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장원제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 | 양장본 Hardcover)

서양의 장원제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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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양의 장원제-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닮고 동일한 추세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서로 몹시 다른 두 이웃 사회, 곧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 역사를 탐구한다.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01944)는 『서양의 장원제-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에서 ‘장원제의 역사’를 추적한다. 하지만 모든 유럽사회의 장원제를 탐구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로,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닮고 동일한 추세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서로 몹시 다른 두 이웃 사회, 곧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 역사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장원제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 어떤 사회를 구성하려 했는지를 살펴보려는 의도를 지닌다. 더 나아가 장원제가 두 국가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밝힌다.
저자

마르크 블로크

Marc Bloch, 1886~1944
마르크 블로크는 1886년 프랑스 리옹의 유대인 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 역사학 및 지리학 교수자격 시험에 합격하고 1920년에는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몽펠리에 고등학교와 아미앵 고등학교의 교사를 거쳐 스트라스부르 대학과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실사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지닌 실천적 역사가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했으며, 나치의 프랑스 점령 아래에서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1944년 독일군에 체포되어 58세의 나이로 고향 근처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혼란스런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도 박사학위 논문인 「왕과 농노」를 비롯해 10여 권의 저서와 100여 편에 이르는 논문 등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다. 그의 역사연구는 단순히 탁월하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학사적으로 역사학의 흐름을 바꿔놓을 정도로 역사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세기 이래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사건사 내지 제도사 위주의 랑케 사학과는 달리, 그는 인간은 복합적·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집단적 연관성과 장기 지속적 거대 구조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역사는 전체사적이고 사회구조사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특징적 역사연구 방법으로는 문제 중심의 역사연구, 소급적 연구, 비교사적 연구 등을 제창하고 실제 자신의 연구에 적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은 획기적 역사인식과 이에 따른 혁신적 역사연구 방법론은 이른바 아날(Annales) 학파를 통해 기존의 전통적 랑케 사학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세계 역사학계를 주도한다. 그의 새로운 역사학이 가장 잘 표현된 대표적인 고전적 저서는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과 『봉건사회』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서양의 장원제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마르크 블로크의 비교사적 연구 |
이기영ㆍ15

서론
1. 현대 프랑스 농촌과 영국 농촌의 대조적 모습ㆍ37
2. 프랑스의 장원과 영국의 장원ㆍ44
3. 연구방법ㆍ50

제1부 초기의 고전장원제: 카롤링왕조 시대의 프랑스 장원과
노르만왕조 시대의 영국 장원

제1장 카롤링왕조 시대의 고전장원ㆍ5
1. 사료ㆍ55
2. 영주직영지ㆍ59
3. 농민보유지ㆍ76
4. 신분ㆍ84

제2장 11세기 영국의 장원ㆍ3
1. 영국 농촌사의 기본적 특성ㆍ93
2. 『둠즈데이북』과 ‘장원’이라는 말ㆍ106
3. 신분ㆍ113
4. 장원제의 강제적 실시ㆍ120

제2부 11-13세기의 장원제: 장원농민의 법적 신분과
장원 경제구조의 변동

제1장 법률의 변천과 장원농민의 신분변동: 프랑스를
중심으로ㆍ25
1. 9-12세기 프랑스의 법률변천ㆍ126
2. 장원농민의 신분변동과 농노 신분의 형성ㆍ130

제2장 재판권과 장원농민ㆍ41
1. 프랑스의 재판권 변화추이와 장원농민ㆍ143
2. 영국의 재판권 변화추이와 장원농민ㆍ152

제3장 장원 경제구조의 변동ㆍ57
1. 부역과 공납의 변화ㆍ158
2. 영주직영지의 축소ㆍ163

제3부 14세기 이후 경제상황의 변화와 장원제의 귀결

제1장 중세 말과 근대 초 경제상황의 변화와 장원제ㆍ 73
1. 14-15세기의 위기와 장원조직ㆍ173
2. 화폐가치의 변동과 영주의 소작료 수입ㆍ179
3. 가격혁명과 영주의 소작료 수입ㆍ188

제2장 영국 장원제의 귀결ㆍ93
1. 영주직영지의 상당한 잔존ㆍ193
2. 농민적 토지소유의 쇠퇴ㆍ205
3. 정치적ㆍ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ㆍ209

4. 인클로저와 장원제의 해체ㆍ212
인클로저: 총론ㆍ212
인클로저의 역사와 장원제ㆍ217
인클로저의 결과와 장원제ㆍ227
5. 종합적 결론: 장원제가 영국의 역사에 미친 영향ㆍ237

제3장 프랑스 장원제의 귀결ㆍ39
1. 영주 계급의 변화ㆍ240
2. 영주 계급과 농민 계급에 대한 군주정의 태도ㆍ242
3. ‘영주적 반동’ㆍ245
옮긴이의 말ㆍ255
찾아보기ㆍ259

출판사 서평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저항한’ 지식인의 뜨거운 상징
블로크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는 사회적 위기 국면을 방관하지 않고 현실에 맞서 싸우는 실천적 역사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역사를 ‘내일은 어떤 방향에서 어제와 다를 것인가를 예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변화의 학문’으로 여겼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보병대위로 참전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무려 53세의 나이로 참전했다. 프랑스군이 붕괴된 뒤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나치에 적발되어 1944년에 처형된다. 그의 죽음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저항한 지식인의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이런 그의 행보는 단순히 그와 그의 가족이 유대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는 유대인으로서 성장기에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한 프랑스 사회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이유를 민족 감정만으로는 이해해선 안 된다.
그는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가 발전시켜 온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평등 같은 인류의 보편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공화국이 없이는 국민의 자유도 없다는 공화주의자로서의 신념 또한 지니고 있었다. 또한, 역사는 변화의 학문이라는 소신에서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진보적 세계관, 역사는 현재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현실적 학문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현재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책임감 등과 같은 세계관과 소신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점은 그의 저서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L’trange d?faite: t?moignage ?crit en 1940, 김용자 옮김, 까치, 2002)과 레지스탕스 활동기간에 쓴 『역사를 위한 변명』(Apologie pour l’istoire ou m?tier d’istorien, 정남기 옮김, 한길사, 1979)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요약하고 정리한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는 역사는 정당하며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데 유용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에 대한 관심과 지식 없이는 과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소신이 피력되어 있다.

비교사적 연구를 통한 영국과 프랑스의 비교
마르크 블로크는 20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의 농촌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경제적 구조의 차이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외관상 영불해협의 프랑스 쪽 땅은 울타리가 없이 탁 트인 개방경지제와 집촌(集村)을 특징으로 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데 비해, 영국 쪽은 울타리로 둘러쳐진 경지제도와 외딴집(散村)으로 된 풍경이 전개된다.”(29쪽) 또한, “농촌사회의 구조에서도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 농업인구의 비중이 훨씬 낮고, 토지 가운데 곡물경작지가 훨씬 적은 대신 목초지의 비중이 높아 곡물의 자급률이 매우 낮으며, 대토지 소유제가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농업인구의 비중이 훨씬 높고, “곡물경작지의 비중과 곡물의 자급률이 매우 높으며, 대토지 소유가 존재하지만 중소 규모의 농민적 토지소유와 병존한다.”(29쪽) 블로크는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자연발생적’이지 않으며 두 국가의 ‘장원제’를 비교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겠다고 선언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구방법은 비교사적 방법이다. 현대 영국과 프랑스 농촌사회가 지니는 차이의 원인을 시종일관 양국의 장원제 역사를 비교해 고찰함으로써 규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형태의 장원은 두 부분의 토지로 구성된다. 한 부분은 땅의 소유주이자 지배자인 영주가 여러 가지 노동력을 이용해 직접 경영하고 그 수확물을 차지하는 영주직영지다. 다른 한 부분은 소규모의 농장들로 구성되며 그 보유자는 영주에게 각종 부역노동과 공납을 이행할 의무를 지는 농민보유지다.
장원제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차원의 제도다. 하지만 장원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장원제가 중세에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기본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는 것, 즉 가족, 봉신(封臣) 집단, 도시공동체처럼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단위 조직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장원제는 이런 경제적 차원의 이익 도모와 지배권과의 결합이며, 강한 지배권과 경제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권력이 영주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는 『서양의 장원제-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에서 ‘장원제의 역사’를 추적한다. 하지만 모든 유럽사회의 장원제를 탐구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로,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닮고 동일한 추세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서로 몹시 다른 두 이웃 사회, 곧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 역사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장원제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 어떤 사회를 구성하려 했는지를 살펴본다. 더 나아가 장원제가 두 국가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힌다.

마르크 블로크의 삶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저항한’ 지식인의 뜨거운 상징
블로크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는 사회적 위기 국면을 방관하지 않고 현실에 맞서 싸우는 실천적 역사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역사를 ‘내일은 어떤 방향에서 어제와 다를 것인가를 예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변화의 학문’으로 여겼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보병대위로 참전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무려 53세의 나이로 참전했다. 프랑스군이 붕괴된 뒤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나치에 적발되어 1944년에 처형된다. 그의 죽음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저항한 지식인의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이런 그의 행보는 단순히 그와 그의 가족이 유대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는 유대인으로서 성장기에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한 프랑스 사회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이유를 민족 감정만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그는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가 발전시켜 온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평등 같은 인류의 보편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공화국 없이는 국민의 자유도 없다는 공화주의자로서의 신념 또한 지니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를 변화의 학문으로 인식했으며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또한, 역사는 현재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현실적 학문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현재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책임감 등과 같은 세계관과 소신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점은 그의 저서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L’trange d?faite: t?moignage ?crit en 1940, 김용자 옮김, 까치, 2002)과 레지스탕스 활동기간에 쓴 『역사를 위한 변명』(Apologie pour l’istoire ou m?tier d’istorien, 정남기 옮김, 한길사, 1979)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요약하고 정리한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는 역사는 정당하며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데 유용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에 대한 관심과 지식 없이는 과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소신이 피력되어 있다.

■ 한길사에서 번역해 출간한 마르크 블로크의 저작
『역사를 위한 변명』, 고봉만 옮김
『봉건사회』ⅠⅡ, 한정숙 옮김
『기적을 행하는 왕』, 박용진 옮김

장원의 구성과 성격

완전한 형태의 장원은 두 부분의 토지로 구성된다. 한 부분은 땅의 소유주이자 지배자인 영주가 여러 가지 노동력을 이용해 직접 경영하고 그 수확물을 차지하는 영주직영지다. 다른 한 부분은 소규모의 농장들로 구성되며 그 보유자는 영주에게 각종 부역노동과 공납을 이행할 의무를 지는 농민보유지다.
장원제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차원의 제도다. 하지만 장원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장원제가 중세의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기본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는 것, 즉 가족, 봉신(封臣) 집단, 도시공동체처럼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단위 조직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장원제는 이런 경제적 차원의 이익 도모와 지배권과의 결합이며, 강한 지배권과 경제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권력이 영주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다.

“길게 따질 필요 없이 우리는 그와 같은 장원제가 조금만 보급되어도 사회구조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장원제는 순수한 의미의 노예는 아니지만 주민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예속민 계급 위에 지배자 계급이 군림하는 것을 전제하고, 상당히 강한 지배권력과 경제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권력이 이들 지배자의 수중에서 결합되는 것을 전제한다.”_50쪽

자크리의 난

백년전쟁 중인 1382년에 프랑스 남부의 랑그도크 지방에서 군인의 노략질, 일부 영주의 영국군과의 타협, 염세를 비롯한 많은 세금의 부당한 징수 등에 대한 항의로 빈민층을 주축으로 일어났다가 그 이듬해에 진압된 농민반란을 말한다. 여기에는 도시의 부르주아층도 가담했다.

비교사적 연구를 통한 영국과 프랑스의 비교

블로크의 비교사적 연구
블로크에 따르면 비교사(比較史)는 상이한 인근 사회들 간의 영향과 역사적 현상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설명하고, ‘일반적인 참다운 원인’ 또는 ‘유일한 실제 원인’을 파악하며, 유사점과 함께 상이점과 개별적 특성 및 차이의 원인을 밝히려 한다. 비교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시공간적으로 동떨어져 있어 상호 간의 관계나 공통의 기원을 찾을 수 없는 사회들 사이에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의 비교다.”(26쪽) 이는 인류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역사 속에서 개별적으로는 상이하지만 같은 부류에 속하는 제도들을 찾아내고, 이 제도들을 비교해 특이하게만 보이는 문화적 요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밝히며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둘째, “지리적으로나 시간상으로 근접해 기원과 발전 과정의 작용요인을 공유하고 서로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들의 비교다.”(26쪽) 끊임없이 영향