향을주고받으며,인접성과동시대성때문에동일한거대요인들의작용을받아발전하고,적어도부분적으로는공통의기원을지니는동시대의인접사회들을견주어연구하는것이다.
프랑스와영국의비교
그는20세기초영국과프랑스의농촌에서볼수있는풍경과경제적구조의차이가어떻게생겨났는가라는문제의식에서출발한다.“외관상영불해협의프랑스쪽땅은울타리가없이탁트인개방경지제와집촌(集村)을특징으로하는풍경이펼쳐지는데비해,영국쪽은울타리로둘러쳐진경지제도와외딴집(散村)으로된풍경이전개된다.”(29쪽)또한,“농촌사회의구조에서도영국은프랑스에비해농업인구의비중이훨씬낮고,토지가운데곡물경작지가훨씬적은대신목초지의비중이높아곡물의자급률이매우낮으며,대토지소유제가지배적이다.
이에반해프랑스는농업인구의비중이훨씬높고,“곡물경작지의비중과곡물의자급률이매우높으며,대토지소유가존재하지만중소규모의농민적토지소유와병존한다.”(29쪽)블로크는이렇게차이가생기는이유가‘자연발생적’이지않으며두국가의‘장원제’를비교하면서그이유를밝히겠다고선언한다.
이처럼이책에서단연돋보이는연구방법은비교사적방법이다.현대영국과프랑스농촌사회가지니는차이의원인을시종일관양국의장원제역사를비교해고찰함으로써규명하려고하고있기때문이다.
프랑스피카르디지방의현대개방경지와집촌풍경(왼쪽)
영국서식스지방의현대인클로저와외딴집풍경(오른쪽)
프랑스의장원제는집촌을특징으로하는농촌구조와긴밀하게연관되어있었다.
영국의인클로저운동은장원제를해체시켰고,그결과이런풍경이조성되었다.
영국과프랑스의성문법과관습법
영국의장원제는프랑스보다늦었다.따라서확실히프랑스보다더철저한장원조직을갖추게되었고가난한다수의농민계급이많이생겼다.이로인해값싼노동력을확보하기용이해졌으며영국의영주는토지소작료에대한의존도가프랑스의영주보다더낮아지게되었다.
또한,영국의왕권이프랑스보다훨씬강했는데성문화된법을지니고있지못한프랑스와달리영국은윌리엄정복왕과그의직계왕들이유례없이빠르게성문화된법을구축해나갔다.이런‘성문법의정착’으로영주와영주의지배아래있는대다수농민들사이의관계도법적으로고착화되었다.
영국의장원제역사에서결정적인단계는대단히강력했던왕권과여전히세력이매우강했던영주계급사이에이루어진일종의암묵적인협정이었다.이에따라서,재판권을장악하고있던영주는관습을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